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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모델 서기
2003. 11. 28. 2003. 12. 1. 2003. 12. 3. 2003. 12. 5. 2003. 12. 16. 2003. 12. 19. 2003. 12. 28. 2004. 1. 2. 2004. 1. 6. 2004. 1. 16. 2004. 1. 23. 2004. 1. 26. 2004. 1. 30. 2004. 2. 3. 2004. 2. 6. 2004. 2. 11. 2004. 2. 21. 2004. 2. 24. 2004. 2. 27. 2004. 3. 3. 2004. 3. 9. 2004. 4. 7. 2004. 4. 14. 2004. 4. 16. 2004. 4. 19. 2004. 4. 27. 2004. 4. 29. 2004. 5. 4. 2004. 5. 7. 2004. 5. 11. 2004. 5. 14. 2004. 5. 18. 2004. 5. 20. 2004. 5. 26. 2004. 5. 27. 2004. 6. 15. 2004. 6. 16. 2004. 6. 22. 2004. 6. 30. 2004. 7. 4. 머리 초상화 후기 맺음말 인용 출처 수록 작품 목록 참고 문헌 Index 수록 작품 목록 |
Martin Gay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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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를 무시하는 것으로 아방가르드의 시대를 살다
그가 젊었을 때에도 이미 구상화는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마르셀 뒤샹이 회화나 드로잉 대신 발견되거나 변형시킨 오브제에 바탕을 둔 미술을 개척한 지 한참 지난 뒤에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피에트 몬드리안, 바실리 칸딘스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는 모두 그보다 나이가 한참 위였다. 그는 팝 아트, 옵아트, 대지 미술, 행위 예술과 다양한 아방가르드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활동했다. 1920년대 독일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프로이드는 구두 끈 매는 방법을 배웠다. 80년이 지난 뒤 그는 “그래서 나는 곧장 구두 끈을 다시는 그런 방식으로 매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는 그의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그가 인정하듯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그로 하여금 그 일이 아닌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게 만드는 충분한 자극이 된다. 주어진 규칙에 대한 반항심은 신발 끈을 매는 데서부터 미술사에서 주장하는 지시 사항들을 무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오래전에 그는 자신의 작품과 같은 유형의 그림, 즉 더 적합한 단어가 없어서 내가 자연주의적naturalistic이라고 부르는 경향의 그림이 “폴 세잔Paul C?zanne” 또는 “뒤샹 이후”, “불가능”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예언(미술 비평가들은 이러한 법칙을 단언하기를 좋아했다)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법에 가까운 것이라는 점은 오히려 그 일을 보다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pp.10-11 미술이 보다 진지해질수록 미술은 거실을 피하고 부엌에 집착한다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죽은 것들로 고기와 채소는 소비되지 않으면 곧 부패하고 만다. 살아 있는 육체는 다른 생물을 소비함으로써 유지된다. 이는 본질적인 생물학적 과정이다. 프로이드가 그린 달걀 프라이 두 개가 있는 누드화는 미술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인체와 음식의 시각적 비유뿐만 아니라 이 점을 재담하듯이 상기시킨다. 프로이드처럼 사람의 물리적인 존재성에 관심 있는 미술가들은 반드시 음식에도 관심이 있다. 베이컨은 “우리는 고기이다”라고 주장하곤 했다. 이에 대해 토를 달 수 없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주장은 명백한 사실이다. 게다가 회화는, 특히 몸의 질감과 무게감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화가가 종종 활용하는 두께와 부드러움의 다채로운 표현법은 거의 요리법에 가깝다.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가 코의 불거져 나온 부분과 이마의 주름을 재현하는 데 사용했던 뛰어난 안료 덩어리를 두껍게 만들기 위해 기름과 달걀 노른자를 섞어 점성을 높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달리 말하면 그는 다양한 마요네즈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시커트의 말이 떠오른다. “미술이 보다 진지해질수록 미술은 거실을 피하고 부엌에 집착하려 들 것이다. 조형 예술은 총체적인 예술로 모든 물질 요소를 다루기를 즐긴다…. 조형 예술이 부엌이나 퇴비 위에서 번성할 동안 거실에서는 미술이 단숨에 사라진다.”--- p.18 달걀이 있는 나체 초상, 1980~1981 네 개의 달걀 정물화도 결국 단체 초상화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어떤 것도 일반화되거나, 이상화되거나, 보편화되지 않는다. 그는 가장 수수하고 별 특징 없어 보이는 사물에도 고유의 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셔츠와 같이 대량생산된 물건도 실밥이나 깃이 접힌 모양새 등에서 어느 하나가 다른 것과는 조금은 다르리라고 생각한다. 일 년 전 그가 네 개의 달걀을 묘사하는 정물화를 그릴 때 그는 자세하게 관찰하면 각각의 달걀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나름의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간파했다. 따라서 그 정물화는 일종의 단체 초상화인 셈이다. 따라서 사람을 그린 프로이드의 모든 그림은 기본적으로 초상화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p.23 접시 위 네 개의 달걀, 2002 완전히 정신 나간 방식으로 초상화를 그리다 그의 작업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다른 화가들은 그의 방식을 두고 나에게 ‘완전히 정신 나간’ 방식이라 말했다. 화가들은 대개 이 초상화와 같은 그림을 시작할 때 먼저 대강의 전체 스케치를 그린 다음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그 스케치를 정교하게 다듬고 또렷하게 묘사해나갈 것이다. 반대로 프로이드는 이 그림에서처럼 먼저 화면의 중앙에 물감의 흔적을 남기고 안료로 그 지점에서 캔버스 전체로 퍼져나가는 모자이크 무늬를 만들어가며 서서히 진행하곤 한다.--- pp.49-51 프랜시스 베이컨, 1956~1957 프로이드가 아닌 것처럼 작업하는 프로이드 비록 때로 특정 각도나 특정한 순간에서 서로 비슷하다 하더라도 프로이드의 자화상은 하나하나가 아주 다르다. 그가 그린 자화상의 차이점은 그가 매일 달라 보이는 것과 관계가 있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특정한 특징을 띠길 원치 않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 프로이드의 목표는 각 작품이 각기 다른 미술가의 작품인 양 될 수 있는 한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작품은 사실상 완전히 변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작품을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오해하기란 힘들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는 크기와 방식, 시점의 꾸준하고도 의도적인 변화가 있다. … “형편없는 화가들의 작품은 실제 자화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화상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그런 특별한 관심을 자신에게만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pp.79-81 자신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화가와 초상화 모델 사이에는 필연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으레 관심 사항에 대한 갈등이 빚어지기 마련이다. 잠재적으로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은 당연히 모델의 이미지이다. 화가는 그림이 가능한 한 힘 있고 흥미로워지기를 원한다. 모델 역시 그것을 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그림 속에서 자신이 좋게 보이기를 원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 중 자신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이것이 그저 단순한 무지일 수 있었다. 19세기 런던 거리를 촬영한 한 사진가가 빅토리아 시대 빈민들의 삶을 기록한 헨리 메이휴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에 대해 모릅니다. 그들 중 절반은 일생 동안 채 여섯 번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쌍의 눈과 코를 보면 바로 그것이 자신이라고 믿어버립니다.” 이 남자는 사전에 낯선 사람들의 사진을 준비해두는 버릇이 있었고, 그것을 고객들에게 그들의 사진이라 속여 성공리에 판매했다. 거울에 좀 더 자주 접근할 수 있는 보다 세련된 모델들의 경우, 문제는 자기기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거울을 보며 외모를 정돈하기를 즐긴다. 배를 집어넣고 가장 좋은 각도로 보여주며 그 결과를 사실이라 여긴다. 우리는 그러한 모습에 부응하지 않은 사진들은 우연히 잘못 나온 것으로 일축해버린다. 프로이드는 외모에 대한 모델의 민감한 관심에 대해서는 가차없다. 그는 앤드루 파커 볼스가 옆방에 있는 자신의 전신 초상화에 표현된, 상의의 벌어진 틈으로 배가 튀어나온 모습에 대해 항의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그 점에 대해 약간 불평하길래, 나는 그것을 좀 더 강조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p.107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분방함이 아니라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다 프로이드는 아우구스투스 존의 아들인 캐스퍼의 이야기를 꺼냈다. 캐스퍼는 후에 제독 캐스퍼 존 경으로 해군본부의 제1 군사위원이 되었다. 한번은 누군가가 캐스퍼에게 그의 해군 경력과 그의 아버지의 자유분방한 환경이 상이한 데 대해 언급했다. 그러자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훈련이 필요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프로이드는 “나는 항상 미술가가 가장 힘든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술가가 겪는 어려움은 외부 관찰자가 보기에 항상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미술가가 오로지 내면의 방향 감각에 의지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하고, 전적으로 내부에서 부가되는 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그러면서 자신이 세운 그 목표가 계속해서 전력을 다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유분방한 무질서라는 개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 p.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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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이 되어 바라본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루시안 프로이드의 작품으로 우리 시대의 예술을 가장 독창적이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접근한 책 일 년 반 동안 초상화 모델을 서며 일기로 기록한 20세기 영국 최고의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전기 루시안 프로이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구상화가이다. 그는 7개월의 작업 끝에 미술 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마틴 게이퍼드는 모델을 서려고 루시안 프로이드의 작업실에 방문한 첫날부터 자신을 그린 완성된 초상화를 구입한 컬렉터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으로 매일매일의 과정을 기록하였다. 덕분에 독자들은 가장 사적인 장소라 할 수 있는 화가의 작업실로 초대되어 예술 작품이 창조될 때까지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매우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루시안 프로이드가 마틴 게이포드를 대상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마틴 게이포드 자신은 작업 과정에서 루시안 프로이드가 순간순간 드러내는 뛰어난 통찰력을 밝혀내면서 이 위대한 예술가를 대상으로 글로써 자신만의 초상화를 만들어낸다. 두 사람의 폭넓은 대화를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프로이드가 모델, 조명, 설정, 포즈, 그리고 색상 등을 어떤 식으로 결정하는지에 대한 기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프로이드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만남과 경험, 그리고 각각의 초상화가 프로이드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매우 심리적인 섬세한 측면으로도 작품을 이해하며 말하고자 하는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 또한 미켈란젤로, 베르메르, 티치아노, 샤르댕, 고야, 반 고흐, 몬드리안, 그리고 그가 가장 뛰어난 화가로 평가하는 프란시스 베이컨 등의 작품에 대한 루시안 프로이드의 흥미로운 견해는 초상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전기는 아니지만 작업 중일 때, 그리고 음식점과 택시, 작업실에서 대화를 나눌 때의 프로이드의 모습을 담은 상세한 관찰기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막스 에른스트, 만 레이, 파블로 피카소, 헨리 무어, 조지 오웰, W.H. 오든,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프로이드의 할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드 등 그의 친구들이자 동시대인들과 동행하면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화들이 공개된다.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 : “모든 작품은 자서전이다.”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 1922-2011). 그림을 위해 살다가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렸던 화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대가이며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 독일 베를린에서 건축가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아버지 에른스트 프로이드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1933년 나치의 유태인 억압이 심해지자 그의 부친은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5년 후, 그의 할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드도 나치의 폭압을 견디다 못해 영국으로 왔으나 이듬해 세상을 떠난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그 후 센트럴 미술학교와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1950년대부터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모델을 바로 앞에 두고 자세히 관찰하면서 아주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존 민턴, 1952 1950년대 중반까지는 붓 자국 없이 세밀하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는 거친 돼지털 붓을 사용하여 붓 터치가 굵고 거칠게 느껴진다. “나는 물감이 마치 살인 듯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물감은 바로 사람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생생한 붓 터치로 물감을 두껍게 칠하기 시작한다. 존 디킨, 1963-1964 누드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인간에게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바로 인간의 동물적인 면이다. 그래서 나는 벌거벗은 인간들을 그리기 좋아한다. 나는 사람도 동물처럼 육체적으로 자연스럽고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육체, 그것은 벌거벗은 인간의 실존이며 실체다! 벗은 남자, 뒷모습, 1991-1992 뛰어난 형태 표현력을 가진 루시안 프로이드의 색감은 다소 한쪽으로 치우쳐있다. 톤 다운된, 거의 흑백 사진 같은, 그래서 더 외롭고 고독해 보인다. 한 인간을 바라보던 화가의 눈에 세상은 이렇게 바랜 색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는데, 모델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 모델의 실체를 화폭에 모두 담아냈다. 곤한 잠에 빠진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고 혹은 지친 한 영혼의 무한한 안식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무표정한 듯 느껴지지만 긴장감이 흐르고 초점 잃은 눈동자에서는 인간 내면의 고독과 고통이 그대로 묻어난다. 위 작품은 거대한 뚱녀가 소파에 누워 너무도 편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며칠에 걸쳐 모델을 했으며 모델료로 하루에 40파운드(약 5만원)를 받았다고. 처음엔 무척 어색했지만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편안해졌고 실제로 모델을 서면서 잠들기도 했다. 이 그림은 200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당시 생존 화가 중 사상 최고가인 미화 3660만 달러(350억 원)에 매매가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그림을 구매한 사람은 EPL 첼시 구단주이기도 한 러시아의 억만장자 컬렉터 로만 아브라비치. 잠자는 비만녀, 1995 머리가 하얗고 주름진 한 늙은 노인이 벌거벗은 채 한 손에는 붓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팔레트를 들고 서있다. 금방이라도 화폭에다 힘찬 터치를 할 폼이다. 이것이 아마도 가장 리얼하고 진정한 그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루시안 프로이드, 2005 프로이드 작품에 대한 경탄이 존재하는 한 이 책은 읽혀질 것이다. - 《선데이 타임스The Sunday Times》 일기, 고백, 프로이드에 대한 인물 분석, 미술사에 대한 단편적인 개관이자 초상화의 실제…. 그저 읽는 책이 아니라 즐기는 책이다. - 《스펙테이터The Spectator》 이 책을 지배하는 것이 프로이드라면 그를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것은 게이퍼드의 공이다. 그는 날카로운 지성뿐만 아니라 위트와 유머를 발휘한다. … 매우 독창적이다. - 《가디언The Guardian》 프로이드는 힘차고 놀랍고 강하며 역동적이다. … 다빈치의 실패에서부터 마거릿 공주의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무정부주의자였던 한 화가의 초상화이다. - 《옵저버The Observ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