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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서문 1. 드레스덴 2. 자본주의리얼리즘 3. 전시회 4. 전환 5. 루디 삼촌 6. 스타일 원칙으로서 스타일 깨부수기 7. 베네치아 비엔날레 8. 관광객 9. 유노와 야누스 10. 1977년 10월 18일 11. 한발트 12. 처음으로 들여다보다 13. 비르케나우 주 도판 저작권 찾아보기 |
Dietmar 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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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그리고 초현대에 이르는 한 세기 동안 인간이 만든 온갖 이념을 경험한 이 늙은 회의론자는 특정 사조나 개념으로 이 세계를 보거나 그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모르긴 해도, 세상의 질서가 격변할 때마다 예술가의 대의와 결심이 일순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는 상황을 번번이 겪었을 것이다. “시작은 쉽지만 끝에 도달하긴 어렵다”는 걸 체득한 그에게는 ‘내가 훌륭한 작품을 그렸다’가 아니라 ‘나는 그린다’가 더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 그림도, 아름다운 이상향도, 명확한 진실도 존재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흡수해 도로 뱉어 내길 반복하며 세상을 보는 예술 공식을 만들어 냈다.
---「윤혜정 - 추천의 글」중에서 1990년대 초 리히터가 손수 창조해 낸 현재의 생활환경은 화가의 예술 작품과 사생활 사이의 관계를 건축적으로 보여 준다. 쾰른 교외의 널찍한 대지에는 독립된 두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거리를 마주하고 있는 창문 없는 스튜디오가 자연 그대로의 정원에 자리한 예술가의 집 앞에 가림막처럼 놓여 있다. 리히터는 전시 개막식과 같은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영예를 누릴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예술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생활의 익명성 속에 자신을 숨기는 것을 선호한다.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모습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오래된 전략이기도 하다. 1972년 불프 헤어초겐라트로부터 전시 카탈로그에 사용할 초상화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리히터는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일하는 청소부의 여권 사진을 대신 보냈다. ---「서문」중에서 게르하르트는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아이였다. 그녀는 게르하르트에게 자기 이상과 이루지 못한 희망을 투영했다. 니체의 저서에 열광함으로써 열다섯 살 소년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괴테와 실러를 비롯하여 다양한 고전문학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주었다. 반면에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남편을 끊임없이 비난했다. 게다가 어린 게르하르트에게 아버지는 실패자라는 식의 말을 쉴 새 없이 반복했다. ---「1. 드레스덴」중에서 드레스덴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5년 만에 미술 공부를 다시 하기로 결정한 것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경력에서 중대한 결심이었다. 사실 그는 당시 전통적 의미의 미술 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것이라면 뒤셀도르프보다 드레스덴에서 더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리히터는 개인적·예술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일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다른 여러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즉, 동독을 탈출한 후부터는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의 공동체와 이들과의 대화를 가장 그리워했다. 그의 꿈은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기대 이상으로 충족되었다. 리히터는 1960년대의 친구이자 예술적 동반자인 콘라트 루에크, 시그마르 폴케, 블링키 팔레르모 등을 모두 이곳에서 만났다. ---「2. 자본주의리얼리즘」중에서 인상주의 예술사진가들과 마찬가지로, 흐리기 기법은 더 이상 명확한 진실의 가능성을 믿을 수 없는 현실 인식에 대한 리히터의 철학적 입장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1972년 롤프 쇤과의 인터뷰에서 리히터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에 대해서는 나와 현실과의 관계보다 더 명확한 것이 없는데, 그것은 모호함과 불확실성, 덧없음과 파편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 전시회」중에서 비평가들은 리히터가 1962~1967년에 사진 이미지를 모티브로 선택한 것에 대해 “주제의 무의미함”과 “무분별한 자의성”으로 해석하곤 했다. 다양한 삶의 영역과 주제적 맥락에서 나온 이미지를 나란히 놓거나 무분별하게 배치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그 내용의 개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사진 이미지를 원형으로 하고 있다는 매체적 맥락만이 그 모든 작품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게다가 작가가 특정 주제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징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개인적 환경에서 다양한 템플릿을 선택해 찍었다는 사실은 작품의 내용에 대한 동기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하기 쉬운 소재였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1997년 말 주자네 에렌프리트는 『특성 없이Ohne Eigenschaften』라는 리히터의 초상화에 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선택의 부재, 구성의 부재, 스타일의 부재, 내용의 부재와 같은 용어가 리히터 작품의 특징이다.” 리히터는 오랫동안 그와 같이 해석되었으며, 리히터도 그림 주제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거듭 이러한 해석을 지지해 왔다. “나는 어떤 목적도, 체계도, 경향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강령도, 스타일도, 사명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기술적 문제도, 작업의 주제도, 장인적 변주도 내 관심사가 전혀 아닙니다. 나는 어떤 것도 결정 내리고 싶지 않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일관성이 없고 무관심하며 수동적입니다. 나는 제약 없고 규정적이지 않은 것,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합니다.” ---「5. 루디 삼촌」중에서 리히터는 당시 칼 안드레나 솔 르윗과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해 품었던 경외감과 자신은 결코 비슷한 작품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며 자책한 심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따라서 최초의 코르시카 모티브는 예술적 불안감에서 비롯됐지만, 미니멀아트와 개념미술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형성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처음에 이 작품들을 유행을 선도하고자 하는 예술적 열망이 없는 개인적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히터가 낭만적인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만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스스로를 설득함으로써 이러한 용기를 얻었다. “이 그림들은 미니멀아트에 반대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그 분야에서는 내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그리는 괴짜가 되겠다는 심정이었지요.” ---「6. 스타일 원칙으로서 스타일 깨부수기」중에서 이 같은 실체의 표현과 재현 사이의 상호작용은 모든 모티브에 적용될 수 있지만,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의도적으로 두 작품에 이와 같은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길쭉한 작품의 형식에 실질 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작품의 회화적 개념을 주제별로 보여 준다. 두 그림은 현실을 인식하고 지각하기 위해 회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이용하려는 리히터의 기본적인 예술적 고민을 인상적으로 반영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이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리히터의 회의론을 대변한다. 평범한 붓놀림조차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한 외형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날 때,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된다. 1960년대의 회색 사진회화에서 흐릿함은 묘사된 현실에 대한 부정확함을 의미하며, 따라서 지각 능력의 부족을 표현한다. 하지만 「획」에서는 현실에 대한 총체적 경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각 과정의 분열로 보여 준다. 그림은 분명 둘 다를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회화적 제스처의 환영주의적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색채 재료의 사실성을 관람객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두 가지 지각 가능성은 모두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리히터는 대담에서 자기 그림과 1927년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확립한 불확정성 원리를 비교했다. 하이젠베르크의 통찰에 따르면, 원자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동일한 정밀도로 측정할 수 없다. 두 기준 중 하나를 더 정확하게 정의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다른 기준을 정의하는 데에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9. 유노와 야누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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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종말’을 예견하는 시대에
끊임없이 가능성을 탐구하는 선구자의 미학을 엿보다 구순을 훌쩍 넘긴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채색과 단색, 그리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하는 동시에 미술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야말로 거장 중의 거장이다. 리히터의 업적은 무엇보다도 사진의 특성을 회화로 옮겨 와 ‘회화의 종말’을 예견하는 시대에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을 작품 속에 구현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찍거나 대중매체로부터 스크랩한 사진을 캔버스에 옮겨 흐리기 기법이나 추상적인 붓질, 기하학적 구성 등으로 ‘사진회화’라는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 낸 예가 대표적이다. 이 책에는 이렇듯 ‘사진회화’를 둘러싼 비평가들의 언급과 이에 대한 리히터의 반응들이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데, 이를 통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리히터만의 독창적 미학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평론가는 사진회화의 양식으로 완성한 리히터의 초상화에 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선택의 부재, 구성의 부재, 스타일의 부재, 내용의 부재와 같은 용어가 리히터 작품의 특징이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리히터는 다음과 같이 반응함으로써 지지를 표한다. “나는 어떤 목적도, 체계도, 경향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강령도, 스타일도, 사명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기술적 문제도, 작업의 주제도, 장인적 변주도 내 관심사가 전혀 아닙니다. 나는 어떤 것도 결정 내리고 싶지 않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일관성이 없고 무관심하며 수동적입니다. 나는 제약 없고 규정적이지 않은 것,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합니다.”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인정받은 저작 시대별로 풍성하게 엄선된 리히터의 주요 작품 이 책이 저본으로 삼은 독일어판은 현지에서 2002년에 초판, 2008년에 재판이 나온 데 이어 2018년 제3판이 나올 만큼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고 있다. 제3판에서는 저자가 정보의 오류를 수정하고 최근 몇 년간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의 발전 과정을 추가하였다. 리히터는 2000년대 들어 리버스 글라스 페인팅과 디지털 「스트립STRIP」을 통한 새로운 제작 방식을 구현함으로써 다시 한번 자신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그동안 국내 독자들은 아쉽게도 리히터의 작품을 직접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2021년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에서 열린 《4900가지 색채》전과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르하르트 리히터/ A. R. 펭크》전이 전부다. 이 책에는 리히터가 십 대 시절에 그린 「자화상」부터 1955년 동독에서 찍은 흑백사진 「목매달기」, 카탈로그 레조네 1번 작품 「탁자」, 대표적인 사진회화 「계단을 내려가는 여인」과 「우산을 든 여인」, 뒤샹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대형 회화 「엠마(계단 위의 누드)」, 나치 체제의 범죄 시스템을 개인의 운명을 통해 경험케 하는 「마리안네 이모」와 「하이데 씨」, 리히터의 영웅과도 같았던 외삼촌을 그린 「루디 삼촌」과 아버지와의 감정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개와 함께 있는 호르스트」, 컬러패널의 초창기 작품군에 속하는 「192색」, 그리고 「후벨라트 근처의 풍경」이나 「바다?풍경」 등 여러 풍경화, 제36회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해 그린 「48점의 초상」, 극적인 색채 구성의 「스태틱」, 삶과 죽음의 덧없음을 상기하는 「촛불」과 「해골」, 딸의 뒷모습을 담은 「베티」, 최근작인 「스트립」과 「비르케나우」까지 리히터의 주요 작품이 시대별로 풍성하게 엄선되어 있다. 여기에 국제갤러리 이사이자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인생, 예술』의 저자 윤혜정이 리히터의 대표작들을 처음 대면한 순간, 자비네 모리츠(리히터의 세 번째 부인)와의 짧은 만남 등 리히터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작가 특유의 예술 작품에 대한 사유를 「추천의 글」에 녹여 책에 풍요로움과 깊이를 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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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가” - 디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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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피카소”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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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는 철학적 미술가이고, 급진적 사상가이자 전통적 장인이며, 20세기 후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자 21세기 최전선의 탐험가다. 또한 경계와 절제, 의심과 대담함으로 가득한 그림광이자 시인이다.” - 로버트 스토어 (MoMA 전 수석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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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는 명실상부 미술사적 의미와 시장 장악력의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장이다. 통제와 자유, 궁핍과 풍요, 분열과 화합의 딜레마가 충돌하는 그의 작품은 따듯한 위로 이전에 정서적 긴장감과 날선 사유를 독려한다.” -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인생, 예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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