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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계엄, 계엄과 서울대, 서울대와 나 | 손원민
서울, 2020년대 초, 학생사회에 대한 회고 | 이강 어떻게 하면 사랑을 끌어와서 불안함을 씻을 수 있을까? | 김유민 어떤 시절의 증명과 저널 | 윤성은 세상에 감응되기,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기 | 김한결 ‘듣말쓰’를 아시나요 | 김현서 저널, 그 이후 | 장하엽 나는 쓰지 않았고, 썼다 그리고 쓰지 않았다 | 이다빈 여자애 구하기 | 천세민 인터뷰와 인트라뷰 사이로 | 홍인표 펺집 후기 | 지다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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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란 무엇인가. 나에게 “지성인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는 말씀이시죠?”라고 물은 기자에게 나는 그렇지 않다며, 시민으로서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라고 대답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이 학벌주의까지 미치고 나니 이 대답 역시 만족스럽지 않았다. 학벌주의가 윤석열의 시대를 낳은 원인 중 하나라면, 그리고 현재의 서울대생에 대해서도 학벌주의를 기반으로 한 수사가 쓰인다면, 그리고 실제로 서울대생이 그로부터 특혜를 받고 있다면, 그 서울대라는 위치를 마냥 부정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생에게 서울대는 무엇인가’를 비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이는 서울대생이 계엄에 관해 목소리 내는 것이 어떤 의미겠느냐는 질문과 연결돼 있다. 공개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자신이 그곳에서 그 말을 하는 이유를 밝히기 마련이다. 서울대생이 뭔가 목소리를 낸다면, 그때 서울대생의 위치는 어디여야 하겠는가?
--- 「손원민 - 나와 계엄, 계엄과 서울대, 서울대와 나」 중에서 기사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라도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존재한다. 당장 학교에서는 학생언론이 아니면 아무도 보도하지 않을 사안들이 매달 일어난다. 학교 밖에서도 학생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회의적이기만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울대저널』과 같은 대학 내 자치언론들이 언론운동을 통해 생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널은 말 그대로 언론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적어도 저널을 만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언론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언론 없이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 「이강 - 서울, 2020년대 초, 학생사회에 대한 회고」 중에서 그래도 『서울대저널』은 서울대학교의 3대 언론 중 하나다. 학교 방송국과 학보, 그리고 우리.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선배들에게서 대대로 전해진 것이니 그저 믿었다. 그런데 학교 행사에선 쫓겨나기 일쑤였다. 2023년 겨울, 편집실 유선 전화기가 울렸다. 오늘 있을 학위수여식(졸업식)에서 진행할 ‘권력형 성폭력 규탄 및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1인 시위’에 대한 취재 요청이었다. 그 시간 편집실에 있었던 스스로를 칭찬하며 급히 장비를 챙겨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출입은 불가능했다. 프레스 부스에서 명함과 지면을 보여 주며 설명했지만, 당일에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는 언론 중 『서울대저널』은 없었다. 소득 없이 편집실로 돌아와 보도자료를 받아 읽어 보는데, 허탈함이 밀려왔다. 나는 언제나 ‘자치언론’이라는 이름에 빚을 지고, 내 자율성을 보장받는 울타리로 생각해 왔지만, 종종 그 이름은 한계가 되기도 한다. --- 「김유민 - 어떻게 하면 사랑을 끌어와서 불안함을 씻을 수 있을까?」 중에서 사회문제들 속 청년 혹은 대학생의 목소리에 더 주목하며 청년 담론을 형성하기라는 목표 역시도 어려웠다. 청년 담론이란 뭘까? 『서울대저널』이 대변할 수 있는 청년 혹은 대학생이란 누구일까? 그런 게 있기는 했을까? 이는 사실 ‘서울대’저널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묵직하게 달고 살던 모래주머니 같은 고민이었다. 대학 서열화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오늘날 대학의 의미를 되짚던 커버를 기획했을 때가 가장 말썽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대변하겠다고 나선 청년들이나 대학생들의 얼굴이 사실 그렇게 뚜렷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 「윤성은 - 어떤 시절의 증명과 저널」 중에서 한편 취재 기간 도중에 캠퍼스 내에서 열린 극우 집회를 취재하기도 했다. 『서울대저널』 편집실이 위치한 학생회관 바로 앞,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집회에서 울리는 원색적인 비난과 노골적인 혐오의 구호를 들을 땐 한순간 커버의 주제의식이 흔들리기도 했다. 과연 저들을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까? 저들과의 공존이 한없이 요원하게 느껴졌다. 기사를 발간하고 윤석열이 탄핵된 지금도 여전히 극우와의 공존은 아득하지만, 적어도 단념하고 외면하진 않는다. 본래 민주주의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다른 이들을 기껍게 끌어안는 체제이니까. 그 지난함은 불가피할 테니까. --- 「김한결 - 세상에 감응되기,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기」 중에서 우연찮게도 내가 편집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총괄한 저널 188호 커버스토리가 최근 학생사회의 탈정치화를 다뤘다. 내가 대학을 다니며 가장 오래 생각했던 주제다. 논지를 정리하는 게 그리 간단하지 않아 기획회의에서도, 데스킹 과정에서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지금도 놓친 게 없는지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학생사회에서의 ‘정치’가 마냥 끝나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탈정치화를 내세우는 총학생회가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럼에도 학내 여러 단위에서 지속되고 있는 움직임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노동·젠더·장애·생태 등 사회적 의제를 기반으로 모인 자치단체들. 그 속에서 연결되며 활동을 이어 온 사람들. --- 「김현서, ‘듣말쓰’를 아시나요) 냉정하게 내가 제일 덕 보고 있는 게 학벌이란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단언컨대 서울대 출신 중에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장담하건대 서울대 출신이면 자기소개서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복사 붙여넣기를 해도 무조건 붙는다. 한데 그 공식이 ‘서성한’ 라인(이런 말을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입에 담아야 한다니)부터는 빈번하게 깨지는 것으로 보였다. 학벌을 가장 첫 번째 거름망으로 쓰는 업계가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 「장하엽 - 저널, 그 이후」 중에서 그러나 나는 계엄령 선포 당일을 마지막으로 단 편의 온라인 기사도 쓰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목소리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런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저널 사람들과 함께했지만 나는 자꾸 머뭇거렸다. 시위 현장에 나가 있어도 기사를 쓰진 않았고, 나중에는 내가 현장에 있다는 사실조차 저널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시국을 거치며 『서울대저널』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절실해지자 저널 사람들이 『서울대저널』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TF를 모았는데, 나는 결정적인 순간들에 주춤거리다 결국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 「이다빈 - 나는 쓰지 않았고, 썼다 그리고 쓰지 않았다」 중에서 제 아픔이 개인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안 이들은 행동하기 시작한다. 내가 만난 다른 인터뷰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성소수자를 배제한 선생님에게 상처를 받고 학교를 뛰쳐나온 이가 깃발을 들고 광장을 누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매일 지하철에서 쫓겨나던 장애인 활동가들이, 쪽방촌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이, 자신이 겪는 문제는 결코 사적이지 않다고, 우리의 억압은 연결되어 있다며 광장으로 향한다. 이제껏 소외당하고 차별받은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소리 내 발음하는 순간을 내내 기다려 왔다. 나만은 아닌 내가, 결코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모든 이가, 서로의 목소리를 경유하며 해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함께하고 싶다. 그 세상에서 나는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수많은 여자애를 본다. --- 「천세민 - 여자애 구하기」 중에서 이는 내가 인트라뷰라는 개념을 굳이 제시한 이유기도 하다. 나는 그저 나를 인트라뷰하는 사람, 또 해 왔던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인터뷰와 인트라뷰가 쌍생어로서 존재하는 가능세계라면, 인터뷰어처럼 인트라뷰어라는 말도 있을 것이다. 상상해 보자. 인트라뷰어는 미룬다. 인트라뷰어는 물러난다. 인트라뷰어는 땅만 보고 걷는다. 인트라뷰어는 깜빡 졸고 백일몽을 꾼다. 그 꿈속에서 이 세계의 중력이 아닌 자기에게 맞춤한 중력의 소행성을 만든다. 그곳에 산다. 그곳에서 왔다고 믿는다. 인트라뷰어는 늘 그런 여백의 자리나 사후의 자리에서 존재하고 사고한다. --- 「홍인표 - 인터뷰와 인트라뷰 사이로」 중에서 현재 서울대의 이슈는 무엇인가. 뜨겁지만 덜 중요한 이슈들, 차갑지만 정말 중요한 이슈들이 당사자들의 눈과 손으로 구분되기를 바랐다. 그 구분은 과연 대부분의 대학생사회에 통용될 수 있을까. 혹은 비-대학생 청년들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을까. 이러한 이슈들에 대한 학생들, 아니 청년들의 인식과 태도, 응전 양상들이 궁금했다. 나아가 우리의 이슈란 결국 우리이고 우리의 문제 또한 우리이며 그 해결책 혹은 자그마한 실마리 역시 끝내 우리라는 나의 이해와 믿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를 조심스럽게 바랐다. --- 「지다율 - 펺집 후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