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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아름다운 말 성스러운 길
노자 원저 양회석
마로니에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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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일러두기 4
해설 노자를 읽는 새로운 시각 5

도경(道經)

제1장 상도(常道) 29
제2장 유무상생(有無相生) 38
제3장 위무위(爲無爲) 44
제4장 만물지종(萬物之宗) 49
제5장 천지불인(天地不仁) 53
제6장 현빈(玄牝) 57
제7장 천장지구(天長地久) 61
제8장 상선약수(上善若水) 64
제9장 공수신퇴(功遂身退) 69
제10장 영백포일(營魄抱一) 73
제11장 무지위용(無之爲用) 78
제12장 오색목맹(五色目盲) 82
제13장 총욕약경(寵辱若驚) 87
제14장 무상지상(無狀之狀) 93
제15장 선위도자(善爲道者) 99
제16장 허정(虛靜) 104
제17장 아자연(我自然) 109
제18장 대도폐(大道廢) 113
제19장 현소포박(見素抱樸) 116
제20장 절학무우(絶學無憂) 120
제21장 도지위물(道之爲物) 126
제22장 곡즉전(曲則全) 131
제23장 희언자연(希言自然) 137
제24장 기자불립(企者不立) 141
제25장 도법자연(道法自然) 144
제26장 중위경근(重爲輕根) 152
제27장 습명(襲明) 155
제28장 대제불할(大制不割) 159
제29장 천하신기(天下神器) 163
제30장 부도조이(不道早已) 167
제31장 병자불상(兵者不祥) 171
제32장 도상무명(道常無名) 176
제33장 사이불망(死而不亡) 180
제34장 공성불유(功成不有) 184
제35장 대상(大象) 187
제36장 미명(微明) 190
제37장 도상무위(道常無爲) 195

덕경(德經)

제38장 상덕부덕(上德不德) 213
제39장 득일자(得一者) 220
제40장 유생어무(有生於無) 226
제41장 도은무명(道隱無名) 228
제42장 교부(敎父) 233
제43장 무위유익(無爲有益) 238
제44장 지족불욕(知足不辱) 241
제45장 대교약졸(大巧若拙) 246
제46장 지족상족(知足常足) 250
제47장 불행이지(不行而知) 253
제48장 위도일손(爲道日損) 257
제49장 무상심(常無心) 260
제50장 출생입사(出生入死) 266
제51장 도생덕휵(道生德畜) 272
제52장 습상(襲常) 276
제53장 도우(盜?) 281
제54장 선건불발(善建不拔) 285
제55장 함덕지후(含德之厚) 289
제56장 화광동진(和光同塵) 294
제57장 무위자화(無爲自化) 298
제58장 화복(禍福) 305
제59장 막약색(莫若嗇) 310
제60장 약팽소선(若烹小鮮) 313
제61장 대자의하(大者宜下) 317
제62장 만물지오(萬物之奧) 321
제63장 대소다소(大小多少) 326
제64장 욕불욕(欲不欲) 331
제65장 선위도자(善爲道者) 336
제66장 백곡왕(百谷王) 341
제67장 삼보(三寶) 344
제68장 부쟁지덕(不爭之德) 349
제69장 애자승(哀者勝) 352
제70장 피갈회옥(被褐懷玉) 355
제71장 지부지상(知不知上) 360
제72장 민불외위(民不畏威) 363
제73장 용어불감(勇於不敢) 366
제74장 사살자(司殺者) 371
제75장 식세지다(食稅之多) 374
제76장 생사지도(生死之徒) 377
제77장 유여손지(有餘損之) 380
제78장 정언약반(正言若反) 384
제79장 유덕사계(有德司契) 388
제80장 소국과민(小國寡民) 392
제81장 신언불미(信言不美) 399

부록 1. 노자 열전 417
부록 2. 노자의 문학적 글쓰기와 그 함의 420
부록 3. 《文으로 읽는 노자 도덕경》 서문과 추천사 467

저자 소개 2

老子,노담(老聃), 태사담, 본명: 이이(李耳), 자: 담(聃)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으로 생졸년은 모두 미상이다. 춘추시대 말엽 초나라에서 태어나 진나라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주나라에서 오늘날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에 해당하는 수장실守藏室 사관을 지냈다. 이후 주나라가 쇠락하자 벼슬을 버리고 떠나던 중, 노자의 비범함을 알아본 함곡관 수문장 윤희의 간곡한 부탁으로 『노자』를 썼다. 『노자』는 상·하편 5,000여 자의 짧은 분량이지만 우주론, 인생철학, 정치·군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아 후대에 널리 영향을 끼쳤다. 노자가 도를 닦으며 심신을 보양한 삶을 산 덕에 장수했다고 전해질 뿐, 그 외 은둔 길에 오른 이후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으로 생졸년은 모두 미상이다. 춘추시대 말엽 초나라에서 태어나 진나라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주나라에서 오늘날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에 해당하는 수장실守藏室 사관을 지냈다. 이후 주나라가 쇠락하자 벼슬을 버리고 떠나던 중, 노자의 비범함을 알아본 함곡관 수문장 윤희의 간곡한 부탁으로 『노자』를 썼다. 『노자』는 상·하편 5,000여 자의 짧은 분량이지만 우주론, 인생철학, 정치·군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아 후대에 널리 영향을 끼쳤다. 노자가 도를 닦으며 심신을 보양한 삶을 산 덕에 장수했다고 전해질 뿐, 그 외 은둔 길에 오른 이후의 종적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노자의 다른 상품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복단대학과 양주대학, 일본 교토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저술로 「노자 도덕경-아름다운 말 성스러운 길」, 「도연명 전집 1·2」(공저), 「고시원- 한시의 근원을 찾아서 1·2·3」(공저), 「인문에게 삶의 길을 묻다」, 「서상기」(역서), 「소리 없는 시, 소리 있는 그림」, 「어느 동양학자의 산띠아고 까미노」 등, 다수의 저·역서와 논문이 있다. 한국중국희곡학회 회장, 중국인문 학회 회장,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복단대학과 양주대학, 일본 교토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저술로 「노자 도덕경-아름다운 말 성스러운 길」, 「도연명 전집 1·2」(공저), 「고시원- 한시의 근원을 찾아서 1·2·3」(공저), 「인문에게 삶의 길을 묻다」, 「서상기」(역서), 「소리 없는 시, 소리 있는 그림」, 「어느 동양학자의 산띠아고 까미노」 등, 다수의 저·역서와 논문이 있다. 한국중국희곡학회 회장, 중국인문 학회 회장,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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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153*224*30mm
ISBN13
9788968498404

책 속으로

제1장 상도(常道)

(도가도: 道可道) 도가 도라 할 수 있다면,
(비상도: 非常道) 영원한 도가 아니지.
(명가명: 名可名) 이름이 이름 할 수 있다면,
(비상명: 非常名) 1) 영원한 이름 아니지.
(무 명천지지시: 無 名天地之始) ‘무’는 천지의 시초를 이르네.
(유 명만물지모(미): 有, 名萬物之母) 2) ‘유’는 만물의 어미를 이르네.
(고: 故) 그러므로
(상무: 常無) ‘영원한 무’여,
(욕이관기묘: 欲以觀其妙) 이로써 그 오묘함을 보리라.
(상유: 常有) ‘영원한 유’여,
(욕이관기요: 欲以觀其?) 3) 이로써 그 운행함을 보리라.
(차양자: 此兩者) 이 두 가지는
(동출이이명: 同出而異名) 같이 나와 달리 부르니,
(동위지현: 同謂之玄) 함께 그걸 가마득함이라 하네.
(현지우현: 玄之又玄) 가마득하고 또 가마득하니,
(중묘지문(면): 衆妙之門) 갖가지 오묘함의 문이라네.

【문장 구성】
네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단락은 구중운(句中韻)으로 道와 名이 각각 세 번 반복하여 압운하고 있다(重韻). 또 두 구가 대구를 이루고 있다. 두 번째 단락도 역시 대구로 이루어지고, 始와 母(母婢切)로 압운하고 있다. 세 번째 단락 역시 대구이고, 妙와 ?로 압운하고 있다.

“常○, 欲以觀其△”의 형식으로 대부분 글자가 반복되고 있으니, 두운(頭韻)과 구중운(句中韻)으로 보아도 좋다. 네 번째 단락은 전체적으로 산문이나, 玄과 門(民堅切, 音眠)은 각운(脚韻)이다.

【자구 풀이】
1) 첫 번째와 세 번째 ‘道’는 명사이고, 두 번째의 ‘道’는 동사이다. ‘常’은 형용사로 변치 않고 영원하다는 의미이므로, ‘常道’는 영원한 도, 즉 노자가 생각하는 참된 도(우주의 본원이자 규율)를 가리킨다(제16장 復命曰常, 知常曰明. 제55장 知和曰常, 知常曰明. 참조). ‘可道’ 앞에 의미상 생략된 주어는 ‘세상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도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라는 의미다. “名, 可名” 이하 역시 앞의 문구와 동일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명사 ‘名’은 道에 대한 이름 즉 각종 설명이나 형용을 가리킨다. 세상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도에 대한 설명이나 이름은 참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2) 이 문구는 위와는 다르게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라고 끊어 읽기도 한다. 이는 천지가 시작되기 전에는 사물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이름이 없고, 만물이 형성된 뒤에 이름이 있게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지만, 뒤의 문구 “此兩者, 同出而異名”과의 맥락을 감안하면 적절하지 않다. 즉 ‘異名(달리 부른다)’라 하였으니. ‘이름이 있다 없다’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기서 ‘有’와 ‘無’는 【해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도의 양면성을 가리킨다.

3) 이 문구 역시 “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로 끊어 읽기도 하지만, 2)와 마찬가지 이유에서 타당하지 않다. ‘常無’와 ‘常有’는 2)에서 이미 제시한 ‘無’와 ‘有’에 ‘常’을 첨가함으로써, 그것이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도의 양면을 지칭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妙’는 ‘정미(精微)’ 또는 ‘오묘(奧妙)’로 인간의 감각으로는 쉽게 인지할 수 없지만 영원히 변치 않고 존재하는 도의 특성을 가리킨다(제25장 寂兮寥兮, 獨立而不改. 설명 참조). ‘?’는 ‘순행(巡行)’의 뜻으로 삼라만상에 두루 작용하는 도의 특성을 가리킨다(제25장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설명 참조).

4) ‘此兩者’는 無(또는 常無)와 有(또는 常有) 두 가지. 이것들은 비록 각각 다르게 부르지만 사실은 도의 양면에 불과하다. 마치 우리가 ‘손바닥’과 ‘손등’으로 나누어 말하지만, ‘손’의 양면일 뿐 절대로 나눌 수 없는 것과 같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검으면서 붉은 빛을 띤 것이 현(玄)이다(黑而有赤色者爲玄).”라 하고, 《천자문(千字文)》에서는 “하늘과 땅은 ‘현’하고 누렇다(天地玄黃).”라 하였으니, ‘현(玄)’은 하늘의 빛깔(아마도 저물녘 노을과 함께 저물어 가는 저녁 빛, 혹은 어둠속에서 붉게 밝아오는 아침빛)과 관련됨을 알 수 있다.

장자(莊子)에 의하면 하늘은 너무 멀어서 다함이 없기에(함께 읽을 자료1 참조), ‘현’은 나아가 가물가물하여 헤아릴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게 된다. 한편 ‘현’의 갑골문은 호리병박을 본뜬 글자로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한다는 설, 여울목을 본뜬 글자라는 설 등이 있다. 아무튼 갑골문 속 ‘현’은 무언가 두 가닥이 꼬여 하나가 되는 모양을 하고 있다. ‘현지(玄之)’의 ‘지(之)’는 형용사나 동사의 어미로 의미가 없다.

【해설】
제1장은 노자의 총론이다.
도는 원래 사람들이 다니는 물리적인 길(참고 자료 참조)을 가리키는 평범한 의미에서 시작하여, 점차 ‘방법’ ‘도리’ ‘원리’ 등 추상적인 뜻으로 확대되었다. 아래 참고 자료를 보면, 갑골문에서 원래 ‘人’과 ‘行’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훗날 금문과 소전에서는 ‘首(머리 수)’와 ‘?(쉬엄쉬엄 갈 착)’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러한 자형의 변화는 바로 글자의 뜻이 인신(引伸)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세상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도를 들먹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도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타당할 뿐,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 《論語?里仁》)라 하였던 공자(孔子)의 도도, 그것이 충(忠)과 서(恕)일 따름(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論語?里仁》)이라면, 사람의 도 즉 ‘인도(人道)’에 지나지 않으니, 노자가 말하는 상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주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 때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내세웠던, 남존여비(男尊女卑)나 부창부수(夫唱婦隨) 등이 ‘상도’일 리가 없음은 자명하다.

또한 관점을 바꾸어 말하자면, 도는 언어를 초월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어떠한 언어로도 도의 전체 모습이나 본질을 온전하게 나타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름 ‘명(名)’은 ‘夕’과 ‘口’의 합자로, 어두워져 몸짓이 보이지 않자 입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뜻이니(참고 자료 참조) 곧 언어이다. 우리는 흔히 언어가 곧 진리라는 착각을 하고 산다. 그렇지만 우리가 쓰는 언어는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통행되는 방편에 불과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어로는 flower, 스페인어로는 flor라고 하고, 중국어로는 ‘후아(花)’, 일본어로는 ‘하나(はな)’라고 하는데, 이처럼 언어는 우선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꽃’을 ‘곶’이라 불렀듯이 시간의 제한도 받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름들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상명(常名)’이 될 수 없다.

한편 여기서 이름은 도에 대한 이름, 즉 각종 설명이나 형용을 가리키므로, 세상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도에 대한 설명이나 형용은 영원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예컨대 공자가 그토록 중시했던 ‘정명(正名)’도 마찬가지이다(함께 읽을 자료 2와 3 참조). 이상이 첫 단락의 내용이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우주의 본원이자 규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는 영원하다. 다시 말해 상도(常道)이다. 상도는 본래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이러니이다. 노자는 어쩔 수 없이 말로 설명을 시도한다. 도를 설명하는 방편으로서 이름을 짓는데, ‘천지의 시초’를 ‘무’라 하고, ‘만물의 어미’를 ‘유’라 명명한다.

노자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이다. 차츰 알게 되겠지만, ‘천지의 시초’는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의 ‘혼돈’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삼라만상이 나오므로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는 가능태로서 ‘무’이다.

갑골문자 ‘무(無)’는 양손에 깃털 막대기 같은 도구를 들고 있는 사람을 본떴고, ‘유(有)’는 손으로 고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떴다(참고 자료 참조). 사냥을 나가기 전에 기원의 춤을 추고 또 짐승을 잡은 뒤 고기를 들고서 기뻐 춤을 추고 있는 태곳적 인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들은 원래 ‘사냥’이란 삶을 구성하는 행위의 양면이었다. 그들에겐 고기를 들고 있는 ‘유’ 못지않게, 소원과 성취를 나타내는 ‘무’도 중요했으리라. 이상 둘째 단락이다.

---「제 1장」중에서

출판사 리뷰

아름다운 말 성스러운 길 노자 도덕경

중국의 고전 가운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노자만큼 큰 관심을 받는 책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노자]의 ‘깊은 뜻’, 즉 본의를 온전하게 읽어낸 것이 있을까? 필자는 이런 의문에서 노자의 본의를 규명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진행하여 왔고, 그 결과를 [文으로 읽는 노자 도덕경]으로 출간한 바 있었다. 이를 대폭 수정 보완한 것이 바로 본 책이다.

특히 노자의 문학적 글쓰기와 그 함의를 규명한 필자의 최근 논문 2편을 실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노자를 읽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철학적 관점의 기존 주석과 해석을 뛰어넘어, 문학적으로 종교적으로 그 이해의 지평을 확대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필자는 노자의 본래 면목과 원 목소리를 규명하였고, 또 그것이 21세기 인류에게 여전히, 아니 오히려 절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노자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고 제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지방 시골 출신으로 중앙 도성에서 하급관리를 지낸 노자라는 인물이 아름다운 말로 성스러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노자 텍스트이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부터 책으로서 저술된 것이 아니었다. 먼저 구술되었고, 그것이 대중 사회에서 한동안 구전되다가 마침내 책으로 정착되었다고 필자는 상정한다. 노자 텍스트의 글쓰기/말하기가 농후한 구술성과 대중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자의 아름다운 말은 자연스럽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한편 노자의 사상은 민간신앙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것을 철학적 경지로 승화하였기 때문에, 노자가 제기하고 있는 성스러운 길에는 종교적 신비와 이성적 예지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이 또한 노자의 농후한 대중성적 기반과 무관하지 않다. 노자가 활동하던 춘추시대는 천자의 권위가 추락하고 여러 제후국이 서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외치고 있었다. 국토를 넓히고(富國) 인구를 늘이는(强兵) 것이 사회적으로 최대 관심사여서, ‘잘 싸우는 법’을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주장했다.

그러나 노자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싸우지 말고, 차라리 ‘소국과민(小國寡民)’, 즉 작은 국토와 적은 인구를 주창했었던 것이다(제80장). 이러한 그의 주장에 대해 비현실적인 한갓 몽상일 뿐이라고 배척하였던 사람도 많았었고(예컨대 사마천이 지적하였듯이 유학을 배우고 노자를 배척했던 경우), 또 오늘날에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유토피아라 할 수 있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바로 ‘소국과민’을 도연명(陶淵明 352~427)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최소한 대중 ‘민초’의 각도에서 보면 ‘부국강병’을 위한 전쟁 따위는 언제나 엄청난 재앙에 불과하였음에 틀림없다.

아울러 ‘소국과민’의 현재적 의미도 되새겨보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수십 개 나라로 나누어져 있는 유럽 대륙과 거대 국가 하나가 군림하고 있는 중국이나 미국 대륙을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미래 인류에게 더 바람직한 모델인지 말이다. 노자의 주장을 한 구절로 집약하여 “도를 믿는 자는 도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라고 한다면 구태의연한 종교설교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또 노자의 처음과 마지막 단어를 합치면 “도부쟁(道不爭)”, 즉 “도는 다투지 않는 것이다.”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면, 경쟁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수단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도저히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성을 배제하는 것과 이성 외에는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똑같이 위험한 양극 극단이다(Pascal Pensees).” 라는 지적을. 완전히 이성에 반하는 사이비 종교의 ‘현혹’과 이성을 내세우는 사회적 강자의 ‘폭력’에 동시에 시달려야 하는 현대인에게 노자의 ‘성스러운 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없을까? 노자의 도가 종교적 전망과 이성적 예지를 아울러 제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찍이 필자의 은사이신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 학술원 회원)께서 필자의 작업을 “이는 단순한 노자에 대한 주해가 아니라 중국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독법을 유도하는 학술적인 업적이라 여겨진다.
이 책을 통하여 많은 독자들이 노자의 참 뜻과 함께 중국 고전의 특성까지 깨닫게 되리라고 믿는다.”라고 평가하신 바 있다. 사계의 학자와 재야인사들 역시 필자의 집필 의도와 그 성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양회석 교수의 [도덕경] 해석은 도가 이해의 놀라운 경험이다. 이 책에 대한 문학적, 감성적 접근은 왜 노자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우리의 심령을 뒤흔드는지 쉽게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실로 [도덕경] 주해의 새로운 저본이다.
정재서 (이화여자대학 명예교수, 전 도교문화학회 회장)

[도덕경]과 고대 중국 종교문화의 관계 [도덕경]에 나타나는 구술 문학적인 특징 등,지금까지 그다지 연구되지 않았던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저자의 인문학적 뚝심에 경의를 표한다. [도덕경]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역작이다.
박석 (상명대학교 명예교수)

양회석의 [노자]는 시이자 노래이다.
“글은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담지 못한다.” 공자의 말이다.

약 2500년 전에 노자라는 사람이 5000여 글자로 쓴 글 [노자]에 그가 하고자 한 말이 얼마나 담겼으며 그가 품고 있던 뜻이 얼마나 들어 있을까? 그 ‘깊은 뜻’을 밝히고자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양 교수도 그런 많은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이번에 그 ‘깊은 뜻’을 제대로 찾은 것 같다. [노자]라는 글을 노자시대의 생생한 말로 재구성하여 그 말속에 담긴 노자의 뜻을 찾으려고 한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원시 문장일수록 소리글자의 화법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양 교수는 말이 곧 노래이고 노래가 곧 말이며 그런 말과 노래를 적은 것이 곧 글이라는 생각으로 노래하듯이 [노자]를 읽었다. 자연스럽게 다가온 노자의 진의를 자연스럽게 번역했음은 물론하다. 그래서 그의 『노자』는 매우 시적이다. 소월의 시보다도 더 쉽고 정겹게 다가오는 노자의 노래이다. 이토록 쉽고 정겨운 [노자]는 일찍이 없었다. 어찌 일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병기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한때 [도덕경] 암송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한자음이 입에 새겨지지 않아 두어 달 하다 그쳤다. 양회석교수의 도덕경 역해는 우리말로 쓴 최고의 아름다운 운문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시적인 역해는 본 적이 없다.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한 권의 책’으로 단연코 이 책을 꼽는다.
김종남 (언론인, 전 광주일보 편집국장, 전 광주비엔날레 사무총장)

[노자]는 오묘하고 신비롭다고 하는 말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 양 교수의 역해를 읽어보면 노자가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삶에 전하는 아름다운 글이다. 신전(神殿)에서 내려온 노자가 우리에게 정겹고 자애롭게 속삭인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아는 체도 하지 마세요. 아내한테 이기려 들지도 마시고요.”
유용상 (의학박사 미래아동병원장, 인문연구소 동고송 이사장)

[노자] 역해에는 중국 문학 전공학자로서 양 교수의 통찰력이 빛난다. [노자]가 운문(韻文)으로 이루어진 점에 주목하여 그것이 먼저 구술(口述)되었다가 나중에 책으로 엮였을 것이라 보는 점이 그렇다. 또 바로 이로부터 노자 사상은 모종의 종교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읽어내며, [노자]가 민간 신앙에 기반을 두면서도 이를 철학적으로 승화시켰음을 밝히고 있다.

[노자 도덕경]에는 종교적 신비와 이성적 예지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완전히 이성에 반하는 사이비 종교의 ‘현혹’과 이성을 내세우는 사회적 강자의 ‘폭력’에 동시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노자]의 ‘성스러운 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를 길라잡이 삼아 [노자 도덕경]을 읽으면 한결 쉽고, 새롭게 읽힌다. 학문 외길 40년, 인문학자의 독공(篤工)이 온전히 녹아있다.
김진근 (한국교원대학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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