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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챔피언

소백산, 코끼리, 챔피언, 크리스틴, 돈, 길, 정숙, 마을버스, 메리 크리스마스, 실종, 피, 춤
사진,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 아바나, 목포, 설악산

2부 사랑의 꿈

월출산, 일곱 개의 머리, 도서관, 사랑의 꿈, 흘림, 문어, 키스 더 레인, 얼굴, 집
돌아가는 삼각지, 번개, 꽃, 기억, 나무, 산세비에리아

3부 하얼빈의 푸른 별

한라산, 책, 날개, 흙, 하얼빈의 푸른 별, 시, 물, 페스트, 문, 총, 바이러스, 거울
슬리핑 뷰티, 바다, 호수, 무등산

4부 어벤져스 마이너

가야산, 칼, 빛, 급똥 선생, 적그리스도, 빵, 땅, 엄마, 차, 눈, 섬, 무섭긴,
어벤져스 마이너, 새우 볶음밥, 졸개, 소나기, 덕유산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지금까지 몇 군데 로펌을 옮겨 다니면서 변호사로 일해왔다. 현재는 법무법인 에이펙스에 소속된 변호사이다. 2022년에는 초단편소설집 『줌아웃』, 2024년에 단편소설집 『복수자의 오두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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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125*200*30mm
ISBN13
9791196303594

책 속으로

내가 사는 집은 1층이었는데, 어느 초여름 아침에 일어나 무슨 소리가 들려 창가로 가보니 새끼 코끼리가 창밖에서 집 안을 빤히 보며 뭔가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 셋 중 하나가 코끼리라서 (다른 둘은 고양이와 말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동했는지, 창문을 열어주니 코끼리는 날름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대로 눌러 살았다. 대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 단지에 어떻게 이런 녀석이 돌아다니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지만, 뒷감당은 어찌 하려고, 일단 같이 살아보기로 했다.
---「코끼리」중에서

어떤 녀석이 강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 가족들이 기념촬영을 할 때 신부의 가랑이 사이로 세상에 태어나 어찌어찌 재빨리 탯줄을 끊고 냅다 뛰어 도망가다가 몇백 미터도 가기 전에 이미 십대가 되어버린 녀석이었다. 녀석이 거기 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흩어져 있던 몸을 꿈틀대며 이렇게 썼다. 나를 산에 뿌려줘. 별로 놀라지도 않은 녀석은 일어나 발로 글자를 뭉개 지워버리고는 가버렸다. 멀어져가는 녀석의 뒷모습은 벌써 중년의 모습이었다.
---「흙」중에서

거대한 프로젝트 수행 중 남는 시간에 재미로 만들어 본 그것은, 시를 짓는 알고리듬을 탑재하여 세상의 모든 시를 찾아내 저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들려주던 그것은 이내 시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뮤즈’라는 이름을 붙여주려고 했는데, 그것은 진부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이름이라며 거부하고 스스로 ‘야리’라고 이름 붙이겠다고 통보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그것, 아니 야리는, 별 뜻 없다고, 몰라도 된다고, 안 알려주겠다고 했다.
---「시」중에서

그녀는 그에게 다가와서 촉촉한 입술로 바싹 말라 갈라진 입술에 키스했고, 젖은 손으로 사막 같은 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는 홀린 듯이 그녀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자신 안의 불은 다 꺼지고 몸속까지 젖어오는 것 같았다. 몸 안에 강이 생겨 흐르기 시작했다. 수초가 자라나고 물고기가 헤엄친다. 그녀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너의 불을 꺼줄게. 그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그녀에게서 몸을 떼고 일어났다. 그리고 허겁지겁 도망쳐 나왔다. 불이 꺼지면 난 죽는 거야. 물속 깊이 잠겨 썩어가는 거야. 그녀는 쫓아오지 않았다. 그가 잠깐 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차가운 웃음이 보였다.
---「물」중에서

어느 책도, 어느 영화도, 진지하게 똥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다면 거기에 의지해 고통을 승화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떤 그럴듯하고 기교적인 논리로 급똥의 곤란과 배설의 시원함을 이야기한들 그것은 그저 잘 꾸며진 말일 뿐 아닐까, 그는 의구심을 가졌다. 딸의 생명을 구해줬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감사하다고 절을 하는 어느 엄마 앞에서 그는 수술 중 간신히 참고 견뎠던 급똥의 순간을 기억하고는 부끄럽기도 했는데, 이런 이야기는 왜 어떤 작가도, 어떤 철학자도 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급똥 선생」중에서

잠깐 정신이 든 돼지가 말한다. 원래 살던 바깥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우리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다니, 이를 가능케 한 인간들의 ‘레시피’는 얼마나 오묘한가? 우리는 다시 인간의 뱃속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땅으로, 물로 돌아갈 것이다. 옆 프라이팬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스크램블드에그가 은밀하게 침입해 그들과 섞인다. 소금과 깨의 눈발이 흩날리고 지글지글 사악 하게 웃던 콩기름과는 품격이 다른 참기름이 세상에 생겨나 애쓴 그들에게 마지막 세례를 준다.

---「새우 볶음밥」중에서

출판사 리뷰

갖가지 페르소나가 마련해주는 숨기 좋은 방
그 안에서 되살아난 '변신 이야기'


“그는 뒷모습만 있는 남자였다. 모자와 선글라스와 목도리와 옷을 벗고 서면, 그의 앞과 옆에서는 사람 형체의 윤곽선 안에 물이 고여 찰랑거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강이나 바다의 수면 같은 표면에는 수시로 여러 색깔의 빛이 아른거렸다. 그의 신분증에는 얼굴 모양의 형체 안에 물이 고인 것 같은 그 모습을 그대로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동사무소 담당 직원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얼굴이므로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겠다고 하면서 신분증을 만들어줬다고 했다. 그런 훌륭한 공무원이 있다니.” ('얼굴'에서)

뒷모습만 있는 사람, 머리가 일곱 개인 사람, 문어와 인간의 형체 또는 자동차와 인간의 형체를 모두 지닌 '사람', A.I와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 등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많은 경우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흙이나 나무 등 인간이 아닌 생물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또한 이들은 현실에 이물감을 느끼면서도 불화하지는 않으려고 하며, 그 안에서 자신이 안주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주인공들은 신비한, 때로는 기이한 변신을 경험하며 세계 안에서 더욱 확고하게 안전한 자리를 찾고자 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각자의 의지가 무의식 속에서 자라 발현된 힘으로, 독자는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며 자신만의 변신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도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기이하고 기묘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며, 한편으로는 물러나서 이야기 전체를 관망하게 하기도 한다. 소설집의 제목인 '줌 아웃'은 여러 페르소나로 분하며 자신의 상상을 한발짝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함과 동시에 독자가 책을 읽으며 취할 수 있는 태도를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자와 고양이들의 뒤쪽에 그녀가 이젤과 캔버스 앞에 팔레트와 붓을 들고 서 있다. 남자도, 고양이들도, 고래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먼 별에서 온 죽은 그는 말할 것도 없다. 그녀는 바다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남자도, 고양이들도, 죽은 그도, 고래도 있다. 그림은 거의 완성되었다. 그녀는 원근법도 무시하고 물을 차고 오른 거대한 흰 고래의 두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얼어붙고 멈춘다. 줌 아웃." ('바다'에서)

재기발랄하게, 신랄하게, 애처롭게
기발한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삶의 아이러니


초단편 소설의 묘미는 아주 짧은 이야기 안에 촌철살인의 미학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줌 아웃』에 실린 작품들은 황당무계하면서도 재기발랄하고, 신랄하면서도 메마르지 않아서 읽는 이의 시선과 생각을 붙잡는다. 백록담에 넘치도록 담긴 해물 국수는 최고의 국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부부의 레퍼런스가 되고, 세상을 멸망시킬 소명을 타고난 적그리스도는 그 소명이 결국은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내는 산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이 되거나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밀린 설거지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온 섬이 흔들리는 듯싶더니, 맙소사, 급기야 한라산이 터졌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산꼭대기에서 폭발해 뿜어져 나오는 무서운 국숫발을 보았다. 온 섬에 국수 비가 내렸다. 그야말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도시와 오름과 들판이 국수에 뒤덮였고, 새들은 국수를 입에 물고 날아다녔다. 그녀는 세상이 이렇게 망하는 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국수 비를 뚫고, 아니 그대로 맞으며, 그가 느긋하게 걸어왔다. 온통 국수로 뒤덮이고 소매와 바짓가랑이에서 국수가 하염없이 미끄러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문을 열고 맞는 아내에게 그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은 국수를 조심스레 건네주며 말했다. 바로 이거야. 우리가 찾던 것이." ('한라산'에서)

그런가 하면, 젊은이의 손을 빌려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노인들(길)과 부양해야 하는 남편이 죽기를 바라는 부인의 양가적인 애정(마을버스)은 삶의 아이러니를 씁쓸하게 보여주며 살아감의 본질을 되묻는다.

사랑으로, 우정으로 맺는
서로 다른 '나'들의 연대기


개성 강한 작품들이 '줌 아웃'이라는 제목 아래 모여 책 한 권으로 묶였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우리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다니, 이를 가능케 한 인간들의 ‘레시피’는 얼마나 오묘한가?"('새우 볶음밥'에서) 하고 외치는 볶음밥 속 돼지고기의 말처럼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피어나올 수 있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오묘하고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나'들의 연대 속에서 사랑으로, 우정으로 연결된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집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거울, 그리고 창문에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얼굴, 엄마의 얼굴, 일찍 죽어 기억도 나지 않는 아빠의 얼굴, 성당의 신부님과 수녀님 얼굴, 산, 새, 구름, 나무, 꽃, 고 양이, 강, 물고기, 별. 강한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올 때면 그녀가 창에 그린 맑고 투명한 톤의 그림들이 빛을 타고 바닥에 내려와 물결처럼 일렁였다." ('빛'에서)

이렇게 이야기들은 쉴 새 없이 이어지지만 다행히도 독자는 책장 사이사이에서 한숨 고를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과 같이 되뇔 것이다. "아직 생각할 시간은 있다."('총'에서) 이제 책 속 이야기들은 독자의 머릿속에서 새롭게 자라나 각자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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