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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들어가며 - 모두가 떠나는 여행 15 1부 인도 이야기 불법의 길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로 천축天竺, 인도印度라는 그 나라 국어가 없는 나라 인도 소를 골병들게 하는 인도 인도 오해의 결정판 카스트 제도 내신 성적과 같은 불교의 업과 윤회 물의 도시로 변한 빛의 도시, 바라나시와 녹야원 가기도 힘든 기원정사와 룸비니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대열반지 꾸쉬나가르 생긴 것은 반드시 사라짐을 보여주는 바이샤리 그 이름만으로도 벅찬 나란다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본 왕사성 깨달음의 터 보드가야에 솟은 대탑 2부 티벳 이야기 남의 손에 들린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티벳은 원래 중국의 일부인가 두 가지 진리, 이제론二諦論 중국 불교와 티벳 불교의 차이점 밀교는 티벳불교만의 전통일까 돈오頓悟는 이단일까 무아와 공성을 위한 점수 체계 그리고 여래장 사상 밀교密敎와 딴뜨라Tantra 만뜨라mantra와 다라니dh?ra?? 육식하는 라마bla ma와 고승 대덕 삼보三寶가 아니라 사보四寶에 귀의하는 티벳 불교 티벳의 영광, ‘그레이트 티벳’ 불법을 간직한 서쪽 땅, 서장西藏 3부 무스탕에서 떠올린 티벳 언제나 가슴에 남는 곳 무스탕 히말라야 카라반들의 중심지 무스탕 잡으려면 야크를 잡아라 스승과 제자의 두 게송, 렌다와와 쫑카빠 대사 티벳 불교에는 아미타불이 있을까 불교 교학 체계를 완성한 티벳 밀교 티벳 불교는 어느 부파의 후예인가 보리도 사상을 강조하는 티벳 불교 존자님의 애제자 그리고 팍빠 문자 공성의 지혜 소풍 갈 때까지 공부하자! 4부 투르크 이야기 실크로드인가 투르크의 땅인가 ‘사라진 왕국’ 누란 ‘피의 고개’ 훈제라브 고개 만년 설산의 톈산산맥을 넘어 ‘동양의 스위스’ 키르기스스탄, 그 속의 오시Osh 탈라스 전투와 고선지 인간이 만든 재앙, 사막이 된 바다 아랄해 수피즘의 성지에서 인도 이슬람교를 생각하다 수염 한 줌 때문에 시작된 칭기즈칸의 서진 그레이트 게임의 명분, 히바의 백인 노예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사마르칸트 드디어 건넌 하미 파미르, 나무를 본 적 없는 아이들의 땅 나오며 - 집을 지고’ 다시 그 길에 설 수 있기를 부록 - 티벳에 대한 오해와 이해 |
辛尙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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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처럼 몰려오는 비구름과 쏟아지던 우박들, 종일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야만 했던 5천 미터의 고개 등. 그 옛 사진을 들춰보며 지금도 떠돌고 있음을, 이 한 생에 어떤 사진을 남길 수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 본다. 비록 구부러졌고 뒤틀렸을지라도 불법에 의지했던 한 생의 풍경 사진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 길 위의 한 생, 좋은 추억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기고 싶기에.
--- p.18 ‘내가 지은 것은 내가 받는다.’ 이것이 인도인들의 유전자를 지배하는 ‘지은 것’을 뜻하는 ‘까르마karma’, 즉 업業이다. 그리고 당연히 뒤따르는 것이 ‘그럼 죽음 이후에는?’이라는 문제다. 만약 죽음으로 이 업이 모두 사라진다면 ‘내가 지은 것을 내가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업과 윤회는 떨어질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모든 세계 종교가 강조하는 사회적으로 행할 도덕적 의무인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강조해도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각기 달리 해석한다. --- p.44~45 ‘왜 이슬람교도들은 불교도들을 그토록 핍박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아무래도 당시 불교도들의 상가가 ‘약탈할 것이 가장 많아서’, 그리고 조직적인 저항을 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가 컸기 때문이리라. 당시 계율戒律이라는 조직의 규범을 갖춘 ‘출가 공동체’인 상가는 전 인도에 걸쳐 자신들만의 집단을 꾸리고 있었다. 이 조직을 통해 저항하기 시작하면 ‘더 느슨한’ 힌두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 p.65 ‘불교는 어렵다’라고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이 연기법이 바로 불법의 근간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사성제·팔정도·오온 십이처·십팔계·오위백법 등 펼치면 천수천안을 가진 관세음보살의 손가락처럼 무수하게 늘어나는 게 불법이지만, 쥐면 한주먹인 게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것인 연기법, 오직 이 하나이다. 고정불변하는 속성을 가진, 즉 자성自性을 가진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그저 상호 의존적인 것일 뿐이라는 이 연기법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후 불법의 핵심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 p.74 유부·경량·유식·중관이라는 이 4종 교학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관사상에서만 전면에 내걸고 있는 ‘두 가지 진리’라는 주제는 인도-티벳 불교의 전통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이것은 일체 무자성에 근거를 둔 언설로 표현 불가능한 연기 실상의 세계(진제)와 언설로 된 희론戱論의 세계(속제)라는 ‘두 가지 진리’라는 개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일체 무자성=연기=공성’이라는 항상 움직이는 세계를 언어·개념·정의 등으로 고정하는 언설의 세계로 전환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주목·강조하고 있다. --- p.89 티벳 불교에서는 ① 작作·행行·요가·무극상요가라는 4종의 딴뜨라, 즉 4종의 밀교의 구분법을 쓰는데 이것은 일상의 생활을 관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작행요가·무극상요가’로 줄일 수 있는 이것의 작作은 산스끄리뜨어 어원 ‘끄르k?’에서 온 것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반적인 행위를 뜻하고 ② 행行은 산스끄리뜨어 어원 ‘짜르car’에서 온 것으로 예식 행위를 뜻한다. 그리고 ③ 요가나 ④ 무극상요가는 요가 수행이나 집중 수행을 가리킨다. --- p.95 한역 경전권에서 ‘감출 밀密’자를 써서 밀교密敎라 불리는 딴뜨라tantra는 명백하게 드러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敎, 즉 현교顯敎와 쌍을 이룬다. 밀교에 비하자면 경론과 이에 대한 세세한 주석을 따르는 현교의 배움은 각각의 그 근기에 따라 고만고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밀교는 스승과 제자 간의 법의 전승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과 함께 스승과 제자 사이의 법맥을 강조하는 선불교와 닮은 점이다. --- p.105 중국·한국·일본의 한역 경전권과 함께 대승 불교의 양대 축을 이루는 티벳 불교는 불법승의 삼보三寶가 아닌 사보四寶에 귀의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지키고 베푸는 ‘출가 공동체’, 즉 불법승의 삼보야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승僧을 스님으로 생각하는 한국의 풍조와 달리 티벳 불교에서는 이 삼보 앞에 법을 전해주는 스승들을 앞에 두어 ‘나모 구루브야namo gurubhya’라고 스승들에 대한 예찬·조복·귀의 등을 먼저 한다. --- p.116~117 한문 경전권 불교나 티벳 불교, 아니 모든 불교가 기복과 신행을 최고로 친다면 여타 종교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지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불교는 다른 종교와 구별되고, 특히 대승 불교가 ‘더불어 사는 삶’에 강조의 방점을 찍는다면 남방, 또는 소승이 추구하는 아라한의 길과 차이가 난다. 부처님을 복혜양족존福慧兩足尊이라고 부르듯, 티벳 불교가 강조하는 공덕이 복덕과 지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그리고 공덕의 제일은 공성을 깨닫는 지혜라는 점을 명심한다면 신행의 중심이 곧 지혜의 체득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129 티벳에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실크로드 간선 가운데 하나인 이곳을 거쳐 티벳 고원으로 곧장 올라가면 ‘회색의 땅’을 뜻하는 싸꺄Sa skya 지역으로 연결된다. 바로 이런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티벳어로 이곳을 ‘호만탕lho smon thang’이라고 불렀다. 수도 라싸의 중산층 표준 발음법으로 쓰자면, ‘호멘탕’ 정도 되는데, 남쪽을 뜻하는 ‘호lho’, ‘풍부한, 풍족한’을 뜻하는 ‘멘smon’, 그리고 ‘평원, 평지, 땅’ 등을 뜻하는 ‘탕thang’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남쪽의 풍요로운 평지’를 뜻한다. --- p.133~134 지수화풍공의 오대, 즉 다섯 가지 요소 또는 그 성격을 표현하는 색체의 상징 가운데 땅, 즉 지地는 황색, 물인 수水는 흰색, 불인 화火는 붉은색, 바람인 풍風은 녹색, 그리고 허공인 공空은 청색으로 표현된다. 즉 이 다섯 가지 색채의 조합으로 3계 6도를 도상으로 표현하는 만다라가 완성되고 그 밖에 힘·권능의 검은색 그리고 새로움의 노란색 등을 합하면 불교 도상학이 뜻하는 기본적인 색의 대략적인 그림이 완성된다. --- p.145~146 실크로드 선상의 유서 깊은 산중도시인 오시Osh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도시 한 가운데 솟아 있는 돌산인 술래이만산Sulayman Mountain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바로 이곳이 인도의 마지막 통일 왕조인 무굴제국의 시조인 바부르Babur가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인도로 남하하며 ‘천하통일의 서원’을 세운 곳이었다. 오늘날 국경으로 막혀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안디잔Andijan 출신인 그는 당시 실크로드 선상의 주요 도시인 이곳 바위산에 올라 ‘천하 일통’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 p.196~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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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정복하는 자가 천하를 정복하는 자보다 빼어나다”
불법에 의지했던 한 생의 풍경 사진, 마음공부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부처가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대열반에 드신 인도의 문화와 인도 불교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도인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에 관한 실상과 카스트제도에 관한 오해를 현지 생활자의 시각에서 풀어준다, 또한 ‘초전법륜지’로 유명한 바라나시와 녹야원을 거닐었던 경험, 부처가 태어난 룸비니에서 정법의 길을 온몸으로 따라 걷는 노승들을 만난 이야기도 들려준다. 사라나무 꽃 아래에서는 노란 꽃비 한가운데서 열반에 드신 부처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며 부처의 뜻을 헤아려보기도 한다. 2부에서는 티벳 순례지를 여행하며 불교에서의 유부有部·경량經糧·유식唯識·중관中觀이라는 4종 교학과 그중에 중관사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티벳 최대의 승원인 데풍사 승려들을 보며 티벳 불교에서는 돈오(단번에 깨달음을 일컫는 말)를 왜 이단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카일라스 돌마라 고개에서는 티벳 불교의 밀교(딴뜨라)란 ‘생활이 곧 수행’을 뜻함을 이야기한다. 또한 중국 불교와 티벳 불교의 차이점에 관해서도 불법이라는 것은 그것을 이루는 ‘재료’가 오랜 시간 각기 다른 풍토 속에서 자라 달라져왔을 뿐, 모두 하나라는 것을 강조한다. 3부에서는 네팔 안나푸르나 뒤 무스탕 길 위에서 티벳 불교를 떠올린다. 무스탕은 티벳 불교를 다른 나라로 전파한 장소이다. 저자는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 때 토롱라 고개와 묵띠나스를 넘으며 1960년대 달라이 라마가 자비심과 비폭력에 기초한 ‘자유 티벳 운동’을 전개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꾼촉링을 가는 길에는 티벳 불교에도 ‘아미타불’이라는 개념이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스탕의 랑충 곰빠(사원)과 개미 곰빠, 니푸 곰빠를 순례하면서는 대승 불교에 관한 개념과 보리도 사상을 강조하는 티벳 불교에 관해 알려준다. 4부에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인 투르크 지역을 순례하며 파미르 고원을 넘어 현장 스님이 걸었던 길을 따라간다. 저자는 동양의 스위스인 키르기스스탄의 오시 그 한가운데 술래이만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무굴제국의 시조인 바브르를 떠올리기도 한다. 기후 위기로 인해 사막이 되어버린 아랄해를 보며 인간의 탐욕을 성찰한다. 폐허가 된 오스트랄 유적지에서는 수많은 곳을 정복한 자 또한 죽음을 면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결국 ‘마음을 정복하는 자가 천하를 정복하는 자보다 빼어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가슴에 항상 ‘돌아가야 할 곳’으로 남은 티벳은 더는 예전의 티벳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전거를 밀고 오르던 고개는 그대로 있겠지만 그때의 ‘젊음’이 아닌 이상 다시 그 길에 도전할 수도 없다. 다만 서티벳의 사철 만년설에 뒤덮인, 눈부신 정상이 검은 몸통 위에 솟아 있는 수미산 정도는 그대로일 것이다. 지상地上이라는 이 둥근 별의 지표면의 한 동물인 인간이 무슨 일을 저지르든 45억 년이라는 지구의 시간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종種의 하나일 뿐이기에, 세계의 중심은 예전처럼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_230쪽 “한 생을 사는 우리는 지금도 길 떠나는 여행자다” 인도-티벳 불교에서 찾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사는 법 저자가 불법의 길 위에서 배운 것은 ‘인간이란 모두 죽음으로 향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이란 밖으로 떠도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기 내면으로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한 생을 사는 우리는 지금도 길 떠나는 여행자인 셈이라고 말한다. 이 혼자 떠나는 내면의 여행은 어느 누구도 같은 시간에 같은 여행지를 다니지 않는다. 저마다의 처지가 다른 만큼 어느 곳이 좋고 나쁜지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고 하고, 거기에서부터 삶의 고통이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제아무리 불교 교학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마음의 평정이 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요, 염불·독송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경론을 한 줄 읽는 지혜가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마음의 평정, 또는 선정 상태와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깨닫는 지혜는 곧 ‘공성의 체화’에 있다고 말한다. 한없이 먹고 먹히는 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인간이 신에게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결국 저자는 ‘살아낸다는 것’은 부처도, 용수 보살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으며, 이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이 책에서 강조한다. 누구나 떠나는 여행, 단 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죽음이 이 삶의 마지막 여행지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여행하고 있다. 다만 그 이전에 각자의 몫만큼의 자신의 여행을 떠난다. 젊은 날의 그 떠돎이 가르쳐준 것은 여행이란 밖으로 떠도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으로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혼자 떠나는 내면의 여행은 저마다의 처지가 다른 만큼 어느 곳이 좋고 나쁜지 말할 수 없다. 다른 누구도 같은 시간에 같은 여행지를 다니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고 한다._1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