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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 훈련
죽을 고비를 넘기다 고려 수군이 무너지다 유금필 장군을 찾아가다 고려 수군을 다시 일으키다 마침내 삼국을 통일하다 누가 속삭여 주었을까? 왕건,해상왕국의 꿈을 이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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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과 견훤, 라이벌에서 아버지로
왕건과 견훤은 후삼국을 통일하려고 다투던 걸출한 영웅이었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영웅이지만 둘의 처지는 서로 달랐다. 왕건은 송악의 이름 있는 호족 출신으로 시작부터 장교로 군 생활을 했지만 견훤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신라의 병사에서 시작해 많은 공을 세우고 힘겹게 장교가 되었다. 왕건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의 부하로서 백선장군 해군 대장을 지내다가 궁예의 폭정에 민심이 나빠지자 궁예를 내치고 정권을 잡아 고려를 세웠다. 견훤은 상관들이 견훤의 공을 가로채가고 상관들의 부패가 심해지자 반란을 일으켜 옛 백제의 땅을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웠다. 하지만 견훤은 자식 복이 없었다. 견훤의 아들들이 서로 왕권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동안 후백제는 힘을 잃고 결국 견훤은 아들의 손에 금산사에 갇히는 처지가 된다. 왕건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후백제를 쳐들어가 견훤을 구출해낸다. 왕건은 견훤을 아버지처럼 모시며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돕기를 청한다. 견훤이 왕건한테 투항했다는 말에 신라는 스스로 나라를 바치고 후백제군도 견훤을 따라 투항했다. 왕건, 수군으로 통일의 꿈을 이루다! 고려 태조 왕건의 집안은 해상 무역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해상 호족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왕건은 바닷길을 아주 잘 다스릴 줄 알았다. 왕건은 궁예의 부하로 있을 때도 해군 대장을 지냈다.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개경에다 수도를 세운 것도 개경이 해상 호족 출신인 왕건의 본고장이자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견훤의 후백제 군한테 크게 패하긴 했지만 왕건은 다시 고려 수군을 일으켰다. 어부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고기잡이배들을 얻었다. 얻은 배를 군함으로 만들어 강력한 수군을 만들었다. 고려의 배는 바닥과 앞, 뒤를 평평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창과 방패를 배 난간에 달아 공격과 방어하기에 좋았다. 배 앞 아래에는 무쇠 뿔을 달아 적군의 배에 구멍을 내 바다 속에 가라앉게 했다. 수군을 앞세운 고려는 후백제를 손에 넣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바다길로 KOREA를 알리다. 고려의 군함은 성능이 대단했다. 다른 나라의 역사책이나 기록에도 고려 군함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군함에는 순선, 관선, 송방, 막선들이 있었고 이 가운데 가장 큰 대선은 배 위에서 말을 달릴 만큼 컸다고 한다. 원나라와 함께 일본을 공격할 때도 겨우 4개월 만에 900척의 배를 만들었고, 원나라 배는 돌풍에 모두 깨졌으나 고려 배는 무사했다. 고려 배가 전쟁에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뛰어난 해상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인도, 태국,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건국 초부터 바다를 통한 해양 무역이 활발했다. 바다를 통해 재물을 모으고 나라의 힘을 뻗어 나간 고려는 KOREA의 이름을 떨친 진정한 해상왕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