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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01 이효석이 사랑한 거리 _하얼빈 중앙대가|유수민 02 ‘치욕’의 삼궤구고두례를 연습하다 _자금성 습례정|김민호 03 중국 속의 작은 유럽 _칭다오 팔대관|박현곤 04 쌀과 소금의 저잣거리 _양저우 동관가|김수현 05 군자는 문덕교를 건너지 않는다 _난징 진회하|이민숙 06 지옥 위에 세워진 천국 _상하이 라오마터우|정민경 07 우리 사랑해도 될까요 _항저우 뇌봉탑|김명구 08 왕희지의 붓끝 서린 풍류지 _샤오싱 난정|천대진 09 이민자의 유토피아 _푸젠 토루|이유라 10 희미한 옛 식민지의 그림자 _대만 지룽과 지우펀|민경욱 11 자소녀 이야기 _광둥 주강 삼각주|이주해 12 혼혈의 땅, 아시아의 샐러드 볼 _홍콩 침사추이|임대근 13 낯선 도시에서 조선인을 만나다 _마카오 성 안토니오 성당|최형섭 14 움직이는 누각, 시대를 그리다 _후베이 황학루|이현서 15 무협은 살아 있다 _숭산 소림사|김명신 16 석벽에 새긴 욕망 _뤄양 용문석굴|전주현 17 수은이 흐르는 지하 왕궁 _시안 진시황릉|송정화 18 전쟁의 포화 속에 불꽃처럼 _충칭 산성보도|이윤희 19 지친 시인을 품은 풍요의 땅 _청두 두보초당|송진영 20 당나라 공주, 티베트의 여신이 되다 _라싸 조캉사원|이연희 21 기약 없는 구도의 길 _둔황 양관|정광훈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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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조선인에게 하얼빈을 포함한 만주의 도시들은 일제의 계획 아래 관광지로 소비되었다. 만주는 조선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특히 인기 있었다. 이광수, 이태준, 함대훈, 김관 등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만주를 관광한 후 글을 남겼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함대훈은 ‘모데른’ 카페에서 여급에게 러시아어로 차를 주문한 뒤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했고, 음악평론가 김관은 ‘하르빈에서 볼 수 있는 숭가리(쑹화 강) 빙상의 세례제’를 ‘세계의 명물’로 꼽았다. 동시대 작가 이효석에게 하얼빈은 다소 다른 맥락에서 특별한 도시였다. 향토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사실 구라파(유럽)를 동경한 ‘모던 보이’였다. 그는 ‘백계 로인(러시아인)들의 생활에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이 흥미는 쌓이고 쌓여’ 1939년 여름과 1940년 초에 하얼빈을 두 차례 방문한다.
--- 「01 이효석이 사랑한 거리」 중에서 정오가 되면 빡빡머리 소년이 “꽃이요, 꽃! 재스민 꽃을 팝니다!”라고 외쳐대면서 꽃과 향수를 팔러 다닌다. 기녀들은 주렴을 걷고서 앞다투어 꽃과 향수를 산 뒤 자신을 꾸민다. 그러고는 잠시 뒤 백옥 같은 기녀들이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옷을 걸치고, 머리에 재스민 꽃을 꽂은 채 모습을 드러낸다. 기녀들의 진한 화장 내음과 재스민 향이 강남공원으로 퍼지면 응시생의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시험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과거 시험장의 열악한 환경,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 생각으로 응시생들은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다. 그런데 진회하의 아름다운 풍광과 꽃같이 아름다운 기녀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니, 어찌 문덕교를 건너 진회하의 기루로 달려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또한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온 응시생이 어찌 쉽게 이 다리를 건널 수 있겠는가! ‘군자는 다리를 건너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면 군자가 아니다’라는 말에서 이러저러지도 못하는 응시생들의 당혹감이 엿보인다. 문덕교는 응시생들의 마지막 이성의 끈이자 욕망의 경계를 넘어가는 지표였다. --- 「05 군자는 문덕교를 건너지 않는다」 중에서 객가를 생각하면 ‘변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들은 고향을 등지고 중원에서 변방으로 거주지를 바꿨고, 한족이지만 더 이상 한족으로 불리지 않으면서 객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나아가 중국을 떠나 화교라는 이름으로 활동 무대를 확장했다. 중국에는 많은 민족이 있지만 변화라는 단어가 이만큼 어울리는 민족이 또 있을까. 그들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정주할 수 없고 이주해야만 했던 환경 때문일 것이다. 유교적 예교 문화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동 수단이 지금처럼 편리하지 않아 한평생을 태어난 곳에서만 살다 가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시대에 감히 고향을 버리고 오랑캐의 땅으로 옮겨가 살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이단이나 혁명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주어진 가치와 고정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을 바꿔가는 것, 그것은 노마드적 정신에 가닿는다. --- 「09 이민자의 유토피아」 중에서 광둥의 여인들이 자주적으로 삶을 결정하면서 비혼을 선언하게 된 데는 자본주의의 발달이라는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일찍이 당나라 때부터 바다를 통한 대외무역의 거점지로 자리잡아온 광둥의 도시들은 명말 청초에 이르러 내륙 지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를 싹틔우기 시작했다. 이와 보무를 맞추어 여성들에게도 돈 벌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바로 주강 삼각주 일대의 양잠업의 발달이었다. 비옥한 땅과 고온 다습한 날씨는 여인들이 뽕나무를 키우고 누에를 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했다. 옛날 궁궐에서 왕비들이 친잠례를 올려 누에 치고 비단 생산하는 일이 여인들의 영역임을 천명했듯, 예로부터 양잠업은 여인들의 몫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끊임없이 격동하던 땅 광둥에서, 누에 치고 비단 짜서 경제력을 얻은 여인들은 이제 또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 「11 자소녀 이야기」 중에서 평생 궁핍함과 번민으로 심신이 지쳤던 시인은 풍요롭고 여유로운 금관성, 청두의 품속에서는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두보가 한적·담백·우아한 시를 이곳에서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청두의 자연과 기질, 인문 환경에서 기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물아일체의 경지를 노래한 생태 시인이 되었고, 소박한 삶과 자연 친화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청두인의 생활 태도를 잘 반영한 인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출신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소중한 가치를 공유한 시인을 우리로 받아들이는 청두의 넉넉한 포용력 덕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19 지친 시인을 품은 풍요의 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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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승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대에서 현대로 종횡무진 생생한 역사와 문화 속으로 중국 소설 전공자들이 다시 뭉쳤다. 이번 주제는 ‘중국의 명승’으로 정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단순한 여행안내서나 정보 위주의, 어찌 보면 너무나 흔한 콘셉트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시각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중국의 도시와 명소, 유적지 등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후 집필진과 지역을 확정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글쓰기 작업에 돌입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하는 즐거움 속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맛보여줄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듯 이 책은 문장을 다듬고, 자료를 선별하고, 함께 공유하는 2년에 가까운 과정을 거친 뒤에야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1989년 창설되어 중국 서사문학과 관련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면서 학술지 발간, 대중 강연, 저술 활동 등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한국중국소설학회의 연구자 21명이다. 국내의 대학 강단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들은 이 책에서 다양한 시각과 문체로 중국의 어제와 오늘, 그 장대한 역사와 문화를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보여준다. 대륙의 동북쪽 끝인 하얼빈에서 시작하는 이 책의 여정은 서북쪽의 둔황에서 끝이 난다. 지금의 중국을 지탱하는 동남 연안의 여러 도시를 거친 후,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스치듯 중원을 지나 서북쪽 길로 빠져나가면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문화와 삶의 모습이 반영된 그 지역 특유의 면면을 포착하여 담아낸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삶,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그곳을 찾아가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간절한 염원이 담긴 발자취를 따라 중국 대륙은 거대한 교류와 소통의 장이었다. 철도가 놓이면서 작은 어촌에서 국제도시로 부상한 하얼빈과 맥주로 유명한 칭다오에는 러시아와 유럽풍의 건축물이 도시의 주요 경관으로 자리잡았고 바다를 통해 서양의 문물과 사상이 들어오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하고 국제화한 대도시 상하이, 관광과 쇼핑의 천국 홍콩, 포르투갈의 조차지가 되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 마카오, 실크로드의 관문 둔황 등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성장했는데 이들 도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은 풍파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또한 삼궤구고두례를 연습하던 자금성 습례정, 대운하의 기착지인 양저우의 저잣거리 동관가, 과거 시험의 희비가 교차했던 난징 강남공원,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품은 항저우 뇌봉탑, 변방에서 이주해온 객가족의 집이자 요새인 푸젠 토루 등은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이 외에도 비혼을 선언한 자소녀들, 당나라 최고의 시인 이백이 붓을 내던진 황학루, 정통 무협의 상징이 된 소림사, 천하 제패의 야망이 새겨진 용문석굴, 영원을 꿈꾸며 지어진 진시황릉, 피난민의 삶을 상징했던 산성보도, 느림과 소박함이 느껴지는 두보초당, 티베트 불교의 본산지가 된 조캉사원 등의 이야기에서는 궁핍과 전쟁으로 인해 고단한 삶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헛되고 가없는 욕망의 흔적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모던 보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도시부터 비열한 착취의 현장까지 “이곳에 들어서면, 웬일인지 올 곳에 왔다는 느낌이 난단 말야.” 이 책에는 우리 역사와 연관된 이야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조선시대에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며 치른, 흔히 ‘치욕의 의식’으로 알려져 있는 삼궤구고두례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이 의식은 한족의 의례에서 유래한 정중한 인사법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매년 정기적으로 청나라를 방문한 조선 사신들은 고두례를 치욕적으로 받아들였고, 황제를 알현하기 전에 자금성 습례정에서 행해진 예행연습에 불성실한 태도로 임했다고 한다. 당시 청나라는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는데, 이 습례정은 각국의 사신들이 함께했던 교류의 현장이었다. 그에 관한 기록과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가 당시의 세계정세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출발점인 ‘하얼빈’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1930년대 조선인에게 하얼빈과 만주는 학생들과 문인 및 예술가들에게 인기 관광지였다. 특히 ?메밀꽃 필 무렵?으로 알려져 있는 동시대 작가 이효석에게 하얼빈은 각별한 도시였다. 그는 러시아인들의 생활에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1939년 여름과 1940년 초에 하얼빈을 두 차례 방문했다. 구라파를 동경한 ‘모던 보이’에게 활력이 넘치는 하얼빈 거리는 매력적이었지만, 한편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하얼빈은 어떤 도시로 그려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대만의 지룽과 지우펀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비극의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다롄으로 압송되었다. 또한 많은 한인이 돈을 벌기 위해 천직에 종사했고 여성들은 반감금 상태에서 일본인과 소수의 대만인을 고객으로 맞이했다. 그 뒤 일본이 패망하면서 대만에 살던 수천 명의 한인은 지룽항에 집결하여 귀국했는데, 당시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을 오늘날의 우리는 감히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인 최초의 정착지였던 마카오에서는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왼쪽 가슴에 성경을 댄 채 오른손을 펴서 축복하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곳의 성 안토니오 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목상과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으며, 매주 한국어 미사도 올려지고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질병으로 인한 고난과 긴 타향살이를 겪고 스물다섯 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 그에 관련된 자료를 보면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감동 어린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 책은 ‘그곳’으로 떠나기 전에, ‘그곳’을 마주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길잡이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라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떤 흔적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가 전해져오는지 한 번쯤 되새겨보라. 그러면 더욱더 뜻깊고 즐거운 명승 여행이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