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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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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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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운명을 막을 힘도, 바꿀 능력도 없어.’
그렇다면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내 살길을 도모해야 한다. 난 무릎 꿇은 남편에게 다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병약한 남편은 싫어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 건 미안해. 그래도 난 살고 싶어. 살려고 널 버리는 거야. 비에 젖은 남편의 모습이 더 안쓰럽게만 보였다. 심장이 바늘로 쑤신 것처럼 콕콕 아려 온다. 떨리는 입술을 계속 움직였다. “돈 없는 빈껍데기 백작인 것도 싫어. 노아가 가진 게 뭐가 있어요? 백작 위라는 그 고명한 작위 빼고 뭐가 남아?” “…….” “당신 가문, 레니스터는 망한 지 오래야. 백작이란 것도 우습지 않아?” 노아가 상처받음을 알면서도 비수를 꽂았다. 그래야 남편이 날 붙잡지 않을 테니까. 탁. 품에서 이혼 서류와 건물 명의서가 든 가죽 케이스를 꺼내 노아의 앞에 던졌다. 축축한 진흙 바닥에 가죽 케이스가 처참히 뒹굴었다. “여기 위자료예요. 못해도 30년은 먹고살 수 있어요.” 대답 없는 노아에게 난 계속 말했다. “자존심 세우지 말고 그냥 받아요. 아버지 소유였던 수도 상가 건물 하나를 빼돌려 당신 명의로 해 둔 거니까.” 노아는 침묵했다. 분명 기뻐할 일인데, 그는 텅 빈 눈동자로 가죽 케이스를 볼 뿐이었다. “저 골칫덩어리 저택만 팔면 굶진 않을 거예요. 전처럼 순진하게 아무나 믿지 말고 건물 명의만 잘 지켜요.” 그러려고 친부에게서 뺨을 맞아 가며 건물을 빼돌린 거니까. 고개를 떨군 노아가 날 불렀다. “솔리아.” 언제 울었느냐는 듯 나른하고도 단정한 목소리로. “내가 능력이 없어서 떠나는 건가요? 병약하고 무능력해서?” “……맞아요.” 비를 그대로 맞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 없지만 병약한 남편과 정을 떼야만 했다. “만약…… 내게 능력이 생기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노아.” 난 단호히 말하며 팔에 걸쳤던 싸구려 암색 코트를 들었다. 겨울에 입을 것이 없어 급히 챙긴 거였다. 바닥에 뒀던 몇 없는 짐도 챙겼다. 곧 있으면 상업 마차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땐 정말로 이별이다. 고개를 든 노아가 떠나가려는 날 물끄러미 봤다. 그를 볼 자신이 없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말했다. “이혼해요, 우리.” 이번에도 노아는 답하지 않았다. “이혼은…….” 안 된다고 할 것 같았던 노아가 별안간 수긍했다. 일어난 그가 내게 느릿하게 다가왔다. 그의 구둣발이 가죽 케이스를 지나쳤다. 그때 노아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나를 버린 걸 후회했으면 좋겠어요.” “후회 따위 안 해요.” “끝까지 잔인하게 구네요, 솔리아.” 노아가 허락도 없이 날 끌어안았다. 못 떠나게 막으며 그가 낮게 속삭였다. “날 떠나면 불행해질 텐데….” 예민한 귓가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노아의 품에 갇힌 채 난 말했다. “……착각 마. 불행할 일 없어요. 내 인생은 노아가 없어야 행복해질 테니까.”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