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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ㆍ지나온 날들이 보낸 작은 신호―4
동네 잔칫날―15 유치원 졸업사진 찍던 날―18 친척 어른에게 혼난 날―22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던 날―26 풍금으로 아라베스크를 들은 날―30 열한 살의 여름방학 1―35 열한 살의 여름방학 2―36 열한 살의 여름방학 3―40 타임캡슐을 묻은 날―45 둘째 고모의 죽음을 마주한 날―50 큰언니의 갈색 부츠를 신어 본 날―54 19금 영화를 본 날―58 코끼리를 처음으로 본 날―63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68 2002년의 끝, 종로에서 프랑스 영화를 본 날―72 일본에서 1―78 일본에서 2―83 엄마를 배웅하던 날 1―87 사무실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린 날―91 울산, 1박 2일―94 그날 이후 100일째 되던 날―99 엄마와 함께 요플레를 먹은 날―101 노르웨이에서 온 ‘생명의 물’을 마신 날―105 휴가가 끝난 큰언니의 출국일―109 고향 집에서 보낸 황금 휴가―114 딱 하루 출근했던 그곳에서의 하루―119 너의 말이 서운하게 들렸던 날―124 무주, 1박 2일―128 타인의 그림자를 훔쳐본 날―133 할매의 장롱을 정리하던 날―136 엄마를 배웅하던 날 2―141 보리암에 올라간 날―146 살구 밭에 딱새가 날아든 날―150 단골 안경점을 떠나보낸 날―154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159 내가 쓴 편지를 돌려받은 날―164 차도 한복판을 걷고 있는 노인을 목격한 날―168 멧돼지에 대해 들은 날―171 옛 시절 소환의 날―175 신혼집을 보러 다닌 날―180 뒷산 꿀밤나무 이야기를 들은 날―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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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지킬 수 없는 약속들을 하나씩 늘려 가는 일임을, 나는 알지 못했다. --- p.71
이런 말이 신기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엄마가 요플레를 먹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요플레를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에는 언제나 다른 살 것과 우선순위를 비교하며 마트의 진열대 앞에서 요플레 하나 마음 편히 담지 못했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음으로는 엄마의 마음이 읽혔다. 엄마라고 해서 왜 먹고 싶은 과자가 없을까? 엄마를 손바닥 크기만도 못한 요플레 앞에서 주저하게 만든 시간이 어쩐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 p.104 서른이 넘어서도 ‘베스트 프렌드’라는 표현이 주는 묘한 마력은 유효했다. 어떤 불편함도 무장 해제하는 편안함, 너에 관한 이야기라면 무엇이라도 들어 주겠다는 관대함. 그런데 사회에 나가게 된 후 가끔 오리와 통화를 할 때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이야기를 듣는 일에 지쳤고, 어느 결에는 대화가 끊겨 곤혹스러웠다. 현재의 공감대가 허약해지면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몰라 종종 헤매는 사이가 되었다. --- p.124~125 아빠는 자주,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인연’이라고 표현했다. 필연이 아닌 인연이라는 관계. 그 말을 들을 때 면 나는 좋은 의미로 아빠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저 사람이 우리 아빠라서 다행이야”, “그는 대체적으로 옳은 선택을 했어”처럼. 가족이기에 서로에 대해 전부를 알 것 같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 오히려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여전히 아빠를 통해 배우고 있다. --- p.153 자식으로서 어느덧 늙어 가는 부모의 생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대부분의 자식이 그럴 테지만, 부모와 함께할 수 없는 순간에 그들의 고달픈 하루를 상상하는 일은 정말이지 고역스럽다. --- p.161 편지를 쓰던 그 밤의 기억은 사라졌다. 나는 기억에서 사라진 그 밤에 느꼈던 감정을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는 법. 그 일부라도 남겨 두고 싶어서, 끝내는 사라지지 말았으면 싶어서, 우리는 편지를 썼던 것이 아닐까. --- p.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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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그의 작은 날들인지 모른다 유치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체험학습 같은 것으로 고구마 캐기를 했고, 동네 친구에게 내가 캔 고구마를 주고 싶었다. 친구가 사는 지하방으로 향하면서 무척 들떴었다. 고구마가 든 봉지를 건넸을 때, 친구의 어머니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래, 이거 몇 개 캐 온 거야?” 그녀는 던지듯 봉지를 내려놓고는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현관과 연결된 주방이자 욕실에서 친구의 얼굴을 씻겼다. 나는 인사할 타이밍을 찾지 못해 컴컴한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두 사람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슬프고 무안했다. 고구마를 많이 캐지 못한 탓에 집에는 한 개도 남겨 놓지 않고 전부를 가져간 거였다. 친구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해 보게 된 건,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서다. 그녀에게 나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에 가지 않는 딸의 마음이 혹 다치지는 않을까 염려되고, 딸을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을지 모른다고. 분명 나는 봉지를 흔들며 “유치원에서 캐 왔다”고 경쾌하게 말했을 테니. 그날의 고구마는 나와 친구네 가족에게 서로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어린 나의 마음을 떠올려도, 뒤늦게 헤아려 본 친구네 마음을 생각해도 그날은 아프다. 나의 작은 날이다. 누구나 그런 ‘작은 날’을 가지고 있다. 즐겁지 않은 기억이기에 애써 흘려보내려 한 날, 있었는 줄도 모르고 살았을 만큼 별 의미를 두지 않은 날. 이 책은 그 ‘작은 날’들의 기록이다. 저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기억 속에 고요히 머물러 있는 작은 날들을 하나씩 꺼낸다. 늘 동생에게 양보한 엄마의 등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었던 유치원 다과회,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전학생과의 짧은 추억, ‘탤런트’라는 장래희망을 친구들에게 들킨 순간, 대학생이 된 언니의 신발에 몰래 발을 넣어 보던 밤, 이름 없는 섬처럼 고독했던 사무실에서의 하루, 이제는 안부를 묻지 않게 된 친구와의 즐거웠던 한때, 부모의 나이 듦을 마주하는 시간 등. 저자의 작은 날들엔 쓸쓸함, 슬픔, 설렘, 놀라움, 그리움 등이 깊고 차분하게 묻어 있다. 작은 날은 근사함과는 거리가 멀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기도 하고, 이야기를 꺼내기 민망할 만큼 별것 없기도 하다. 때로는 나조차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휘둘리느라 여전히 정의 내리지 못한 채로 덮어 둔 날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작은’ 날이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을 설명하는 건 그런 날들이 아닐까 하는. 누군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그 사람의 작은 날들인지 모른다고, 내 진짜 모습은 나의 작은 날들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이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또 독자들에게, 큰 행복 큰 기쁨의 날에 가려지기 일쑤인 작은 날의 가치와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의 작은 날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싶다’는 표현에 그 마음을 담아서. 만약 그런 거라면 적어도 내게는 통했다. 저자가 글에서 제안한 대로 당신의 작은 날들이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분명 그날들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날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