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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인칭의 자리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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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신이 없다는 증거라고 했다. 아직 그는 거기까지 알지 못했다. 그는 기적적으로 태어났고, 그를 세상에 끼워 넣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 사고에서 그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기적처럼 태어난 것과 무관하게. 그는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전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기적과 저주는 어떻게 다른가. 12시 정각. 시곗바늘은 어김없이 눈금을 벗어나는데. 가차 없이. 그는 지금 막 그의 낡은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스물다섯번째 생일을 스물다섯번째 홀로 맞이했다.
--- p.55 그녀는 어떤 깨달음도 자기가 처해 있는 삶으로, 자신의 처지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모든 앎은 ‘굳이’다. 모든 무지가 그런 것처럼. 결국 인간은 나를 초월하는 한 방식으로 ‘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나’를 초월하려는 태도가 인간을 오히려 ‘나’에 붙들어놓지 않나. --- p.63 햇살이 좋은 창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빛이 나를 만지는 걸까. 내가 빛을 만지는 걸까. 아름다워를 만지는 상상을 하면 내가 아름다움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나를 어루만지는 기분이 들어. 손끝에 느껴지는 건 아름다움이 만지고 있는 내 몸의 온도. 아름다워. --- p.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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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 1인칭, 하나였을까. ‘나’에 대해 말하는 ‘나’는 어쩌다 하나뿐인 1인칭이 되었을까. ‘나’는 하나도 둘도 아니고, 때로 ‘나’는 하나와 둘에도 턱없이 모자라고, ‘나’는 0인칭이나 무한 인칭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다 ‘나’는 1인칭이 되어서 혼자인가. 어떤 ‘나’도 하나는 아닌데. (p. 140)
“제가 찾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날 그 자리, 거기 없던 어떤 것이었겠죠” 윤해서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한계의 상황과 맞닥뜨리곤 한다. 그들은 앎을 찰나적으로 목격하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저 대상을 영원히 파악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만을 어렴풋이 지니고 있을 뿐이다. 제가 어머니의 눈에서 보았던 응시. 저는 그것을 다시 발견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건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죠. 그 사진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눈빛만이 그것을 나에게 끊임없이 던질 뿐이에요. [……]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던지는 눈빛을,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pp. 29~30) 어린 시절, 카메라 속 어머니의 눈에서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발견한 남자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것을 찾아 헤맨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무수한 눈빛을 프레임에 담는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남자가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마치 앎에 다다르기 직전에 암전되는 영화의 엔딩처럼 『0인칭의 자리』에서 윤해서는 세계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눈을 부릅뜨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반짝, 반딧불이가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어둠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계속 보고 있는 건 뭘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보고 있다고 믿는 건 뭘까. 어둠 속에서. 이렇게 새까만 어둠 속에서. 내가 이토록 기다리고 있는 건. (p. 75) 애인과 함께 찾아간 반딧불이 숲에서 날아다니는 빛은커녕 “완전한 암흑, 진짜 어둠”을 경험한 여자는 이것이 바로 “죽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빛이 아닌 어둠을 통해서, 삶이 아닌 죽음을 통해서 갑작스레 자유로움을 느낀다. 무의미에서 의미가 도출되는 순간. 어쩌면 윤해서는 인식의 불가능성을 경유해야만 삶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당신, 당신은 무인칭, 당신이 없는 모든 곳에 당신이 있어” 그렇다면 윤해서가 발견한 삶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0인칭의 자리』가 씌어진 형식과 관련 있을 것이다. 무수한 사람이 겪는, 얼핏 보기에는 무관한 에피소드의 나열. 그리고 곳곳에 삽입된,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자의 목소리까지. 전통적인 독법으로는 도무지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 형식은 나와 너,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비차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인물 간의 경계를 지우는 역할을 한다. 나를 바꾸고 싶어. 단조에서 장조로. 한없이 밝게, 가볍게. 투명한 음에서 더 투명한 음으로. 어둠과 망각과 시는 그대로 두고. 나만. 오로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록할 수 없는. 나만. (p. 98) 이러한 작업은 문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타자가 되어보기’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언어의 시공간에서 구조적으로 축조해내기에 이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인물과 에피소드가 누적될수록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가 잘게 부서진 편린이 아님을, 하나의 거대한 조감도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0인칭의 자리』는 텅 빈 이야기인 동시에 이 세계 전체를 품고자 하는 서사적 야심과 모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경계를 지우는 유동성, “0과 1 사이”의 위치에서 무한히 흔들리는 진폭 상태만이 새로운 가능성의 길임을 일깨워주는 드물고 귀한 소설이다. ■ 작가의 말 0과 1 사이, 어디쯤 2019년 가을 윤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