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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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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건대, 『곤여도설』에 실린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두 개가 이집트에 있다. 하나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왕이 건설한 것이다. 지반은 사방 1리이고 둘레는 4리이며, 계단 250층의 높이로, 매 계단은 너비가 1길 8자 5치, 높이가 2자 5치로 모두 흰색 돌로 만들었고 총 높이는 62길 5자이다. 정상에는 50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으며, 건설하는 데 매일 36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다. 또 하나는 파로스(Paros)섬의 등대로, 역시 프톨레마이오스왕이 만든 것이다. 산에다가 흰색 돌로 쌓아 만들었다. 정상에는 횃불을 설치해 밤에는 1백 리 밖까지 비추어 선박들이 항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모두 영화롭고 부귀했던 시절의 일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증명할 만한 유적이 없다고 했는데, 설마하니 지금은 모두 사라졌단 말인가?
--- 「해국도지 권33 이집트」 중에서 또한 살펴보건대, 사마르칸트(Samarkand)는 원나라 때 책봉된 번으로 파미르고원 서쪽 각국을 모두 다스리는데, 명나라 중엽에 이르러 사마르칸트는 이미 10여 개국으로 분할되어 전부 소속되지 않았다. 근래에 다시 코칸트(Kokand), 부하라(Bukhara),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바다흐샨(Badakshan), 카슈미르(Kashmir) 등과 같이 무릇 10여 개국의 이슬람국으로 변했다. 따라서 『해국문견록』에서 여전히 예전의 사마르칸트라고 통칭하는 것은 오류이다. 심지어 또한 사마르칸트를 갈단(Galdan)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오류 중 오류이다. 러시아를 서양에 국한시켜 말하고 있고, 또한 러시아가 중국과 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동북 1만 리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데도 그대로 놔둔 채 언급하지 않고 있으니, 이 모두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 「해국도지 권34 중집」 중에서 세네감비아 지역에는 9개국이 있으며, 서아프리카의 북쪽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술리마(Sulima), 서쪽으로는 바다, 남쪽으로는 감비아강, 북쪽으로는 세네갈강을 경계로 하고 있다. 동서의 거리는 7백여 리이고, 남북의 거리는 250리이며, 크고 작은 나라 9개국이 있다. 또한 원주민은 카요르족, 풀라니족(Fulani), 말링케족(Malinke) 세 종족이 있다. 풀라니족은 키가 크고 건장하며, 코가 납작하고 입술이 두꺼우며, 얼굴이 올리브 열매처럼 생겼다. 민간에서는 무함마드의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천성이 평화를 숭상해 노약자나 병자, 그리고 타지에서 온 가난한 외부인을 두루 도와준다. 유목하며 천막생활을 한다. 말링케족은 얼굴이 검고,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며, 안부 묻기를 좋아하고 가무를 즐기며, 처첩을 많이 두었다. 처에게 허물이 있으면 시장에서 매질해 경계로 삼았다. 카요르족은 얼굴이 검고 직물을 짜서 생활하며, 기마와 궁술에 뛰어나고, 셈을 할 때 5를 10으로 했고, 문자는 없다. --- 「해국도지 권35 세네감비아 10국」 중에서 중앙아프리카 지역은 중앙에 위치하며 여러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기름진 들판이 평평하고도 드넓으며 관개용수가 무궁무진하여 전 대륙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다. 서쪽은 서아프리카, 북쪽은 사막, 동쪽은 차드호(Lake Chad)와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남쪽은 경계를 알 수 없다. 길이는 3천여 리, 너비는 1천여 리이다. 가장 큰 산은 달의 산맥(Mountains of the Moon)으로,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기까지 지세가 굴곡을 이루며 끝없이 이어져 아프리카대륙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데, 중앙아프리카는 단지 산 중앙의 한 귀퉁이에 불과할 따름이다. 산봉우리가 첩첩이 쌓여 있고 절벽이 높고 험한데, 무너진 포대 같은 것도 있고 뾰족한 탑 같은 것도 있어서 그 지세가 천차만별이다. 높은 것은 2천~3천 길에 달하며 울퉁불퉁하고 평평한 곳이 서로 뒤섞여 있고, 산속에서는 면화·조를 경작할 수 있으며, 아울러 산세를 따라 지어진 성벽이 있다. --- 「해국도지 권36 중앙아프리카 각 나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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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서 해양으로, 중심에서 여럿 중 하나로
위원이 『해국도지』를 저술하던 시기, 중국 아니 아시아와 세계는 새롭게 등장한 질서로 요동치고 있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세계의 진출로가 대륙에서 해양으로 변화하면서 세계의 판도가 바뀐 결과였다. 대항해 시대의 막대한 부와 산업혁명은 서방 국가에 강력한 힘을 선물하였고, 그들은 그 부와 힘을 통해 세계 질서를 재편하였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어 오던 중국과, 중국이 세계의 질서라고 믿어 오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세계는 그렇게 몰락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서방 제국주의 중심의 새로운 질서가 동트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질서의 변화에 지식계는 혼란에 빠졌다. “과연 갑자기 다가온 새로운 세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당대 지식인이라면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질문이었다. 위원 역시 지식인으로서 답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이 『해국도지』였던 셈이다. 위원은 임칙서로부터 『사주지』와 서양 관련 자료들을 전해 받고 『해국도지』를 편찬하였다. 『해국도지』는 당대 지식인들을 그때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위원은 『해국도지』를 저술한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저술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양의 힘을 빌려 서양을 공격하고(以夷攻夷), 서양의 힘을 빌려 서양과 화친하며(以夷款夷), 서양의 뛰어난 기술을 배워(爲師夷長技) 서양을 제압하기 위해서 저술한 것이다(以制夷而作).” 답은 언제나 이미 준비된 것으로서 존재한다.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者, 百戰不殆). 상대는 알지 못하고 자신은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상대를 알지 못하고 자신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center〉 이는 동양 사회에서는 아주 익숙한 말이다. 『순자』는 동양에서 전법의 경전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중국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에 “상대를 알” 수 없었다. 중화사상에 갇혀 자신의 병폐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자신을 알” 수조차 없었다. 반면 서양은 선교사와 상인들을 통해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따라서 위원의 답은 어떻게 보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서양을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서양을 알아야 했다. 그런데, 서양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중국은 결국 서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대처법을 알기 위해서는 한 가지 질문에 더 답해야 했다. 그 질문은 도대체 왜 “필리핀과 자와는 일본과 같은 섬나라이지만, 한쪽(필리핀과 자와)은 병합되고 한쪽(일본)은 강성함을 자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위원은 단순 서양에 관해서만 서술한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일본에 관해서도 서술하였다. 결국, 답은 언제나 이미 정해져 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였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자취를 살펴야 한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樂彼之園) 박달나무 심어져 있고(爰有樹檀)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其下維穀). 다른 산의 돌이라도(他山之石)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可以攻玉).” 이 시는 『시경』 「소아·학명」의 부분이다. 이 시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겠지만, 이 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성어를 남겼다. 바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이는 남의 하찮은 행동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또는 군자도 소인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구절이 도대체 『해국도지』와 무슨 상관인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이 타산지석이야말로, 위원이 『해국도지』를 집필한 정신 중 하나였다. 중화사상에 물들어 있던 중국에게, 중국은 군자요, 주변국은 소인과도 같았다. 그런데, 위원은 (물론 중국이 볼 때) 그 ‘소인에 불과한’ 주변국으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위원은 먼저 동남양의 국가들, 대체적으로 현재 동남아시아라고 부르는 국가들에 관해서 논하기 시작한다. 왜 위원은 하필 동남양의 국가들에 대해서 먼저 논하기 시작했을까? 앞서 말했듯이, 서양을 알고 나를 알아 서양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먼저 논해야 할 것은 서양의 국가들이 아닌가? 해국도지 4권의 「동남양서설」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이 동쪽으로 상선을 몰고 온 것은 왜인가? 연안에 이르면 연안을 빼앗고, 섬을 만나면 그 섬을 점령하여 도시와 항구를 만들고 군대를 배치하여 방비하니, 무릇 동남아시아의 중요 항구가 모두 유럽의 도시로 변해 버렸다. … 베트남, 태국, 미얀마, 일본은 서양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바다로부터의 침입을 막은, 즉 해방 사실이 있어 이 편에 기록한다. 반면 조선과 류큐는 해방 사실과 무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즉, 위원은 중국에도 서양 제국주의의 마수가 손길을 뻗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서양인들은 동남아시아를 점령하였으며,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동남양의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통해 중국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은감불원(殷鑑不遠)”이라는 말이 있지만, 위원이 볼 때 당시 중국의 상황에는 그보다 더 가까운 거울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해국도지』 6권에서는 일본과 남태평양에 대해서 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오류도 적지 않으나, 가까운 바다의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대양해군의 필요성을 점점 자각하고 있다. 해상무역이 발달한 요즘 세상에서 바다의 정보는 곧 국가의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위원의 이러한 탐구 자세는 앞으로의 우리에게도 본받을 만한 자세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