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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다섯시 급행열차/ 제2장 다른 세상에서 온 소녀 / 제3장 스벤티츠키 집에서의 크리스마스 축제 / 제4장 피할 수 없는 운명 / 제5장 과거와의 이별 / 제6장 모스크바의 야영지 / 제7장 여행길 / 제8장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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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is Leonidovich Paster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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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호텔방의 어둠 속에 그림자처럼 당신이 나타났을 때, 소년이었던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당신에게 끌리는 그 힘에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깨닫게 되었소. 그 연약하고 가냘픈 소녀는 전기처럼, 세상의 여성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가득 충전되어 있다는 것을.”
“굴욕의 심연에 도전한 여인이여! 나는 그대의 싸움터였소.”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한번 생각해봐요! 우리가 바로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억겁의 시간 속에서 딱 한 번, 전대미문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지요. 생각해 보세요. 모든 러시아가 지붕이 날아가고, 모든 인민들과 함께 우리 모두는 드넓게 펼쳐진 벌판에 서 있는 겁니다. 아무도 우리 뒤를 감시할 사람이 없어요. 자유! 진짜 자유입니다! “삶과 작별하는 데, 이별 전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 시간을 쓰기로 합시다. 우리에게 소중했던 모든 것들과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생각들과 우리들이 꿈꾸었던 삶과 양심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들과 작별합시다. 희망과도 작별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서로 작별합시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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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으로 더욱 빛나는
러시아 혁명기 한 지식인의 삶과 사랑 “전쟁과 혁명의 격랑 속에서도 우리들 삶과 사랑은 결코, 희생될 수 없다.” 시베리아 툰드라 숲을 뒤흔드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처럼 『닥터 지바고 』에는 ‘러시아 혁명’과 ‘격정적인 사랑’이 비장하게 흐른다. 작가는 1,2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내전, 혁명을 온몸으로 겪으며, 러시안인의 피에 흐르는 격정, 우울, 사랑, 혁명 등을 도도한 강물처럼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닥터 지바고』로 인해 지은이를 소설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러시아 서정시인이다. 『닥터 지바고』는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1958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동시대 서정시와 러시아 서사문학의 위대한 전통 계승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이 처음 출간된 곳은 이탈리아이다. 소비에트 출판계가 출판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책이 출간되고, 그 이듬해(1958년)에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소련 정부와 작가동맹은 작가에게 극심한 비난과 비평을 쏟아붓고, 결국 작가는 정치적인 이유로 수상을 포기한다. 작가동맹은 그를 제명하고 정부는 그의 시민권을 박탈한다. 그 뒤에 작가는 번역으로 생계를 이으며 병마와 싸우다가 2년 뒤에 세상을 뜬다. 『닥터 지바고』는 보통 소설로 이해되지만, 작품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문학적 특성과 형식은 이 작품을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 어렵게 만든다. 시적 어조가 자주 등장하는 부분은 소설이 아닌 ‘서사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심오한 철학 비평서처럼 인간 존재와 삶,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참혹한 러시아 혁명기의 중요 사건들, 혁명에 유폐된 비극적 지식인의 무력한 모습들, 걷잡을 수 없는 사랑 등, 그야말로 시대를 아우르는 세기의 총서라고 볼 수 있다. 예술 활동이 제약받고 자유로운 창작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파스테르나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관통하는 맥은 하나다. 이념이 아닌 인간 존재 자체의 가치를 되찾고, 주장과 구호 대신 소박한 일상을 누리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것, 이것이 지바고가, 파스테르나크가 추구하는 진실이다. 혁명 속이라도 일상의 삶과 사랑은 어떤 이유로도 유예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라라와 유리의 거침없는 사랑으로 읽든, 혁명기의 러시아 역사로 읽든, 철학서로, 서사시로 읽든 그것은 독자의 선택이고, 어느 선택도 맞다. 편집자의 말 “‘라라’를 미워했던 기억.” 십대에 오독한 책들이 있습니다. 『폭풍의 언덕』의 히드클리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 등, 주인공들이 너무 집요하거나 광기어리거나 능글맞으면 딱, 눈밖에 났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에게 공감하기보다는 거리를 두며, 버텨 읽었지요. ‘라라’도 그랬습니다. 미웠습니다. 한 가정을 파탄내고 끝까지 지바고 곁을 맴도는 게 정말이지 싫었지요. 유리(지바고)의 아내(토냐)를 응원하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사실은 유리(지바고)에게 문제가 더 많았는데요. 지금은… 이해합니다. 공감합니다. 그녀의 야성적인 본능과 매혹, 양심 사이의 갈등, 누가 그녀를 미워할 수 있을까요. 유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의 심장을 가진 이가 라라에게 닿는 거센 물줄기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러시아의 내전과 혁명, 명멸하는 혁명가들, 방황하는 지식인들 또한 새롭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저는 이 소설을 ‘라라와 유리’의 사랑으로 읽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비창’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