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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두가 가장 자신 있는 일은 산을 오르는 일이었다. 절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산꼭대기로 올라가면 동쪽 하늘에선 초승달 모습을 한 빨간 해가 떠올랐다. 그 해가 점점 커져서 시뻘건 동이만 해지면 봉두는 바위 위로 올라가서 가슴을 쫙 펴고 햇빛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몸 가득히 햇빛을 채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릇에 물을 채우는 일과 똑같았다. 가슴을 펴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 발가락서부터 햇빛이 차오르기 시작해서 정강이까지, 허리까지, 가슴까지 그리고 목과 정수리까지 차올랐다. 그것은 물이 차오르는 그릇을 보는 것과 거의 같은 일이었다. 봉두는 정수리까지 햇빛이 차올랐다고 느껴지면 숨 쉬는 일을 멈추고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해는 언제나 새 해였다.
--- p.30 생명은 우주의 근원과 같아서 영원불멸하며 죽음은 실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영원불멸한 그것을 가리켜 생명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낮에 하늘을 쳐다보며 별이 떠 있다고 말하지 않음과 같다.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별이 있음을 느끼는 것은 깜깜한 하늘 위에 푸른빛으로 모습을 나타냈을 때이다. 생명도 마찬가지다. 모습을 나타내고 실체를 보여줬을 때만 그것이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그리움의 대상은 엄격히 말해서 육신이다. 보고 싶음의 대상도 육신이고 사랑하고 싶음의 대상도 육신이다. 육신만이 함께 있음을 증명해준다. 그것만이 인간의 이야기이고 그리고 진실이다. 육신은 실제가 아니며 죽음 또한 실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그것은 인간의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 p.182 스님은 6개월에 한 번 정도 그 골목에 나타났고, 자신을 환영하는 여자들한테 팬티, 브래지어, 화장품 등속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는 그는 마치 브래지어, 팬티, 화장품을 구해오기 위해 6개월 동안 어디에 갔다 오는 사람 같았다. 스님한테서 브래지어, 팬티를 받은 여자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애인한테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고, 스님 주위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스님은 그런 여자들한테 둘러싸여서 주로 옛날얘기를 해줬는데 그것은 대개 인과 법칙을 설명한 불교 설화들이었다. --- p.194 그녀의 두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할머니 이마 위로 떨어졌다. 이 씨는 자신의 이마 위로 떨어지는 손녀딸의 뜨거운 눈물을 의식하면서 송강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결속, 아픈 결속. 92살의 할머니와 19살의 손녀딸은 한씨 가문이라는 지붕 밑에서 아프게 묶여 있었고, 두 사람은 아픈 결속을 확인하면서 서로 이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호지 문 위로 석양빛이 밝게 비쳤고, 밝은 창호지 문 위로 대나무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 집 안은 여전히 깊은 정적 속에 싸여 있었다. --- p.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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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바라는 3,000년에 한 번 피어난다는 전설의 꽃으로 석가여래나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전륜성왕과 함께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남지심 작가의 소설 『우담바라』는 1990년 제1부 「도다가의 종」을 시작으로 제4부 「황금 전당」이 완간된 후 600만 부를 넘는 베스트셀러로 우리 출판계에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출간 35주년을 맞아 다시 출간한 소설 『우담바라』는 제4부의 구성을 새롭게 했다.
불교문학을 대표하는 남지심 작가는 『우담바라』 전4권을 통해 욕망의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는 중생계에서 구도의 길을 찾아 나선 수행자와 고달픈 세속의 인연을 이어가면서도 끝없는 자비행과 보살행을 실천해 가는 인물들을 생생하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삶의 가장 밑바닥으로 향했던 구도자의 뜨겁고 자애로운 모습, 끝없는 욕망 앞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보통 사람들, 더 나은 삶을 위해 자기 수행을 쉬지 않는, 깨어있는 인물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무명을 떨치고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고단한 현대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명상을 하거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체험 여행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찾고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렇다면 평상심을 잃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며 이웃과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은 자리이타행에 있지 않을까. 분주한 저녁 시간, 뉴스 한 부분을 통해 전해지는 작지만 의롭고 따스한 선행을 보며 우리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은 각자의 가슴속에 작지만 선행을 위한 자비와 선의의 씨앗이 심겨있기 때문이다. ‘인간 내면에는 오욕칠정의 늪과 함께 평화와 고요·청정함이 있다. 앞의 부분이 인간군상의 영역이라면 뒤의 부분은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인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남지심 작가는 진리를 추구해 가는 인물의 삶을 작품 속에 녹임으로써 인간의 의식영역을 확대하려고 노력해 왔다. 작가가 40여 년을 문단과는 일면식도 없이 전업 작가로 살며 꾸준히 글 쓰는 일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아끼고 사랑해 주는 많은 독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우담바라』의 재출간은 그런 독자들을 향한 작가의 보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담바라』 출간 35주년 기념판 재출간에 부쳐 우담바라가 세상에 나왔던 그때로부터 35년이 흘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한한 발전과 영광스러운 미래, 발달한 과학 문명의 이기 아래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그때의 바람대로 우리 삶은 안락한가. 누군가 묻는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문화적 소외, 사회적 시스템의 오류로 빚어진 계층간의 대립,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등 우리 삶은 여전히 35년 전과 같이 혼돈과 갈등속에 놓여 있다. 거리에서, 병상에서, 건설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귀한 생명을 잃었고 어느 때보다 상실의 슬픔이 큰 시대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고 염증처럼 번져가는 아픔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늦은 밤, 혼자 돌아오는 골목길을 환히 밝히는 가로등처럼 우리의 무명을 깨뜨리고 힘겹지만 다시 일어설 힘을 줄 우리 이웃의 이야기 『우담바라』를 다시 내놓으며 책 속 인물들이 기꺼이 여러분을 평화와 고요 속으로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지혜로 통찰하는 힘 얻으소서. _‘도서출판 얘기꾼’ 책임 편집장_ 이종숙 『우담바라』 35년전 디자인의 재해석 X 〈만다라 아티스트〉 김성애 작가와의 콜라보 35년전 짙은 노란 바탕에 흑백 와당의 반복적 패턴의 강한 인상은 굳이 가까이 다가가 큼직막한 제목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우담바라』인줄 알았다고 한다. 35주년 기념판을 새롭게 펴내며 고수한 단 하나의 디자인적 원칙은 당시의 커버 디자인을 재해석하되 그 바탕은 유지하는데 있었다. 노란색 바탕은 결정이 되었으나 또 다시 와당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문든 생명, 자유, 근원, 치유 등의 다양한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만다라 아티스트〉 김성애 작가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섬세하지만 강인하고, 심플해 보이지만 그 속의 화려한 디테일들이 녹아 있는 그의 작품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기를 바랐던 『우담바라』 기념판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흔쾌히 자신의 작품을 남지심 작가의 작품에 투영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만다라 아티스트〉 김성애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애초에 35주년 기념판 『우담바라』는 소장용으로 기획했다. 가치 있다고 판단한 독자들이 『우담바라』 세트를 서가에 올려 놓고는 각자 소장하고 있는 35년 전의 그때를 떠올리며 의미모를 미소를 짓는 장면을 상상하며 제작했다. _디자인 ‘달사람스튜디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