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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과 요한복음
요한의 일생 요한복음에 대하여 요한복음 새 큐티 25 1. 증언의 목적 (요 1:7) 2. 참된 이익 (요 1:24) 3.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요 1:33, 눅 3:2) 4. 하나님의 음성분별 (요 1:34) 5. 와서 보라. (요 1:39,46) 6. 막다른 길 (요 2:3) 7.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요 2:7-10) 8. 점점 더 큰 섬김 (요 2:10) 9. 체험과 깨달음 (요 2:22) 10. 하나님의 인정 (요 2:25) 11. 예수님 체험 (요 3:12) 12. 믿음과 행함은 같은 단어이다. (요 3:16,21) 13.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생긴다. (요 3:19) 14. 거짓은 우상숭배와 같다. (요 3:21) 15. 주를 위해 내가 망해야 한다. (요 3:29-30) 16. 전부인가, 전무인가? (요 3:36) 17.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요 4:20) 18. 구원은 많은 사람의 작품이다. (요 4:36,38) 19. 구원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요 4:37) 20. 멸시받는 자가 더 클 수 있다. (요 4:40-42) 21. 절박함이 빠지면 맹물신앙이다. (요 5:7) 22. 천국은 모두 성공하는 곳이다. (요 5:7) 23. 율법이 구원을 방해할 수 있다. (요 5:11) 24. 죄의 세포는 암세포와 같다. (요 5:14) 25. 진리에 묻히면 종교가 된다. (요 5:16) 26. 예수님의 DNA를 회복하라. (요 5:19) 27. 본 것이 없이 살지 못한다. (요 5:20) 28. 심판자 예수님 (요 5:22) 29. 영생과 부활 (요 5:24,29) 30. 믿음과 행함의 함수관계 (요 5:24,29) 31. 관계를 알면 행함이 뒤따른다. (요 5:26-27) 32. 삶이 죽음을 책임진다. (요 5:29) 33. 정말 메시아로 믿는가? (요 5:33,36,39, 15:26-27) 34. ‘서로 영광’ 돌리기 (요 5:44) 35. 물질축복은 이단이다. (요 6:26) 36. 예수님을 드러내라. (요 6:29) 37. 예수님의 부활소망 (요 6:39-40) 38. 아버지의 마음 (요 6:44, 65) 39. 예수님의 육체 (요 6:54-55) 40. 예수님의 몸이 되라. (요 6:55-56) 41. 말씀의 인격 (요 6:56-57, 1:1-4) 42. 육적 높이와 영적 깊이 (요 6:63) 43. 진리이기 때문에 (요 6:66) 44. 세상이 악하다고 증언하라. (요 7:7) 45. 마귀의 방식을 버려라. (요 7:10, 마 12:19) 46. 행함보다 분별이 더 중요하다. (요 7:17) 47. 몇 %짜리 영광? (요 7:18) 48. 율법 속의 하나님 마음 (요 7:19) 49. 그릇된 확신의 가능성 (요 7:23) 50. 하나님의 공의 (요 7:24) 51. 결론과 증거의 우선순위 (요 7:51) 52. 양심과 회개 (요 8:9) 53. 하나님의 편이란 (요 8:29) 54. 심령의 보관소 (요 8:37) 55. 마귀의 부하 (요 8:44) 56. 듣고 있는가? (요 8:47) 57. 육의 일과 영의 일 (요 8:51) 58. 말씀이 흐르고 있는가? (요 8:51) 59. 본질 없는 껍데기 (요 9:6-7) 60. 메시아의 증거불충분 (요 9:16) 61.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착각 (요 9:41) 62. 100% 주님의 음성인가? (요 10:1-5) 63. 주님의 양이 없는가? (요 10:11,15,17) 64. 목숨의 목적 (요 10:17) 65. 미친 사람들? (요 7:20, 8:48,52, 10:20) 66. 자기도 모르는 신성모독 (요 10:33) 67. 표적보다 강한 것 (요 10:41) 68. 전부의 향기 (요 12:3) 69. 사랑과 미움 (요 12:25) 70. 예수님 계신 곳 (요 12:25-26) 71. 예수님의 눈길 (요 12:26) 72. 결코 바리새인화되지 말라. (요 12:42-43) 73. 불신의 언어를 금한다. (요 12:48) 74. 말씀의 심판 (요 12:48) 75. 참사랑의 조건 (요 13:5) 76. 영광의 시점 (요 13:31) 77. 그리스도의 증거 (요 14:11) 78. 기도응답의 목적 (요 14:13) 79.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요 14:17) 80. 충분히 거하시는가? (요 14:20) 81. 진정한 예배 (요 14:21) 82. 말씀에 대한 오해 (요 14:24) 83. 영혼의 청결이란 (요 15:2) 84. 이미 깨끗해짐 (요 15:3) 85. 기도만능주의 (요 15:7) 86. 떨어지면 죽는다. (요 15:8) 87. 하나 됨은 생명이다. (요 15:9-10) 88. 사랑과 계명 (요 15:10) 89. 한 몸 의식 (요 15:12) 90. 예수님의 친구 (요 15:15) 91. 열매의식 (요 15:16) 92. 책망의 성령 (요 16:8-11) 93. 해산의 고통 이후 (요 16:21) 94. 예수쟁이란 (요 16:26) 95. 정말 그리스도로 믿는가? (요 16:27) 96. 담대함의 근거 (요 16:33) 97.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소원 (요 17:9) 98. 삼위일체와 교회들 (요 17:11) 99. 세상에서의 보존 (요 17:15) 100. 어디 소속인가? (요 17:16,18) 101. 신앙인의 막중한 책무 (요 17:20) 102. 하나 됨의 목적 (요 17:21) 103. 사랑의 통로 (요 17:23) 104. 예수님의 가족 (요 19:27) 105. 신앙을 드러내라. (요 19:38-39) 106. 예수님의 형제들 (요 20:17) 107. 용서의 강력한 힘 (요 20: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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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믿음과 행함은 같은 단어이다.
믿음과 행위는 따로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증명이 되고 행함에 믿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에는 주로 ‘믿음’에 관한 말씀과 ‘관계’에 관한 말씀을 많이 주신다.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믿음에 관한 말씀이다.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 하지만 이 말씀을 보충하는 말씀이 21절에 나온다.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이라고 하여 믿음이란 행위가 따라오게 되어 있음을 말씀하신다. 의무조항이 아니라 진실한 믿음을 가지면 행위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믿음구원이니 행위구원이니 하는 말들은 사실은 쓸데없는 소모전이다. 참 믿음에는 당연히 행함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묵상과 적용 1. 나의 믿음과 행함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현재 나의 믿음만으로 충분히 구원받는가? 2. 믿음과 행함이 같다는 말은 행함의 근거가 어디에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자신인가 주님인가? 3. 바리새인들은 행함이 있었지만 책망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마 6:1) 4. 나의 행함의 목적과 초점은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 그 동기가 무엇인가? 5. 행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조건이다. 행함이 없는 신앙고백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15. 주를 위해 내가 망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흥함 곧 성공을 추구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스스로 쇠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어야 한다. (요 3:29-30)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칭찬 받고 인기 있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 진정 기쁨이 넘칠 것이다. 신랑은 경쟁자가 아니라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자기보다 더 흥하고 알려지게 되시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의 모습이 신랑의 친구의 모습이고 우리의 진정한 영성이어야 한다. 주를 위하여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더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렇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신랑 친구의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신랑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마지막 결정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다. 온갖 과정을 거치면서도 바른 결정을 한다면 그는 더욱 위대한 사람이다. 묵상과 적용 1. 나는 나 자신을 사람들에게 내세우는 편인가, 뒤로 숨는 편인가? 2. 내세우지 않는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어떤지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3. 주의 일을 위해 내가 뒤로 숨고 손해보고 망하는 길을 택한 적이 있는가? 4. 왜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그토록 원하고 있는가? 5. 내가 망하고 주님의 일이 성취되는 데에서 기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없었다면 그것을 느껴보아야 한다. 18. 구원은 많은 사람의 작품이다. 전도의 열매는 철저한 협력의식의 결과이다. (요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 4: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전도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동일한 기쁨을 얻는다. 하지만 거두는 사람들은 뿌리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거꾸로 생각하고 있다. 거두는 사람만 칭찬을 받고 유명해진다. 뿌리지 않으면 어떻게 거둘 수 있겠는가? 기르고 돌보지 않는데 어떻게 자랄 수 있겠는가? 뿌리려면 땅을 가꾸어야 하고 기르려면 물과 햇볕을 잘 조절해야 한다. 모두 큰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물론 거두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수고를 해야 거둘 수 있다. 거두는 사람만 영광을 받는 것 같지만 하늘에서는 뿌리고 기른 사람이 더 영광을 받는다. 묵상과 적용 1. 나는 열심히 뿌리는데 열매가 없어서 실망할 때가 얼마나 자주 있었는가? 2. 전도를 아주 잘 하는 사람들에게 ‘전도 왕’과 같은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을 잘 하는 사람들인가? 3. 전도 왕이란 사실상 교회 초청을 잘 한 사람인데, 더 진정한 전도는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무엇을 전파하는 것인가?) 4. 나는 전도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가? 혹시 상급이나 자랑이나 부흥이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닌가? 5. 우리는 교회예배참석을 열매라고 생각하지만 참된 열매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26. 예수님의 DNA를 회복하라. 삼위일체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든 일을 함께 알고 계시는 것이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구약에 나타나는 수많은 이적들의 현장에는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을 보신 그대로 행하신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신 일을 본받으려고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하나님의 유전자가 흐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애쓸 것이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세상과 자신의 육적인 욕심과 싸우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일하신 목적과 일하신 방식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묵상과 적용 1.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뒤를 얼마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2. 예수님과 전혀 닮지 않은 나의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3. 그렇다면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닮고 있는 부분에는 어떤 점이 있겠는가? 4. 예수님을 닮지 못한 모습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겠는가? 5. 예수님의 모습 중에서 가장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34. ‘서로 영광’ 돌리기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들의 영광을 공유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다. (요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많은 지도자들은 ‘서로 영광’을 취하려고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성취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서로 영광’이 될 수 있다. 번갈아가면서 서로 상을 주고받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들 사이에서 이 ‘서로 영광’의 모습들을 빈번하게 볼 수 있다. 권세 있고 명망 있는 세계에서도 ‘서로 영광’이 횡행할 수 있다. 그것은 영광을 공유함으로써 자기들만의 유익을 얻으려는 태도이다. 그 가운데 있으면서 ‘서로 영광’의 자리를 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유별나 보이더라도 이 ‘서로 영광’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총회와 노회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관에서 ‘서로 영광’은 자주 발견된다. 묵상과 적용 1. 서로 돌아가면서 차례로 여러 가지 상(표창장, 공로상 등)을 주고 받은 적이 있는가? 2. 지금 가지고 있는 상들 중에서 ‘서로 영광’에 해당되는 것은 어떤 상인가? 3. 사람에게서 받은 영광을 자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믿음인가? 4. 사람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나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겠는가? 5. 나는 사람들의 인정보다는 하나님의 인정을 얼마만큼이나 더 구하는 편인가?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