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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_ 기약없는 이별.....014
제2장_ 의식의 연마.....037 제3장_ 인격의 연마.....060 제4장_ 청정심의 연마.....081 제5장_ 세계의 관찰.....096 제6장_ 인식의 빛1_지옥계.....109 제7장_ 인식의 빛2_아귀계.....125 제8장_ 인식의 빛3_축생계.....137 제9장_ 인식의 빛4_아수라계.....149 제10장_인식의 빛5_인간계Ⅰ.....158 제11장_ 인식의 빛6_인간계Ⅱ.....186 제12장_ 귀환.....197 제13장_ 자비심의 연마.....212 제14장_ 평등심의 연마_연꽃관.....234 제15장_ 심연(深淵)속의 생명_인연.....246 제16장_ 마지막 기로에서의 선택.....273 제17장_ 스승들의 귀환.....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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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해(業海)의 바다가 서서히 펼쳐졌다. ‘나’라고 하는 상이 떠오르며 그 상에 깊이 애착하는 내가 보였다. 나를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나, 내가 주인이다. 나는 나에 애착하며 이기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얻고자 하는 것, 그건 한때는 물질이었고, 한때는 애욕이었고, 한때는 명예였고, 한때는 만인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이었다.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면 내 안에는 분노와 증오가 일었다. 분노와 증오는 불길처럼 나를 태우며 끝없이 검은 그림을 그려나갔다. 나는 내 앞에 펼쳐진 검은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부끄러움과 후회스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제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 멈추고 싶다. 그린 그림도 모두 다 지우고 싶다.
--- p.57 「2장 의식의 연마」 중에서 “인간계는 현상계의 중심부, 인간으로 치면 배꼽 부위에 해당하네. 배꼽이 신체의 중심에 해당하듯이 인간계도 현상계 내에서 그와 같네.” “인간의 배꼽은 탯줄이 있던 자리가 아닌가? 생명의 근원과 연결된 자리지. 그래서 인간계에는 모든 생명이 공존해 있네. 위로는 성자로부터 아래로는 삼악도의 죄인까지. 그리고 사람 동물 식물 무생물이 한데 어우러져 공존하는 세계가 인간계네.” --- p.160 「10장 인식의 빛5_인간계Ⅰ」 중에서 진리란 우주 근원의 본래 자리네. 그러므로 우주에 몸담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여기에 근접하면 할수록 자유와 평화를 얻게 되네. 반대로 우주 근원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혼돈과 고통을 겪게 되지. 그래서 진리를 체득하는 것이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첫 번째 관문일세. 그것을 아는 게 지혜고 그것을 모르는 게 무지네. --- p.170 「10장 인식의 빛5_인간계Ⅰ」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돈이다. 가장 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돈의 속성을 잘 모른다. 돈은 돈으로서의 생명을 지니고 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생명력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돈이 돈으로서의 생명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건 생명을 살려 내는 데 쓰이도록 돕는 것이다. 돈은 생명을 살려 내는 데 쓰임으로써 스스로의 생명도 살려낸다. 함께 공생하는 것이다. 함께 공생하면 서로가 방출하는 힘에 의해 복이 만들어진다. 이 원리를 사람들은 모른다. 모르고 욕망의 도구로 돈을 사용한다. 그 결과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면서 복도 소멸시킨다. 복이 소멸된 자리는 박복함이 남는다. 무지가 박복함을 끌고 가려니 그 고통이 얼마나 자심하겠는가! --- p.187 「11장 인식의 빛6_인간계Ⅱ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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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심의 신작소설 『인간은 죽지 않는다.』는 제목과 내용 모두 소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상식을 충격한다. 이 소설은 현실 세계의 욕망과 갈등, 혹은 인간 내면의 선악을 파헤치는 일상적 이야기 차원을 벗어나, 우리의 체험과 인식 밖에 있는 사후세계를 마치 ‘현실처럼’ 약여(躍如)하고 핍진(逼眞)하게 다룬다. 한 여성의 임종 순간 이후 머무르게 되는 중유(中有)의 세계, 그 중유(中有)의 세계에서 정신적 진화를 거쳐 현실 세계로 다시 환생하기까지의 얘기를 그린(제1부), 환생 후 법운사와 예경원을 중심으로 한 ‘생명의 실상’ 공동체 활동을 그린(제2부) 등 『인간은 죽지 않는다』의 서사는 인간의 정신적 수행 및 이타적 실천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불교의 윤회와 보현행원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죽지 않는다』의 장르적 성격은 이야기로 풀어낸 화엄경 ‘십지품’의 변상도라 명명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죽지 않는다』는 불교적 사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연기 윤회적 관점에서 인간의 죽음과 생명의 실상을 탐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죽음과 그 이후의 상황을 직접 다루었다는 점에서 소설의 신기원을 이룰 뿐 아니라, 남북 분단 이후 갈수록 첨예화 극단화하고 있는 한민족의 분열과 갈등 등 민감한 현실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인간은 죽지 않는다』가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다룬 소설로도, 업생(業生)이 아닌 원생(願生)을 다룬 소설로도 국내외(國內外)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하니 불교문학을 해 온 작가로서 한 획을 그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제부터는 독자들의 몫이다. 금 생에서 나의 마지막 소설이 될 『인간은 죽지 않는다. 1-2권』이 독자들의 가슴에 어떻게 투사될지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평론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현실적 서사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감 『인간은 죽지 않는다』는 환생에 관한 이야기다. 불교에서는 서원을 세워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원생(願生)이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원생 또는 환생에 관한 대표적인 이야기는 티베트 고승의 환생이라는 ‘달라이라마’ 이야기일 것이다. 종교적 믿음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다시 태어나는 생이란 짧은 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크나큰 관심거리다 제1권, ‘나’는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환한 빛을 따라간 결과 중유 세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여러 명의 스승을 만나는 동시에 이승에서 인연 있던 인물들을 재회한 뒤, 각각의 단계에 맞는 수련을 거쳐 원생에 따라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 “작가는 인간의 가장 오랜 관심사인 죽음·환생·윤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수행자와 스승의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 육신과 분리된 화자의 영혼은 중유 세계에서 스승을 만나 ‘나의 실체’가 곧 ‘빛의 파장’이며, 인간계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현상계란 마음이 펼쳐낸 무대이고, 모든 생명체는 그 무대의 연기자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한 생명체가 어떤 세계의 어떤 형상으로 태어나는가는 전적으로 숙업(宿業)과 관련된다. 중생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끝없이 욕망을 키워가는”데, 그것이 ‘무지’임을 깨달아야 ‘지혜’와 ‘이타심’을 증득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육신과 정신의 결합으로 이뤄지며, 육체는 소멸하더라도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진화한다. 중유 세계(제1부)에서 ‘통합’과 ‘참회’ 두 영혼은 ‘정신의 진화’에 대해 토론하면서, 물질주의자들의 최대 오류가 정신을 부정했기 때문에 정신의 진화마저 부정한 점이라는 데 공감한다. 이와 함께 인간의 정신(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자신의 숙업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설명된다. ‘참회’가 자기 사상의 오류를 깨달은 것이 현상계가 아니고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중유 세계에서라는 것은 인간 정신의 진화에 대한 강력한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생명의 진화는 생명의 실상에 대한 적확한 이해에서 기인한다. 중유 세계에서 정려에 든 화자는 자신의 생명이 진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진여에서 생겨난 현상계는 빛의 파장으로 끝없이 퍼져나가 우주 만물을 만든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지구에 붙박혀 살고 있어 그 세계에 대해서만 조금 이해할 뿐, 지구계를 벗어난 은하계, 더 나아가 은하계 밖의 무한한 세계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해인 스님에 따르면 “우주도 정신에 해당하는 진여의 세계와 육신에 해당하는 물질세계가 결합한 것으로, 진여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가 갈리는 경계를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구분한 것은 현상계와 유사하다. 다만, 그 세계는 지구와 경계와 차원이 전혀 달라 오직 부처만이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중생이 보살이 되고 보살이 부처가 되는 정신의 진화를 통해 차원의 초월이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우주 너머의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정신의 진화는 “인류를 진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찾는 단계, 자신이 찾은 방법을 연마해서 실제로 힘을 기르는 단계, 기른 힘을 자유자재로 쓰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정신의 진화는 중생 제도의 서원을 세워 부단한 수행으로 보살이 된 뒤 자비행을 실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보살이 중생계로 환생하는 이유는 “중생계는 보살의 공부를 완성시키는 도량 중 가장 우수한 학교”이고, 보살은 중생 제도로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강조되고 있듯이,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중생에서 곧바로 부처가 되는 비약이 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수억 겁의 윤회와 진화를 거쳐야 비로소 그 단계에 이를 수 있으므로 부단한 수련과 참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장영우 평론 ‘생명의 실상과 진화’ 중에서 작가 코멘트 생명의 끝은 죽음이다. 생명은 유한하므로 생명의 끝자락엔 반드시 죽음이 연결된다. 여기에서 예외인 생명은 없다. 생명은 현상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특권을 선물 받은 것이고, 죽음은 선물 받은 그 특권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예외인 생명은 없다. 나는 지금 생명을 가진 존재로 현상계에서 살고 있다. 죽음 역시 내 생명 끝자락에 바짝 붙어서서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죽음은 또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위의 명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근원적인 과제였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해 철학이 등장하고 인접 학문이 등장하고 예술도 등장했다. 종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에 열거한 것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진리에 접근한 것은 역시 종교라고 본다. 인류의 스승인 성인이 등장해 생명이 펼치는 전 과정을 설명하고, 그 설명을 듣고 많은 사람이 믿고 따름으로서 종교가 탄생했다. 그리고 철학과 인접 학문이 삶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종교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다뤘다. 죽음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한 분야는 종교밖에 없다. 생명을 가지고 현상계에서 살아가는 우린 육신을 벗어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볼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다. 종교가 설명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지상에 다양한 종교가 현존해 있는 것도 그래서이고, 다양한 종교가 제시한 종교의 교리를 이해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나는 불교 신자로 살아왔다. 그것 역시 내 주관의 선택이다. 젊은 시절 긴긴 방황 끝에 불교를 만난 나는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갈망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 출구가 소설이었다. 30대 중반에 여성동아를 통해 『솔바람 물결 소리』를 써서 작가가 되었다. 그렇게 불교 안으로 들어온 나는 40대 중반부터 시작해 『우담바라 전4권』을 펴냈다. 어느덧 70대 중반에 들어 죽음의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죽음은 삶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또 하나의 나의 삶이다. 나는 윤회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세계를 꼭 그려보고 싶은 갈망 속에서 2025년 소설 『인간은 죽지 않는다』를 출간하였다. 불교는 현상계가 우주 근원의 진리,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진여의 세계를 드러낸 표리일체의 관계로 보고 있다. 우리의 영혼, 혹은 마음이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가 쓰는 마음은 자기애(自己愛)에 갇힌 탐심(貪心) 진심(嗔心) 치심(痴心)이므로 고통의 세계다. 이 세계를 중생계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인간의 세계다. 자기애에 갇혀 있긴 하지만 우리의 근본 마음은 우주 근원을 담고 있으므로, 내 안에서 나를 가두고 있는 자기애(自己愛)를 벗겨내면 우주의 근원과 일치하는 대 자유인 성인이 될 수 있다. 이 세계에서 중생구제의 원력을 세우고 등장하는 분들이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菩薩)이다. 보살은 원생의 삶을 사는 분들이므로 그들이 펼치는 세계는 원력의 세계, 즉 원생이다. 지금까지 모든 문학작품이 중생의 세계인 업생(業生)을 그린 것이라면 『인간은 죽지 않는다. 2권』에선 원력 보살들이 환생해서 현실 속에서 원력을 펼쳐가는 원생(願生)을 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