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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자의 정체
쓰며 그리며 달리며
고기자
편않 202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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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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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들어가며
2. 역할놀이
3. 뒤로
4. 제목
5. 질문
6. 떠남
7. 하루
8. 폭력
9. 참기자와 고기자
10. 끝
10.5. 뒤끝
펺집자 코멘터리 | 우리가 흐르던 자리에서

저자 소개 1

여전히 현장에서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는 4년 차 기자. 대범하고 호탕하진 않지만 섬세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여전히 기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세상에는 들을 이야기와 할 말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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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04g | 125*188*50mm
ISBN13
9791197981036

책 속으로

그리고 그렇게 어영부영, 흐지부지 기자가 된 나는, 지난 2019년부터 넘쳐흐를 것 같은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따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러한 작업은 인스타그램 계정 ‘고기자’(@gogizanim_)를 통해 풀어놓고 있다. 내 이야기를 올릴 때도 있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올릴 때도 있다. 그냥 술에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마음에 그린 그림을 혼자 모아두려고 만든 공간인데, 어쩌다 보니 내 생각보다는 일이 조금 커진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기사 쓰기보다 어려울 때도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고기자는 내 이름을 걸고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의 데스킹도 받지 않는다. “제목이 너무 아프니 고쳐 달라”, “이런 걸 더 반영해 줄 수 없느냐” 하는 식의 불편한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도 꽤 의미 있다. 사실 어렸을 때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언젠가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바란 적이 있다.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니 가끔은 벅차오른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고, 고양이는 내가 사랑하는 동물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리기가 크게 어렵지 않다. 다양한 모습의 인간을 그리기보단 고양이로 표현하기가 더 쉽고, 어떤 편견에도 갇히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매일 출근을 할 때마다 만화 소재가 생겨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언짢은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차피 난 기자 일을 시작할 때부터 화가 많아질 것을 대충 알고는 있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내가 쓰고 그리는 ‘고기자’가 오롯이 내 이야기는 아니다. 고기자가 내 ‘부캐’도 아닐뿐더러,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같은 관계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만든 존재에 가깝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모르고, 아마 그들도 나를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느슨하게 묶인 채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를 묶어 주는 그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연대’라는 뻔한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아서 나는 오래 고민 중이고,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 됐다.
---「1. 들어가며」중에서

거창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망설여지지만, 고기자의 의미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결국 ‘총체적 진실’이라는 다소 아득한 목표를 향해, 사실들을 모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아닐까. 그 흐르는 방향이 이른바 ‘사회적 약자’가 반드시 옳으며 선하다는 쪽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운 이들은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키를 쥐고 있는 이들이라면 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빛이 덜 비추는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믿는다. 저널리즘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고 믿는다.

고기자는 지나치기 쉬운 이야기를 기록해 왔다. 술자리에서 한 번 털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이야기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수습을 뗀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인스타그램 자기소개에 여전히 (수습)기자라고 달아 두고, 수습기자의 일상인 ‘뻗치기’나 ‘사쓰’를 지금까지 계속 다루는 이유도 ‘넘기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에서 기인한다.

다들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이야기해 왔지만, 시간은 구조적 폭력과 모순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우리의 ‘업계’ 역시 그럴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역사 속 혁명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음에서 위안을 구할 뿐이다. 그냥 두고 넘어갔을 문제를 누군가는 문제라고 기록해 남기고, 그렇게 쌓인 기록은 그 문제가 모두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이 문제임을 알게 되는 순간, 이를 고치기 위한 힘이 작동한다. 그 힘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견고한 구조에 금이 가고, 그 틈새를 따라 우리는 조금씩 전진해 왔다. 우리의 세계는 그만큼 넓어지고, 혼자인 줄 알았던 방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때 세상은 바뀐다.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참기자’가 되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난 내 이름을 걸고 쓰는 기사 외에도 ‘고기자’가 되어서 만화를 그렸다. 그렇게 많은 이들과 소통했다. 그것 역시 어느 정도는 저널리즘이었을 것이다. 아마 몇 년간 그렸던, 많지 않은 만화를 보면서 누군가 문제임을 느꼈다면 내 의도는 조금이나마 달성된 셈이다. 고기자에게 있어서 저널리즘은 거창한 강령이기보다는 작은 일상이자 실천이다.

---「9. 참기자와 고기자」중에서

출판사 리뷰

그리고, 〈우리의 자리〉를 시작한다. ‘그래서’(로) 시작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로) 시작하고 싶다. 희망을 찾아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그냥, 일단 시작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리〉는 언론·출판인 에세이 시리즈이다. 언제부턴가 ‘기레기’라는 오명이 자연스러워진 언론인들, 늘 불황이라면서도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는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욕먹어 싸더라도 그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니까. 구조적인 문제로만 탓을 돌리기엔 개개인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이들을 비난하고 조롱해 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럴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빠르게 망가질 것이다. 소명할 건 소명하고 반성할 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서, 그럼에도, 이제는 다 함께 나아가야 한다. 우선 세 기자의 책을 동시에 펴내며, 이후에는 언론인과 출판인을 망라하여 시리즈를 이어 갈 생각이다.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저널리즘과 출판정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 보겠다.

그런데 왜, 에세이인가. 안 그래도 하고많은 게 에세이인데. 짧게 답하자면 에세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 흐를 수 있는 자리라고 보았다. 사적일 수도 있고, 공적일 수도 있고, 가벼울 수도 있고, 무거울 수도 있고(특정할 수 없는 내용). 때론 시보다 아름답고, 때론 강령보다 강렬하며, 때론 매뉴얼보다 상세하기를(특정할 수 없는 형식). 우리가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어디여야 하는가, 또 어디일 수 있는가. 이걸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에세이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시리즈의 첫발을 박정환·손정빈·고기자 세 명과 함께 뗄 수 있어서 기쁘다. 이들에게는 풍부한 경험과 깊은 사유가 있고, 무엇보다 미래가 있다. 특히, 고기자는 기사 너머에서 존재하며 살아가는 기자를 조명한다. 그의 에세이에는 진솔하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절절한 기자의 일상이 배어 있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고된 시간을 헤치고 나가는 여정이다. 때로는 실패하고, 잊고, 낙담하지만 끝내 이 사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가득하다. 자신과 타인의 고통도 기쁨도 기대도 실망도 하찮게 여기지 않으려는 진중함과 다정함, 세심함이 선명하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한편, 익명으로 만화를 그리는 고기자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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