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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1장 추루한 무일푼의 남성은 왜 공감을 얻지 못할까 우리는 어떤 사람에 공감할까?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사람’ 동물에게도 해당되는 공감의 모순 오래도록 이어지는 ‘사회적 공감 운동’ ‘인지적 공감’과 ‘정동적 공감’ 2장 공감 중독이 불러오는 악순환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공감 공감은 ‘살인 허가증’이 될 수도 있다 ‘쉬운 이해’가 사회를 비뚤어지게 한다 대립과 분단을 낳는 ‘지나친 공감’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것이 아닌 사람들 전면에 드러나는 특정 동일성 과잉 동조에 뒤따르는 위험성 비판보다 위선이 좋을 때도 있다 3장 공감과 잘 지내는 방법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유 악마 같은 상대와 마주하기 갱생되지 않는다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비극의 연쇄 고리를 끊기 위해 특별대담 이시카와 유미石川優 사회 운동의 계기가 된 ‘구두’ 트위터로 비판이 증폭되는 구조 의미 없는 비난에 익숙해지지 말 것 토론은 정말 필요할까? 페미니즘과 BLM 운동이 중요한 이유 4장 전략적 대화가 이끄는 올바른 공감의 방향 이해를 목적에 둔 전략적 대화 협상과 중재의 차이점 성공적인 전략적 대화에 필요한 네 가지 지식 전략적 대화의 네 가지 테크닉 5장 과도한 동질성에서 피어나는 어긋난 공감 아름다운 구호의 함정 좌파와 우파로 나뉜 논쟁의 의미 공생과 포용의 중요성 ‘이해불가’를 전제로 앞으로 나아가기 제6장 공감에 항거하라 이성의 닻을 내려라 명백한 흑백은 때로는 독이 된다 공감받지 않아도, 연결되지 않아도 더 나은 사회와 세상을 위해서 특별대담 우치다 다쓰루?田樹 윤리의 기본, 측은지심 외장형 윤리를 장착하는 방법 집단적 지성의 힘 집단적 지성을 키우는 감정의 그릇 '공감'과 '측은지심'의 차이점 합의 형성을 주도하는 확고한 각오 꾸준한 호흡은 최선의 성장 글을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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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추루한 노인이든 어린아이든 인간으로서 겪는 굶주림이라는 고통은 다를 바 없다. 개인이 갖춘 정보 처리 능력은 매우 미비하고 매번 똑같이 처리하기 힘들다. 그래서 애당초 모든 인류에 동등하게 공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개개인이 가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때 공감은 특정인에만 해당되는 지향성을 갖게 된다.
--- p.20 주변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더 많은 공감을 얻기 위해 경쟁하다 보면 공감의 획득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극적인 문구와 과장된 주장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다 보면 본래 해결하려던 문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만일 진심으로 세계나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쉽게’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고 관심을 끌어내는 방법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문제의 구조를 더 악화시키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감을 얻지 못한 사회적 과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겨진다. 무엇보다 그것을 둘러싼 사회가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 일그러지지는 않을지 깊이 우려된다. --- p.52 공감이 사회와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열쇠 중 하나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특히 기존의 틀만으로 대응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가는 데 공감이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공감은 명백하게 분쟁이나 대립 같은 것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예컨대 1990년대 벌어졌던 르완다 대량 학살은 같은 민족, 어릴 적 친구, 동료 등 동일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특정 민족에 대한 혐오감을 부채질한 결과이다. --- p.89 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나 이론적 태도로는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도 나름의 생각과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의견을 갖고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 의식에 무심코 개입하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실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이해할 목적으로 전략적 대화를 펼쳐간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명확한 이해를 토대로 다시금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해간다. --- p.124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상은 상당 부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저 인간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에 오히려 대립하고 분단하는 이시점에서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일단 우리는 ‘타자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어떻게 하면 타자와 원활히 공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서 괜한 문제의 발생 없이 서로의 생각을 대화로 나눌 수 있다. --- p.157 공감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성이 함께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가능성이 생긴다. 6장 전반부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려면 훈훈한 마음이 공감의 범위를 뛰어넘어 권리의 범위에 이르러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본능적인 것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는가? 개인 차원에서 그룹 차원으로, 다시 조직 차원에서 행정 및 국가 차원으로 그리고 지구적 규모로 사고를 확장해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이성의 힘이다. 지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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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공감’이라는 단어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훈훈하고 따뜻한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연결하며 연대를 만드는 것은 모두 공감의 능력이자 역할이다. 그만큼 공감은 현대인의 인간관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공감은 원만한 인간관계의 비결 이상을 넘어, 비즈니스 영역뿐만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풀어내기 위한 해결책으로도 논의되고 있다. 공감은 연대, 단합, 단일 등의 단어를 어우르는 만큼 힘이 센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힘 센 공감이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 친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과도한 공감에 지치고, 또 누군가는 희박한 공감에 목말라한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알기 위해선 공감의 부정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자각할 필요가 있다. 자각이 없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극적인 문구로 사람들의 공감을 끌고자 하는 게시글에 한 번이라도 지겨움을 느낀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공감 중독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공감은 차별주의자다 “남루한 차림의 노인과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어린아이 중에 당신은 어느 쪽에 공감하는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는 숨겨진 배경이 있다.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길가에 내몰려 굶어 죽기 직전의 상황에 처한 것은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나와 정반대의 정치 성향이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신은 과연 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까?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우리가 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과 공통항을 갖고 있거나 비슷한 경험을 한 대상, 혹은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대상에 좀 더 쉽게 공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아가 자신이 공감하는 만큼 그 대상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처럼 공감이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 등 사적인 영역을 기반으로 피어날 때 함정을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 대상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진실이 아닌, 대상자의 속성이나 배경 등 감정적으로 좌우될 수 있는 사항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공감의 함정에 빠지면 초점이 흐려지고 냉정한 상황 파악이 힘들어지며 결국 진정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공감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인이든 어린아이든 굶주림이라는 고통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공평한 고통을 느낀다. 두껍게 쌓인 고정관념만큼 주의해야 할 것은 ‘안으로 굽는 팔’이다. 만일 굶주림에 고통받는 두 명의 사람이 모두 어린아이라고 가정해보자. 한 명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국의 난민임에 반해 다른 한 명은 내 이웃의 아이라면, 우리는 어떤 아이의 상황을 더 안타깝게 느낄까? 어떤 아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고 할까? 심리학 및 뇌과학에서 행해진 연구 결과를 예시로, 저자는 우리가 타자를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사람’으로 구분한다고 지적하며 이에 따라 공감 또한 차별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갖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공감이라는 이름의 차별주의자는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다. 공감을 훈훈하게만 느꼈던 이들에게는 이 같은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기 위해선 반드시 충격이 필요한 것처럼, 공감의 냉혹한 이면을 깨달은 이는 진솔한 삶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 셈이다. 냉정한 간과는 은은한 차별을, 뜨거운 관심은 과열된 공감 폭력을 낳는다 최근 화제가 된 신조어 중 ‘공능제’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공감 능력 제로’를 줄인 것으로, 현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탄생한 말이다. 이런 단어의 탄생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이 처한 입장과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그로 인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상대 혹은 집단을 상처입히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정반대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유불급’이란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즉, 중용(中庸)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인데 저자는 공감이 폭력처럼 느껴질 때는 주로 과유불급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째서 전혀 다른 ‘공감 결여’와 ‘공감 과잉’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이처럼 반대되는 현상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공감이 ‘인지적 공감’과 ‘정동적 공감’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심리 상태를 추론하여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인지적 공감’과 타자의 심리에 감정적으로 동기화되는 ‘정동적 공감’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에 전혀 다른 양상이 동시에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1장에서 사람들이 미처 자각하지 못한 공감의 이면에 대해 밝히며 “공감이 차별주의자라면 그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저자는 공감의 양면성을 꼬집으며 독자가 자연스레 공감의 다채로운 면모를 탐구하고 고민해볼 수 있게 한다. 공감의 두 가지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도 어느 한쪽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저자의 태도는 우리가 공감을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공감이 병이 아닌 치료제가 되는 미래를 꿈꾸며 1장에서 공감의 기존 정의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재조립한 저자는 2장에선 공감 중도에 휩싸인 사회의 현 상황과 모순점을 꼬집는다. 다음 3장과 4장에서는 분쟁지에서 테러단과 조우하고 또 그들을 위해 일했던 경험을 풀어놓으며 공감을 효과적으로 다뤄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나름의 전략을 제시한다. 마지막 5장과 6장에서는 여전히 ‘공감 중독’ 사회에서 헤매는 이들을 위한 지표를 건네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공감을 잘하는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현재 공감 중독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내 주변에서, 인터넷에서, 나와는 멀리 떨어진 먼 나라에서 과잉된 공감으로 인한 사례가 들려온다. 그러나 공감 중독으로 인한 폐해는 과거부터 지적되어온 문제이다. 미국 남부 흑인들이 경험했던 혐오와 차별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받은 혐오와 폭력의 이유는 가해자들이 흑인 남성에게 강간당한 백인 여성의 입장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홀로코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유대인 소아성애자에게 착취당한 독일 아이들의 고통에 극도로 공감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 결과가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감으로 인한 정의 구현’이나 ‘공감의 승리’라고 볼 수 없다. 내집단에 대한 공감 과잉이 끓어 넘쳐 주위를 전부 불태운 결과일 뿐이다. 자신은 공감 전문가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 담긴 것은 공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학술 이론은 아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인 저자가 분쟁지에서 테러단과 조우하며 그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는 동안 직접 보고 느낀 공감의 올바른 역할과 필요성, 이를 다루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방향까지 폭넓게 살핀 결과물이다. 저자는 가해자와 피해자, 다수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쪽에 과잉되거나 편향되지 않는 공감을 생각해본다. 나아가 결국 이 모든 과정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더 나은 사회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목적’에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과한 공감, 집착적인 면모를 띠는 공감, 한쪽에 치우친 공감 등 한 번이라도 공감에 권태로운 감정을 느낀 적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솔직하고 간결한 의견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받지 않아도, 연결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는 훼손되지 않는다’라는 것은 이 책이 남기는 중요한 메시지다. 그러나 내가 나로 존재하면서 타인의 존재 또한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선 공감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공감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공감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현 사회에 《공감병》이 명쾌한 치료제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