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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말 iv
제3부 제7장 범죄, 법과 국가 / 3 ‘정상적’ 범죄와 사회적 범죄 / 13 ‘통제 문화’에서 국가로 / 26 국가의 법적, 정치적 질서 / 37 헤게모니 양식, 헤게모니의 위기 / 50 제8장 법과 질서형 사회: ‘동의’의 고갈 / 69 변화하는 ‘공황’ 형태 / 71 전후의 헤게모니: 합의 구축 / 83 합의: 사회민주주의 변종 / 99 합의 결렬로의 추락 / 105 1968년(1848년): 대격변-국가의 분열 / 108 1969년: ‘문화 혁명’과 권위주의로의 전환 / 121 노동계급의 저항: ‘애썼네, 비밀스러운 옛 친구’ / 145 제9장 법과 질서형 사회: ‘예외적 국가’를 향하여 / 173 1970년: 셀즈던인―‘법과 질서형’ 사회의 탄생 / 173 1971-2년: 법의 동원 / 188 1972년: ‘노상강도’의 계기 / 209 그 여파: 위기와의 동거 / 230 노란 잠수함 내부에서 / 249 제4부 제10장 ‘노상강도’의 정치 / 267 억압당한 것의 귀환 / 269 ‘이차성’의 구조 / 288 문화, 의식과 저항 / 301 흑인 범죄, 흑인 프롤레타리아 / 325 ‘대지의 버림 받은 자들’ / 355 할렘에서 핸즈워스로: 고향으로 돌아가기 / 368 후 기 / 387 인종, 범죄와 경찰 활동 (토니 제퍼슨) / 387 뉴스 미디어와 도덕 공황 (채스 크리처) / 392 〈위기 관리〉와 예외적 국가 (존 클라크) / 397 구조, 문화와 생애사 (브라이언 로버츠) / 402 색인 / 413 |
Stu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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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s Cr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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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y Jeff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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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la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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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Robe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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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판 서문
〈위기 관리(Policing the Crisis)〉는 처음 출판된 지 30년도 넘었지만 그동안 일반 독자, 연구자, 학생에게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노상강도’(mugging)를 … 특정한 길거리 범죄 형태보다는 사회 현상으로서” (p.1) 이하 페이지는 원문을 기준으로 표기했음을 밝힌다. 탐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 책은 어떻게, 왜 이처럼 ‘노상강도’라는 매우 정서적인 이름표가 1970년대 초에 그렇게 널리 사용되었는지, 그 정의가 어떻게 구축되고 확장되었는지, 왜 영국 사회-경찰, 사법부, 미디어, 정치 계급, 도덕적 수호자와 국가-가 노상강도 현상에 그렇게 극단적으로 반응했는지, 이 현상이 사건의 연쇄가 전개된 사회적, 정치적 국면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 주었고 지금은 무엇을 말해 주는지 다루었다. 이 ‘서문’은 새로운 독자, 혹은 책 내용을 이미 알지만 새로운 시각과 변화된 역사적 상황에서 다시 살펴보려는 독자를 대상으로 작성했다. 이 글은 “현대의 독자가 이 책을 이해하고 거기서 가능한 한 많이 얻어내려면 어떤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시도한다. 즉 이 책이 왜 이런 모습으로 구성되었는지, 집필 과정에서 어떤 지적, 이론적 전통에 의존했는지, 책이 등장한 무렵 역사적 국면의 성격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간략한 회고적 설명을 제시한다. 〈위기 관리〉는 버밍엄에서 다양한 종족적 배경의 세 청년이 한 남성에게 강도질을 하던 도중 상해를 가한 사건에 대한 반응이었다. 범인들은 장기간의 본보기성 형을 받았다(한 사람은 20년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을 단지 기존의 이론적 주장을 예시하는 데에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6년이 넘는 집필 기간 동안 끝없이 지연되고 험난했던 집단 연구 과정은 지적인 ‘실험실’ 구실을 했고, 여기서 텍스트에 생명을 불어넣는 개념, 이론, 주장이 탄생했다. 이 책은 발견한 내용을 결론에서 서로 연결짓고 설명을 제안하는데, 이 설명은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미처 예견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현대문화연구소(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CCCS)는 1964년 아직 생소하고 진화 중인 분야를 탐구하는 연구소로 창립되었는데, 바로 여기서 〈위기 관리〉를 구상하고 집필했다. 당시에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연구소 교원으로서 유일하게 연구에 참여하였다. 존 클라크(John Clarke), 채스 크리처(Chas Critcher), 토니 제퍼슨(Tony Jefferson)은 연구소에 등록된 대학원생이었고, 브라이언 로버츠(Brian Roberts)는 공식적으로 사회학과 소속이었다. 연구소의 다른 사람들도 이 작업에 기여했다. 연구소의 접근방식은 초학제적이었고, 이 때문에 저자들은 다양한 시각과 관심사를 손쉽게 연구에 반영할 수 있었다. ‘포스트 1968년’의 참여 정신으로 현대문화연구소는 집단적인 지적 작업, 연구, 집필 방식을 추구해 연구원과 대학원생이 함께 작업했다. 따라서 연구소가 추구한 정신, 연구 과제, 관행은 이 연구가 채택한 형식에서도 핵심을 이루었다. 실로 어떤 면에서 〈위기 관리〉는 이러한 집단 저작의 모범적인 텍스트로 널리 통한다. 제2판에서 구체적인 주제를 다룬 네 편의 ‘후기’는 각자 집필에 영향을 미친 시공간의 균열을 반영해 필자별로 분담했지만, 이 ‘서문’만은 집단적으로 작성했다. 하지만 모든 글은 철저한 집단 토론과 논쟁 과정을 거쳐 적어도 〈위기 관리〉의 특징인 그 정신의 일부는 유지하도록 했다. 비록 사회학과 범죄학의 사고에 영향을 받긴 했으나, 〈위기 관리〉의 전반을 아우르는 분석 대상은 ‘범죄’도 ‘사회’도 아니라 ‘사회구성체’였는데, 이는 실천, 제도, 세력, 모순의 총합으로 개념화할 수 있다. 〈위기 관리〉에서는 ‘노상강도’ 현상의 법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차원과 더불어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담론적 측면이 다른 곳에서 결정된 이차적이고 종속적 요인이 아니라 효과를 구성하고 중층 결정한다고 보았다. 이 책은 아마 비판 범죄학 내부에서 아주 꾸준하게 논쟁 대상이 되긴 했겠지만, 저자들은 어떠한 공식적 측면에서도 범죄학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범죄와 일탈은 철저하게 사회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사회의 규범적 가정과 사회 질서 유지에 대한 도전이며, 따라서 더 폭넓은 사회적, 정치적 요인의 징후로 해석해야 한다고 우리는 확신했다. 우리의 목적은 범죄를 그 사회적, 정치적 ‘존재조건’ 속으로 되돌려 놓는 데 있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연구소의 하위문화 연구, 일탈과 하위문화 이론에 의존했다. 여기서 출처가 된 저술과 영향을 미친 저작에는 최근 구성된 전국일탈연구회(NDC) 전국일탈연구회(NDC)는 1968년 7월 기존의 범죄학과 일탈 연구의 접근방식에 불만을 느낀 연구자들이 새로운 사회과학적 시각을 모색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영국 학자로는 폴 로크(Paul Rock), 데이비드 다운즈(David Downes), 로리 테일러(Laurie Taylor), 스탠 코언, 조크 영 등이 있었다. 이 연구자들은 범죄학의 사회학적 측면을 강조하고 범죄를 주류 사회학의 관심사로 격상시키려 했고, 범죄와 일탈 현상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고 더 폭넓은 사회적 환경에서 파악하려 했다. 이 단체의 활동은 이후 비판 범죄학(critical criminology)이 탄생하는 토대가 되었다.-역주 의 논의와 더불어 하워드 베커(Howard Becker) 같은 미국 상호작용론적 사회학자의 저술도 포함되는데, 베커는 일탈이 행위의 속성이 아니라 행위에 대한 사회적 반응의 속성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주 1] 이 학자들은 [일탈행위 자체보다는] 사회 통제 기관들이 어떤 행동에 일탈이란 이름을 붙이고 일탈로 정의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야말로 사회과정으로서의 일탈에 핵심적 부분이라고 규정했다. 〈위기 관리〉는 조크 영과 스탠 코언 같은 영국 사회학자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받았는데, 이 학자들은 마약 복용[주 2]이라든지 당국과 ‘모드족’(mods), ‘로커족’(rockers) 모드족과 로커족은 1960년대 초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영국에서 유행하던 청년 하위문화를 지칭한다. 이들은 상당히 상이한 스타일로 서로 앙숙관계를 이루며 폭력적 싸움에 연루되기도 했다. 1964년 두 집단이 벌인 패싸움은 미디어에 널리 보도되면서 영국 사회에 ‘도덕 공황’을 유발했다. 모드족은 독특한 패션과 음악 등으로 구별되었는데, 패션에서는 양복과 깔끔한 옷차림으로 주로 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음악 취향으로는 1960년대의 대중음악 장르인 소울, 리듬 앤 블루스, 비트 음악을 즐겨 들었다. 반면에 로커족은 대형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검은 가죽 재킷, 부츠 등의 옷차림을 특징으로 했는데, 이는 1953년 미국 느와르 영화인 〈위험한 질주(The Wild One)〉에서 말론 브란도의 옷차림에서 영향을 받았다. 로커족이 선호하는 음악 장르는 주로 1950년대 미국의 로큰롤이었다.-역주 [주 3] 간의 충돌처럼 이 시기 영국의 사회적 일탈 행위에 관해 중요한 연구들을 내놓았다. 우리는 (현대문화연구소의 관련 연구인 〈의례를 통한 저항Resistance through Rituals〉[주 4]에서는) 민속지학 연구 때문에 격찬을 받은 반면, 〈위기 관리〉에서는 (특히 마지막 장에서)[주 5] 그러한 연구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민속지학과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해 설명을 덧붙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기에 〈의례를 통한 저항〉과 〈위기 관리〉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로 그 어느 쪽도 전통적인 민속지학 연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두 연구는 모두 민속지학자로서 “사회 세계에 대한 신념에 따라 탐구와 재건 … 의 지속적인 추구”, “동료 인간에 대한 헌신”, “국지적, 상황적 문화의 해석 추구”[주 6]라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민속지학자에 대한 또 다른 지지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했듯이, 우리의 관심사는 구체적 사건, 실천, 관계, 문화를 출발점으로 삼아 “구조적 지형”(structural configuration)으로 접근하되, “상호작용과 실천을 단순히 그러한 구조적 지형의 표현으로 환원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주 7] 다시 말해, 민속지학적 상상력을 본떠 하려고 애쓰면서도 동시에 일상적 ‘상호작용과 실천’의 지금, 여기에 초점을 두는 수준을 넘어 그 현상을 우리 배후에서 전개되는 역사 속에 위치시키려 했다. 물론 민속지학의 고전적인 방법은 참여관찰, 듣기, 인터뷰이지만, 특정한 ‘사회 세계’에 관한 자세한 경험적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접근방법이든 민속지학이 될 수 있다. (사회적 반응의 ‘사회 세계’에 관한 일차 자료인) 신문 더미 뒤지기, (예를 들면, 경찰과 흑인 청년의 ‘사회 세계’에 관한) 책, 논문, 논평 형태의 방대한 이차 자료 읽기, (저자 중 한 명처럼) 핸즈워스(Handsworth)의 ‘사회 세계’에 거주하면서 작업하기 등이 그렇다. 우리 책을 옹호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모두 혼란스러워 한 부분은 바로 이러한 실용적 접근방식, 즉 다양한 사회학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식 국면 분석(Conjunctural analysis)의 틀에 따른 미디어 연구와 민속지학을 결합한 연구 성향인 것 같다. 그러한 접근의 강점도 분명한 듯한데, 특히 “결국 노상강도질로 빠져들고 마는 청년의 전형적인 일대기”가 보여주는 자명한 리얼리즘이 그러하다. 한 서평가는 이에 대해 “자신이 지금까지 본 것 중 … 범죄에 관한 가장 사실적으로 보이는 설명 중 하나”라는 판단을 내렸다.[주 8] 그리고 이어서 “프라이스가 〈끝없는 압력(Endless Pressure)〉이란 책에서 발견한 결과는 이 책이 묘사하는 그림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주 9]라고 말했다. 켄 프라이스(Ken Pryce)의 책은 4년 동안의 민속지학 연구에 근거해 브리스톨의 서인도 제도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은 ‘유행 탐닉 10대 소녀족’(teeny boppers) 음악, 패션, 문화 등에서 성인문화를 모방하는 10대 소녀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처음에는 마케팅 분야에서 사용되었으나, 점차 독자적인 소녀층 집단의 하위문화로 발전했다. 원래 1950년대에 대중음악, 특히 로큰롤에 빠져든 10대를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되다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10대 초반 소녀층을 대상으로 팝음악, 아이돌, 패션 분야의 마케팅이 강화되면서 다시 널리 사용되었다. 이 하위문화는 상업적 용도에서 기원하긴 했지만, 지루하고 억압적인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10대 소녀를 중심으로 외부인과 차단된 방어적 또래문화로 발전했다. 스타일에서는 주로 대중문화의 유행에서 차용하는 경향이 있어 다른 하위문화에 비해 독창적인 요소는 적었다.-역주 이나 ‘협잡꾼’(hustlers)[주 10] 등 비행 청소년을 다루었다. 프라이스의 책과 우리 책은 연구 기간이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프라이스의 책은 〈위기 관리〉가 나온 이듬해인 1979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위기 관리〉는 〈의례를 통한 저항〉을 비롯해 학교 교육,[주 11] 청년 패션과 스타일[주 12] 연구 등 청년 영역에 관해 연구소가 수행한 작업에 분명히 크게 빚졌다. 이후에는 도시 록(urban rock)과 흑인 음악,[주 13] 남성 지배적 하위문화 운동에서 소녀들의 위치[주 14]에 관한 연구가 이어졌다. 이 모든 영역에서 ‘청년’은 늘 ‘골칫거리’의 당사자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듯했다. 이 골칫거리는 어떤 사회적 단절과 더 광범위한 사회적 추이, 문제점을 보여주는 징후였으며, 공중과 공기관의 불안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야기됐다. 사회적 불안감은 ‘도덕 공황’(moral panic) 생성을 조장했다. 도덕 공황은 공중의 일부층이 사회 자체에 가해지는 위협을 지각해 과도한 공포와 우려가 번지고, 이에 대응해 사회통제 기구들과 광범위한 정치 구조가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가동되는 현상을 말한다. 〈위기 관리〉는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펼쳤다. 사회 통제의 문화와 제도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만큼이나 일탈과 범죄 현상에서 떼놓을 수 없는 일부였다는 것이다. 이 문화와 제도는 반사회적 행위 통제에서뿐 아니라 그 행위에 이름을 붙이고 정의하고 공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처럼 확장된 맥락에서 ‘통제 문화’(control culture)란 너무 모호한 개념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 기관들은 다양한 권력 유형이 농축된 장소, 즉 국가로 규정하는 편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이처럼 국가로 초점을 이동하게 되면, 노상강도 분석은 사회의 핵심부, 여론 흐름의 변화, 사회적 권력과 정치적 권위의 중심부를 다룰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탈 통제를 책임지는 기관이 이야기에서 중심적인 갈래로 부상하게 됐다. 여기서 통제에는 단지 기관들이 권위를 실행하는 권한뿐 아니라, 사건에 대한 의미작용과 이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를 자신들의 ‘상황 정의’(definition of the situation)에 동조하도록 끌어들이는 행위도 포함된다. 이 두 가지 기능을 동일한 틀 안에 함께 수렴시키는 바람에, 지배의 심급(instance)으로서의 국가(가령 개인의 자유 박탈, 처벌 등)와 ‘대중적 동의 획득’의 장으로서의 국가 간의 구분은 치명적일 정도로 훼손되었다. 특정한 정의가 상징적으로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지배하도록 만드는 담론 실천은 군중을 해산시키거나 범법자를 투옥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사회 통제의 일부였다. 경찰은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사회의 첫 번째 방어선이자 사회적 무정부 상태를 막는 보호막으로 간주된다. 경찰은 전반적인 범죄 수준의 공식적 척도, 즉 범죄 통계를 생산하고, 범죄와 더 광범위한 사회적 추이 간의 관계에 관해 그때그때 논평을 가할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로 〈위기 관리〉는 ‘노상강도’의 통계 척도 구성과 관련된 담론 실천을 살펴보면서 논의를 시작하는데, 이는 당시 규정집에 통계적으로 ‘기록’할 만한 범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렇지만 숫자 제시만큼 설득력 있는 ‘사회적 사실’은 거의 없다. 이 영역에서는 사법부 역시 막강한 권위를 갖고 있다. 판사는 법을 해석하고 특정 사건에 적용하며 형량을 부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범죄에 관해 논평하고 범죄의 사회적 의미에 관해 선언하며 그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해석하는 더 폭넓은 기능도 수행한다. 판사는 공중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떤 행동이 정치적으로 용납되고 정당성을 지니는 것인지, 어떤 부분에 동의해야 할 것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해석적 실천은 일차적으로 언론과 매스미디어가 관할하는 영역이다. 언론은 공식적으로 국가의 일부가 아니지만, 다른 기관들과 연합해 ‘뉴스의 사회적 생산’을 통한 대중적 영향력 행사라는 업무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데, 물론 여기서 범죄는 늘 매우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위기 관리〉는 이 핵심 기관들을 ‘일차적 규정자’(primary definers)로 간주했다. 이 기관들은 해석의 기본선을 정해주고, ‘일반인’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이데올로기적 분위기의 큰 틀을 조성하며, 정치적 대응과 공중의 반응을 조율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공중은 ‘범죄의 의미 이해’라는 과정을 백지상태에서 접근하지는 않는다. 공중은 해석의 기본틀, 무비판적 가정, 상식, 암묵적 지식과 추론 형태를 가동하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은 비록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일관되거나 증거에 기반한 형태로는 아니더라도 (이 때문에 오히려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이미 [이들의 사고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영국 사회가 1950년대와 1960년대 전후의 ‘풍요’와 이민이 초래한 혼란스러운 결과에 직면해 그랬듯이, 특히 사회가 사회적 변화의 속도나 방향에 위협을 느끼게 될 때, 대다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기존의 권력 구조를 지지하는 정의와 문제 접근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범죄, 인종 그리고 형벌에 대해 ‘전통주의적’ 견해를 채택하는 경향이 그 예다. 방법론 측면에서 이는 연구하기에 까다로운 영역이었다. 이 해석 구조들은 의식적 자각이나 기억 바깥에서 작동하므로 설문지와 전통적인 인터뷰는 연구 도구로서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그 대신 대중지의 독자투고에 초점을 맞추고, 무의식적인 상태에서의 여론을, 말하자면 그 형성의 순간에서 포착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 자료의 해석을 통해 여론의 ‘심층구조’를 이루는, 범죄, 도시 공간, 인종 등에 관한 비공식적인 이데올로기의 ‘지도’를 작성했다. 상식은 자명하거나 혼동스럽거나 일화적이거나 모순될 수 있다고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주장했다.[주 15] 수많은 다양한 사고 전통의 흔적이 아무런 세부목록도 남기지 않은 채 상식 속에 농축되어 있다. 상식은 지식 위계에서는 신분이 낮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민주적인 사회에서 ‘상식화한다는’ 것은 대중적 정당성과 순응을 확보하는 핵심 경로이며, 그람시의 말마따나 ‘헤게모니적’ 권력 형태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주 16] 이러한 인식을 통해 분석은 새로운 수준으로 옮아갔다. 〈위기 관리〉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만일 어떤 지배계급 동맹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권위를 확보한다면, … 즉 정치 투쟁을 장악하고 자본의 요구를 보호하고 확장하며, 시민 영역과 이데올로기 영역에서도 권위를 갖고 주도할 수 있게 되고, 국가를 방어하는 강제적 국가 기구의 강제적 권력을 장악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동의의 기반 위에 달성할 수 있다면 … 헤게모니 혹은 헤게모니적 지배의 시기를 확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pp.212-3) 장소와 위치는 강력한 사회적 함축과 준설명력을 추진력으로 동반한다는 점에서 ‘상식’의 방향을 지시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 책의 핵심적 사건 발생지인 핸즈워스는 이른바 전형적인 도심 빈민가의 무수하게 열거되는 문제점을 갖춘 곳으로, 도시 빈곤과 사회적 피폐화를 예시하는 공간이었다. 버밍엄에서도 빈곤, 열악한 주거 환경, 실업의 결과로 점차 다문화, 다직업 지역으로 몰락해가는 오래된 주거지역으로서, 아프리카계 카리브인과 아시아인의 이주, 정착 공간이기도 했다. 핸즈워스의 문제점은 정말로 심각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타자’라는 이유로 이 집단들이 문제점의 원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그래서 스테레오타입화와 인종적 차별이 더욱 심화된다는 점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1948년 전후인 윈드러시(Empire Windrush)호 엠파이어 윈드러시호는 1948년 전후 최초로 대규모의 서인도 출신 이주민을 영국으로 실어 나른 수송선이다. 당시 자메이카에서 런던으로 운항한 이 배에는 1,027명의 승객과 두 명의 불법 탑승객이 탑승했는데, 카리브 지역 출신 802명 중 693명이 영국 정착 의사를 밝혔다. 전후 시기 엠파이어 윈드러시호를 비롯해 여러 수송선으로 영국에 이주한 카리브 출신 영국 이주민을 윈드러시 세대(Windrush generation)라 부르기도 한다.-역주 도착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흑인 이민으로 영국 사회의 면모가 크게 바뀌었고 영국의 정체성 자체도 의문의 대상으로 변했다. 영국은 스스로 진보적이고 관용적이며 인종적으로 동질적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인종화된 차이에 대해 영국 사회 깊숙이 내재하던 부정적이고 스테레오타입적인 태도를 건드렸다. 이 잠재적 태도는 영국이 제국으로서 수행하던 역할에서 유래한 유산이었는데, 자신들의 ‘고유의 터전’(home territory)에 상당히 많은 카리브 출신 흑인 이주민이 건너오면서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폴 길로이(Paul Gilroy)는 영국 같은 오랜 제국주의 사회가 자신의 권력 쇠퇴에 대해 보이는 병리적 반응을 ‘포스트 콜로니얼 우울증’(post-colonial melancholia)의 한 형태, 즉 상실한 대상에 대한 일방적인 슬픔이 손쉽게 공포증으로 바뀌는 현상으로 부른다.[주 17] 이 현상은 계속해서 오늘날 영국 사회에 엄청난 공감과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이 새로운 강조점들은 이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이행하는 지점을 이루었다. ‘노상강도’ 현상에서는 범죄, 경찰 활동, 인종과 도시 간의 수렴이 이루어지면서 폭발력이 큰 융합물로 변했다. 이 현상은 공동체의 변화 양상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을 촉진하고 ‘영국스러움’(Britishness)은 곧 ‘백인다움’(whiteness)이라는 인식을 강화했으며, 사회적으로 배제된 수많은 층에게 자신들의 피폐함의 원인은 빈곤이 아니라 인종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 질서 수호를 책임지는 ‘상층부’의 기관들에게 정치적 대응을 요구하도록 ‘밑으로부터’ 부추겼다. 우리는 범죄와 일탈에서 시작해 ‘통제 문화’ 장치를 거쳐 국가로 옮아가면서 ‘노상강도’ 문제를 살펴보았는데, 분명 이 문제는 더 광범위한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않는다면 아마 완벽하게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탐구가 단초를 열긴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는 노선을 따라 탐구를 계속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틀을 점차 확대해가는 분석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 우리는 ‘맥락화’(contextualising)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공식화라 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요강(The Grundrisse)〉에서 “사고를 통해 구체성”을 생산해내는 유일한 방안은 더 많은 결정 요인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체성은 수많은 결정이 집중된 것이어서 구체적이다”라는 것이다.[주 18] 따라서 맥락화란 단지 정태적인 ‘배경’을 들먹이는 게 아니라, 이처럼 복합적인 과정을 시간 경과에 따른 실제적인 움직임으로 취급하고 역사적인 구체성 속에서 다양한 추상화 수준 간의 연계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노상강도’라는 현상 형태와 그 현상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사건이 발생한 역사적 국면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었는가? ‘국면’(conjuncture)은 그람시[주 19]와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주 20]가 개발한 용어로서, 어떤 사회구성체의 생애에서 특정한 계기이자 사회 내에서 늘 작동하는 적대와 모순이 ‘파열적 통일성’(ruptural unity)[주 21]으로 ‘융해’(fuse)되기 시작하는 시기를 말한다. 국면 분석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계기와 투쟁과 소요가 격화되어 좀 더 전반적인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계기 사이에서 일종의 시기 구분을 적용한다. 이 개념은 모순이 전개되고 위기로 융해되며 해소되는 과정을 포괄한다. 위기의 해결책은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사전에 미리 예정된 결과란 없다는 것이다. 이 해결책은 역사적 프로젝트가 지속되거나 갱신되게 할 수 있고 변혁 과정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일부 사례에서는 장기화한 투쟁이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될 수도 있다(이는 그람시가 ‘수동적 혁명passive revolution’이라 부르는 현상이다).[주 22] 국면에는 고정된 지속기간이 없지만, 위기가 (그리고 거기에 내재된 모순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한 위기가 추가로 발생해 사회구성체의 다양한 영역 전반으로 번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대략 똑같은 투쟁과 모순 그리고 이를 해결하려는 똑같은 시도가 어떤 시기를 지배하는 한 이 시기는 똑같은 국면을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지칭하는 ‘위기’ 유형은 바로 그런 것이다. “‘노상강도’에 대한 반응이 영국 국가의 전반적인 ‘헤게모니의 위기’에서 한 측면을 구성한다”(p.215)라고 우리는 주장했다. 우리 분석의 틀을 규정한 첫 번째 국면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노동당 집권으로 등장한 복지국가적?사회민주주의적 정치적 ‘타결’ 혹은 ‘역사적 타협’(historic compromise)이다. 이 체제가 떠맡은 사항은 (남성에게) 완전 고용을 보장하고, 케인즈주의 조치를 통해 경제위기를 피해가고, 부를 재분배하고, 민간 경제의 ‘기간 산업’을 공적 소유로 전환하며, 전국적인 의료와 사회보장 체제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영국 사회의 부와 권력 재분배에서 획기적인 계기였다. 복지국가는 늘 타협된 사회구성체일 수밖에 없으므로 여기서는 기업 이윤과 공공의 선, 민영화된 ‘풍요’와 집단적인 사회적 대비책이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 체제는 사적 자본이 계속 성장하면서 부를 창출하고 국가가 이를 재분배하는 방식에 의존했다. 하지만 복지국가가 가져오는 재분배 효과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복지국가는 현대의 가장 성공적이면서 평화로운 사회 변혁 중 하나임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수주의 성향의 반대파가 보기에 복지국가란 국가가 자본, 사유재산과 ‘자유로운’ 개인의 특권을 무단으로 침해한 것이고, 사회적 세력 균형을 근본적으로 노동계급과 빈곤층에게 유리하게 옮겨놓으려는 시도였다. 보수주의자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한 정책을 저지하고 그 체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합의를 깨뜨리겠다며 작심하고 나섰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복수극이 여전히 오늘날의 정치 체제에까지 꾸준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사회민주적 복지국가의 합의 체제는 1960년대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복지국가 구축의 근거가 된 합의적 권위 양식이 버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이어진 새로운 국면의 속성은 어떤 것이었나? 〈위기 관리〉는 그 이행 과정을 ‘동의의 고갈’(the exhaustion of consent)로 묘사한다. 노동당 정권들은 점차 좀 더 하향식이고 기업주의적이며 ‘국익’에 근거한 개혁주의 정치의 변종을 채택했다. 해럴드 윌슨(Harold Wilson)은 ‘분규 대신에’ 자본과 노동 간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테크놀로지의 하얀 열기”(the white heat of technology) 이는 해럴드 윌슨(1964-70, 1974-76년 사이에 수상으로 재임)이 1963년 스카버러의 노동당 모임에서 한 연설에서 따온 구절이다. 이 연설은 영국 사회가 낡고 구시대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과학혁명의 잠재력을 받아들여 사회를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내각 과학부서 창설, 방송대학 도입, 교육 혁신, 두뇌 유출 방지 정책 등 과학 발전을 위한 혁신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이 연설은 선거 패배와 당내의 이념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노동당 내부를 결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과학에 초점을 둔 미래 혁신 방향을 제시해 당내에서 수정주의 우파와 사회주의 좌파 간의 이념적 격차를 넘어선 통합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전후 풍요의 시대와 숙련노동자층의 부상으로 노동당의 지지기반이 변화하고 있던 현실을 인식하고, 공식적 자격과 기술적 전문성의 중요성을 강조해 이들을 다시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 연설 후 이듬해 노동당은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과학부 신설 외에 혁신 기반의 정책을 좌초시키는 등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펼쳐, 결국 일시적 인기 전략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받았다.-역주 에 근거한 ‘사회적 블록’(social bloc)을 구축하려 했다. 짐 캘러헌(Jim Callaghan)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출범시켰다. 노동당 정권은 국가 주도의 소득 정책을 통해 ‘불법파업’(wildcat strikes)과 ‘비공식적 임금 상승’(wage drift)을 억제하려 애썼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경제가 근본적으로 취약했는데도 ‘풍요’와 소비자주의는 이 사실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생산성과 채산성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졌고, 공적 부문의 적자는 급증했다. 1970년대 중반 재무장관은 IMF에 지원을 요청하고 화폐 평가절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선, 저 전선에서 사회구성체가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학생 시위와 점거, 전 세계적인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젊은 층을 ‘체제’와의 일체감으로부터 분리시킨 저항문화의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안정된 패턴과 도덕적 준거점의 혼란, 향략적이고 ‘관용성’(permissive)의 청년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불안감 심화, 전국시청자청취자협회(the National Viewers and Listeners Association) 전국시청자청취자협회는 1965년 영국에서 메리 화이트하우스(Mary Whitehouse)가 설립한 미디어 감시 목적의 단체다. 주로 미디어 내용 중에서 폭력성, 인종, 신념, 성적 지향에 대한 증오 표현, 외국인 공포증, 신성모독 등의 내용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활동을 했다. 이 단체는 2001년 미디어와치 UK(Mediawatch-UK)로 이름을 바꾸었다.-역주 같은 조직들의 도덕적 수호운동 부상, 외설 출판 혐의로 〈오즈(Oz)〉 〈오즈〉는 1960년대 저항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던 대안적 지하 잡지였다. 1963년 호주 시드니에서 처음 창간되었고, 1967년 런던에도 같은 이름으로 자매지가 생겼다. 그러나 두 곳 모두 논란 끝에 외설죄로 기소되었으며, 런던의 〈오즈〉는 1973년에 폐간되었다.-역주 잡지의 재판 회부 등 이 모든 사례에서 ‘1968년’은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그 무엇인가가 되었다. 국가는 위기를 저지하기 위해 점차 법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연좌농성에는 불법침입 규제법 강화로 대응했고, 노동투쟁의 과격함에는 노사관계법(the Industrial Relations Act)으로, 북아일랜드 ‘소요사태’에 대해서는 비상사태권한법(the Emergency Powers Act)과 ‘저강도 작전’(low-intensity operations)으로, IRA 폭탄 투척 공격에는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피의 일요일은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데리(Derry)의 보그사이드(Bogside) 지역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지칭하는데, 보그사이드 대학살(Bogside Massacre)이라 불리기도 한다. 당시 IRA 관련 용의자 324명을 재판도 없이 대거 구금한 조치에 항의해 시위 중이던 비무장 시위대에 영국 군대가 발포해 1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졌다.-역주 로 맞섰다. 분노의 여단(the Angry Brigade) ‘분노의 여단’은 1970년과 1972년 사이 영국에서 활동하던 극좌파 무장투쟁 집단이다. 이들은 소규모 폭탄을 이용해 은행, 대사관, 방송시설, 보수정치인 자택 등에 테러를 가했는데, 영국 경찰은 무려 25회의 폭탄 테러가 이들의 소행이라고 추정했다.-역주 이 등장하고 납치와 테러리즘에 대한 새로운 공포가 싹텄으며, 공적 부문 파업과 주 3일 근무 방식의 태업 사태가 일어났다, 이 어느 시점에서 에드워드 히드(Edward Heath) 씨는 나라가 ‘통치불능’ 상태임을 선언했다. 인종 전선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온갖 사태가 전개되었다. 이녹 포웰(Enoch Powell)의 연설은 흑인 이민의 결과 ‘피의 강물’이 길거리에 흘러넘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흑인의 존재는 영국식 삶의 방식에 대한 위협을 상징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시민권을 재규정하고 이민의 흐름을 제한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반아파르트헤이드(anti-apartheid) 운동, 민권운동, ‘블랙 파워’(black power) 운동의 효과로 흑인의 의식은 고양됐다. ‘흑인 정체성’의 긍정에 기반을 두어 저항성을 띠고, 레게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흑인을 표현하는 문화가 번창했다. 흑인 청년 사이에는 ‘라스타’(Rasta) 라스타는 ‘라스타파리’(Rastafari) 혹은 라스타파리안(Rastafarian)으로도 불리며, 1930년대 카리브해 자메이카에서 탄생한 종교운동이자 사회운동이다. 중심적인 권위를 갖춘 조직이 없어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띠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 성서의 독특한 해석을 기반으로 하는 유일신 종교다. 자메이카에서 당시 지배적이던 영국 식민지 문화에 대항해 아프리카인 중심의 이데올로기로 형성되었다. 아프리카를 약속된 시온의 땅이라 믿고 아프리카 귀환 운동을 주장하기도 하고,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선지자 혹은 예수의 재림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밥 말리(Bob Morley)를 비롯해 라스타에서 영감을 받은 레게 음악이 유행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역주 와 ‘자메이카 루드 보이 음악’(rude boy) 루드 보이는 1960년대에 유행한 자메이카 길거리 음악의 한 종류를 말한다. 이 음악은 모드족과 스킨헤드족의 하위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현대 스카 펑크 음악으로도 계승되고 있다.-역주 의 물결이 번졌다. 인종주의적 실천에 대응해 반인종주의 저항운동이 지속적이고 대중적으로 전개되었는데, 특히 경찰이 ‘거동수상자 검문검색법’(sus laws) ‘거동수상자 검문검색법’(sus laws) 조항은 1824년 부랑자법(Vagrancy Act) 4조를 말하는데, ‘거동이 수상한 자’(suspected person)에 대해 검문, 검색, 체포를 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경찰관에게 부여했다.-역주 을 적용해 흑인 청년을 검문 수색하는 데 반대하는 운동, ‘흑인 집단 거류지’ 구역에서 흑인의 삶과 문화가 감시받고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데 대한 저항 운동도 등장했다. 전반적으로 “20세기 최대 규모의 범죄 물결”(p.270)에 대한 병적 집착도 나타났다. 1970년과 1974년 사이에는 사회적 규제가 동의에서 강제로 옮아갔고, 국가는 반사적으로 ‘법’의 행사에 의존했으며, 헤게모니의 전면적인 위기가 시작되었다. 국가는 권위주의적 통치 수단뿐 아니라 “일반 공중이 사회에서 상실되었다고 느끼는 바로 그 ‘방향감각’”(p.315)까지 제공했다. 이 과정은 악몽 구축에 의해 크게 고양되었는데, 바로 산발적인 여러 구역을 하나의 넉넉하고 총괄적이며 모든 변화무쌍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적’으로 위치 규정하는 수법이었다. 대법원장(the Lord Chancellor) 여기서 대법원장은 공식적으로 내각에서 수상보다 서열이 높은 고위직으로 영국에 특유한 직책이다. 이는 원래 상원(House of Lords) 의장과 최고법원 수장 기능, 하급심(Hight Court of Justice) 재판관 등 광범위한 기능을 포괄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2005년 헌정개혁법(Constitutional Reform Act)이 통과되면서 상원의장, 대법원 수장, 하급심 재판관 등의 기능은 별도의 직책으로 이관되고 상징적 지위로 성격이 바뀌었다.-역주 은 온갖 사례를 법과 질서의 주제와 연결시켰는데, “‘젊은 훌리건 집단’에 의한 법원 심리 방해”, 총기 사용 증가, ‘청년 집단’의 치명적인 폭력 구사, “길거리 훌리건”이 경찰을 대상으로 “야간에 가하는 욕설, 모욕, 도발”, “법 체제 자체에 대한 도전”(pp.269-70) 등이 이에 속한다. 포웰은 영국에서 파업에 참가한 교사, “대학을 ‘파괴’하고 도시를 ‘공포에 빠뜨리는’ 학생”, “‘현대적 형태’의 군중의 위력”, 시위,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리켓 투어 기간 동안 반아파르트헤이드 운동의 경기 방해에 정부가 굴복한 사건, “무질서 조성의 성공”, “정부를 ‘전율’에 빠뜨리기”, “북아일랜드 민간정부를 붕괴시킬 뻔했던 사건” 그리고 “‘또 다른 부류’의 ‘가연 물질’(즉 인종) 축적” 등을 지목하면서 이 사례들을 하나의 그림, 즉 “적과 그의 위력”(pp.270-1)으로 [압축해] 규정했다. 〈위기 관리〉는 이처럼 “1960년대 말의 통제 강화가 1970년의 완전히 억압적인 ‘봉쇄’로 이행한 현상”(p.256)을 “법과 질서형 사회”(the Law- and-Order Society)로의 표류 혹은 더 간단히 “‘예외적 국가’(Exceptional State) 지향”(p.268)이라고 불렀다. 이 변화는 “위에서 주도한 ‘법과 질서’ 지향, 법적 장치 강화 … [그리고] 영국의 ‘골칫거리’에 대한 음모론적 해독의 꾸준한 확산이 결합해 발생한 효과”(p.274)였다. 이 변화는 더 이상 동의에 의해 생산될 수 없는 효과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법, 강제와 법적 권력에 의존”(p.273)하게 된 현상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 국가 권력이 억압적 측면을 광범위하게 행사하는 데에 사회가 익숙해지도록 훈련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의 일상화를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정당하고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 국가에겐 ‘전쟁을 벌일’ 의무가 있다며 정당성을 부여했다.”(p.273) 마지막 절에서 이 책은 노상강도 현상에서 늘 환기되곤 했던 주된 인물이나 수사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바로 흑인 청년이다. 위기의 정점에서 한 언론인은 미국과 영국의 흑인 범죄를 비교하면서 “할렘이 핸즈워스에 상륙하고 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에서 인종, 범죄와 폭력을 함축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노상강도’라는 용어는 1972년 다음과 같이 현대 영국의 범죄를 기술하는 데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즉 “우리 경찰에게 이는 공포스러운 새로운 범죄 유형이다.”(p.7) 〈위기 관리〉 집필의 계기가 된 버밍엄 폭행 사건은 1973년에 발생했다. 우리는 이 흑인 노상강도범이란 인물이 갖는 상징적 무게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흑인의 구조적 위치는 어떠했으며, 흑인들의 투쟁과 의식은 어떤 정치적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가? 마지막 장에서는 주장을 더 심층적인 수준으로 끌고 가려 시도했다. 여기서는 노동과 ‘실업’ 그리고 일부 흑인의 생존 전략인 범죄와 ‘협잡질’(hustling)의 위치를 분석했다. 여기서는 흑인의 표현 문화가 상징적 저항을 가동시키는 한 형태로서 수행하는 역할을 살펴보았다. ‘프롤레타리아’ 중 인종적으로 세분화된 하나의 층위로서 흑인 이주민의 계급적 위치에서 어떤 내부적 구분이 이루어지는지, 이 위치가 어떤 상호연계 메커니즘을 통해 재생산되는지도 살펴보았다. 또한 당시 널리 사용되던 룸펜 프롤레타리아(lumpenproletariat) 명제도 검토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시각 내에서 흑인의 위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해 제시된 두 가지 견해를 비교해 보았다. 이 중 하나는 “노동 예비군”이라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흑인이 ‘제1’ 세계와 ‘제3’ 세계의 착취구조에 동시에 편입되어 있는 층위라는 시각이다. 세부사항에서 이 접근방식들은 이미 오래전에 극복됐다. 그러나 이 접근방식들이 근거로 삼은 시각의 시사점까지 완전히 고갈되지는 않았다. 바로 이 부분에서 책은 끝났지만 이야기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1970년대의 위기 후에는 “사회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으로 세계를 흔들어놓은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여사의 정치적 집권이 등장했고, 사회 근간에 대한 ‘대처리즘’(Thatcherism)의 대공세가 뒤를 이었다. 대처리즘은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 강한 국가와 자유 시장의 추진력을 동시에 갖춘 모순된 존재였다. 이처럼 이중적 성격으로 각인된 원형은 그 후 여러 변형된 형태로 영국 사회와 정치를 지배했다(이는 보수당이든, 신노동당이든, 연립정권에서든 마찬가지였다). 대처리즘 등장이 역사적 전환점이었다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대처리즘을 늘 보던 정치적 대세 이동으로만 규정했다. 낡은 국면이 해체되는 흉측한 소리를 들었고, 위기가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위기의 대중주의적 뿌리와 장기적 헤게모니 프로젝트를 이해한다면 현상을 달리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위기 관리〉가 제기한 마지막 주장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수많은 위대한 사회학적 분석 작업과 달리 이 책은 실제로 그리고 전반적으로는 정확한 예측력을 발휘했다. 다른 게 아니라 이 점만으로도 이 책은 오늘날 여전히 읽고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이 책이 현재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한 가지 질문은 두 가지 국면이 어떤 중요한 차이가 있는가이다. 우리 분석에서 확인한 사회 통제의 기본적 모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일종의 ‘예외적 국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가? 혹은 이후에 등장한 신자유주의 ‘시장 국가’는 존재양식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자유시장과 ‘권위주의적 대중주의’(authoritarian populist)의 추진력이 번갈아 힘을 발휘하면서 지속되는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 책은 1978년에 출판되었기에 아마 이 질문을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책의 재간행이 단지 오랜 질문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의 제기를 유발하게 된다면, 제2판을 내기로 한 결정은 옳았음이 밝혀질 것이다. 스튜어트 홀, 채스 크리처, 토니 제퍼슨, 존 클라크, 브라이언 로버츠 역자의 말 유명하지만 의외로 잘 읽지 않은 책이 간혹 있다. 문화연구 분야에서는 〈위기 관리〉가 그런 책이 아닌가 한다. 내용이나 문장 자체가 복합하고 난해할 뿐 아니라, ‘국면 분석’이란 연구방법의 특성 때문에 1950- 70년대 영국의 구체적 상황을 잘 모르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량이 상당히 많고 시장성이 높지 않아 일반 출판사에서 선뜻 소화하기 쉽지 않은 탓에 그동안 번역서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연구재단의 명저번역 지원사업 덕분에 문화연구의 지성사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오랜 숙제 하나를 해결하게 되어 마음이 홀가분하다. 번역은 반역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번역자의 노력과 창의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책은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설켜 읽기 좋게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독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일단 길고 복잡한 문장을 짧게 나누어 읽기 쉽게 바꾸었다. 이 저술은 이론서가 아니다. ‘국면 분석’이라는 접근방식이 시사하듯이 이론에 근거하기는 하지만 이론은 배후에 물러서 있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세밀한 검토와 분석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수많은 사건과 인명, 지명, 일화가 역사적 맥락과 얽혀 있어 이에 대한 해설이 꼭 필요한 부분에는 200여 군데 역주를 붙였다. 또한 구체적인 맥락 분석에 주력하다 보니 책에는 수많은 고유명사가 등장하는데, 비슷한 이름들을 혼동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완전하게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막상 번역을 해놓고 보니 책 분량이 예상보다 많아졌다. 그래서 편의상 1부와 2부는 1권으로, 3부와 4부는 2권으로 나누어 출판하게 됐다. 문화연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번역을 시작했는데, 정작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번역자인 듯하다. 번역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 어떤 이론 공부든지 고전을 읽는 과정은 필수적이지만, 특히 이론과 현실 분석이 어우러진 책이라면 한국 현실에 비추어 이해하는 데 좀 더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1970년대 영국 사회의 맥락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 번역이 그러한 방향으로 기여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임영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