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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푹한
양장
윤해서
시간의흐름 20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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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흐름 소설

책소개

목차

고요의 집 / 빛이 바닥에 흩어진다 / 아무들 - 커서 / 은쑥 / 경계 지어진 것 / 트랙 / 아무들 - 어 / 되풀이 / 허구를 믿는 힘 / 탁상 달력 / 계속되는 / 발자국 / 기다림의 몸짓 / 투명 망토 / 아무들 - 거북이 / 되돌아오다 / 아무것도 없다 매미가 운다 /
무엇: 모르는 사실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 / 금사슬나무 / 함몰 / 잡음 / 멸종이라는 말 / 말의 뜻 / 아무들 - 아름다움 / 눈구름 / 고유명사와 대명사 / Nothing, Neant, Nada, Nichts, 無 / 사이렌 / 호흡의 사이클 / 필요와 아름다움 / 我無들 / 이어지다 / 아무들 - 주이영 / 언덕 / 사일런스 파크 / 심장 모양과 다소 비슷한 / 허구를 믿지 않는다

작가의 말

저자 소개1

소설가. 2010년 단편소설 「최초의 자살」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 장편소설 『움푹한』 『0인칭의 자리』, 『암송』 『그』 등이 있다. 2021년 김현문학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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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0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262g | 115*190*16mm
ISBN13
9791190999090

책 속으로

음악은 천둥으로 시작됐다. 하늘이 쪼개지고 벼락이 지상으로 떨어질 때의 소리. 구름과 구름이 맞부딪쳐 번쩍, 빛을 낼 때의 소리가 빙하의 끝에서 운의 발아래로 다시 한번 쏟아진다. 운은 고개를 들어 찰나의 순간, 공중에 머무는 빙하의 끝을,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캄캄한 하늘을 본다. 별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빙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할 듯하다가 금세 모양을 바꾸어 유려한 곡선을 그려낸다. 운의 눈앞에 몇 개의 언덕들이 솟아난다. 검푸른빛은 옥빛에 가깝게 변하고 천둥이 지나간 자리에는 관현악이 울려 퍼진다. 물의 춤.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물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아득하다. 더블베이스, 첼로, 바이올린, 클라리넷, 바순, 플루트의 소리가 언덕들의 움직임을 따라 점점 커지다가 일곱 개의 붉은 물기둥이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를 때 악기들의 소리를 뚫고 다시 한번 천둥소리가 울린다. 빙하가 쪼개진다. 물 언덕들은 보랏빛으로 바뀌고 빙하의 끝은 불규칙한 능선을 그리며 키가 큰 언덕
부터 빠르게 아래쪽으로 낙하한다. 흰빛이 바닥에 흩어진다.
--- p.12~13

과장 없이. 과장 없이. 현우는 많은 순간, 과장 없이 말하고 싶었고, 말하지 않고 듣고 싶었다. 현우는 지나치게 높은 온도를 지닌 소리들을 피하고 싶었다.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자신은 그렇게 순도 높은 감정을, 끝 간 데 없이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과장 없이. 낮은 음으로 울리는.
--- p.33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중요한 능력 중 한 가지는 ‘허구를 믿는 힘’이다.
허구를 믿는 힘.
(…)
사랑을 믿는 힘.
지탱하는 허구. 지속하는 허구. 고집하는 허구.
운은 자신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신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믿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중요한 능력.
--- p.51

움푹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잖아.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고. 마음이 머물 공간이 필요했어. 계속 흩어지니까.
--- p.87

마태오는 말이 없었다. 운은 마태오의 눈이 여전히 이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만 들여다보게 되면 눈은 어느 때나 거기에 머문다. 절망한 사람들의 눈빛은 무엇 앞에서도 바뀌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같은 것을 보고 있다. 그의 눈이 비어 있는 것은 그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잠들지 않고,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하나가 빛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빛도 어둠도 시간도 삶도. 모든 것이 거기 있다.
--- p.101

하나의 기억이 있다.
하나의 기억은 연결되어 있다.
기억은 지식과 정보, 감각과 감정, 계산과 착오, 이해와 오해, 과거와 현재, ‘나’와 ‘당신’들로 둘러싸여 있다.
--- p.155

운은 이영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영이 사라진 이후 줄곧 맨몸으로 세상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운은 자신이 이영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영이 사라진 이후 줄곧 속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운은 자주 맨몸으로, 속이 텅 빈 껍데기로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다.
--- p.185~186

현우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음들을. 보이지 않는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는 것 같은 음들을. 힘겹게, 그렇지만 계속 나아가는 음들을. 기도를. 기도를. 간절한 무엇을.
말 대신 전하고 싶었다.

--- p.205

출판사 리뷰

“오늘의 움푹함이 필요해.”
서로를 둘러싸고 있는 움푹함의 세계
윤해서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시공간

“움푹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잖아.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고. 마음이 머물 공간이 필요했어. 계속 흩어지니까.”


독창적인 세계관, 시적인 문체로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윤해서의 새 장편소설『움푹한』이 출간되었다. 시간의흐름 출판사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소설이다. 『움푹한』은 한 존재의 소멸이 상대방의 기억 속에 생성하는 움푹한 시공간의 단면을 살핀 작품이다. 우리 삶에서 소중했던 공통의 존재가 떨어져나갈 때, 당신의 가슴에 생긴 상처의 단면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가, 조약돌처럼 매끄러운가. 대상이 무엇이든 애정하는 어떤 존재를 상실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오감으로 감각되는 그에 관한 기억을 ‘윤해서적인’ 소설의 순간들을 통과하면서 문학적으로 복원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재회하게 될 것이다.


“자꾸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라진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

네 사람이 있다. 운, 현우, 이영, 마태오. 소설 속 시간은 분절되어 있고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네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그러나 독자는 읽어나가는 동안 점점 알아차리게 된다. 빈 공간, 누군가의 부재를.
한 사람이 사라졌다. 여름내 울던 매미가 갑자기 뚝, 울음을 그치듯이. 사람은 그렇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떠날 때가 되면 떠난다.” 사라진 사람이 있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사라진 사람은,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과 시간 속에 목소리로, 모습으로, 어떤 말로, 어떤 한 순간으로 계속 존재한다. 남겨진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라진 사람을 기억한다.

마태오는 이영이 되어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운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이영이 되어보았다.
주현우는 이영이라면, 매일 가정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바닥에 가라앉았다. (p.73~74)

한 사람은 모든 말을 들여다보는 사람. 계속해서 같은 것을 들여다보는 사람. 그의 눈은 언제나 그곳에 머문다. 한 사람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되기 위해 매일 쓰는 사람. 남겨지기 전에도, 남겨진 후에도 매일 쓴다. “아침마다 다른 마음으로 일기를” 쓰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한 사람은 느리게 숨을 쉬는 사람. 무감하고 욕망도 없는 사람. 그래서 매일 달리는 사람. 동생이 사라지기 전에도, 사라진 후에도 매일 달린다. 그리고, 자꾸만 기다리는 사람. 다음 해 봄에 다시 올라올 수선화를 기다리듯이. 죽은 듯이 사라졌다가도 봄만 되면 꽃을 피워 올릴 수선화를 기다리듯이. “수선화의 구근이 땅속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을 것을 상상”한다.


“죽음이 삶을 둘러싸고 둘러싸여 있다.”
움푹하고 따뜻한 슬픔의 세계


상실은 마음에 움푹한 시공간을 만들고, 그 시공간 속에서 메아리가 돌아오듯이 기억이 반복된다. 마음이 머물며 맴을 돈다. 한 사람은 한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고, 매일 뛰던 사람은 어느 날 뛰고 싶지 않아지고, 무엇이든 되기 위해 매일 쓰던 사람은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날을 겪는다. 한마디로 표현되지 않는 상실의 고통과 슬픔을, 윤해서는 몽환적인 사유와 시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소설 속 ‘사일런스 파크’는 도시 한가운데 조성된 공원이지만 반대로 공원이 도시를 감쌀 수 있도록 설계된다. “건물의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건물 내부를 감싸듯이.” “음악이 영혼을 감싸”고 “영혼이 음악을 감싸듯이.” 남겨진 사람은 사라진 사람을 감싸고, 사라진 사람은 남겨진 사람을 감싼다. 남겨진 사람은 남겨진 사람을 감싼다. 그렇게 서로를 둘러싸고 있는 움푹함의 세계는 따뜻한 슬픔을 품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둘러싸고 둘러싸여 있다. 죽음이 삶을 둘러싸고 둘러싸여 있다. 삶이 죽음을 둘러싸고 둘러싸여 있다. (p.186)

서로가 서로를 둘러싸고 둘러싸여 있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누군가를 잃었을 때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상실은 몸의 모든 감각으로 그의 부재를 겪어내는 일이다. 동시에 우리가 품고 있던 그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 일이며, “사랑은 필요도 아름다움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일이다.


■ 작가의 말

0과 무한대는 같은 것이지? 조카가 물은 뒤로, 나는 이 물음을 계속 물고 있다. 답을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라지고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들. 사막개미는 산란된 빛을 통해 집을 찾아간다. 해 질 녘. 저물녘. 동녘. 들녘. 녘은 공간과 시간을 모두 지시한다. 방향과 때는 무관하지 않다.
거북이는 먼 바다를 헤엄치고,

먹은 벼루 위에서 짧아지고,
거북이는 해안으로 돌아오고,
벼루는 조금씩 우묵해지고,
사람들의 발목은 물에 잠기고,
먹물은 벼루에서 넘치고,
모두가 읊고 있다.

벼루 위에 먹을 갈고 있으면 시간이 먹물이 된다.
움푹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당신에게
내가 둘러싸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도 아름다움도 아닌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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