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01 묘 13 - 선산 / 다시 갈 수 없는 곳 / 추모공원
02 도장(道場) 23 - 다잡아 주던 / 관계와 조화 / 도복을 개면서 03 강가 35 - 기벽 / 노지 / 순례 04 서재 47 - 지적인 로망 / 사유의 거울 / 내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화단 가꾸기 05 고향 59 - 신기루 / 돌아갈 수 없는 / 그리움이라는 사치 / 조심히, 그리고 건강히 06 작업실 73 - 집 아닌 집 / ‘돈’부리 영감 / 자유의 힘 / 응원의 공간 07 병원 89 - 비둘기 / 사고의 추억 / 고통에 대하여 / 실외 흡연구역 08 산 103 - 유성우 / 산이 가르쳐 준 것 / 지팡이 깎듯이 09 차실(茶室) 115 - 창고로부터 / 부끄러움 / 물을 다루는 방식 / 줄 것이 있는 10 집필실 129 - 매미 / 우화 / 호리병박 / 증평의 밤 / 알 수도 알 필요도 11 공방 141 - 맹가미 / 미니멀리즘으로부터 / 도자기 / 미리 행복한 꿈 12 지대방 155 - 서울, 첫 / 성지 / 선방의 불상처럼 / 오래 남아 있는 것 13 성당 167 - 크리스마스 선물 / 빨마 성물부 / 다시 만날 때까지 14 동해 179 - 강릉 / 정동진 / 경포대 15 자전거길 189 - 남한강 / 터널 / 더 큰 고독 속으로 / 좀 더 고귀하게 16 교실 205 - 해서도, 안 해서도 / 모름의 방식 / 나쁜 선생, 나쁜 시인 / 서문 17 이곳 217 - 에필로그 |
류성훈의 다른 상품
|
노지에 앉아, 불을 피우고 간이의자에 앉아 강물 쪽으로 멍하니 시선을 풀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 특히 자연물 중의 어떤 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는 행위를 요즘 말로 ‘멍때린다’고 하고 그 말은 대상과 합쳐져 ‘물멍’, ‘불멍’ 등의 응용된 어휘가 많이 생기기도 한다. 이게 다분히 가볍고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있기를 시도하기란 너무나도 어렵다. 예컨대 참선, 묵상 같은 조금 더 고결한 느낌의 단어들도, 실은 ‘생각하지 않는 법을 연습하기’ 외의 별다른 의미가 아니다. 고통과 여러 문제들에 미쳐 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멍때림’이 필요하다.
--- p.38 나는 얼마만큼이나 진실하게 지성적 행보를 쫓아왔는지, 그리고 내가 쓰는 글들은 얼마만큼 진실한 책으로 신뢰받을 수 있을지. 늘 미완성인 나와 내 서재의 실존을 향유하며 나는 이 과거형의 장소를 통해 끝없이 사유할 것이다. 또한 한없이 약하고 보잘것없는 내 목소리나마, 그들의 슬픔과 고뇌에 실낱같은 목소리에 보태기 위해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육체는 늘 야만화, 뇌는 늘 문명화할 수 있는 지성적 독려를, 그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실존적 진실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 p.56 해안이 사라지고 있다. 이곳에 방을 얻었으면 좋겠어,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안이란 원래 사라져 가는 거야, 같은 얘기를 함부로 떠들 수 있던 세월들이 가슴에 모래알만큼 많은 방을 비운 지금. 떠날 때를 미리 알려 주지 않는 인연처럼 그들은 다른 언어로 수차례 말해 왔겠지만 듣지 않은 것도, 망연한 것도, 보낸 것도 우리였다. 모두 보이지 않게 천천히 행해질 뿐. 아무도 그 속도를 볼 눈이 없었고, 그런 게 죄가 될 순 없지만 자랑일 수도 없어야 옳았다. --- p.181 …언젠가는, 언젠가는 언제일까. 기억하는 이는 추억하는 이 앞에서 늘 약자였고, 나는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못했다. 이것을 나는 새로운 슬픔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픈 병보다 나쁜 것은 아프고 싶은 병. 너는 영원히 낫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방식을 가졌지만 방법이 없었다. 멀찍이 치워진 파라솔처럼, 접힌 해안이 다시 펼쳐지는 일이 없듯이. 살려고도, 죽으려고도 가던 이들은 다시 가지 않는 곳. 그렇게 바다에게도 사람에게도 천천히 버려지는 해안이, 동해에는 있다. --- p.184 |
|
장소에 대한 새로운 시적 사유
기쁨에서 슬픔까지, 후회에서 감탄까지의 심상지리학 저자는 고향, 동해, 강가, 서재, 작업실, 집필실, 교실, 공방, 병원, 성당, 자전거길 등에 대한 개별적이고 특별한 추억과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장소를 어떻게 느끼는지, 특정한 장소에 대한 고유한 정체성과 분위기가 어떻게 부여되는지를 고찰한다. 또한 그 장소가 공간적으로 우리를 어떻게 구속하는지, 장소에 대한 애착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어떻게 애틋한 장소가 될 수 있는지 시인의 통찰력과 경험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시인의 감각으로 동일에 장소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의 온도차가 무엇 때문인지, 왜 우리는 자신만의 장소를 갈망하는지, 장소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힘이 되는지에 대한 사유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사유의 전개 방식은 시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도장이나 서재, 집필실, 교실 등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만나야 하는 공간부터 산, 동해, 자전거길, 고향 등 폭넓은 관점의 공간까지 다각도로 접근하면서 추억과 사유를 펼쳐 보인다.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공간 속 아름다움과 자신의 추억을 독자들이 함께 느끼고, 나아가 높아진 안목으로 삶을 풍요롭고 만들 수 있도록 함께 해준다. ■ 작가의 말 이 책에서의 장소들은 그런 우리의 짧은 삶 속에서 느끼고 어울리고 위로받고 보듬을 수 있는 방식으로서 우리가 모르는, 그리고 앞으로도 모를 시간과 대상을 아우를 방법에 대한 개인적 고민과 그 우매함으로서 현전합니다. 저는 그 우매한 과정들에 대한 개인적 사랑에 대한 기록으로서 『사물들』에 이어 이 책을 내어놓습니다. 본 졸문들은 개인적인 삶 속 보잘것없는 몇 가지 기록에 불과합니다. 동시에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보편적 당신에게 보내는, 지리멸렬한 삶들의 흔한 질료들과 끊임없이, 그리고 무료하게 얽히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나, 그리고 나의 것들에 대해 사유할지에 대한 몇 가지 질료이자 글쓰기에 함께할 행복한 고민으로서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2023년 여름 당신이 서 있는 모든 곳에서 류성훈 |
|
공간은 텅 빈 곳이다. 근대인은 공간을 무한하게 펼쳐진 균질적인 허공이라고 상상했다. 공간은 종착지(목적)도 없고 출발지(동기)도 없는 삼차원의 지옥이다. 거기 사람이 서서 앞뒤와 좌우와 위아래를 둘러볼 때 비로소 공간은 장소가 된다. 장소가 있다는 것은 ‘나’가 거기에 있다는 뜻이지만, 반드시 거기에는 ‘너’가 와야 한다. 네가 없으면 장소는 맞세운 거울처럼 나만을 되비추는 동일성의 연옥으로 바뀐다. 너와 나 사이에서 유한한 삶이, 하지만 유한해서 아름다운 그런 삶이 시작된다. 류성훈의 이 책은 그런 장소들 중 몇몇을 독자에게 펼쳐 보인다. 이곳에는 기쁨에서 슬픔까지, 후회에서 감탄까지 연속되는 감정의 환등상이 있고, 유년과 청년과 중년을 겹쳐 읽는 기억의 독순술이 있으며, 말한 것과 말하고 싶은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서로의 배음을 이루는 욕망의 복화술이 있다. 시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한 재능있는 시인의 시작 노트를 읽는 일이 될 것이며, 삶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생활과 생명과 생각이 태어나고 영위되는 현장을 경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지리학으로 세상을 정복해야 할 영토로 만들고 정치가들이 지정학으로 세상을 싸움터로 만드는 동안, 이 시인은 심상지리학으로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었다 - 권혁웅 (시인,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