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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페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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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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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1. 1903년에 시작된 이야기
2. 르코르뷔지에, 개척자 시대
3. 전쟁 시기, 일본과 인도차이나
4. 현실 시대
5. 레저 건축물, 설비, 환경
6. 무(無)와 공허 사이

감사의 글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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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2

샤를로트 페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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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Perriand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기능적인 생활공간을 강조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20세기 초반 남성 중심의 건축·디자인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1920년 장식미술연맹학교에 입학해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1927년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 출품한 ‘지붕 아래 바(Bar sous le toit)’로 이름을 알렸다. 이를 계기로 르코르뷔지에의 작업실에 들어가고, 10년 동안 르코르뷔지에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느레와 협업하며 주로 가구 작업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일본과 베트남에서의 체류 경험이 페리앙의 자연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기능적인 생활공간을 강조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20세기 초반 남성 중심의 건축·디자인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1920년 장식미술연맹학교에 입학해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1927년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 출품한 ‘지붕 아래 바(Bar sous le toit)’로 이름을 알렸다. 이를 계기로 르코르뷔지에의 작업실에 들어가고, 10년 동안 르코르뷔지에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느레와 협업하며 주로 가구 작업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일본과 베트남에서의 체류 경험이 페리앙의 자연주의 미학과 간결한 형태 감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7~1982년 레자르크(Les Arcs) 스키 리조트 설계는 페리앙 후기 작업의 정점으로 꼽힌다. 그녀의 작업은 오늘날까지도 재조명되고 있으며, 2019년 파리 루이비통재단미술관과 2021년 런던디자인뮤지엄 등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해 현대 디자인사에서의 위상을 다시금 입증했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번역과를 졸업했다. NIA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 구축 사업, 북스인터내셔널(그림책 전문 국제NGO) 부르키나파소 그림책 지원 프로젝트, 『주미에르의 10시간 프랑스어 첫걸음』 등 프랑스 일반교양서를 번역하고 감수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리오넬 메시의 첫 공식 전기』, 『그녀가 최초였다: 세상을 바꾼 우먼 파워 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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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776쪽 | 738g | 135*195*37mm
ISBN13
9788932431581

책 속으로

열 살 때 어린이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당시 모든 어린이가 거쳤다는 맹장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학교를 빼먹을 아주 좋은 기회였다. 새하얀 병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병실은 간결했고, 창밖으로 나무가 심어진 정원이 보였다. 엄마는 내가 기운을 차리도록 오렌지 샴페인을 가져왔다. 하지만 정작 나는 집에 와서 가구나 온갖 잡동사니를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병원의 간결함이 딱 맞았다. 그때 처음으로 무의식 속에서 여백은 ‘모든 걸 담을 수 있기에 강력하다’는 걸 깨달았다.
---「1. 1903년에 시작된 이야기」중에서

어느 오후, 드로잉북을 껴안은 채 작업실의 엄숙한 분위기에 다소 위축된 나는 커다란 안경 너머로 눈빛을 읽을 수 없는 르코르뷔지에 앞에 섰다. 그의 첫 인사말은 다소 차가웠다. “용건이 뭡니까?”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는 드로잉북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쿠션에 수놓지 않아요.” 그러고는 출입문까지 안내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집 주소를 남기며 살롱 도톤에 작품을 냈다고 알려 주었다. 다시 만날 거란 기대감은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다. 누구도 내 매력이 작용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다음 날 오후, 살롱전에서 장 푸케를 만났다. 그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 네 부스에서 르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를 봤어. 함께 일하자고 할 거 같아. 편지가 오지 않을까 싶은데.”
---「2. 르코르뷔지에, 개척자의 시대」중에서

우리의 의자 연구는 몸의 자세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러나 빌라 라로슈와 빌라 처치는 건축물, 분위기, 명성과 연결되어 있어 이러한 연구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부속 재료로부터 독립적인 크롬이나 래커를 칠한 강철 튜브로 된 경량 프레임을 사용했다. ‘포퇴유 도시에 바스퀼랑(Fauteuil dossier basculant)’과 ‘셰즈 롱그(Chaise Longue)’는 탈부착이 가능한 천이나 송아지 가죽을 스프링으로 팽팽하게 당겨지도록 하고, 강철 스프링 위에 가죽, 새틴 가죽, 망아지 가죽을 씌운 쿠션을 두었다. 소파 ‘그랑 콩포르(Grand Confort)’의 래커로 칠한 강철 튜브 프레임은 ‘쿠션 바구니’라고 불렸다. 실제로 쿠션을 얹을 용도로 만들어진 부분이었다. 쿠션은 가죽이나 두꺼운 리넨 아니면 두 가지를 혼합해 씌울 수 있었다. 상상력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나는 낮에는 피에르 잔느레와, 해가 저물면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작업실에서 실물 크기의 도면을 연구했다.
---「2. 르코르뷔지에, 개척자의 시대」중에서

몽파르나스에서 행복한 아침 나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피에르와 내 앞으로 서신이 도착했다. 한 통의 서신으로 이제껏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책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피에르와 르코르뷔지에의 작업실에서 보낸 10년 동안 나는 그들의 지식, 사고방식, 삶의 방식에 깊이 젖어 들었고, 그들의 우정과 환경, 친구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여러 계획에 둘러싸여 있었다.

방해 요소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작업실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렇지만 서신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웠다. 르코르뷔지에는 피에르와 내게 말도 없이 ‘레죈 37’의 작업을 한다며 비난했다. 그건 오해였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그래야 할까?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2. 르코르뷔지에, 개척자의 시대」중에서

수출용 일상용품을 만든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수출용’이라는 말에는 모순이 있었다. 어떻게 사용법을 모른 채 물건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장인들이 형태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유럽 잡지를 뒤적인다는 것을 눈치챘었다. 한번은 옻칠한 달걀 컵을 봤는데, 일반 달걀을 담기에는 너무 크고 그렇다고 타조알을 담기에는 너무 작았다. 일본에서는 반숙 달걀을 먹지 않기에 만든 이는 달걀컵의 사용법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 토스터기에서도 같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서양의 일상생활 방식에 대한 영화를 봐야 할까? 어떻게 침대에서 잠을 자는지, 식탁 예절은 어떤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서 어떻게 먹는지, 나이프는 왜 ‘외과용’ 칼처럼 생겼는지 알려 줘야 할까? 일본에서는 손님에게 살아 있는 동물의 원래 형태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손님의 감수성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시선이 닿지 않는 부엌에서 고기를 썬다.
---「3. 전쟁 시기, 일본과 인도차이나」중에서

많은 프랑스인이 체포되었고, 그중에는 자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군 사령관이 집으로 와서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에게 줄 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시오.”

나는 그곳을 떠나서는 안 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장교 한 명과 함께 우리 집을 수색했다. 그리고 도쿄의 경찰관처럼 행동하며 위스키를 내오도록 했다. “여행 가방은?”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었다. 잠옷, 세면도구 등을 챙긴 가방을 건넸다. 그는 가방을 열며 말했다. “위스키 한 병도 같이 넣도록.” 나는 아무 말 없이 장미 한 송이를 꺾어 가방 안에 넣었다.
---「3. 전쟁 시기, 일본과 인도차이나」중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장식예술(Art decoratif)’이라는 용어를 ‘주택 설비(Equipement de l’habitation)’로, 나는 이를 ‘주거 예술(Art d’habiter)’로 대체했다. 이후 ‘주거 예술’은 1985년 파리장식미술관에 마련된 나의 개인 전시회 제목이기도 한 ‘삶의 예술(Art de vivre)’로 바뀌었다. 1950년 잡지 『기술과 건축』 머리기사에서 나는 ‘주거 예술’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주거지의 조화로움은 건축 및 도시계획과 무관할 수 없다. 설비만으로 조화로움을 구현한다고 해도 이는 헛된 일이 된다. 왜냐하면 부지, 방향, 일사량과 같은 외부 요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주거지는 물질적 재료를 구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균형을 이루고 정신을 해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태도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채울 것인가, 비울 것인가? 언뜻 보기에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질문에는 중요한 점이 담겨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백이 무(無)나 빈곤함을 의미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4. 현실 시대」중에서

참여를 수락한 첫 번째 이유는 산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메리벨에서 한 시도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로제 고디노는 스포츠와 여러 문화 활동을 연계하는 ‘통합’ 리조트를 그렸다. 혁신적인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건축, 설비, 운영, 상품화, 유지 등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모든 정보에 숙달되어야 했다. 로제 고디노는 설계 및 시행 팀 인력을 보충해 방향을 잡아 줄 것을 부탁했다.
---「5. 레저 건축물, 설비, 환경」중에서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기억의 한계까지 거슬러 올라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봤고, 나의 뇌에 저장되어 있는 옛일들이 나의 펜 아래서 되살아났다. 나의 뇌는 모든 것을 기록했고, 자연이 준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뇌가 아직도 숨기고 있는 또 다른 경이로움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실행에 옮긴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다.

---「6. 무(無)와 공허 사이」중에서

출판사 리뷰

프랑스 1세대 여성 건축가이자 실내 디자인의 선구자
샤를로트 페리앙의 삶과 예술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회고록

프랑스라고 해도 20세기 초에는 여성이 어느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하기란 쉽지 않았다. 건축계도 마찬가지였다. 1926년 장식미술연맹학교를 졸업한 샤를로트 페리앙이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작업실을 찾았다가 그로부터 “우리는 쿠션에 수놓지 않아요!”라는 모진 말을 들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만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컸던 시대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재능을 뒤늦게 알아본 르코르뷔지에는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그녀가 참여한 살롱 도톤 전시회를 찾았고, 이때를 기점으로 페리앙은 10년간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고정관념은 이름만큼 생명력이 질기다. 21세기가 되어도 이 여성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도시설계자의 명성은 함께 일했던 르코르뷔지에에 비해 그 주목도가 덜한 측면이 있었다. 르코르뷔지에가 모더니즘 건축의 이념과 철학을 제시했다면, 페리앙은 그것을 실제 생활에 맞게 구체화한 실질적인 디자이너이자 선구자로서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다. 불과 몇 년 전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는 페리앙 서거 20주년 회고전이 대대적으로 열리는 등 오늘날에도 페리앙의 제자리를 찾는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디자이너 가구에 대한 인기와 더불어 그 이름이 활발히 회자되고 있으나 그녀의 삶과 예술 세계를 살펴볼 만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본서는 국내에 처음 출간되는 페리앙의 회고록으로, 전문적인 직업인으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여성으로서의 행보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차가운 모더니즘에 다정한 시선을 더하다
위대한 고전 작품 ‘LC 시리즈’의 진짜 주역

오늘날 컬렉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모더니즘의 가장 상징적인 가구 ‘그랑 콩포르’, ‘셰즈 롱그’, ‘포퇴유 도시에 바스퀼랑’ 등은 샤를로트 페리앙과 피에르 잔느레, 그리고 르코르뷔지에가 함께 만들었지만,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머리글자를 따서 ‘LC 시리즈’로 오랫동안 불려 왔다. 페리앙이 사거한 지 20년도 더 지난 2022년에야 ‘포퇴유 그랑 콩포르(Fauteuil Grand Confort, 대형 안락의자)’라는 명칭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LC 시리즈’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이 세 사람은 20세기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의 큰 그림을, 잔느레는 구조적이고 실용적인 부분을, 그리고 페리앙은 가구 디자인과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과 가구의 유기적 결합을 이끌었다. 이러한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LC 시리즈’ 제작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페리앙일 확률이 높다는 의견이 최근 우세해지고 있다. 이 책에서도 페리앙이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제작한 의자들을 두 사람에게 보여 주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샤를로트 페리앙이 활동한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이념의 대립, 신생독립국가의 탄생 등 역사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특히 전후 유럽은 폐허 속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의지와 비전이 절실히 필요했다. 모더니즘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고자 했다. 본서에 추천의 글을 쓴 공간디자이너 문지윤은 그러나 “모더니즘이 때로는 차갑고 획일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것과 달리, 샤를로트의 디자인은 그 안에 인간에 대한 깊은 사려와 다정한 시선이 담겨 있다”고 평한다. 페리앙은 디자인과 건축이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이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여겼다. 일례로 르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프로젝트에서 주방을 담당한 페리앙은 주부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거실과 완전히 통합된 ‘주방 겸 바’를 만들었다. 덕분에 주부들은 복도 끝에서 “잡일을 하는 하녀”처럼 밀려나지 않았고, 공간의 조화로움을 온전히 누렸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름

샤를로트 페리앙은 이번 회고록에서 자신이 태어난 1903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97년까지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생에 대한 모든 것을 솔직하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뿐 아니라 장 프루베, 루시우 코스타, 페르낭 레제, 파블로 피카소, 야나기 무네요시, 야나기 소리 등 20세기를 수놓은 거장들의 활동이 저자의 펜 끝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까닭에,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예술가들의 존재가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생전 그녀는 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단순히 예쁜 것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는지 표현하고 행동해야 해.” 이러한 신념과 철학은 그녀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과 가구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이름이 새로운 세기에 재조명되고 회자되는 이유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샤를로트 페리앙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추천평

“예술, 디자인, 건축을 훌륭하게 결합한 선견지명 있는 창작자” - 르 몽드
“샤를로트 페리앙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모던한 감각의 목재 가구에 유기적 감성을 불어넣었다.” - 아키텍추럴 다이제스트
“톱니 모양의 스키 리조트부터 혁신적인 리클라이너까지 그의 대담한 창작품들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최고 걸작 중 일부는 르코르뷔지에의 공로로 돌아갔다. LC 시리즈의 진짜 주역은 페리앙이다.” - 가디언
“샤를로트를 서술하는 많은 단어 중에 하나가 개척가다. 나는 이 책에서 당시 시대상과 그와 결부된 여성상에 대한 그녀의 실망이나 좌절은 읽지 못했다. 그녀 자신이 지형 자체이자 지도며, 스스로가 나침반이 되어 나아가는 삶의 주인으로, 사회를 사유하며 동료와 연대하고, 그러면서도 발아래 돌과 나뭇가지를 지나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 문지윤 (공간디자이너(뷰로 드 끌로디아),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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