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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옮긴이 해제 사교와 사설을 깨뜨리자 『파사집 破邪集』 서문 벽사제사 闢邪題詞_徐昌治 제1권 1. 「남궁서독」 서문 南宮署牘序_陳懿典 2. 「남궁서독」 南宮署牘_沈? 3. 오랑캐 범인 조사·확인을 해당 관서에 지시하는 차부付該司査驗夷犯箚_南京禮部 4. 왕풍숙 등 범인을 합동 심리한 안건 會審王?肅等犯一案_南京禮部主客?吏司 5. 남경 도찰원의 회답 자문 南京都察院回咨_南京都察院 제2권 1. 멀리서 온 오랑캐를 압송해 보내고 품고하는 주소 發遣遠夷回奏疏_沈? 2. 종명례 등 범인을 합동 심리한 안건 會審鍾明禮等犯一案_吳爾成 3. 종명인 등 범인을 합동 심리한 안건 會審鍾鳴仁等犯一案_徐從治 4. 삿된 무리를 체포한 후에 낸 고시 拿獲邪黨後告示_南京禮部 5. 오랑캐의 소유물을 자세히 조사한 안건 淸査夷物一案_應天府 上元·江寧縣 6. 제도를 위반한 누각과 화원을 허물어 버린 안건 ?毁違制樓園一案_徐從治 7. 복건 순해도 고시 福建巡海道告示_施邦曜 8. 제형안찰사 고시 提刑按察司告示_徐世蔭 9. 복주부 고시 福州府告示_吳起龍 제3권 1. 『파사집』 서문 破邪集序_蔣德璟 2. 『성조파사집』 서문 聖朝破邪集序_顔茂猷 3. 문단의 맹주 황천향에게 쓰는 글 題黃天香詞盟_唐顯悅 4. 『파사집』 서문 破邪集序_周之夔 5. 안장기 스승께 천주교 변박을 청하는 글 請?壯其先生闢天主?書_黃貞 6. 유교를 받들어 거울로 삼다 尊儒?鏡_黃貞 7. 『파사집』 자서 破邪集自?_黃天香(黃貞) 8. 죄를 자책하는 말 罪言_王朝式 9. 오랑캐를 쫓아내는 직언 驅夷直言_黃廷師 10. 천주교가 독이라는 확실한 증거 邪毒實據_蘇及? 11. 이마두의 말은 황당하고 세상을 미혹시킨다 利說荒唐惑世_魏濬 제4권 1. 「사설 변박에 도움 되는 글」 자서 聖朝佐闢自?_許大受 2. 「사설 변박에 도움 되는 글」(열 편) 聖朝佐闢(凡十)_許大受 제5권 1. 서학을 변박하다(서문과 변박문 다섯 편) 辨學?言(?一辨凡五)_陳侯光 2. 천학의 의혹을 파헤치다 天學剖疑_戴起鳳 3. 『천주실의』의 살생론을 변박하다 天主實義殺生辨_虞淳熙 4. 천체를 밝힘으로써 오랑캐 이마두가 하늘을 참칭하고 세상을 속인 것을 변박하다 明天體以破利夷僭天罔世 5. 사설을 내치다 闢邪解_黃紫宸 6. 사설을 내치다 闢邪解_黃問道 7. 사설을 깨뜨리다 劈邪說_李璨 8. 벽사의 요점을 논하다 闢邪摘要?議_張廣? 제6권 1. 오랑캐를 주벌하자는 논의의 요약 誅夷論略_林啓陸 2. 사설을 물리치자는 소견 闢邪管見錄_鄒維璉 3. 한림원 좌춘방 장덕경 공에게 양이보국을 요청하는 공게를 올리다 上翰林院左春坊蔣公德璟攘夷報國公揭_李維垣 4. 「깊이 개탄할 일 열두 조항」의 서문 十二深慨序_黃貞 5. 「깊이 개탄할 일 열두 조항」 十二深慨_王忠 6. 품급설 品級說_黃虞 7. 사설을 주벌하는 명백한 증거 기록 誅邪顯據錄_李王庭 8. 역법론(서양력에서 윤달을 없앤 것을 논박하다) 曆法論(闢西曆棄閏邪說)_謝宮花 9. 별자리 네 개로 증명하다 四宿引證 10. 속정기가 續正氣歌_謝宮花 제7권 1. 천설(네 편) 天說(凡四)_?宏 2. 「차마 아니 할 수 없는 말」 서문 不忍不言序_曾時 3. 「차마 아니 할 수 없는 말」 不忍不言_黃貞 4. 변천설(세 편) 辨天說(凡三)_圓悟 5. 사설의 허황됨을 증명하다 證妄說_張廣? 제8권 1. 「정통을 바로잡다」의 서문 統正序_劉文龍 2. 도의 근원을 밝혀 사설을 내치다(네 편) 原道闢邪說(凡四)_通容 3. 『주좌집』의 편찬 유래 誅左集緣起_釋普潤 4. 천주교를 물리치자는 격문 闢天主?檄_釋成勇 5. 천학을 물리치자는 주장(아홉 가지) 天學初闢(凡九)_釋如純 『벽사집 闢邪集』 제9권 1. 『벽사집』을 판각하고서 지은 서문 刻闢邪集序_智旭 2. 천주학에 대한 첫 번째 검증 天學初徵_鍾始聲 3. 천주학에 대한 두 번째 검증 天學再徵_鍾始聲 4. 『벽사집』 부록 闢邪集附 5. 『벽사집』 발문 闢邪集跋語_程智用 제10권 1. 사설을 주벌하는 명백한 증거 기록 誅邪顯據錄_李王庭 2. 존정설 尊正說_釋行璣 3. 이마두를 배격하는 말들 ?利偶言_釋行璣 4. 간교함을 밝히다 昭奸_釋寂基 5. 사교를 돕는 자에게 말하다 爲翼邪者言_釋行元 6. 『대의편』 서문 요약 代疑序略記_釋行元 7. 경전을 무고한 내용 요약 誣經證略_釋行元 8. 양정균을 비난하다 非楊篇_釋行元 9. 질문을 받고 마음속 생각을 밝히다 緣問陳心_釋行元 10. 간사함을 통찰하다 燃犀_釋性潛 11. 「사설을 발본색원하는 글」 뒤에 쓰다 拔邪略引_釋行聞 12. 『원도벽사설』 끄트머리에 쓰다 原道闢邪說尾_通容 |
徐昌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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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들이 조상에게 제사 지내지 말라고 대놓고 권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불효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앞으로 말하자면 온 천하를 임금도 신하도 없는 지경으로 끌고 가는 것이요, 뒤로 말하자면 온 천하를 아비와 자식도 없는 지경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추악한 족속이기에 이같이 그릇된 거짓말을 만들어 낸단 말입니까! 유학의 큰 반역자는 성세에 반드시 주살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넋 나간 듯 천하 사람들이 그 교설을 따르도록 몰고 갈 수 있겠습니까?
일반 백성들이 저들의 선동을 받을 때마다 기꺼이 그 종교를 따르는 것은 저들에게 돈과 재물이 많아 사람을 가늠해 나눠 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천주교가 이처럼 사람을 구제한다고 하니, 탐욕스럽고 미련한 무리가 이득을 보려고 그 교를 믿는 것입니다. 저들 가슴에 품고 있는 음흉한 심사가 더욱 가증스럽습니다. (중략) 삼가 주청컨대, 예부와 병부에 칙지를 내리시어 회동하여 심의하도록 해 주시옵소서. 만약 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우두머리는 법에 따라 조사하여 유배 보내고, 나머지 자들은 기한을 정해서 축출하셔야 합니다. 또한 율령을 다시 공포하여, 저 교활한 오랑캐들이 어느 해부터 잠입했는지를 밝히시고, 지금 북경과 남경, 각 성의 몇 군데에 모여서 자리 잡고 있는지 밝히셔야 합니다. (중략) 저들은 중국과 팔만 리 떨어진 곳에서 왔다고 했는데, 저들에게 돈과 재물이 끊이지 않으니, 도대체 어떤 사람이 보내 주는 것입니까? 저들이 관문을 통과할 때에는 무슨 근거 서류를 가지고 있기에 넘나들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곳을 지키는 관원들과 군인들은 어찌하여 조사하고 묻지도 않고, 엄히 법규를 세우지도 않는 것입니까? 지금부터 이런 무리가 침입하는 것을 다시는 허용치 말아야 할 것이며, 이를 위반하는 자는 『대명률』에 비추어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우리의 방비는 치밀해지고 저들의 종적은 감추기 어렵게 되어 국가가 만세 동안 태평할 것이고 뜻밖의 우환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신 격앙되고 간절한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 명을 기다립니다. 만력 44년(1616) 5월 일 - 51~54쪽 - 법도를 엄정히 하고 민생을 일으킨 일에 관해서는 옛 전적에 기록이 있으며, 강상綱常을 배반하고 풍기를 어지럽힌 죄를 다스리는 일에 관해서는 명확한 형률이 있다. 『주례』에서는 좌도左道에 대해서 관용 없이 징벌해야 한다고 하였고, 『춘추』에서도 그것이 경미할 때에 엄히 막아야 한다고 경계하였다. 지금까지 사교가 일어날 때 보면, 갖은 방법으로 선동하여 미련한 무리가 머리를 수그리고 귀의하도록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윤상倫常조차 아랑곳 않고 위반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재물과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사교를 따랐다. 갖가지 어리석고 우매한 현상들은 크나큰 우환이다. (중략) 만약 천주교의 애유략?양마락 같은 자들이나 무위교의 우두머리들이 성 소재지에 들어오는 것을 발견할 경우, 즉시 관부에 알려서 나포하여 엄히 추궁하고 징치할 수 있도록 하라. 만약 이런 자들을 숨겨 주고 고발하지 않았다가 사실이 발각되는 때에는 한꺼번에 연좌시켜 처벌할 것이다. 상급 관부에서는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있으며, 금령은 지엄하므로 이를 어긴 자들을 단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특별히 고시하는 바이다. 숭정 10년(1637) 11월 5일 반포 / 복주부 지부 오기룡 - 161~162쪽 - 『여곽극언藜藿?言』에 따르면, 그곳(마카오)의 오랑캐들은 공자를 ‘마귀’라고 부른다 한다. 이 어찌 사람의 모습을 가진 자로서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인가? 그때 나는 면전에서 이 말을 듣고서 가슴 아픈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발끈 성을 내고 말았다. 애유략(알레니)?용화민(롱고바르디) 등이 말했다. “이곳은 연청지옥鍊?地獄(청정을 수련하는 지옥)의 일종인지라 그다지 큰 고통은 없습니다. 천주교를 따랐으되 지극함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이 지옥에 들어가는데, 대체로 천당의 아류라고 할 수 있지요.” 내가 말했다. “천주라는 분은 내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고, 여러 개의 천당이란 곳이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인가?” 그들이 대답했다. “천주교를 믿으면 오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백성이 천당에 오르는 것은 흔한 일인데, 공자만은 지옥에 떨어져야 한단 소린가? 백성이 있은 이래로 공자만큼 크게 찬양받았던 사람도 없는, 찬양한 자들의 혀도 뽑아 버려야 마땅하다. 공자가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판단하다니, 공자를 어찌 그리 천히 여기는가? 그러면서 너희들은 오히려 다 같이 천당에 갈 것이라고 판단하다니, 스스로를 대함이 어찌 그리 거만한가! 공자가 지옥에 들어갔다고 믿는 교도敎徒라면, 자손 있는 자로서 절대로 그 자손이 공자와 인연을 맺지 못하도록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기어이 자손에게 사서오경을 익혀 세상의 녹봉을 취하게 하고, 세상의 녹봉을 취한 후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진수성찬을 먹으며 성현의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게 한다. 그러고는 더럽고 천한 오랑캐를 단 위에 모셔 놓고, 심한 경우는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일 벌이기 좋아하는 못난 유자儒者나 대담하게 글로 농간을 부리는 숙유宿儒를 꾀어, 배운 학문을 모두 버리고 자신들의 천주학을 배우게 한다. 더구나 부형父兄과 무리지어 또 처자식을 이끌고 저들의 신하가 되고, 우리 공자에게는 반쪽의 자리도 내주지 못하게 한다. 참으로 저를 키워 준 애비를 잡아먹는다는 파경조破鏡鳥와 다를 바 없으니, 어찌 애통하지 않으리오!” - 280~281쪽 - 저들의 말에 따르면, 저들 나라에서는 오직 하나의 천주만을 받들 뿐, 다른 신에게는 제사 지내지 않으며 다른 묘우廟宇도 세우지 않는다. 곳곳에 천주당을 건립하고 천주상을 안치한다. 천주교의 (영세를) 받은 사람은 집에서 천주상을 모시고 제사 지낼 수 있다. 만약 다른 묘우를 짓고 다른 신을 받든다면 천주교의 계율을 범하는 것이다. 저들은 기어코 우리의 공자 사당과 산천의 사직을 보호하는 단대壇臺 및 옛날 칙지에 따라 지은 충효 절의의 사당을 폐하고자 한다. (중략) 아! 간사한 오랑캐가 어떤 물건이기에, 감히 한 사람에게만 제사 지내는 저들 오랑캐의 풍습으로 우리 나라 만대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사표師表를 어지럽히려 하는가! 저들의 말에 따르면, 저들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부모가 돌아가도 제사를 차리지 않고 종묘도 세우지 않으며, 오직 천주만을 우리 모두의 하나뿐인 아버지라고 여긴다. (중략) 아! 요망한 오랑캐가 어떤 물건이기에, 감히 부모조차 잊어버리는 저들 오랑캐의 풍습으로 우리 나라에서 부모를 생전처럼 모시는 효도의 근본을 어지럽히는가! - 406~407쪽 - 한 사람에게는 세 가지 혼, 즉 영혼과 각혼覺魂과 생혼生魂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생혼과 각혼은 사람이 죽으면 사라지지만 영혼만은 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라지는 것도 있고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면 천성을 실천하여 일체를 이룰 수 없고, 천성의 도에도 부합할 수 없다. 그저 (일체의 幻과 같은) 좋아하고 싫어하고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생주이멸生住移滅 현상의 언저리만을 따를 뿐, 타고난 본명本命과 운명을 크게 온전히 하는 뜻은 전혀 실천하지 못한다. 저 주인 없이 외로운 혼은 이곳저곳 떠돌다가 천당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곧 지옥으로 들어갔을 터, 천주의 상벌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 스스로 설 자리가 없었을 것임을 가히 알 수 있다. 또 짐승을 따로 분리해서 짐승에겐 영혼이 없으니 사람의 배를 채우기 위해 제공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이에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짐승들을 죽이라고 하였으니, 긍휼히 여겨 주는 덕이라곤 전혀 없다. 이는 곧 우리 성현들이 사람과 사물의 본성을 다 하고자 하였던 뜻을 한꺼번에 없애 버리는 처사이다. 사람에게 세 가지 혼이 있다고 구분한 것 자체도 어리석고 허황된데, 하물며 짐승에겐 영혼이 없다고 따로 구분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죽이게 하고 있으니, 미혹된 가운데 또 미혹을 만들어 내고, 허황된 가운데 또 허황된 것을 보태는 것이 아니겠는가? - 584~585쪽 - 저들이 말했다. “천주께서는 처음 만물을 낳으시어 사람들이 쓸 수 있게 하시고, 천지를 개벽하기 이전에 만물의 근본을 만들어 자라게 한 다음에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를 만들어 자라게 하시었다.” 검증하여 말한다. “천지개벽 이전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만물을 낳아 사람이 쓰도록 했다는 것인가?” 저들이 말했다. “생전에 지은 선업과 악업은 죽은 후 그 혼령이 천주께 나아가 심판을 받는다.” 검증하여 말한다. “만약 천주에게 형상도 목소리도 거처도 없다면, 죽은 자는 장차 어디로 가야 하는가? 만약 어디론가 가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면, 이는 거의 세간의 재판관과 진배없으며, 불가에서 말하는 염라대왕과도 같다. 만약 재판관과 같은 것이라면 재판관 또한 부모가 낳았으니 늙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고, 만약 염라대왕과 같다면 그 또한 중생 중의 하나인지라 윤회를 면치 못한다. 그런데도 무시무종이요 만물을 창조한 진정한 주재자라 칭할 수 있는가?” 저들이 말했다. “천당과 지옥의 응보는 결코 면할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반드시 후세(내세)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또한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전생이란 절대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검증하여 말한다.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막 태어났을 때의 일을 물어봐도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처음 태어났던 일조차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처음 태어났을 적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여 처음 태어난 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생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여 전생이 없음을 어찌 안단 말인가?” - 683~685쪽 - 『대의편』 안에 ‘십자가는 위력이 매우 커서 마귀가 그 앞에 서면 즉시 소멸되고 만다고 답한 조목’이 있다. 오호라! 이 무리의 속내가 참으로 교활하더니, 도리어 지금 이처럼 어리석어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중죄를 짓고 처형되었다고 하니, 생각해 보면 감옥에서 폐사한 사나운 귀신에 지나지 않는다. 또 고집스런 영혼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아수라처럼 한 지역에서 위복威福을 행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일단 정직한 자를 만나면 자연 흔적이 감추어질 터인데, 누구를 가리켜 마귀라 하며 소멸되라 명령한단 말인가? 십자가의 형벌이 지극히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예수는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죄를 대속하여 지극한 덕을 행하였다. 이에 그의 형상을 그려 제사 지내는 것이라고 저들은 말한다. 만약 지극한 덕이라면, 형벌을 받기 이전에 의관을 갖춘 버젓한 모습을 그려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르게 하면 왜 아니 되는가? 꼭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려 물의를 일으켜야 하는가? 게다가 몸으로 벌을 받고 속죄하는 것을 지극한 덕이라고 하는 것을, 덕으로써 사람을 교화하여 아무 죄도 짓지 않는 것을 일러 지극한 덕이라고 하는 것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교화시킬 덕이 없어 자기 몸을 처형당하게 내버려 둔 것은 인仁이 아니다. 십자가를 세워 임금의 죄악을 널리 내보인 것은 의義가 아니다. 풀어 헤친 머리와 벌거벗은 몸으로 귀신 같은 모습을 한 것은 예禮가 아니다. 죽어 죄를 대속한 것은 우물에 빠져 사람을 구한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지智가 아니다. 인의예지의 실체도 없으면서 인의예지의 말만을 훔쳐 백성을 기망한 것은 신信이 아니다. 이러한 오상五常을 갖추지 못하고 개나 돼지의 마음, 승냥이나 이리의 성품을 지녔으니, 개나 돼지의 나라에서 저들을 개나 돼지로 섬긴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교설을 떠벌리면서 감히 중국을 기망하려 드는가? - 759~760쪽 -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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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식인들의 위기감이 응축되다
마테오 리치(1552~1610, 利瑪竇)가 중국에 들어와 선교를 시작한 지 약 반세기 뒤 반기독교 문서들을 모은 『성조파사집聖朝破邪集』과 『벽사집闢邪集』이 발간되었다. 『성조파사집』의 정식 명칭은 『황명성조파사집皇明聖朝破邪集』으로, 일반적으로 『성조파사집』, 혹은 더 간략히 『파사집』으로 불린다. 이 책을 처음 편찬하기 시작한 사람은 황정黃貞이었다. 당시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1582~1649)가 복건성 일대에서 상당히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유자儒者였던 황정은 알레니와 직접 담론을 나눈 뒤 숭정 8년(1635)에 『차마 아니 할 수 없는 말(不忍不言)』을 지어 천주교 사설로 인해 대중화大中華가 오랑캐의 종교와 풍습에 개변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하였다. 이어 숭정 10년(1637)에는 복건성의 문인들이 천주교를 비판한 문장을 모아 『파사집』을 엮어 절강성 천동사의 원오圓悟(1566~1642)를 찾아가 의기투합하고, 그의 제자인 통용通容(1593~1661)에게 건네주었다. 통용은 황정의 『파사집』을 받은 후 제자인 서창치徐昌治에게 부탁하여 복건성과 절강성의 ‘파사’의 문장들을 추가로 찬집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내용이 보다 풍부해진 『황명성조파사집』이 숭정 12년(1639)에 판각되어 1640년에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성조파사집』은 모두 8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남경교안南京敎案 당시 남경 예부를 중심으로 해당 관청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들로부터 시작해, 지식인들이 집정자와 백성을 향해 쏟아 낸 호소의 글들, 명유名儒와 고승高僧들이 비분강개하며 펼친 천주교 교리 및 의식에 대한 반박의 글들, 더 나아가 서구의 과학기술과 천문학 지식에 관한 변박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명실상부한 명 말 반기독교 문헌의 집결체로 중국과 서양 간 문화 충돌 시기의 역사 현장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다. 특히 천주교의 유입으로 인해 중국인의 전통 가치관이 흔들리고 유?불?도 삼교三敎가 위기에 직면하는 등 위태로운 시국에 대한 우려 가득한 통탄과 함께 천주교 교설에 대한 철학적 비판이 담겨 있어 이 시기의 대외적?대내적 정치적 고민 및 새로운 종교와 서학西學에 맞선 중국 전통 지식인의 철학적 사유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학승學僧 지욱智旭(1599~1655)은 불교적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천학초징天學初徵』과 『천학재징天學再徵』을 지어 숭정 15년(1642)에 『벽사집』이라는 이름으로 엮고, 여기에 종진지鍾振之와 제명선사際明禪師가 주고받은 서신 및 정지용程智用의 평어評語와 발어跋語를 붙여 숭정 16년(1643)에 이 책을 간행하였다. 200여 년 뒤 분큐 원년(1861)에 일본 승려 우가이 테츠죠우養?徹定가 『천학초징』과 『천학재징』에다가 반천주교 문서들을 추가로 찬집하여 『번각벽사집』을 간행하였다. 『천학초징』과 『천학재징』은 『벽사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욱은 유생儒生 종시성鍾始聲의 이름으로 이 책을 지었다. 종시성은 유가적 입장을 취한 지욱의 분신이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속세의 성에 이름을 붙여 글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가에 입문한 처지로 세속의 시비를 따지는 것이 본분에 맞지 않는다는 염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염려는 『천학초징』과 『천학재징』 뒤에 부록된 종진지와 제명선사의 서간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서간의 수신 대상인 제명선사 또한 불교적 입장을 대변하는 지욱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욱은 이처럼 1인 다역을 하면서, 자신이 ‘벽사’의 대오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심사를 드러낸 것이다. 생각이 다르므로 사설일 뿐이며, 그래서 깨뜨리려 한다 『파사집』과 『벽사집』 전반에 걸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불교계의 비판의 목소리이다. 마테오 리치는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와의 연합을 시도하였다. 당시 중국 사회의 주류 사상은 유교였고 사대부층에 있어 유교 사상은 절대적인 것이었으므로 천주교가 교세를 넓혀 가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정치적 방패막이가 되어 줄 유교와의 연합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유교와의 연합을 시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상제를 섬기는 도덕적 요구 조건이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천주실의』 등 천주교 서적들은 주로 유교 경전 원문에 근거하여 유교와 천주교 사이의 유사성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천주교의 ‘상제’ 개념과 도덕 율령이 유교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이 시기 중국의 사상은 『파사집』 곳곳에 보이듯 유?불?도 삼교가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합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중국의 불교는 이미 상당히 유교화되어 있었으며, 심학心學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성리학 또한 불교의 선적禪的 요소가 다분하였다. 일반 백성들의 의식 구조도 마찬가지여서 삼교가 어우러져 이미 중국의 종교 사상, 더 나아가 삶 전체를 영위하는 사상 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교가 서로 손을 잡는 일은 이론상?현실상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천주교가 유교에 영합하며 불교?도교를 공격하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 불교계의 지식인들은 삼교 연합, 특히 가장 큰 권위와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유교와의 협력을 통해 천주교의 공격에 맞서 반격을 시도하였다. 우선 유교의 도리를 내세워 천주교도들의 반인륜적 행위를 규탄하고, 우주와 천하 만물에 대한 평등하고 혼후한 유?불의 철학 사상을 기반으로 그들 사상의 유한성과 모순을 공격하였다. 천주교 비판의 구체적 대상은 『천주실의』였다. 『천주실의』에 실려 있는 천주, 영혼, 천당과 지옥 등의 교설이 주요 비판 대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연기성공緣起性空?인과응보?자증각오自證覺悟 등의 불교 철학이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마테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불교가 허무를 떠받드는 종교라고 비난하며, 천지만물은 모두 천주가 창조해 냈으며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허虛와 무無에 관한 천주교의 공격에 대해 원오와 주굉?宏 등은 공空과 연기緣起의 개념을 설파하며 천주교의 몰이해를 일일이 지적하고, 유가의 태극太極과 도道, 즉 본체론을 빌려 와 반론을 전개하였다. 하나님 한 분이 모든 것을 낳고 관리한다는 교리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태극과 이理라는 사상과 부딪혔고, 천주가 강생했다거나 믿음에 대한 심판으로 천당과 지옥이 나뉜다는 주장은 인과응보와 윤회설에 근거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원죄설은 누구나 깨우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각오설覺悟說로 반박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행위들, 곧 육식을 금하지 않는다거나 남녀가 허물없이 어울린다거나 하는 것들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오로지 천주에게만 제사 지내고 조상에 대한 제사를 폐하라는 주장은 충효의 문제까지 건드려 심각한 수준의 윤리적 쟁의를 낳았다. 유교와 불교에서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는 눈은 상당히 혼후하며 만물이 평등하다. 따라서 인격체로서의 상제를 설정하여 상제와 사람 간에 그리고 사람과 동물 간에 차등을 두고, 사람에게 원죄를 강조하면서 외부의 구원을 빌라고 강요하는 종교 교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렇듯 세계를 이해하는 눈이 다른 천주교는 오랑캐의 종교이자 사설邪說일 뿐이었으며, 그런 까닭에 부모도 임금도 모르고 윤리도 강상도 없는 외교外敎가 만연하여 주?공周孔 이래의 중국 도통을 어지럽히고 유불도 삼교 정립의 판세를 뒤흔들어 유일신 천주만을 모시게 함으로써 장차 중국인들의 전통 사상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천주교와 서학에 맞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7세기 파사의 외침을 오늘에 새기다 유럽 선교사들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세계 선교가 시작된 이래 17세기 선교에 대한 선교지의 반응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는 중국의 기록들이 유일무이하다. 대표적인 기록으로 『부득이不得已』와 『부득이변不得已辯』 및 『역법부득이변曆法不得已辨』, 『파사집』과 『벽사집』, 그리고 『오문기략澳門記略』이 있는데, 이들을 통틀어 ‘명말청초 반기독교문서’라 부르고 있다. 주 내용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으로 동서 문명의 충돌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는 한편, 새 문명을 대하는 중국 측의 관용과 선교사 측의 적응 현상도 담고 있어 문명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 책 『파사집: 17세기 중국인의 기독교 비판』은 명말청초 반기독교 문서 제2권으로, 『부득이』?『부득이변』?『역법부득이변』을 엮은 제1권 『부득이: 17세기 중국의 반기독교 논쟁』이 출간된 지 5년 만에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실린 『파사집』과 『벽사집』은 우리나라에는 처음 번역 소개되는 것으로, 당시 중국 지식인들이 자기들 땅에서 자기들의 전통과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일련의 노력과 함께 그 속에 담긴 당시 중국의 정신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관청들의 공문과 고시문들을 통해 남경교안의 구체적 사실과 과정도 확인할 수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