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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퇴를레스의 혼란
작품해설 / 불확정성의 세계와 동거하는 법 작가연보 발간사 |
Robert Mu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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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앞서 걷는 친구가 흙먼지 위에 방금 새겨놓은 발자국의 흔적을 한걸음 한걸음 밟아나갔다―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전 생애를 이 같은 하나의 선, 먼지 속에 그어지고 있는 가느다란 한줄기 선 위의 이러한 움직임―한걸음 한걸음―속에 사로잡아 압착시키는 돌덩이 같은 강제로서 말이다.
--- p.23 결국 라이팅이 내놓은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그는 당분간 바지니를 감독하기로, 말하자면 피후견인 상태로 두고 그가 거기에서 다시 벗어날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이제부터 그의 수입 지출 내역은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다른 친구들의 교제는 세 사람의 허락을 받게 될 터였다. --- p.79 그의 내면에서는 부모가 의도했던 것과는 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 그들이 일러준 단순한 관점과 반대로, 그에게는 바지니가 저지른 과오의 문제점과 의문점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는 머리를 저으며 이 문제를 좀더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혼잣말을 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대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 p.86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보던 풍경화들 가운데 하나 앞에서 느닷없이 “아, 아름다워요”라고 외쳤던 일―그리고 아버지가 기뻐하시자 당황했던 일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끔찍하게 슬퍼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를 괴롭혔던 것은 말의 무력함이었으며, 말이란 단지 느낀 것에 대한 우연한 도피처에 불과하다는 어렴풋한 의식이었다. --- p.108 “네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라고 시킬 수도 있어―어떤 건진 너도 알겠지―그러면 넌 신음소리를 내며 말하는 거야. ‘오 사랑하는 엄……’” 하지만 퇴를레스는 이런 식으로 모독하는 일을 갑자기 멈췄다. “하지만 난 그렇게 안해, 안한다구. 알겠어?” --- p.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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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퇴를레스가 부모님을 떠나, 최상류층 가문의 자제들을 사회의 중추적 일원이 될 관리자로 양성하는 데 주된 목표를 둔 W. 기숙학교로 출발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모님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삶의 과도기를 맞이하게 된 퇴를레스는 꽃을 피웠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첫 겨울을 나는 어린 나무처럼 빈곤하고 황량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 고민 없이 동물적이고 강렬한 애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부모는 편지에서 아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 결국 퇴를레스는 버팀목이 되어줄 만한 새로운 사람을 찾아 귀족가문 출신인 H. 제후의 아들과 교제하지만, 작은 논쟁으로 관계가 깨지고 만다.
이후 한층 공허해진 그는 같은 학년의 문제아 바이네베르크, 라이팅과 친분을 쌓으며 여자를 만나러 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동급생 바지니가 친구의 돈을 훔치는 일이 발생하고, 이를 눈치챈 바이네베르크와 라이팅은 그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점차 가학적인 요구를 한다. 퇴를레스는 이들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진리라 믿던 것에 대한 집착을 넘어 자신만의 시각을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 끝에 동급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할 뻔한 바지니를 자백으로 이끌어 구해낸다. 이 사건으로 바지니와 퇴를레스는 학교에서 쫓겨나지만, 퇴를레스는 단단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기숙학교를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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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닦은 오성에 갇힌 인형
이 소설은 오성이 가진 한계와 폭력적 양상을 비판하는 내용이 큰 줄기를 이룬다. 퇴를레스가 미래의 관료를 길러내는 기숙학교에서 배우는 ‘중요한 경험’들은 오성적 판단에 힘입은 진리라 믿는 것에 대한 편협한 집착, 경계 너머의 존재를 거부하는 태도, 그리고 규칙과 질서만을 고수하는 모습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갈고닦은 오성”을 향한 맹목적 믿음은 한가지 정황이나 대상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차이를 용납하지 않으며 비극을 불러온다. 작가는 친구 바지니가 저지른 잘못을 무조건적으로 벌하는 바이네베르크와 라이팅이라는 괴물을 그리며 오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빠져 ‘인형’으로 전락한 인간상을 고발한다. 분열되는 오성이라는 세계 퇴를레스의 혼란은 유일하고 확고부동한 것으로 여기던 오성이라는 세계가 분열하는 상황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소설 초반부의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길 바깥인지 불분명하다는 묘사에서부터 시작되며, 종국에는 퇴를레스가 인물과 배경에 대한 구별을 점점 어려워하는 지점에까지 다다른다. 퇴를레스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며 “두조각으로 완전히 분열”되면서 바지니처럼 자신의 “존재에도 균열이 생기는 게 아닐까” 두려워한다. 이처럼 “인과론적이라 믿었던 세상의 빈틈”을 보여주는 여러 요소가 등장하며 주인공은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결국 이런 빈틈은 단순한 결여가 아니라 세상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라는 점이 드러난다. 즉 퇴를레스는 ‘오성의 엄격한 경계’는 세계를 파악하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고, 그 경계를 구분하는 것 또한 인위적이라는 사실을 수학의 연산 과정을 통해 깨닫는다. “정말 기이한 점은, 그런 허수나 그외의 불가능한 값을 가지고도 아주 실제적인 계산을 할 수 있고, 결론적으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생겨난다는 점이야!”(124면) 아라베스크적 시각을 통한 새로운 사고 퇴를레스가 바이네베르크, 라이팅과 어울리면서도 이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예술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퇴를레스는 언어, 건축물, 수학, 그리고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데, 특히 ‘잘 정돈된 혼돈과 이 모순의 매혹적인 균형’을 보이는 아라베스크 장식을 통해 자신의 혼란이 사실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단순한 이분구조로 평가하려 했던 스스로의 기준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게 된다. 결국 선생님들 앞에서 자신이 깨달은 다층적 시각에 대해 말하는 그의 통쾌한 모습은 건강하고 독립된 자아를 형성해가는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작가의 메시지일 것이다. “저는 이제 알고 있어요. 사물은 사물이고 영원히 그렇게 머물러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런데 아마도 전 그것들을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볼 것입니다. 때로는 오성의 눈으로, 때로는 다른 눈으로. 그리고 저는 더이상 그것을 서로 비교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243면) 옮긴이의 말 무질이 살던 20세기 전후는 바야흐로 과학의 전성시대라 할 만한 시대였다. 정신분석학에 의한 무의식의 점령, 속도기계들로 인한 시간과 공간의 점령, 무엇보다 기초학문으로서 수학이 갖는 위상이 한껏 고조된 시기였던 것이다.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에는 이런 인식이 과연 한없이 믿을 수 있는 최종심급인가 하는 의심이 심각하게 표명되고 있다. - 정현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