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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뷰 7
닉 콘웰의 후기 279 |
John Le Carre,본명:데이비드 존 무어 콘웰 David John Moore Corn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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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계단 아래 제일 어두운 곳으로 유아차를 밀고 가, 유아차 아래 손을 넣어 크고 평범한 봉투를 꺼내 스튜어트 앞에 섰다. 스튜어트의 애매한 미소를 보니 문득 기숙학교 생각이 났다. 고해성사를 담당하는 늙은 신부. 릴리는 그 학교도 신부도 싫어했다. 그래서 스튜어트도 싫어하기로 했다.
“다 읽을 때까지 여기 앉아 기다릴게요.” 릴리가 말했다. “오, 그래요.” 스튜어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경 너머 릴리를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뭘 기다리시게?” “답신이 있으면 구두로라도 엄마한테 전해야 해요. 전화나 문자, 이메일을 싫어하시거든요. 첩보국이든 프록터 씨든,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그것도 유감이로군.” 스튜어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제야 손에 든 봉투를 깨닫기라도 한 듯 깡마른 손가락으로 찔러보았다. “대단하군. 편지가 몇 장이나 될 것 같소?” “저도 몰라요.” “가정용 문구인가? 아냐, 아냐, 가정용이 이렇게 클 리가 없잖아. 그냥 평범한 타자지겠어.” 그가 다시 찔러보며 중얼거렸다. “저도 내용물은 못 봤어요. 말씀드린 대로.” “아, 물론, 그렇게 말씀하셨지. 에…….” 그의 코믹한 미소에 릴리도 잠시 긴장을 놓고 말았다. “아무튼 일은 해야겠지? 다 읽으려면 시간이 좀 길어질 듯싶은데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소?” 현관 맞은편에 있는 썰렁한 응접실. 릴리와 마리는 흉측한 격자무늬 팔걸이의자에 마주 앉았다. 조악한 유리테이블 위에 놓인 양철쟁반에는 커피를 담은 보온병과 초콜릿비스킷이 있었다. 릴리는 둘 다 사양했다. “그래, 어머니는 어때요?” 마리가 물었다. “그럭저럭요. 죽어가는 사람치고는. 고맙습니다.” --- pp.9~10 “저 미답의 공간을 뭔가 새롭고도 매혹적이면서 독창적인 곳으로 바꾸어 이 마을 교양인, 준교양인 모두의 화젯거리가 되고자 한다면.” “한다면?” “중고서적 코너도, 마구잡이식 서고도 아닌, 우리 시대, 아니 어느 시대에든 가장 도전적인 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정선한 책들의 전당이어야 하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왔다가 보다 충만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오. 왜 웃는 거지?” 불과 얼마 전, 서적상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후에야 그 직업에도 나름의 기술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친구라면, 아무도 몰래 기술과 지식을 익힐 수 있다. 다만 그러는 사이에도 겉으로는 내내 자신의 자질을 사람들에게 과시해 보여야 한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줄리언은 노인의 아이디어 자체를 믿기 시작했다. 다만 그 사실을 아직 에드워드에게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 pp.36~37 에드워드는 내킬 때마다 나타났다. 때로는 며칠에 한 번, 때로는 몇 주에 한 번. 그리고 의자에 앉아 카탈로그와 거래장들을 검토했다. 그가 목표를 찍어주면 두 사람은 진을 마시며, 실리아가 전화를 걸고 거래를 이끌었다. 그러면 매달,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실리아에게 봉투가 들어왔다. 돈은 세어보지도 않았다. 그만큼 둘 사이에 신뢰가 깊었다. 에드워드가 멀리 출장을 가면(종종 그랬다오), 등기우편으로 봉투가 배달되었는데, 그대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그립다느니 하는 바보 같은 연서도 들어 있었다. 테디는 늘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었다. 젊었을 때 여자깨나 울렸을 거유. 실리아가 말했다. “무슨 일로 출장을 갔죠, 실리아?” “국제 업무였지. 교육 같은 일 있잖우? 에드워드는 지식인이니까.” 실리아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다시 한숨. 조심스레 옷깃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행여 실수로 괜한 정보를 흘리지 않았나 걱정하는 듯했다. 아무튼 천국에서의 10년 얘기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 p.65 “그래, 당신이 땅개들을 찾아 떠났으니 우리의 대장 탐지견은 누구이신가? 설마 캠프를 비워둔 것은 아니겠지?” 그 말에 스튜어트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첩보국의 현 전투 지시를 자세히 까발릴 위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조앤은 계속 스튜어트를 노려보고 필립은 채프먼의 귀를 어루만졌다. “조금 더 신중을 기한다면, 우리가 두 분께 듣고자 하는 사례사의 당사자가 항의한다 해도, 우리 이익을 위해 그에게 경고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말씀드리면, 따로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와의 접촉은 모두 금지되죠. 이해하셨죠?” 스튜어트가 보다 공식적인 말투로 경고했다. --- p.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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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 스타일의 러브 스토리. 이보다 훌륭한 이별은 없다.”
- 이다혜(『아무튼, 스릴러』 작가) 줄리언 론즐리는 일찍 물려받은 유산 덕분에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던 런던의 젊은 고소득자였다. 안락한 생활에 젖어 들 무렵 더 단조로운 생활을 영위하고픈 이상을 좇아 돌연 이스트앵글리아에 작은 서점을 연다. 마을의 풍광만큼이나 손님 하나 없는 그야말로 그가 원하던 고요한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던 어느 해 질 무렵,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신사가 서점에 들어와 이것저것 묻는다. 그저 참견하기 좋아하는 노인네겠거니 싶었는데 그는 돌연 줄리언 부친의 실명을 대며 서로 같은 학교에 다닌 친구였음을 밝히고는 줄리언이 드러내기 싫었던 부친의 최후까지 언급하며 그의 마음을 들쑤셔놓는다. 자신을 에드워드 에이번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지금 하는 일이 뭔지 알려진 바 없으나 도시 끄트머리에 있는 ‘실버뷰’라는 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다. 에드워드는 줄리언에게 서점 지하에 비어있는 공간을 ‘문학 공화국’으로 만들어가자고 제안하는데, 처음에는 단골손님 다루듯 예의상 호응하던 줄리언이 어느 샌가부터 그곳을 공화국에 걸맞게 꾸미기 시작한다. 에드워드의 실체에 관한 궁금증이 줄리언의 경계심을 묶어두는 한편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교차하면서 줄리언은 알게 모르게 에드워드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순간 날아든 에드워드의 부탁이자 비밀 임무를 수행하며, 줄리언은 점차 에드워드의 가족과도 안면을 튼다. 겉보기엔 사소한 갈등이 부유하는 여느 가족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실버뷰 사람들의 이야기는 에드워드 아내의 장례식에 맞춰 벌어지는 어떤 선택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이 빈틈없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의 실체는 스파이다. 저마다 임무가 다르긴 하나 누가 같은 편인지는 끝까지 가야 알 수 있다. 에드워드가 이중생활을 해왔다는 조직의 판단에 따라 그를 생포하기 위한 일대 작전이 이뤄진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진상을 파악하는 순간, 결말의 행방은 대중 사이에 숨어든 요원처럼 다른 여권을 든 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 소설이야말로 온전히 르 카레다” 마거릿 애트우드, 스티븐 킹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작가들이 추앙하는 대작가가 혼신의 필력으로 완성한 이야기, 그런데 그의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면. 책의 말미에 닉 콘웰이 완성된 채 남겨진 원고를 마무리한 사연을 밝힌다. … 아버지가 내게 무조건 약속하라 말씀하시기에 나는 알겠다고 했다. 당신이 죽은 후 책상에 미완성 이야기가 있으면 나보고 마무리해달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싫다고 하겠는가? 작가 대 작가, 아버지와 아들로서, 내가 계속하지 못하면 네가 불꽃을 살려가겠니? 당연히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렇게 콘월의 암울한 밤, 넓고 어두운 바다를 내다보며, 나는 『실버뷰』를 기억해냈다. 스파이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 때론 영화에서처럼 수려한 외모와 날쌘 행동력으로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무기를 겨누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술을 요구하기도 한다. 기실 알고 보면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에서 공격이 날아들지 모르는 순간을 침착하게 견디며 정교한 분석력으로 숨은 메시지를 찾는, 상당한 소요가 뒤따르는 임무가 허다할 텐데 조직과 조국을 향한 남다른 충성심 없이 가능할까.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내려지는 명령은, 평범함으로 위장해 ‘절대’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모를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주위에 스며드는, 이를 위해 신실한 성직자, 실적 좋은 자산관리사, 혹은 오믈렛을 잘 만드는 카페 주인도 될 수 있어야 한다. 『실버뷰』는 다른 르 카레 소설이 한 번도 하지 않은 시도를 보여준다. 세계사 이면에서 한 획을 그은 조직에 몸담으며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조차도 그의 활약상을 알 길 없던, 첩보라는 활동 면면을 드러내는 것. 음모, 배신, 태만, 외면 등 너무도 뻔한 묘사로밖에 쓸 수 없어서 첩보국조차 더는 스스로 정당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말이다. 그래서 『실버뷰』에 그려진 스파이들은 국가의 의미 나아가 첩보를 통해 증명해온 자신들의 현재 가치가 어떤지, 결국 조직이 자신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이미 알고 있다. 그간 르 카레가 발표한 소설에 비해 이번 작품이 다소 짧은 분량임에도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드러내고 싶었지만 전부 말할 순 없었던, 그렇기에 더욱 필사적으로 그려온 마지막 이야기가 우리가 사랑했던 스파이와 함께 실버뷰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을 향한 찬사 “현대 비밀 정보국의 실체에 관한 탐구. 그는 장르를 초월한 것이 아니라 정교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마지막이라 붙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설” - 뉴욕타임스 “독자들이 원하는 정교한 전개의 전형” - 월스트리트저널 “최고의 소설가. 아마도 영원히” - 더 타임 “스파이라는 조직을 통해 온갖 인간 군상들의 실체를 드러내는 오직 르 카레만 쓸 수 있는 이야기” - 워싱턴포스트 “거장이 남긴 비밀스러운 걸작” - 이브닝 스탠다드 “고요하지만 집요한 이야기” - 파이낸셜타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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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르 카레 선생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유작은 전성기 걸작에 맞먹을 정도로 값지게 느껴진다. 한국어 독자여서 다행이다. 아직도 번역 안 된 작품들이 남았으니까. 유독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스파이 세계를 다루고 있는 『실버뷰』의 마지막 챕터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남자의 이미지가 계속 뇌리에 맴돈다. 르 카레 역시 죽은 게 아니라 이 세계에서 아무도 모르게 탈출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위장 여권을 가지고 말이다. 거기 적힌 이름은 데이비드 콘웰도, 존 르 카레도 아닌 또 다른 것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위장이어도 그것은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영국 여권이리라. - 박찬욱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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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가 쓴 마지막 작품. 생전에 발표하지 않은 소설. 『실버뷰』는 스파이 소설의 거장이 남긴 작별인사다. 존 르 카레 특유의, 거미줄을 펼치듯 인물들을 풀어내고, 그들을 통해 독자가 진상에 접근해가도록 만드는 이 소설은 스파이가 한평생 충성을 다한 조직으로부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진실의 순간을 직면하게 한다. 존 르 카레 스타일의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보다 훌륭한 이별은 없다. - 이다혜 (『아무튼 스릴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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