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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14 3부. 드웨인 플라워 1 2 3 4 5 Epilogue (1) 다섯 번째 열병의 이름 Epilogue (2) 흔적 Epilogue (3) 가문의 이름 Epilogue (4) 보상 Epilogue (5) 그림자 Epilogue (6) 빛의 땅 Epilogue (7) 끝나지 않은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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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나가 목적지로 지정한 곳은 로하튼 백작가 인근의 야시장이었다. 제이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키로나를 보았다.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드는 솜씨가 수상할 정도로 심상치 않았다. 아무리 봐도 몰래 여러 번 나와 본 눈치였다.
“혹시 저 몰래…….” “응, 젤다 데리고 자주 나왔어. 넌 보나 마나 밤공기가 차니 내가 기침을 하니 하면서 잔소리할 테니까. 근데 야시장은 처음이야. 4년 전에 너랑 한 번 갔다 온 후로.” “공주님.” 그의 부름에도 키로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알아, 위험한 거. 근데 나도 바람 정도는 쐬어야지. 게다가 네가 지금 위험한 행동 하는 걸로 나한테 뭐라고 할 입장이야?” “저랑 공주님은 다릅니다.” “뭐가? 목숨의 무게가?” 제이드는 키로나가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늘 모순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누구보다 특별한 신의 후예이며 살기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으면서, 정작 그 존귀한 혈통을 위해 무언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순간이면 움직이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목숨을 서슴없이 내놓는 쪽이었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키로나는 그 침묵을 다른 쪽으로 해석한 듯 엉뚱한 말을 했다. “장례 치러 준다는 이야기 하니까 기분 나빠? 근데 어떡해. 네 고집을 내가 아는데. 내가 아무리 말려도, 너는 결국 나가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장례식을 치러 주겠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제이드는 키로나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기세로 보아 화가 난 것도, 씁쓸한 것도, 우울한 것도 같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확실히 결정지은 사람처럼 얼마쯤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이제 나를 포기하고 죄책감을 좀 내려놓으신 건가. 서운함이 느껴지기는커녕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더 이상 키로나가 그를 내보내지 않겠다 우기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때 후드를 덮어쓴 키로나가 그에게 팔짱을 꼈다. 제이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딱하게 굳은 채 고개만 간신히 숙여 키로나를 내려다보았다. “늘 뒤에서만 따라오다가 옆으로 오니까 어색해?” “공주님, 이건 좀…….” “너무 연인 같지?” 제이드는 제풀에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키로나가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없이 제 몸 쪽으로 더 바짝 잡아당겼다. “그냥 모른 척하고 즐겨. 공주님이 좋아해 주는 게 쉽게 찾아오는 기회인 것 같아? 이번 생이든 다음 생이든.” 키로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자신은 세상에 못 가져 본 게 별로 없다고 말할 때와 비슷한 눈빛이었다. 제이드는 몇 번 키로나를 떼어 내려 애써 봤다가 포기했다. 진심이 담기지 않으니 손에 힘이 실리지도 않았다. “별로 가능성이 없는 일이긴 합니다.” “그렇지? 기적 같은 일이지?” 제이드는 흐리게 웃었다. 키로나의 물음에 대답한 게 아니었다. 의지할 데가 없는 공주님이 곁에 있는 호위에게 잠깐 정을 주는 것보다 기사가 주제를 모르고 진심으로 공주님을 탐내는 게 훨씬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사랑 아니겠나. 그러니 어려운 걸로 따지자면 그의 사랑이 더했다. 하긴 이클립스가 하는 사랑이란 게 다 그랬다. 남들도 다 하는 안온한 사랑에는 몸에 흐르는 피가 반응하지 않는 모양이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상대를, 사랑해서는 안 될 때, 그래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게 그들의 특기였다. 그러니 사랑에 광기가 서릴 수밖에. “여자랑 한번 나가서 놀아 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 그러니까 내가 도와주는 거야. 네가 맺힌 거 없이 저승에 갈 수 있게.” “그게 제 장례 준비입니까?” “후회할 일이 남으면 안 되잖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제 저를 좀 포기하신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요.” 마지막이라는 말은 유혹적이었다. 그걸 핑계 삼아 뭐든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이드는 그래서 못 이기는 척 키로나를 팔에 달고 사심을 채웠다. 정말로 그가 공주의 정부라도 된 것처럼. “오늘은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마차에 오르자마자 키로나가 그에게 선언했다. “그러니까 너 하고 싶은 것도 말해 봐. 솔직하게.” 지난 4년간, 키로나가 솔직하게 답하라는 말에 진짜 솔직하게 답했다면 그는 진작 마론이나 마리 로웰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다. 키로나는 그가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도 있었다. 단지 그게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일인 것뿐이지. 평소 같으면 없다고 얼버무렸을 것 같은데, ‘마지막’이라는 마법 같은 말 때문인지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 한 자락을 내보이고 말았다. 그는 키로나의 입버릇을 흉내 내어 말했다. “세상에는 절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있긴 있다는 거네?” “안 되는 겁니다.” “나는 공주야. 나한테 안 되는 건 없어. 말해.” 제이드는 대답하지 못하고 마차 창밖만 응시했다. 노을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거리에 매달린 마법등이 하나둘씩 별처럼 켜지는 중이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