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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슈퍼문이 뜨던 밤 2. 캐나다 시절 3. 햇볕 내리쬐는 삶을 향해 4. 건축가 되기 5. 권위와 씨름하기 6. 유럽의 발견 7. 로스앤젤레스에서 다시 시작하기 8. 홀로서기 9. 모서리 깎아 내기 10. 샌타모니카 주택 11. 물고기 모양, 다양한 모양 12. 세계 무대로 13.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첫 번째 시도 14. 구겐하임과 빌바오 15.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두 번째 시도 16. 뉴욕: 시련과 승리 17. 80대에 접어든 게리 18. 테크놀로지가 남긴 것 19.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서 루이뷔통까지 20. 기록물과 유산 21. 파리에서 과거를 살피고 미래를 내다보기 감사의 말 주석 도판 출처 참고 문헌 찾아보기 |
Paul Goldb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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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데에 따른 일종의 곤란함은 게리가 그저 ‘브랜드’로 소비되고 마는 것이었다. 게리는 분명 ‘브랜드’였지만, 건축가로서 작업을 이어 가길 원했다. 그에게 건축가로서 일한다는 건 단순히 건물 설계를 계속해 나간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처럼 창의적 작업을 계속한다는 의미고, 자신의 유명 빌딩을 공식처럼 활용해 여기저기 복사하려는 수많은 유혹에 저항한다는 뜻이었다. 게리는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실패보다 성공에 대처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는 이전 작품을 반복하기를 원치 않았다.
--- p.29 빅터 그루엔의 제안을 거절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게리는 더는 다른 사람과 일하기 싫었다. 평생 건축가로 살 거라면, 최소한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랐다. 게리는 여러 프로젝트 중 가장 의미 있는 것만 골라서 작업할 수 있는 사치는 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어쨌건 월세를 내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면 적어도 무엇을 할지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다. 게리는 타인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에 질려 버렸다. --- p.206 “우리는 행동하고 기회를 취하는 것에 대해 말할 뿐입니다.” 이는 게리가 앞으로 평생 입버릇처럼 말하게 될 이야기다. 게리가 말했다. “선생님은 수업에서 모든 갈등을 없애려 하셨어요. 다루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갈등을 겪어 보는 것이야말로 도시 설계 과정에 진정으로 개입하는 겁니다. 그저 예쁜 물체를 만들고 치우는 건 우리가 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 p.298 정작 그는 형태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건축물은 언제나 인간의 행위, 기능적 쓸모, 장소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건축적 형태의 경계를 넓혀 더 많은 예술의 영역을 포섭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을 위해 건축을 저버리려는 것은 아니었다. 게리는 실제 세계에 실제적 목적을 지닌 실제 건물을 짓는 것을 원했기에, 자신을 건축가가 아니라 예술가로 보는 시선이 가장 괴로웠다. --- p.302 게리의 여정은 언제나 데이터보다 직관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게리의 작업에서 디지털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축물은 테크놀로지가 탄생시킨 것이 아니었다. 게리에게 테크놀로지는 목적이 아니라 머릿속 아이디어를 세상에 실제로 세워 보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게리 작업의 시작점은 언제나 게리의 머릿속이다. 앞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공간과 모양을 만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상상력 말이다. --- p.815 “건물을 만들기 시작할 때면 저조차도 제가 어디로 향할지 모릅니다. 만약 알았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무렴요.” --- p.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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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보다 성공에 대처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자기 복제와 브랜드를 뛰어넘는 길을 걷다 1969년, 하루짜리 심포지엄을 위한 스튜디오를 개조하던 프랭크 게리는 빠듯한 예산에 맞춰 골판지를 사용한 의자를 만들어 냈다. 나무만큼 단단하면서도 유연성이 높은, 동시에 아름다운 종이 가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이지 에지Easy Edges’라 이름 붙은 이 판지 가구는 대중의 호의를 얻으며 흥행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프랭크 게리는 자신이 건축가가 아닌 가구 디자이너로 기억되는 일을 염려해 손해를 감수하고 모든 사업을 철수해 버렸다.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만한 기회 앞에서 번번이 등을 돌려 버리는 게리의 본능은 건축가로서의 자아를 지키려는 갈망에서 기인했다. 게리는 자신이 창의적인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되어 버리는 운명을 늘 두려워했다. 특히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후로 더욱더 그러했다. 게리는 분명 브랜드였지만 건축가로서 작업을 이어 가길 원했다. 단순히 건물 설계를 해 나간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처럼 창의적 작업을 계속하고, 자신의 유명한 작품을 공식처럼 활용해 여기저기 복사하려는 수많은 유혹에 저항한다는 의미였다. 반복하는 대신 완전히 새로운 건축 형태를 구상하는 용기로, 게리는 성공 가도 앞에서 등을 돌리며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건축을 넘어 예술로 화가 빌리 알 벵스턴은 “게리는 현대 세계에서 가장 선구적인 예술가”라 평했다. 예술가 기질을 타고난 프랭크 게리는 젊은 시절 건축가 동료들보다 로스앤젤레스의 예술가들과 더 편하게 어울렸다. 건축계의 아웃사이더로 예술가 공동체 주변을 맴돌던 그는 늘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리는 직관적인 태도의 예술가들에게 흥미를 느꼈고 아트 신에서 큰 에너지를 얻었다. 그는 예술의 기술을 사용하여 건축적 목적을 수행하는 식으로, 주류 건축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관을 완성해 나갔다. 그의 건축물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극적이고 재기발랄한 게리의 작품에는 그가 진지한 설계자가 아니며 그의 건물은 비이성적인 창작물이라는 비난과 편견이 따라다녔지만, 게리는 이를 정면으로 인지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다른 누구보다 한 발 앞서 건축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도입했고, 직관에서 비롯한 그의 상상력이 테크놀로지에 더해질 때면 전에 없던 새로운 방법과 공간이 탄생했다. 이는 건축을 넘어서는 건축, 곧 예술을 짓는 과정이었다. “건축은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준다.” 프랭크 게리에게 있어 건축은 그저 예뻐 보이고 과시만 하는 건물을 지어 올리는 일이 아닌, 삶이라는 드라마에 어울리는 아름답고도 이로운 배경을 더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인류와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건축가에게 주어지는 프리츠커상 수상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인다. 시장에서 사온 잉어를 관찰하기 좋아했던 소년이 마침내 한 분야의 거장이 되기까지 그 생생한 이야기가 지금 펼쳐진다. “어떤 소설보다 마음을 잡아끄는 매혹적인 이야기. 혁명적인 건축가의 삶과 현대 건축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준다. 건축가와 예술과 건축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유익할 것이다.” - [워싱턴 포스트 북 리뷰] “골드버거는 모더니즘과 그에 영향을 미친 로스앤젤레스 예술계에 관한 날카로운 논의를 통해 프랭크 게리의 작품에 맥락을 부여하고, 자신이 지닌 영리하고 흥미로운 통찰을 펼쳐 보인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프랭크 게리의 커리어와 그의 매우 복잡한 성격에 관한 자세한 정보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는 책”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