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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전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양장
백석
스타북스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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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2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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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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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1. 사슴

1 얼룩소 새끼의 영각
가즈랑집 | 여우난골족 | 고방 | 모닥불 | 고야 | 오리 망아지 토끼

2 돌덜구의 물
초동일 | 하답 | 주막 | 적경 | 미명계 | 성외 | 추일산조 | 광원 | 흰밤

3 노루
청시 | 산비 | 쓸쓸한 길 | 자류 | 머루밤 | 여승 | 수라 | 비 | 노루

4 국수당 넘어
절간의 소 이야기 | 통영 | 오금덩이라는 곳 | 시기의 바다 | 정주성 | 창의문외 | 정문촌 | 여우난골 | 삼방

2. 그 외 해방 이전의 시

산지 | 나와 지렝이 | 통영 ─남행시초 | 오리 | 연자간 | 황일 | 탕약 | 이두국주가도 | 창원도 ─남행시초 1 | 통영 ─남행시초 2 | 고성가도 ─남행시초 3 | 삼천포 ─남행시초 4 | 함주시초 | ─ 북관 | ─ 노루 | ─ 고사 | ─ 선우사 | ─ 산곡 | 바다 | 추야일경 | 산중음 | ─ 산숙 | ─ 향악 | ─ 야반 | ─ 백화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석양 | 고향 | 절망 | 외갓집 | 개 | 내가 생각하는 것은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물닭의 소리 | ─ 삼호 | ─ 물계리 | ─ 대산동 | ─ 남향 | ─ 야우소회 | ─ 꼴두기 | 가무래기의 낙 | 멧새소리 | 박각시 오는 저녁 |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 동뇨부 | 안동 | 함남도안 | 구장로 ─서행시초 1 | 북신 ─서행시초 2 | 팔원 ─서행시초 3 | 월림장 ─서행시초 4 | 목구 | 수박씨, 호박씨 | 북방에서 ─정현웅에게 | 허준 | 『호박꽃 초롱』 서시 | 귀농 | 국수 | 흰 바람벽이 있어 | 촌에서 온 아이 | 조당에서 | 두보나 이백같이 | 당나귀

3. 해방 이후의 시

산 | 적막강산 |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칠월백중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감자 | 계월향 사당 | 등고지 | 제3인공위성 | 이른 봄 | 공무려인숙 | 갓나물 | 공동식당 | 축복 |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 | 돈사의 불 | 눈 | 전별 | 탑이 서는 거리 | 손’벽을 침은 | 돌아온 사람 | 석탄이 하는 말 | 강철 장수 | 사회주의 바다 | 조국의 바다여

백석 연보

저자 소개 1

BAEK SEOK,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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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36g | 135*197*20mm
ISBN13
9791157956999

책 속으로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 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게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여우난골족(族)」중에서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여승(女僧)」중에서

녯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港口)의 처녀들에겐 녯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통영(統營)」중에서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明井)골은 산(山)을 넘어 동백(冬柏)나무 푸르른 감로(甘露) 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冬柏)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女人)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柏)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여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통영(統營) ─ 남행시초(南行詩抄)」중에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중에서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흰 바람벽이 있어」중에서

출판사 리뷰

윤동주가 시집을 구하지 못해 필사까지 하면서 닮고 싶었던 시인

이름 앞에 유일하게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두 명 시인이 있다. 백석과 이상. 이상이 형태적으로 기존의 시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면 백석은 언어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시를 창조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시인이다. 어떤 시가 더 창의적이냐고 묻는다면 이상이겠지만, 어떤 시가 더 시적이냐고 묻는다면 백석이라고 답하겠다.

백석은 6개 국어에 능통하였으며 독일어, 영어, 러시아어는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그의 시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던 수많은 단어를 사전 속에서 발굴하여 사용함으로써 우리말 전반의 지평을 넓힌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임화, 황순원, 윤동주와 더불어 문학계 F4 중 한 명이었던 백석 시인의 별명은 모던 보이(Modern boy)였다. 그때 세련된 남성들을 모두 그렇게 불렀다. 1910년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183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는 어디를 가나 눈길을 끌었다고. 이런 옷차림은 당시 인구 5만이 채 되지 않는 함흥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광경이었을 거다.

백석 시집 『사슴』은 1936년 1월 20일 국판 69쪽의 시집으로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자가 출판으로 한정판 100부만 찍은 시집이다. 값은 2원이었으며 시집 하단에 저작 겸 발행자 백석(著作兼 發行者 白石)이라고 적혀 있다. 시집의 수량이 적은 탓에 윤동주 시인은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 가서 노트에 백석의 시를 직접 필사해 읽었다고 한다.

윤동주는 그 필사본을 항상 가슴에 끼고 다니며 읽을 정도로 좋아했으며 동생인 윤일주에게 편지를 보내 『사슴』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별 헤는 밤」은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의 발상 자체부터 표현 방식까지 무척 유사한데 특히 시에 등장하는 시어 중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외국 시인이 공통으로 들어간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윤동주라면, 시인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은 백석이라고 한다.

시밖에 모르는 백석이 시도 쓰지 못하고 농사일도 제대로 못했다

북한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없었던 백석은 평생을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부인 이 씨(이윤희) 말에 따르면 백석은 글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던지라 농사일을 제대로 못 해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고 한다. 도리깨질이 서툴러 동네 처녀애들에게 배웠을 정도로 농사일에 서툰 사람이었으나 하루에 한 사람을 열 번 만나도 가슴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며 지나갈 정도로 품성이 겸손해 삼수군에 사람 가운데 백석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백석의 정확한 사망 일자와 관련해 1995년 1월 사망했다는 설도 제기됐으나 1996년 1월 7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김재용 원광대 교수가 중국 옌볜 조선족에게 들었다며 북한에 거주하는 백석의 유족들이 조선족 지인에게 직접 전한 소식이라고 밝혔다. 백석은 압록강 인근 양강도 삼수군에서 농사일을 하며 문학도를 양성하다 노환으로 1996년 1월 7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양성한 문학도들 다수가 중앙 문단에서 크게 인정받았다고 한다. 백석의 집에는 그의 창작 노트 등 그에 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남 백화제(白華濟) 씨의 말에 따르면 백석이 생존 시 남겼던 원고 모두를 휴지로 써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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