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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이끄는 말 제2장 한나라의 옛 글씨로 돌아가자 - 캉유웨이: 서예와 미학적 전환 제3장 조선의 예술은 인류의 비극을 담는다 - 야나기 무네요시: 민예의 발견 제4장 너희는 탑의 힘참을 보았는가 - 고유섭: 한국 현대미학의 탄생 제5장 나가는 말 연보 인용서목 |
鄭世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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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때는 한국미를 ‘어른 같은 아해(아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무슨 소리인지, 누가 말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렇게 외웠다. 한술 더 뜨자면 ‘구수한 큰 맛’도 있었다. 그러나 고유섭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지금은 서산의 삼존마애불을 말할 때 ‘백제의 미소’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어른 같은 아해’는 모른다. 탑을 연구하여 백제탑, 신라탑, 통일신라탑 등을 지붕돌로 양식사적으로 구분하면서도 고유섭의 외로운 길을 모른다. 비애의 미를 넘어서 탑의 기백을 말한 그를 모른다. 나아가 감은사지를 찾고 대왕암을 바라보면서도 이견대에 올라 그의 한글 시를 읽지 않는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한문 시 틈에 살포시 자리 잡고 있는 고유섭의 시가 왜 거기 붙어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머리말」중에서 참으로 어렵다. 빨라도 안 되고, 느려도 안 된다. 멈출 때 멈출 줄 모르고 빠르기만 해도 안 되고, 느려터져 뭉기고 있어서도 안 된다. 「서보」는 머무름을 ‘엄류淹留’라는 전문용어로 말한다. 엄류는 충분히 붓을 담가 머무름을 가리킨다. 따라서 빨리 쓸 줄 아는 사람이 머무르는 것이다. 빠름도 날카로우면서 힘이 있게 나감을 뜻하기 위해 ‘경속勁速’이나 ‘경질勁疾’이라는 표현을 쓴다. ‘신속迅速’이라는 표현도 쓰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빠르다고 해서 (굳센) 힘이 빠지면 안 됨을 가리킨다. 종자기가 죽자 백야는 다시는 금을 타지 않았다.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글씨도 잘 썼지만 거문고도 잘 타던 채옹은 아궁이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오동나무 소리를 찾아내고, 말의 얼굴만 보아도 명마를 찾아내는 손양은 마구간에 엎드린 명마를 찾아낸다. 그들의 감식안은 틀린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손과정은 글씨와 그것에 대한 평가에 수준이 있음을 전제한다. 글씨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인격과 미적 경지에 따라 나뉜다. ---「제2장 한나라의 옛 글씨로 돌아가자」중에서 이것이 블레이크가 목도한 영국 산업혁명 당시의 현실이다. 그는 자선 학교가 없어야 더 좋은 사회임을 잘 알고 있었다. 노자의 말처럼 인의仁義가 사라지니 인의라는 윤리가 생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난과 불행이 동정심과 자비심을 낳는다고 읊는다. 문제의 핵심은 자선charity이 아니라 인간을 상품화시키는 산업사회다. 블레이크가 말하듯 “새에게는 둥지가, 거미에게는 거미줄이, 사람에게는 우정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제3장 조선의 예술은 인류의 비극을 담는다」중에서 “엄밀히 일본의 국보에서 조선의 작품, 또는 그 유풍을 전한 것을 빼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이런 일은 저 탁월한 아스카의 황금시대를 일본사에서 말살하는 일이 아닌가. 일본 예술은 조선의 미로 인하여 꾸며진 것이다. 만일 저 현명한 쇼도쿠 태자가 조선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일본은 자랑해야 할 국보의 몇백 개를 잃었을 것이다” ---「제3장 조선의 예술은 인류의 비극을 담는다」중에서 물이 출렁거리고 거울이 흔들리면 제대로 비춰볼 수 없다.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야 만물이 나를 통해 자신을 비춘다. 고유섭이 말하는 것은 이러한 적조이다. 그 적조함은 적료함과는 거리가 멀다. 적조미는 적료의 지양이자 극복에서 나온다. 아무리 적료해도 그것을 예술화시키면 아름다움이 나온다. 적료에서 나오는 애통은 예술화를 거쳐 명랑함으로 승화한다. 어지러운 다채에서는 그런 고요함을 찾을 수 없다. 다채는 격정이고 분노이자 욕망이다. 단채로 돌아왔을 때 그것은 만물을 비추는 고요함을 찾는다. 그것은 문자적인 개념성을 넘어 육체와 혈액에 흐르는 생명의 신비를 드러낸다. 사상이 아름다운가? 아니다. 생명이 아름답다. 불교의 적료는 단순히 애통에 머물지만, 조선의 예술은 그것을 예술화하여 명랑에까지 이른다. ---「제4장 너희는 탑의 힘참을 보았는가」중에서 『노자』는 쉽게 말해 어둠의 철학이다. 어둠은 미추뿐만 아니라 피아조차 나누지 않는다. 어둠이야말로 세상의 본원적 모습이다. 빛은 잠깐의 비춰짐일 뿐이다. 우주가 밝은가? 아니다. 우주는 검다. 그래서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天地玄黃’고 천자문 첫 구절은 말한다. 검은 것이 먼저다. 밝음은 나중이다. 검고도 검으니 세상의 참맛이 드러난다. 참맛은 참멋이다. 멋은 아름다움이다. 고유섭이 이 구절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자신의 호로 삼았을까 생각해보자. 그의 어법이 노자와 매우 닮았다는 것은 노자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느낀다.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은 노자의 어법과 똑같다. ---「제4장 너희는 탑의 힘참을 보았는가」중에서 혹여 적조미와 농담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고유섭의 농조가 희비를 뛰어넘는 그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채플린이 말했듯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우리의 삶은 가까이 확대해 보면 슬프지만 멀리서 관조하면 웃긴다. 적조寂照는 ‘적막寂寞하게 관조觀照함’을 가리킨다. 침소봉대해서 아프지 않을 것이 없듯이 크게 보아 웃기지 않을 것이 없다. 아픔 앞에서의 웃음, 슬픔 앞에서의 웃음, 죽음 앞에서의 웃음 같이 어렵지만 웃을 수 있고, 웃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엄마, 나 안 아파’, ‘아빠, 나 괜찮아’, ‘아들아, 나 이제 떠난다’라고 힘들지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미가 그런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고유섭이 이런 부정을 통해 긍정을 한 것은 다름 아닌 ‘피’다. 위에서 생명이라고 말한 바로 그것이다. 피 끓는 고유섭은 같은 피가 흐르는 조선을 사랑했고 그 피로 이루어진 전통과 예술이 살아 숨쉬기를 바랐다. 벌떡벌떡 가슴을 뛰게 하는 붉은 피의 신비, 그것을 그는 ‘생명적 내오內奧’라고 불렀던 것이다. 바로 그 생명의 내적 오묘함이 조선의 예술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4장 너희는 탑의 힘참을 보았는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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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학을 정초한 고유섭
오래전에 KBS에서 〈한국의 미〉라는 다큐멘터리를 시리즈로 방영한 적이 있다. 설악산이나 섬진강과 같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풍경이나 경주 불국사나 안동의 도산서원과 같은 문화유산을 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미는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한민족이 가진 정서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거기에는 우리의 미에 대한 철학, 미학이 미약했다. 학창 시절에는 한국미를 ‘어른 같은 아해(아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무슨 소리인지, 누가 말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렇게 배웠다. 서산의 삼존마애불을 말할 때 ‘백제의 미소’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구수한 큰 맛'이라는 말을 처음 한 고유섭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미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서양에서 유래된 것이기에, 우리나라에서 미학이 정립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미학의 정립을 시도한 자가 바로 고유섭이다. 고유섭은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여 서양철학사를 공부하였고,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어 서양미술사에도 심취했다. 서양의 철학과 미술에 대한 관심은 곧바로 우리의 미술로 이어지고, 한국적인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탑에까지 시선이 닿게 된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우리의 탑에서 찾은 덕이다. 한국의 현대미학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캉유웨이와 야나기 무네요시, 고유섭 캉유웨이는 금석학의 영향으로 왕희지 풍의 아리따운 글씨를 넘어 한나라의 강인한 글씨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그는 중국의 새로운 미적 표준을 제시하고 싶어 했다. 글씨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역사가 바뀐다. 금석학이란 쇠와 돌에 새겨진 글을 공부하는 것을 말하는데, 캉유웨이가 표준으로 삼고 싶었던 쇠는 청동기를, 돌은 한나라와 북위의 비문이었다. 캉유웨이는 황제의 권력을 뒤에 업고 무술정변을 일으켜 청나라를 개혁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비록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길에 올랐지만, 글씨에서 중국의 고유한 힘을 찾고자 했다. 김정희의 추사체가 모범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금석문이며, 그는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를 찾아내 탁본을 중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문화는 이렇게 주고받는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문화를 사랑했던 인물이다. 그는 영국의 시인 블레이크를 좋아했다. 비록 자신의 조국인 일본은 제국주의를 주창했지만, 자신은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자유를 주장했다. 야나기는 조선의 도자기를 흠상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민속품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른바 민예란 민중예술의 준말로 이름 없는, 평민을 위한, 생활 속의 예술을 가리킨다.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야나기는 한중일 삼국의 예술적 특징으로 선, 형, 색을 꼽고 특히 한국의 미를 비애로 단정한다. 비극은 인류의 보편적 감정을 담는 예술의 형식이라는 전제 아래 주장한 것이지만 조선의 특질을 슬픔으로 본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고유섭은 우리에게 새로운 미적 표준을 제시한다. 캉유웨이가 서예를 논하면서 모범으로 삼아야 할 대상을 바꿨듯이, 고유섭은 조선 전역에 세워져 있는 탑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고는 통일신라시대의 탑을 통해 야나기가 말한 ‘비애의 미’를 버리고 ‘조선의 기백’을 찾아낸다. 고유섭에 이르러 한국의 아름다움은 대칭이 아닌 비대칭에서 운동성을 확보한다. 이른바 ‘무기교의 기교’를 바탕으로 드러나는 비균제성(asymmetry)이야말로 한국미의 음악적 율동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생동성은 그가 말하는 ‘구수한 큰 맛’과 연결되며, 백자와 같은 단채조차 그 적막함을 ‘생명의 내적 오묘함’으로 예술화한 좋은 예가 된다. 고유섭에 이르러 한국의 현대미학은 동양 미학의 범주와는 다르게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다. 〈인물세계철학〉의 첫 번째 책 철학의 중심은 나와 우리나라다. 따라서 우리 철학자를 세계철학의 맥락에서 조망하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와서, 우리와 머물다가, 우리와 나간다. 세계는 우리에게 오고, 우리는 세계로 나간다. 인물세계철학을 기획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문제 현실 속에서 처절하고 철저하게 자기 사유를 이끌어나간 고유섭을 우리의 시각만이 아닌 세계철학의 맥락에서 읽는 것을 첫 번째 작업으로 삼았다. 우리에게도 많은 철학자와 선각자가 있었다. 우리가 잘 살피지 못했고 그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책의 시리즈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의 철학이 아닌 나의 철학을 한 스승에게 바치는 참으로 초라한 제물이다. 젊은이들에게 한국인으로 알아야 할 사람을 알리고, 그래서 선각자들의 얼을 오늘에 잇게끔 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