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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스토옙스키를 보다
기일혜
크리스챤서적 202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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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일혜 수필집

책소개

목차

1부 푸른 김치 한 사발과 냉커피
2부 다시 렘브란트를 보다
3부 작가 이모님
4부 세 아가씨의 창덕궁 구경

저자 소개 1

1941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 1959년 광주사범학교 졸업 1977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어떤 통곡」, 「소리」가 추천 완료되어 등단 1986년 창작소설집 『약 닳이는 여인』 펴냄 1994년부터 2023년까지 50권의 수필집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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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75쪽 | 134*208*20mm
ISBN13
9788947803823

책 속으로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나는 친구와 연서 님 만나러 가면서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을 설레면서 꺼내 입는다. 내 옷 중에서 제일로 아름다운 그 원피스 입고 남편에게 보여 드려야지 하고, 기다린다. 남편도 외출이라 그런지 세면실에서 좀체 안 나온다.나오자, 기다리고 섰던 내가 말한다.
“내 옷 좀 봐줘요. 어때요?” 남편은 대답 대신 갑자기 큰 소리로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나는 그 의미를 알기에, 그만 자지러지게 웃는다. 내가 자지러지게 웃는 걸 설명하려면 얘기를 좀 해야 한다. 오래 전에 들었던 얘기라고, 남편이 얼마 전에 내게 들려주었다.

나이 많은 어느 할머니가 외출했다 돌아오는데, 동네 트럭에서 생선(갈치) 파는 아저씨가 이렇게 외친다.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그 소리를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로 잘못 알아듣고 흐뭇하게 집에 들어온 할머니. 그는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 보면서 포즈를 취해 본다. ‘내 몸매가 아직도 처녀 같나?’ 들어오자마자 한동안 거울 앞에 서 있는 시어머니가 이상한 며느리가 왜 그러시냐고 묻자 할머니가 대답한다. “…아직도 내가 처녀 몸매 같으냐? 아까 오는데 생선 파는 아저씨가 나보고 ‘처녀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하더라…?”

그날 저녁 아내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들은 남편, 할머니 아들이 다음날 퇴근해서 귀가하는데, 동네 어귀에서 트럭을 대놓고 생선 파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는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외치면서 손님을 부르고 있다. 아들은 아, 어머니가 이 ‘갈치가 천 원!’을 ‘같이 가 처녀!’ 로 잘못 알아들었구나. 아들과 며느리의 의문이 풀린다.

남편은 내 옷차림이 어떠냐는 물음에 처녀 같다는 말을, 갑자기 ‘갈치가 천 원!…’ 하면서 나를 웃긴다. 그런데 남편의 말을 더 새겨들으면 ‘당신 모습이 처녀 같다’는 말도 될 수 있고, ‘여보 착각하지 마! 당신 나이 82세야’ 경고도 은근히 들어 있는 것 아닐까?… 어쨌든 나는 그날 외출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남편이 한 말, ‘갈치가 천 원!’을 생각하면서 혼자 얼굴을 감싸고 오래 웃었다.내 옷 좀 봐 달라는 철없는 아내 말에 대한, 남편의 명 대답이 아닌가.

흰 싸락눈 내린 것 같이 환상적인

그날, 수지 친구는 주말농장에서 남편이 농사지은 감자를 쪄서 내놓는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감자가 아니다. 무슨 눈의 나라에서 온 하얀 요정들, 커다랗게 흰 꽃송이다. 찐 감자 속살이 하얗게 터져서 마치 흰 감자 살 위에 하얀 싸락눈이 내려 쌓인 듯. 내가 처음엔 바라만 보다가… 허기가 졌는지 그 감자를 두 개나 먹었다. 참으로 무자비한 식탐가가 아닌가.

내 앞에 싸락눈 꽃송이같이 똑 같은 크기의 탁구공만한 감자가 10개쯤 놓여 있으니 그지없이 눈부시다. 친구가 갑자기 예술가처럼 보여서 이걸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으니 대답한다.
“이것… 감자를 껍질 벗겨 쪄서, 다시 설탕과 소금을 넣고 막 굴려, 굴려! 감자가 막 부딪히면서 이렇게 돼.”
“아아 감자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면서, 이렇게 살이 터지면서 뽀얗게 되는구나… 감자도 아픈 관계에서 아름다워지는구나, 사람같이…”

골짜기의 모난 돌도 물길 따라 굴러 흐르면서 그 모가 깎여 부드러워지듯이. 감자도 그렇구나… 그렇게 살이 터지게 부딪히고 굴러야, 싸락눈 내린 것처럼 뽀얀 살을 드러내면서 보암직하게 아름다워지는구나… 친구는 재주도 많다. 사물의 원리나 이치를 잘 아는 친구.

그는 사물의 원리나 이치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원리도 잘 알고 있다. 상대의 인성을 꿰뚫어보는 영성! 그가 몇 십 년 만에 내게 전화할 때,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사니?…’ 하면서 한참 동안 쏟아내던 울음을 나는 간직하고 있다. 그 ‘신령하고 진정스런 울음’ 가끔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그 울음 앞에 내 교만한 무릎이 꿇어지면서, 그를 존경한다.

오늘 아침, 구름의 향연을 보셨나요?

아침에 하늘을 본다. 온 하늘에 꽉 찬 구름이다. 은보라색 자개구름이 이리도 꽉 찬 하늘은 처음 본다. 내겐 처음이 많다. 내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지니까, 똑같은 사물도 새롭게 느껴져서 그럴까? 구름의 향연은 한 5분간 계속되더니 점점 아침 해가 솟아 오름에 따라 흩어진다. 나중엔 자잘한 흰 구름 덩이가 식혜에 밥알이 동동 떠 있는 듯, 하다가 사라진다. 이런 날은 외출 안 할 수가 없다. 오늘 새벽에 연서 님 독후감도 보았다. 아직도 어떤 독후감은 나를 끓어오르게 한다. 내 책에 대한 독후감은 독자가 내 영혼에게 하는 말이라 내가 뜨거워지나 보다. 하늘에 꽉 찬 은보라색 자개구름처럼, 나도 오늘은 잔치하고 싶다. ‘그 친구’를 만나고 싶다. 그 사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은옥색 맑은 하늘… 내 환상과 신비를 알아주는 그 친구 만나러 간다. 나만 너무 행복한 것 같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마음 인사하면서.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기일혜 수필집 속의 이야기들은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따뜻하고 서정적이다. 과연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일까 싶게 한 편 한 편의 에피소드가 갖고 있는 진정성, 그 힘에 새삼 진한 감동과 여운을 갖게 된다. 기일혜 작가의 49권의 수필집은 1994년부터 2023년까지 29년간 발표된 작품집이다. 기일혜 작가의 수필 안에는 작은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빛을 발한다. 수필을 읽다 보면 고운 질감의 조각보를 만져보는 듯, 추억 속의 한 장의 사진 같은 편안한 시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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