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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옮긴이 해제 동서 문명 간 도전과 응전의 기록 중국 그리스도교사와 반그리스도교 운동의 전개 과정 제1부 부득이(不得已) 머리말(小引) (상권) 사교의 주멸을 청하는 상소(請誅邪敎狀) 시어 허청서에게 보내는 편지(與許靑嶼侍御書) 벽사론 상(闢邪論 上) 벽사론 중(闢邪論 中) 벽사론 하(闢邪論 下) 사교의 그림 석 장에 대한 논평(邪敎三圖說評) 국체를 바로잡기 위한 정문 초고(正國體呈稿) 중성설(中星說) 택일에 관한 논의(選擇議) 열 가지 오류를 들추어 논함(摘謬十論) 부록__ 시신록 서문(始信錄序) 공자의 가르침에 따른 상소(尊聖學疏) (하권) 얼경 머리말(引) 얼경 부록_ 금오와 옥토에 관한 변(金烏玉?辯) 견계총성도(見界總星圖) 거울 뒤에(鏡餘) 합삭과 초휴 시각에 관한 변(合朔初虧時刻辯) 일식 때 천문 현상에 대한 검증(日食天象驗) 첫 번째 고혼사소(一叩辭疏) 두 번째 고혼사소(二叩辭疏) 세 번째 고혼사소(三叩辭疏) 네 번째 고혼사소(四叩辭疏) 다섯 번째 고혼사소(五叩辭疏) 제2부 부득이변(不得已辯) 자서(自敍) 부득이변(不得已辯) 천지창조 / 창조주 1 / 창조주 2 / 창조주 3 / 창조주 4 / 창조주 5 / 성육신 / 만유의 주재자 1 / 만유의 주재자 2 / 만유의 주재자 3 / 구주 강생 1 / 인류 역사의 기원 / 구주 강생 2 / 동정녀 탄생 / 천당과 지옥 1 / 천당과 지옥 2 / 천당과 지옥 3 / 회개, 용서와 구원 / 참다운 도 / 구주 강생의 예언 / 예수의 사역 1 / 원죄 / 예수의 사역 2 / 십자가 형벌 / 중국 지식인과 천주교 인식 / 천주와 상제 / 이理와 기氣 / 하늘과 이理 1 / 하늘과 이理 2 / 하늘과 상제 / 제사 / 역모설에 대한 해명 부록_ 역법을 구실로 사교를 행한다는 데 대한 변(藉曆法行敎辯) 중국의 태초인에 관한 변(中國初人辯) 제3부 역법부득이변(曆法不得已辨) 자서(自序) 개요(總略) ‘依西洋新法’ 다섯 글자와 중국이 서양 역서를 받든다는 것에 대한 변석(辨依西洋新法五字幷中國奉西洋正朔) 관측과 검증이 모든 판별의 근거이다(測驗爲諸辨之据) 새 역법이 성지를 따랐다는 것은 변석할 필요조차 없음에 대한 규명(新法曆遵聖旨爲無庸辨之原)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첫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一摘以爲新法不用諸科較正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둘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二摘以爲新法一月有三節氣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셋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三摘以爲新法二至長短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넷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四摘以爲新法夏至日行遲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다섯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五摘以爲新法移寅宮箕三度入丑宮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여섯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六摘以爲新法更調參二宿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일곱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七摘以爲新法刪除紫氣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여덟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八摘以爲新法顚倒羅計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아홉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九摘以爲新法黃道算節氣之謬) 양광선이 지적한 새 역법의 열째 오류에 대한 변석(辨光先第十摘以爲新法止二百年之謬) 밤낮을 100각으로 나눈 것에 대한 변석(辨晝夜一百刻之分) 양광선이 말한 윤달의 허망함에 대한 변석(辨光先閏月之虛妄) 합삭과 초휴가 앞뒤로 되는 까닭(合朔初虧先後之所以然) 일식과 월식으로 칠정 및 능범을 관측하고 검증하는 역법의 엉성함과 정밀함(交食測驗七政幷凌犯曆疏密) 양광선은 세상을 속이고 자기 죄를 가렸다(光先欺世飾罪) 양광선은 역법 개정을 통해 간악한 속임수를 엄폐하려 하였다(光先計圖修曆以掩奸欺)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증함(地爲圓形實證) 적도를 따라 관측하고 검증하는 것에 대한 변석(辨依赤道測驗) 옛 역법과 새 역법의 비교(新舊二曆疏密) 달력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진 몇 가지(曆日自相矛盾數端) 제4부 명말청초의 반그리스도교 운동 관련 자료 천학전개 서문 천학전개 고 전 흠천감 감정 양광선 별전(故前欽天監監正楊公光先別傳) 고 전 흠천감 흡현 양공 신도비(故前欽天監縣楊公神道碑) 『청사고』에 수록된 양광선 전기(淸史稿楊光先傳) 『청사고』에 수록된 남회인 전기(淸史稿南懷仁傳) 강희 『흡현지』에 수록된 양광선 전기(康熙縣志楊光先) 부득이 제기(不得已題記) 부득이 제기(不得已題記) 부득이 발문(不得已跋) 취망록(吹網錄) 부득이 제기(不得已題記) 인명사전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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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들은 세상의 도를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세파에 휩쓸려 온 백성을 사교邪敎의 후예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또한 우리 나라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임금·어버이·스승을 없애고 있으니, 이〔바로잡는〕 일은 정말 그만둘 수 없다. 온 세상의 배웠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감히 나서서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니 사교의 힘이 이토록 크단 말인가! 햇빛과 달빛과 별빛이 어두워지고, 오륜五倫이 끊기고, 이제 앞으로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지경에 떨어지고 말리라! 이 지경인데도 〔바로잡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을 그만둔다면 세상에 그만두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나 광선光先이 부득이하여 나선 까닭이다. 자여子輿가 한 말과 비교해볼 때, 마음은 더욱 아프고 상황은 더욱 급박하니 이해를 따질 겨를이 어디 있을 것이며, 호랑이와 싸우고 강을 건너는 것을 어찌 헛되다 하겠는가! 이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부득이不得已’라고 하였다.
--- pp. 40~41 예수가 누구인가 물으니 그가 바로 천주라고 하였다. 천주는 천지 만물을 주재하는 분인데 어찌하여 사람 세상에 내려와 태어났는가 하고 물으니, “천주께서 아담이 죄를 지어 그 화禍가 후손에게 대대로 이어지는 것을 불쌍히 여겨 몸소 세상에 강생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고 죄를 대속하였다. 지난 5천 년 동안 때로는 천사를 보내어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예언자의 입을 빌려 천주가 강생하여 세상에 있을 동안의 사적事蹟을 미리 전하게 하였다. 그 단서를 미리 글로 쓰게도 하였고 국사國史에 기록하게도 하였다. 강생할 때가 이르자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알려서 천주를 잉태하게 하였는데 마리아는 흔쾌히 허락하고 드디어 아들을 낳아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천주의 어머니가 되시고도 동정녀의 몸은 그대로 훼손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예수가 어느 임금 때에, 어느 시기에 태어났는가 하고 물으니 한나라 애제哀帝(재위 B.C. 7∼B.C. 1) 원수元壽 2년 경신년(B.C. 1)에 태어났다고 하였다. 아, 황당무계하기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도다! 무릇 하늘은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엉켜서 이루어진 것이지 만들어낸 자가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공자께서는 “하늘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계절은 운행되고 온갖 사물은 자라난다”라고 하셨다. 계절이 운행하고 온갖 사물이 생장하는 것은 음과 양 두 기운이 수행하는 훌륭한 기능이다. 하늘이 천주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하늘 또한 전혀 지각이 없는 사물일 것인데 어찌 만물을 생성시킬 수 있단 말인가? 천주가 비록 신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음과 양, 두 기운 중의 하나일 뿐이다. 두 기운 중의 한 기운을 보고 만물의 두 기운을 만들고 낳을 수 있다고 하다니, 이치가 통하는 말인가? --- pp.73~74 천지창조 광선이 “무릇 하늘은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엉켜서 이루어진 것이지 만들어낸 자가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하늘이 두 기운이 엉켜서 이루어졌다고 한 것은, 만물의 근본을 모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이치로써 따져보건대, 세상 만물이 기질을 부여받아 생성되는 데에는 네 가지 단서〔四端〕가 있으니, 질質·모模·조造·위爲가 그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가 없어도 만물은 생성되지 못한다. 만물의 탄생은 다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생겨나는 것〔生成〕과 만들어지는 것〔造成〕이 그것으로, 모두 이 네 개의 단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류는 생겨나는 것에 속한다. 형체는 질質이고, 영혼은 모模이며, 부모는 조造이고, 진정한 복은 위爲이다. 만들어지는 사물은 구워내는 도자기 같은 것이다. 모래와 흙은 질質이고, 틀은 모模이며, 도자기공은 창조자〔造〕이고, 그 쓰임새는 위爲이다. 만물이 모두 이러하다. 그러니 하늘이 있기에 앞서 설사 두 기운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코 스스로 엉켜서 하늘을 이룰 수는 없으며, 반드시 그것을 만든 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집을 지으려면 먼저 나무와 돌 등의 자재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반드시 목수의 도끼 같은 연장이 있어야만 집을 지을 수 있지, 나무와 돌 스스로가 그대로 집이 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영혼과 육체가 어우러져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태어나게 하고 생명을 갖게 하는 자가 있어야만 하지, 영혼과 몸뚱이가 스스로 태어나 생명을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저 두 기운이라는 것은 영혼도 없는 사물인데, 무슨 수로 서로 엉켜 하늘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하늘은 단연코 창조되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 pp.240~241 양광선이 역법의 원리에 대해 터럭만큼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대지가 둥글지 않다고 한 말 한마디에서 모두 드러난다. 대지는 틀림없이 둥글다. 여러 가지의견이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억설일 뿐이다. 여기에서 세 가지로 요약해 말하겠다. 첫째, 월식의 모양새이다. 월식은 지구가 해와 달 사이에 있어 해가 달을 비추지 못하는 까닭에 생긴다. 그래서 지구가 자기 그림자를 달에 던진 것을 보면 그 또한 둥글다. 이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대지에는 동쪽과 서쪽이 있어서 월식이 드는 시각이 지역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순천부에서 월식이 자시子時에 나타났다면 달은 하늘의 한가운데 있으며 지평선 위의 70도에 있을 것이다. 순천부의 동쪽에 있는 곳에서 월식이 축시丑時와 인시寅時 사이에 나타날 때, 달은 하늘 중천의 서쪽 30도나 60도에 있으며 지평선 위의 40도나 20도에 있다. 순천부의 서쪽에 있는 곳에서 월식이 술시와 해시 사이에 나타났을 경우에는 달이 하늘 중천의 동쪽에 떨어져 30도나 60도에 있으며 지평선 위의 40도나 20도에 있다. 만약 두 곳이 90도로 떨어져 있다면 동쪽에서는 자시에 월식이 나타나고 달은 하늘 한가운데 있을 것이며, 서쪽에서는 월식이 묘시卯時에 나타나고 달은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고 있을 것이다. 만일 대지가 동쪽에서 서쪽까지 네모나고 원형이 아니라면 지면 위에 사는 사람들은 동쪽에 살거나 서쪽에 살거나를 말할 것도 없이 모두 자시에 월식을 볼 것이며, 달이 하늘의 한가운데 있거나 지평선 위 70도에 있는 것도 어느 지방에서 보나 모두 같아서 순천부에서 보이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셋째, 사람들은 사는 곳이 북쪽에 가까울수록 북극이 지평선에서 더욱 높은 고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은 사는 곳이 남쪽에 가까울수록 북극이 지평선에서 더욱 낮은 고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광동廣東에서 북극이 지평선 위의 약 24도에 있는 것을 보았다면, 강서江西에서는 28도에 있는 것을 볼 것이며, 강남江南에서는 32도에 있는 것을 볼 것이고, 산동山東에서는 36도에 있는 것을 볼 것이며, 순천부에서는 40도에 있는 것을 볼 것이다. 만약 지구가 네모나고 원형이 아니라면 천하의 각 성에서 북극을 보는 것은 모두가 〔지평선 위〕 40도로 순천부에서 보는 것과 다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로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지구가 원형이라는 것을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대지가 네모나고 원형이 아니라면 천하 각 성에서의 지평선은 모두 한가지이고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각 지방의 지평선 위에 보이는 별들에 어찌하여 높고 낮은 구별이 있는가? --- pp.415~420 이 책은 흡현 출신의 벼슬 없는 선비 양광선의 저술이다. 양공은 강희 초년(1662)에 북경에 가 서양인들이 사교인 천주교로 중국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현혹시키니 반드시 큰 재난이 될 것이라고 고발하였는데, 2백 년이나 앞서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진실로 그는 우리 왕조(청나라)에서 식견과 담력을 가진 최초의 인물이었고, 그의 책 역시 명교名敎에 관련되고, 성학聖學에 공을 세우며, 민생을 구제한 최초의 책이었다. 그때에 사악한 세력이 올바른 세력을 당해내지 못하니, 묻고 심판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밝혀져서 탕약망 등은 파직되었고, 감관으로서 천주교에 붙어먹은 다섯 사람은 죽임을 당했으며, 중국 사람들이 천주교를 익히는 것이 금지되었다. 다시 하늘의 해를 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재물을 가지고 신통한 재간을 부려 자리를 틀고 들어앉아 떠나지 않았다. 〔서양인들이〕 한인漢人 가운데 힘 있는 자들에게 두루 뇌물을 주어 잠시 양공에게 흠천감 감정의 벼슬을 주게 한 다음, 틈을 노리다가 그를 죽을 자리로 몰아넣으려 한 것이 틀림없었다. 양공은 그들의 계략을 환히 꿰뚫어 보고 다섯 번이나 소장을 올려 사양하였고, 또 여섯 가지 두려운 일과 두 가지 부끄러운 일을 적어 소장을 갖춰 올렸는데, 그 내용과 표현이 명백하고도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예부에서 의논하였으나 몰래 사주를 받았던 까닭에 끝내 〔사직의 요청이〕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부득이 그 직책에 나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윤달을 두는 문제에서 착오가 있어 대신들 사이에 대벽죄로 다스리기로 의론이 되었는데, 황제의 은총으로 칙지가 내려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서양인들에게 독살당하였다. 그 후에 서양 역법이 다시 시행되니 너무도 견고하여 없앨 수가 없었다. 양공이 관직을 받기 전에 죽었다면 그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리되었다면 서양의 기술은 〔중국에서〕 다시 흥성할 수 없었을 것이며, 흥성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러한 함정을 만들어놓고 저들의 분憤을 토해내었던 것이다. 그렇게 간악한 수작을 펴고 지독한 음모를 꾸몄으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그러나 천주교는 공공연히 전파되지 못했으니 중국 백성들이 공공연히 천주교를 받들어 섬겨 모두 아비도 임금도 없는 짐승으로 되지 않은 것은 모두 양공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사설邪說을 그치게 한 사람은 맹자 이후에 그 한 사람뿐이다. 어떤 이들은 나의 말이 지나치다고 할 것이지만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판별해주기 바란다. --- pp.491~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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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청초 예수회의 중국 선교와 서양 천문학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1583년 중국 본토로 입국함으로써 중국과 유럽, 유교 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가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다. 리치는 『천주실의(天主實義)』, 『기인십편(畸人十篇)』 등 많은 저술을 통해 기독교를 전파하고 서양의 수학, 천문, 지리 등 과학을 소개하여 중화사상과 송명 성리학이 골격을 이루고 있던 명나라 말기의 중국 사상체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그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한 국가에 불과하고 서양의 지리학적 지식이 더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 중화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 중국 지식인들에게는 충격이자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와 함께 소개된 수학과 천문학 등 서양의 과학문물 또한 중국에서 정통한 것으로 인정되던 것들의 문제를 발견해 내는 데 단초를 제공했다. 리치 사망 이후에는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문물을 소개할 수 있는 각 학문분야의 전문서적을 다량 가지고 중국에 들어왔다. 그중 서양 천문학에 능통한 선교사로 요한 테렌츠, 자코모 로, 아담 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이지조(李之藻)는 명 말의 월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예수회 선교사들의 서양 천문학을 이용하여 중국의 월력을 개선할 것을 주장했다. 1613년 조정에 상소를 올려 일식과 월식을 계산하지 못하는 중국의 회회력과 대통력을 서양의 역법으로 대체하자고 한 것이다. 이어서 같은 내용의 상소를 올린 서광계(徐光啓)가 1629년 황제의 윤허를 받아 흠천감(欽天監)을 설치하고, 서양 선교사들과 이지조를 배속시켰다. 이들은 1631년부터 1634년까지 당대의 서양 천문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숭정역서(崇禎曆書)』를 편찬해 냈다. 청나라에 들어와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 『숭정역서(崇禎曆書)』를 바탕으로 중국 월력을 책임지게 된다. 순치제(順治帝)는 흠천감의 감정(監正)으로 아담 샬을 임명하는데, 이는 그동안 채택했던 회회력이나 대통력이 1644년 8월 발생한 일식의 정확한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반포된 아담 샬의 월력이 바로 시헌력(時憲曆)으로 조선도 이를 받아들여 1653년부터 1910년까지 사용하였다. 동서 문명의 충돌과 흠천감교난 발생 시헌력의 채택은 중국 유학자들의 거센 반발을 촉발시켰다. 그중 천문학자 오명훤(吳明?)은 아담 샬이 일식과 월식을 잘못 예측했다고 주장했으나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아담 샬을 탄핵했지만 황실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순치제가 아담 샬을 워낙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어 서양 천문학에 대한 반대는 어떤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서양 천문학과 연관된 반그리스도교 운동은 순치제에서 강희제(康熙帝)로 권력이 이동하던 때 발생했다. 강희제가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자 만주족 출신 대신들이 섭정을 하며 개방정책을 반대하고 만주의 전통적인 직제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여,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서양의 문물에 배타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반그리스도교 운동을 촉발시킨 인물이 바로 양광선이며, 그가 선택한 공격 대상은 서양 천문학과 아담 샬의 시헌력이었다. 순치제 때 양광선은 아담 샬을 여러 차례 탄핵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강희제 때 만주족 출신 대신들이 섭정을 시작한 틈을 타 ‘흠천감교난(欽天監敎難)’이라고도 불리는, 이른바 ‘역옥(曆獄)’을 일으켰다. 그 발단은 1664년에 올린 「청주사교장(請誅邪敎狀)」이었다. 여기에서 양광선은 탕약망(아담 샬) 등 몰래 입국한 서양 선교사들이 사교(邪敎)를 전파하여 민심을 어지럽히고 유교의 전통을 훼손하고 있으며 천주교인들의 집회가 역모로 발전된 우려가 있으니 이를 하루속히 쓸어버려야 한다고 주청하였다. 이로 인하여 1665년 아담 샬, 페르비스트(남회인), 불리오(이류사), 마갈엥스(안문사) 등은 투옥되었고, 중국 각지의 예수회 선교사 21명, 도미니크회 선교사 3명, 프란체스코회 선교사 1명은 마카오로 추방당했다. 아담 샬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처벌이 미뤄지고, 그의 제자였던 이조백을 포함한 중국 관리만이 사형당했다. 그러나 아담 샬은 문초를 당하며 병을 얻어 1666년에 사망하고, 그해에 예수회 선교사 대신 양광선이 흠천감 감정으로 임명되어 오명훤과 함께 흠천감에서 월력을 제작했다. 섭정에 시달리던 강희제가 1667년 마침내 친정(親政)을 선포하고 그 이듬해 섭정의 주체였던 오배를 투옥했다. 이를 계기로 강희제 초기의 반그리스도교적 분위기는 일시에 쇄신되었고, 강희제의 지시로 양측이 월력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1668년 정월 24일의 하루 길이를 측량하여 중국과 서양의 월력의 정확성을 가늠해본 결과 서양 역법과 페르비스트의 측량이 정확했다. 강희제는 양광선을 파면하고 옥에 가둔 다음 총애하던 페르비스트를 흠천감의 감부(監副)로 임명하고 아담 샬과 이조백은 복권시켰다. 이후 시헌력이 다시 도입되고, 양광선은 참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했으나 사면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망하였다. 21세기에 다시 보는 『부득이』 유럽 선교사들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세계 선교가 시작된 이래 17세기 선교에 대한 선교지의 반응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는 중국의 기록들이 유일무이하다. 대표적인 기록으로 『부득이』와『부득이변(不得已辯)』 및 『역법부득이변(曆法不得已辨)』, 『파사집(破邪集)』과 『벽사집(闢邪集)』, 그리고 『오문기략(澳門記略)』이 있는데, 이들을 통틀어 ‘명말청초 반기독교문서’라 부르고 있다. 주 내용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으로 동서 문명의 충돌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지만, 한편으론 새 문명을 대하는 중국 측의 관용과 선교사 측의 적응 현상도 담고 있어 문명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번에 펴내는 명말청초 반기독교 문서 제1권인 『부득이―17세기 중국의 반기독교 논쟁』에 실린 양광선의 『부득이』상.하권, 『부득이』상권과 짝을 이루는 이류사(불리오)의 『부득이변』, 『부득이』상권 및 하권의 역법 내용을 반박하는 남회인(페르비스트)의 『역법부득이변』은 우리나라에는 처음 번역 소개되는 것으로, 1665년 역옥과 관련된 일차 사료로서의 가치가 커서 신학.종교학.역사학, 특히 동서 교류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역법의 문제를 떠나서, 외세의 침입을 극도로 경계하고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외세와 한통속으로 보았던 선각자적 경계심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질적인 문명이 만나는 역사 현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