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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숙명
2장 생존 3장 천적 4장 들불 5장 사선(死線)을 넘어 6장 전사의 사랑 7장 망각의 풀밭 8장 어머니의 자리 9장 킬리만자로 수행단 10장 음차위 할망구 11장 행군 12장 해를 좇아 동쪽으로 13장 세상의 끝, 킬리만자로 14장 대정령(大精靈) 15장 절망 16장 귀환 17장 불멸과 소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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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의 법칙은 간단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이 역설이야말로 이 평원의 모든 존재가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들이 먹다 버린 뼛조각 하나도 챙길 수 없었다.
--- p.31 “도망쳐! 외눈박이야!” 누사의 비명이 채 잦아들기 전에 왼편 덤불에서 사자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튀어 올랐다. 그러고는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곧장 형을 향했다. 뜨악해서 비명도 못 지르는 상황이었는데, 그러나 형은 순식간에 몸을 오른쪽으로 누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 바람에 외눈박이의 발톱은 아슬아슬하게 형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털끝 하나의 차이로 놈은 허방을 휘젓고는 제풀에 나뒹굴었다. --- p.46 “상대를 막판까지 몰아붙일 힘과 계략이 없으면 싸움을 시작하지 마라!”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씩 딱딱 분지르듯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아버지의 옆자리로 돌아갔다. 짓무른 시신에서 흘러나오는 진물로 아버지의 자리는 흥건했는데, 두 분은 누렇게 탈색된 평원을 배경으로 다시 오래된 석상처럼 엎드려 있었다. --- p.100 “결국 자기들이 무사하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제물로 삼아 그 난리를 친 건가? 그 위대하다는 음제와 저 강성한 병력을 가진 아스카리 집안의 행태가 겨우 이 정도인가?” 형이 뱉어낸 긴 한숨에 모두의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다. --- p.111 “니, 아까 보이까네 영락없는 모씸바더래이. 하기사 그 피가 어데 가겠노?” 할망구는 떠나는 마당에도 여전히 대정령 타령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너머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온 어른다웠다. 그래서 마침내 몸도 그 너머로 가려는 모양이었다. “이만큼 컸으믄 됐대이. 그동안 내를 델꼬 다니느라 고생했다. 어디 함 안아보자.” --- p.247 “아, 그렇군요. 제가 씸바로 태어났지만, 응두구님처럼 풀을 뜯는 이들이 아니었으면 한순간도 살아남기 어렵지요. 그래서 이 평원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만…….” “다씸바님과 저의 인연이 이후로도 내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되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이 세렝게티의 삶에 대해서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하게 웃었다. --- p.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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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빨라야 살 수 있는 사자와 한 걸음 더 빨라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잔혹하되 경이로운 세렝게티, 그곳이 지금 우리 삶에 큰 울림을 던진다! 오래전, 어머니는 평원에 빼곡한 사냥감들을 가리키며 우리 종족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저들은 우리보다 한 걸음만 빨리 달리면 살 수 있다. 우리는 저들보다 한 걸음이 더 빨라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지. 이 한 걸음을 위해서 저들은 저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쓰는 거다.” - 본문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마사이마라 평원, 마라강, 킬리만자로 등을 배경으로 천적 관계인 사자(육식동물)와 누(초식동물)의 ‘본능과 생존, 삶과 죽음, 권력과 정치, 우정과 갈등, 애정과 이별’을 그려낸 기발한 소재의 소설이 출간되어 독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인간 중심의 흔하고 상투적인 서사 구조에 식상한 독자라면 야생의 약육강식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동물의 세계를 다룬 것이 아니다. 천적 관계인 사자와 누를 의인화함으로써 그들에게 닥친 운명과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존재 방식을 아프리카의 세렝게티를 소설 공간으로 설정하여 이국적인 배경과 함께 독자의 상상력이 최대한 확장되도록 구성하였다. 전체적으로는 천적 관계에 속한 각 주인공의 영웅적 서사가 큰 뼈대이지만 여기에 자연과 운명, 삶과 죽음, 존재의 문제 등 무거운 주제가 세렝게티의 장대한 풍광 묘사와 잘 어우러져 있다. 각 장마다 사자와 누의 서사를 교차하고, 두 주인공이 조우하는 접점을 만들어서 극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치밀한 구성력에서는 저자의 문학적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무한의 생존투쟁 현장이 치밀하고 팽팽하게 묘사된 문장력은 독자를 단숨에 대자연 아프리카 초원 한복판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소리 없는 전쟁터 정치판에서 27년 동안 숙성시켜 더 깊어진 통찰! “잡아먹는 자의 감사와 자비, 먹히는 자의 용서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을 그려내고 싶었다.” 저자 허철웅이 세렝게티의 이국적인 배경과 동물 다큐 중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천적 관계인 사자와 누를 주인공으로 장편을 써보겠다고 처음 달려든 게 1996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자마자 작정하고 매달렸음에도 27년 동안 헉헉대다가 5번을 뜯어고치는 산고 끝에 소설 『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로 돌아온 그의 일성은 “독자들이 보여줄 시선이 두렵고 낯설지만 코끝에 전해지는 공기는 참 상쾌하다.”였다. 많은 뉘앙스가 묻어 있는 이 말은 그의 특이한 이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 등단하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꿈꾸던 그는 팔자에도 없는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약육강식의 끝판왕인 여의도에 터전을 잡아야 했다. 이후 정치선거 기획사, 독립 프리랜서로 30여 차례의 각종 선거 현장을 누비며 서식했다. 정치인들끼리 다투다 불쑥,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질 때, 글 대신 정치판에서 밥을 먹고 살고 있는 그로서는 “지들이 소설을 알간?” 하고 속을 삭여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여의도는 삶과 죽음, 권력과 정치, 우정과 갈등, 애정과 이별 등이 펼쳐지는 리얼한 세렝게티였다. 드넓은 평원에서 풀을 뜯는 초식동물의 세계는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잡아먹히는 희생이 뒤따라야 살 수 있는 그들의 생존은 그래서 상식 밖의 정치가 작동한다. 다른 목숨을 빼앗아야 살아갈 수 있는 육식동물의 세계는 힘에 의해 작동하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가혹하다. 이것이 자연이 만들어놓은 ‘죽거나 죽이거나’ 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운명의 사슬이라 할지라도 저자는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서로 존중하는 세상이 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이 소설에 녹여내고 싶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한마디로 ‘잡아먹는 자의 감사와 자비, 먹히는 자의 용서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모두가 포식자들의 날카로운 발톱에서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허투루 소멸하지 않고 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세렝게티에서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이 단순하고 간단한 절차를 새로 만들기 위해 삶을 송두리째 바친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 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