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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제3판 펴낸이 서문 들어가는 글 1. 유년기와 청소년기(1940~1959) ─ “나는 사람들을 아주 강렬하게 느낀다” 2. 뉴욕에서 에센으로 그리고 첫 안무들(1959~1972) ─ “유일한 목적은 춤을 추고 싶다는 것이었다” 3. 부퍼탈에서 내디딘 첫걸음들(1973) ─ “나는 누구도 도발하고 싶지 않다” 4. 새로운 형식을 향한 출발(1974~1977) ─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한다” 5. 강렬한 이미지, 당혹스럽게 만드는 효과(1977~1979) ─ 탄츠테아터의 첫 표석 6. 인간관계의 시대를 초월한 미학 〈콘탁트호프〉 7. 작업 과정 ─ “나의 작업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8. 작품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 “나는 절대 앞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9. 초연과 재공연 ─ “진행 중인 작업” 10. 개인적 격변과 탄츠테아터의 고전들(1980~1986) 11. 부퍼탈과 여행 ─ “즐거움과 호기심을 가득 채우고” 12. 공동 제작의 시기(1986~1999) ─ 한 나라의 영향을 춤으로 옮긴다 13. 21세기 작품들(2000~2009) ─ 춤으로 펼치는 삶의 잔치 14. 앙상블 ─ “나는 개성에 관심이 간다” 15. 무대디자인 ─ “마치 난생처음인 것처럼 사물을 본다” 16. 의상 ─ 탄츠테아터만의 뚜렷한 스타일 17. 음악 ─ 대비로 만든 콜라주 18. 죽음, 추도식, 추모 ─ 피나 바우쉬의 정신은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19. 피나 바우쉬에게서 남은 것은? 전망 부록: 인터뷰 피나 바우쉬 ─ “나는 늘 새로운 문을 열고 싶다” 도미니크 메르시 ─ “피나는 절대 월계관 위에서 쉬지 않았어요” 조 앤 엔디콧 ─ “그녀를 생각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답니다” 장-로랑 사스포르트 ─ “그녀는 모든 것을 본답니다, 볼 수 없는 것도요” 투스넬다 메르시 ─ “아주 정확해야 - 아주 피나여야만 해요” 루츠 푀르스터 ─ “작품을 유지하는 것은 박물관 업무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입니다” 앨리스터 스폴딩 ─ “피나는 예술 여행 중에 절대 멈춰 서지 않았답니다” 주 감사의 글 피나 바우쉬 연보 작품 목록 참고 문헌 도판 출처 찾아보기 |
Marion M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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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하이너 뮐러는 피나 바우쉬가 춤으로 구현해 내는 새로움을 “어떻게 텍스트에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심한다. 자신의 예술적 수단인 텍스트로 피나 바우쉬의 예술적 성취, 즉 무대가 재현의 장에 머물지 않고 삶의 현장이 되도록 함으로써 관객에게 동경과 예감을 불어넣는 현실을 만들어 내려 애쓰는, 바로 이 절실한 동료적 시선이 전문가가 아닌 우리로서는 알아채기 어려운 피나 바우쉬 미학의 숨은 맥락들을 포착해 낸다. 이제부터는 뮐러의 「신발에 피가 혹은 자유의 수수께끼」를 찬찬히 읽어 나가면서 그가 피나 바우쉬 무대의 어떤 면모들에 주목했는지 살펴볼까 한다. 우선 에세이의 제목으로 시작해 보자면, “신발에 피가”는 그림 동화 『재투성이 아가씨Aschenputtel』의 한 구절이다. 우리에게는 ‘신데렐라’로 알려진 이 이야기에서 새엄마는 왕자가 들고 온 신이 딸에게 맞지 않자 궁전에 가면 걸을 필요 없다며 딸의 발가락을 잘라 버린다. 여기에 속은 왕자가 그 딸을 궁전으로 데려가다가 재투성이 아가씨 친엄마의 무덤 앞을 지날 때, 새들이 “신발에 피가” 묻었다고 알려 거짓을 폭로한다. 그렇다면 뮐러는 왜 이 구절을 피나 바우쉬와 연관 짓는 것일까?
---「옮긴이의 글, 11~12쪽」중에서 피나 바우쉬는 공연 연습 중에 “아름다운 것들은 뭔가 움직임과 연관되어 있다니, 희한하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춤은 그녀에게 폭넓은 개념이었다. “그것은 거의 모든 것일 수 있답니다. 특정한 의식, 특정한 내면적·신체적 태도, 매우 높은 정확성과 관련되어 있어요. 앎, 호흡, 디테일 하나하나와 말이에요. 언제나 ‘어떻게’와 관련되어 있지요. 춤인 게 너무 많아요, 완전히 반대되는 것들도요.” 그녀가 흔치 않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말이다. ---「들어가는 글, 49~50쪽」중에서 다섯 살 꼬마는 자신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모른 채 호기심 가득하게 황홀한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나는 거기에 따라갔고,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이 거기서 하는 걸 해보려고 했어요. 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우리가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등 뒤로 발을 머리에 얹어야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 한 여자가 말했어요. ‘아니, 얘는 뱀인간인 걸’.” 그 말은 분명히 어린 피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동시에 그녀를 다소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아주 바보스럽게 들리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칭찬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정말 기뻤어요. 여관집 딸내미는 늘 그저 투명인간처럼 돌아다니잖아요. 그러면 본질적으로 언제나 혼자예요. 가족생활도 없고요.”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녀가 춤추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피나 바우쉬가 이야기했듯이, “부모님은 거기에 딱히 관심을 가지신 적도 없었어요.” “하지만 나는 내가 몹시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어요. 나는 아무것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었어요. 부모님은 나를 믿었어요.” 그것이 양친이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었다고 한다. ---「1. 유년기와 청소년기, 57~58쪽」중에서 그녀에게는 무용수로서의 자기이해가 중요했다. “나는 내가 만드는 모든 것을 무용수로서 만들어요, 전부 다, 전부 다요! 그것은 내가 기꺼이 춤을 추고 싶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에게 춤은 나를 가장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형식이에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언어예요.” 이때 고전발레가 자신의 표현에 상응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분명했다. “다들 나를 발레리나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러면서 단 한 번도 편하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뾰족슈즈가 언제나 권투글러브처럼 느껴졌죠. 나는 내 발을 손처럼 자유롭게 느껴야만 합니다. 모든 걸 느낄 수 있어야만 해요.” ---「2. 뉴욕에서 에센으로 그리고 첫 안무들, 74쪽」중에서 탄츠테아터 단장으로서 참여한 첫 번째 작업은 이 안무가에게 중요한 경험이었다. “많은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고, 그러니 그게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로 향하는지, 환상이 또는 현실이 어디로 몰고 가는지 (…) 전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당연히 중요한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특정한 것들을 깨닫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녀는 예컨대 자신의 창의적인 직감을 따라야 하고 사전에 구상들로 스스로를 너무 확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다음과 같은 점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 계획된 작업 도중에 완전히 다른 것들에도 갑자기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것들은 계획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점을 점차 알게 되었지요. 계획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에 끼어들 것이냐.” ---「3. 부퍼탈에서 내디딘 첫걸음들, 83쪽」중에서 공연 연습 전에 몇몇 무용수와 언쟁이 벌어졌다. 여러 무용수가 이전의 브레히트/바일 공연 작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피나 바우쉬의 말로는 이렇다. “그러고서는 갑자기 내가 만들려던 게 아주 끔찍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은 내 폐부를 찔렀습니다. (…) 그때는 이 사람들 하고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용수 네 명과 함께 얀 미나르지크의 작은 스튜디오로 물러났고, 그런 다음에 작업을 시작했지요. (…) 그리고 그 뒤로 어느 시점엔가 그들 모두가 제 발로 다시 왔어요, 하지만 오로지 그들이 원했을 때만이었어요. 나는 작업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업을 할 때 나는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 나는 작은 무리 안에서만 감히 그렇게 했어요.” 질문이란 한 주제를 아주 조심스럽게 건드리라고 있는 거라고 한다. ---「4. 새로운 형식을 향한 출발, 97쪽」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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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피나 바우쉬 평전
“독일의 레이블, 아이콘, 마돈나”, “현대무용의 전설”, “세계 춤의 역사를 바꾼 천재 무용가” 등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르는 예술가가 있다. 살아생전 이미 신화였던 안무가, 피나 바우쉬다. 그녀는 춤·연기·노래·미술의 경계를 허문 탈 장르 양식 ‘탄츠테아터Tanztheater’를 확립해 현대무용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독일의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36년간 이끄는 동안 무용에 새로운 연극적 차원을 선사하며 변화와 혁신을 일으켰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1979년 첫 내한 공연 이후 2005년에는 ‘서울’을 소재로 한 작품〈러프 컷〉을 공개하기도 했다. 을유문화사는 2005년 국내 최초로 피나 바우쉬 평전을 출간한 바 있으며,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마리온 마이어의 책은 독일 현지에서 3판까지 출간되며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책에는 저자가 무용계 유명 인사들과 나눈 피나 바우쉬 관련 인터뷰뿐 아니라 그들이 함께 만든 작품 목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고, 100여 점의 풍성한 도판은 피나와 그녀의 무용단이 거쳐 온 위대한 순간들과 희로애락의 몸짓을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한편 피나 바우쉬의 오랜 팬이자 전작에 이어 이번 책도 번역한 이준서 교수(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가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 대한 미학적 해설을 곁들여 책에 깊이를 더했다. 이 교수는 독일 현대 연극계의 대스타이자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선구자인 하이너 뮐러가 1981년 피나 바우쉬에게 헌사한 「신발에 피가 혹은 자유의 수수께끼」라는 에세이를 분석하면서, 이 안무가의 예술적 혁신이 어떠한 의의를 지니며 그 미학적 독특성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본다. 여관집 딸이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기까지 피나 바우쉬는 1940년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졸링엔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식당이 딸린 여관을 운영했고, 삼남매 중 막내인 그녀는 부모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랐다. 어릴 적부터 여관에 드나드는 손님들을 보면서 관찰하는 법을 배웠고,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 속 우정이나 사랑, 토론 등에 매료되었다. 피나는 발레에 입문하여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냈고, 열네 살에 주니어 장학생으로 에센의 폴크방슐레(폴크방예술대학교) 무용과에 들어가, 예술의 협연이라는 학교의 이념에 따라 포괄적으로 사유하거나 무용·연극·음악을 융합하는 등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곳에서 피나 바우쉬는 현대무용의 개척자 쿠르트 요스를 만나는데 그는 훗날 그녀에게 제2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된다. 폴크방슐레에서 4년을 보낸 뒤에 당시 현대무용의 중심지였던 뉴욕의 줄리아드스쿨에 진학한 피나는 부업으로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일한 덕분에 폴 사나사르도, 도냐 퓨어와 친해지면서 뉴아메리칸발레에서 공연하며 경험을 쌓는다. 뉴욕에서의 체류 기간을 연장할 만큼 그녀는 이 도시를 좋아했지만, 1962년 에센의 초빙으로 짐을 꾸려야만 했다. 이후 폴크방슐레의 일원으로 요스의〈초록 탁자〉에서 늙은 엄마 역으로 춤을 추고, 다양한 페스티벌에서 원정 공연을 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안무 부문에서 더 많이 활약하고, 벨러 버르토크의 음악에 맞춰〈단편〉이라는 안무를 선보인다. 바로 이 시기에 그녀는 자기만의 무용언어를 개발한다. 이러한 예술적 성취 덕분에 1969년 경연대회에서〈시간의 바람 속에서〉라는 작품으로 게어하르트 보너, 요한 크레스니크, 존 노이마이어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 피나 바우쉬가 부퍼탈로 온 데에는 당시 부퍼탈러 뷔넨의 극장장이었던 아르노 뷔스텐회퍼의 역할이 컸다. 시립극장에서 일할 마음이 없었던 그녀에게 뷔스텐회퍼는 몇몇 안무를 요청했고, 그녀는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에 발레단장으로 부퍼탈러 뷔넨에 입성한다. 이후 초청공연의 성공과 페스티벌 초청 등으로 부퍼탈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피나 바우쉬는 초기 3년간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 고민한다. 1974년 발레단장으로 선보인 첫 번째 작업〈프리츠〉는 대중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지만, 비평가들에게 그녀 자신의 재능을 확실히 알렸다. 이후 선보인〈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는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그녀의 첫 번째 성공작이 된다. 그리고 무용 레뷰〈내가 너를 죽여줄게〉로 피나 바우쉬는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장르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 인간의 더 깊은 곳을 파헤치기 위한 몸짓들 피나 바우쉬의 관심은 언제나 ‘인간’에 있었다. 그녀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보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흥미를 느꼈다. 끓어오를 듯 강렬한 사랑과 욕망, 극심한 불안과 공포, 처절한 상실과 고독, 가슴을 에는 슬픔과 고뇌 등의 정념이 그녀의 작품에서 늘 환기되는 이유다. 그녀에게 춤은 움직임만이 아닌 감정도 똑같이 포함되는 보다 넓은 개념이었다. 피나는 언제나 불안, 그리움, 절망, 행복 추구, 삶의 잔혹성, 무자비한 어른들의 세계와 대조되는 유년기의 무구함 같은 핵심적이고 인간적인 주제에 천착했다. 이를 위해 인간이 어떻게 언어 부재, 착취, 굴욕, 예속성을 경험하는가를 남성과 여성의 복잡한 커플 관계를 담은 장면들 속에 압축시켰다. 또한 장면의 모든 개별적인 배경에도 에피소드들은 인간 경험의 핵심을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피나 바우쉬는 해부적인 시선으로 관계의 세계를 분석했고, 섬세한 유머를 사용했다. 사태를 놀랄 만큼 정직하고 희극적이게, 그리고 정확히 파악하여 연극적으로 압축할 줄 알았던 그녀는 결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법이 없었다. 관객이 각자 스스로 경험하기를 바랐고, 그렇게 우리는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삶과 존재에 대해 다시금 환기하게 된다. 옮긴이의 다음과 같은 평은 피나 바우쉬의 예술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녀의 무대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의 흔적들은 더 깊은 곳을 파헤치기 위한 진입로다. 예컨대 바우쉬가 끊임없이 성 대결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두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실 잘 보면, 그녀는 남성을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을뿐더러 남성만 부정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여성들 역시 남성적 폭력에 응하거나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하다. 바우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부정성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그 아래 자리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과 동경에 대한 직시이며, 그것이 어떻게 폭력성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피나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은 건재하다. 그녀의 관심사가 언제나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을 직시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가장 독창적인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출하고자 했던 피나 바우쉬의 여정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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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에게〉에 삽입된 피나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는 목가적 분위기와 고통에 찬 아름다움으로 나를 울게 만들었다. - Pedro Almodovar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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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무시킬 뿐 아니라 뒤흔들어 놓기까지 한 유일한 연극은 피나 바우쉬의 공연들, 텍스트 없는 연극이었다. - 하이너 뮐러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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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 그 자신이 무용의 한 카테고리이며, 그녀 이전에 탄츠테아터는 없었다. - 윌리엄 포사이드 (프랑크푸르트 발레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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