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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5시 급행열차
제2부 다른 세계에서 온 소녀 제3부 스벤찌쯔끼 집의 크리스마스 파티 제4부 무르익은 불가피성 제5부 옛것과의 결별 제6부 모스끄바의 숙영지 제7부 여로 |
Boris Leonidovich Paster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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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걸으며 「영원한 기억」을 노래하고 있었다. 행렬이 멈추면 발이, 말이, 바람의 숨결이 추도의 노래를 이어받아 부르는 것 같았다.
--- p.9 아무것도 두려워하실 것 없어요. 죽음은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 영역이 아니에요. --- p.117 계획된 총성은 그녀의 영혼 속에서 이미 탕 하고 울렸다. 누구를 겨눈 것인지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 총성만이 그녀가 의식하고 있던 유일한 것이었다. 그녀는 길을 가는 내내 그 총성을 들었다. 그것은 꼬마롭스끼를, 그녀 자신을, 자신의 운명을, 그리고 두쁠랸까 숲속의, 몸통에 표적이 새겨진 참나무를 겨눈 총탄이었다. --- pp.130~131 문득 이 모든 날을 통틀어 처음으로 유리 안드레예비치는 그가 어디에 있고,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한두시간 뒤에 무엇이 그를 맞이할 것인지를 아주 분명하게 이해했다. 변화와 불확실성과 이동으로 점철된 삼년, 전쟁, 혁명, 소요, 총격, 파멸의 광경, 죽음의 광경, 폭파된 다리, 파괴, 화재.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내용을 상실한 거대하고 텅 빈 장소로 변했다. 오랜 중단 이후 최초의 진정한 사건은, 아직 무사히 세상에 있으며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소중한 집으로, 이렇게 현기증 나는 기차를 타고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에게 가는 것,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 존재의 복원, 그것이 바로 삶이고, 체험이며,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좇는 것이고, 예술이 겨냥하는 것이었다. --- pp.266~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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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사랑과 죽음을 넘어서는 구원의 서사
『의사 지바고』를 수식하는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격랑 속에서 피어난 지바고와 라라의 운명적 사랑’일 것이다. 실제로 작품의 두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는 그 어떤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그런 서로를 제 몸처럼 믿고 사랑한다. 이들에게는 공간적, 시간적 이별은 물론 생사 여부조차 장애가 되지 않는다. 현실 생활의 규범과 풍습을 넘어 인간의 자유를 갈구하는 영혼의 동반자인 것이다. 그러나 『의사 지바고』가 이토록 아름다운 영혼을 타고난 두 사람이 피워낸 사랑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바고는 인간을 억압하는 전제정치와 자본주의의 폭거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난 혁명에 열광한다. 자신의 출신 계급이 그 타도의 대상임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그 미래를 사랑”하고 “남몰래 자랑스러워” 한다. 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1권 299면) 그러나 그 혁명의 끝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참혹한 현실을 호도하는 공허한 구호와 여전한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체제의 억압뿐이다. 그러한 고난과 환멸을 견뎌내기 위해 지바고가 붙드는 것은 예술과 노동이다. 감자 한알, 땔감 한더미를 얻는 것이 더없는 걱정거리인 일상을 꾸려가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충실한 노동 속에서 그는 삶 자체를 발견하고, 그 발견은 곧 시작(詩作)이라는 구원으로 이어진다. 『의사 지바고』는 어린 지바고가 참석했던 어머니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해 친구들이 지바고의 유고 시집을 뒤적이며 어스름에 잠긴 모스끄바를 내려다보는 에필로그에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자신의 근원이 소멸한 자리에서 시작해 자신의 생명이 다한 뒤 결실처럼 남은 문학에서 끝나는 이 서사는 지바고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에 실린 「유리 지바고의 시」는 지바고가 남긴 시 25편을 통해 ‘고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비로소’ 해방되는 자유와 인간이 지닌 사랑과 창조의 힘에 대한 믿음을 품었던 지바고의 예술관을 생생히 드러내 보인다. “마지막 말이자 온 세상을 향해 건네는 가장 중요한 말”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는 『구름 속의 쌍둥이』 등 러시아 낭만주의를 계승한 시집들을 펴내며 1920년대에 이미 시인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자신의 작가적 과업을 장편서사에 두었다.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삶의 철학을 대중 독자와 공유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은 그를 『의사 지바고』의 집필로 이끌었다. 작가는 이 역작을 놓고 1905년과 1917년의 혁명, 그리고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체제라는 격변의 시대를 거쳐야 했던 동시대인에게 들려주고자 한 “마지막 말이자 온 세상을 향해 건네는 가장 중요한 말”(2권 484면)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격랑 가운데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과 자신의 삶이 어긋나 파멸할 것임을 예견하면서도 자유로운 인간 삶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은 지바고의 일대기를 통해 작가가 건네고자 했던 바로 그 말을 역자는 이렇게 요약한다. “삶은 축복인 동시에 소명이다. 살아야 한다.”(2권 508면) 작품해설에서 『의사 지바고』에서 삶의 찬미는 삶의 아름다움이 열리는 순간을 시화하고 노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은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이 열리고 생명의 기운이 분출되는 순간을 품고 있기에 축복이지만, 결국 인간은 죽는다. (…) 그렇기에 삶에 축복의 순간이 깃들어 있다 한들 결국 삶은 허망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빠스쩨르나끄는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음을 말한다. (…) 지바고가 남긴 시를 통해 그들의 삶은 지속된다. 죽음을 극복하는 삶의 지속에 대한 믿음이 삶에 대한 예찬을 굳건히 한다. (…) 그렇게 「유리 지바고의 시」뿐만 아니라 『의사 지바고』 전체가 죽음을 이기는 삶에 관한 낙관적인 믿음으로 끝난다. 삶은 축복인 동시에 소명이다. 살아야 한다. - 최종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