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집의 미래
오래된 집을 순례하다
베스트
인문/교양 top100 1주
가격
19,000
10 17,100
YES포인트?
9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카드뉴스0
카드뉴스1
카드뉴스2
카드뉴스3
카드뉴스4
카드뉴스5
카드뉴스6
카드뉴스7
카드뉴스8
카드뉴스9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 7

제1부 한국의 옛집

제1장 이야기를 담다

산과 하늘처럼 변하지 않는 집 : 산천재
마음으로 도를 깨닫다 · 19 제일 큰 집이자 좋은 집 · 23 세상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다 · 27
세상의 중심이 되는 집 : 선교장
위계가 없고 기능도 없다 · 31 모든 땅이 명당이다 · 34 진정한 의미의 대가족을 이루다 · 39
서로를 배려하는 집 : 김명관 고택
호남의 풍족한 들판을 닮다 · 43 다양한 공간의 조화로운 구성 · 46 시어머니 영역과 며느리 영역의 균형감 · 52
권력의 상징이 된 집 : 운현궁
야심가이자 영리한 정치가 · 56 몰락해간 조선의 두 주인공 · 60 집이지만 집이 아닌 곳 · 63

제2장 생각을 이어가다

스승과 제자의 집 : 임리정과 팔괘정
꽃이 피고 지듯 사람도 피고 지다 · 69 시대를 설계하고 시공하다 · 72 예학자의 삶을 담다 · 76
존중하며 공부하는 집 : 소수서원
학교와 군대와 감옥은 같다 · 81 성리학을 잇고 후학을 양성하다 · 84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 · 88
반듯하고 삼가는 집 : 병산서원과 도산서원
선비처럼 반듯하고 엄격하다 · 93 몸과 마음을 삼가다 · 97 인간으로서 완성되어가는 과정 · 101
유쾌하고 인간적인 집 : 도동서원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이상적인 국가 · 104 성리학적인 이상세계를 꿈꾸다 · 108 아주 정연한 좌우 대칭의 공간 · 111

제3장 조화를 이루다

물 위에 앉은 집 : 남간정사
고집스럽고 타협을 모르는 정치가 · 117 만화경 같은 세상의 풍경 · 121 자연과 집의 조화 · 125
그림자가 쉬는 집 : 소쇄원과 식영정
아름다운 풍경과 문학적 향기를 담다 · 129 시작과 끝의 존재적 순환 · 132 한 발 물러서 있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다 · 136
감각을 뛰어넘는 집 : 종묘
움직이는 것도, 정지해 있는 것도 아닌 · 141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 · 145 모든 소리와 생각을 압도하다 · 148
왕이 사는 집 : 경복궁
국가의 상징인 궁궐 · 153 단정하고 품위 있는 집 · 156 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는 이유 · 160

제2부 한국의 사찰

제1장 처음으로 돌아가다

그물같이 긴밀하게 상생하다 : 화엄사
서로 어울리는 경지 · 167 수많은 절을 품은 지리산 · 171 모든 것의 경계가 사라지다 · 175
없음으로 가득한 존재 : 통도사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 179 모든 형상은 모양이 없다 · 184 석가모니도 없고 미륵불도 없다 · 186
티끌에도 세계가 있다 : 해인사
모든 것이 곧 하나다 · 191 스님들의 기상이 넘치는 예불 · 194 화엄의 정신이 깃들다 · 197
부처의 세상을 함께 만들다 : 부석사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 202 천상의 소리처럼 황홀하다 · 206 성과 속이 함께 있다 · 209

제2장 미래를 보다

존재하는 것은 순환한다 : 내소사
시작이 끝이 되다 · 215 모든 차원이 서로 물려 있다 · 219 맞물리는 공간의 구조 · 221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다 : 선운사
4월의 동백꽃을 보러 갔다 · 226 금강석처럼 견고하고 자유롭다 · 229 중생의 자리에서 부처의 자리로 · 233
모든 것을 품어주다 : 실상사
어머니 같은 깊은 산 · 238 천왕봉은 쉽게 만날 수 없다 · 242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 245
창조의 영감을 얻다 : 무위사
바람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 250 진리의 전당에 들어서다 · 253 여행을 통해 배우는 건축 · 257

제3장 경계를 넘나들다

그곳에 깨달음이 있다 : 기원정사와 황룡사지
비틀스와 동양의 정신 · 263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 · 268 비어 있음으로 가득 차다 · 271
사라진 것을 기억하다 : 진전사지와 대동사지
폐허가 들려주는 이야기 · 275 크게 비어 있다 · 279 천년을 비추는 빛 · 282
인간이 짓고 시간이 완성하다 : 거돈사지와 흥법사지와 법천사지
아름다운 시간의 흔적 · 286 도시의 풍경을 구경하는 여행 · 290 시간의 성찬을 즐기다 · 293
영원한 현재를 살다 : 미륵사지와 굴산사지
시간은 흘러간다 · 297 시간을 지워버리다 · 301 과거를 더듬는 시간의 문 · 304

주 · 308

저자 소개 2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4년 ‘루치아의 뜰’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리사랑상을,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공간을 탐하다』, 『건축탐구 집』, 『도시 인문학』,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등이 있다.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고, 최근 ‘이야기로 집을 짓다(이집)’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금산주택’으로 2011년 공간디자인대상,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제따와나 선원’으로 2020년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건축탐구 집』,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도시 인문학』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사람을 살리는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등 15권의 저서가 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건축칼럼을 집필 중이다. 또한 EBS 〈건축탐구-집〉에 프리젠터로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금산주택(House in Geumsan)〉 〈루치아의 뜰(Lucia's earth)〉, 〈까사 가이아(CASA GAIA〉, 〈제따와나 선원(Buddhist temple ‘Jetavana’〉 등이 있다.

임형남의 다른 상품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4년 ‘루치아의 뜰’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리사랑상을,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공간을 탐하다』, 『건축탐구 집』, 『도시 인문학』,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등이 있다.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고, 최근 ‘이야기로 집을 짓다(이집)’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금산주택’으로 2011년 공간디자인대상,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제따와나 선원’으로 2020년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건축탐구 집』,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도시 인문학』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사람을 살리는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등 15권의 저서가 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건축칼럼을 집필 중이다. 또한 EBS 〈건축탐구-집〉에 프리젠터로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금산주택(House in Geumsan)〉 〈루치아의 뜰(Lucia's earth)〉, 〈까사 가이아(CASA GAIA〉, 〈제따와나 선원(Buddhist temple ‘Jetavana’〉 등이 있다.

노은주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152*210*30mm
ISBN13
9788959067220

책 속으로

이런 이색적인 정면의 모습은 이 집이 다른 집과 다른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슬그머니 암시해주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은 안에 들어가면 더욱 강해지는데, 물건을 나란히 늘어놓듯이 집들이 가로로 길게 들어서 있다. 보통의 집들은 남자의 공간인 사랑채를 한구석에 두고 집안을 관장하는 안채가 가운데 앉아 있다. 그리고 나머지 기능들은 그 주변으로 빙 돌아가며 배치되는데, 이 집은 그런 일반적인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어떻게 보면 위계가 없고 정확한 기능도 없어 보인다. 사랑채만 해도 열화당을 비롯해서 여러 곳이 있고, 안채의 기능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집 안에 들어가서 느껴지는 공간감이 무척 다양하다.
--- p.33-34, , 「세상의 중심이 되는 집 : 선교장」 중에서

운현궁은 사실 집은 집인데 집이 아니다. 언뜻 보면 일반인이 사는 집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왕이 사는 궁의 형식이 알알이 박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방이 방을 둘러싸고, 그 밖으로 마루가 둘러쳐져 있는 구조다. 경호와 안전, 보이지 않는 서비스 동선이 집에 숨겨져 있는 구성이다. 이런 방식은 궁궐의 내전(內殿)이나 침전(寢殿)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운현궁의 건물들은 모두 그런 여러 겹의 공간 구성을 갖추고 있다. 또 하나는 세 채로 이루어진 본채를 건물 뒤편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동쪽으로 얇고 길게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 긴 복도가 하나로 묶고 있다는 것이다.
--- p.64-65, 「권력의 상징이 된 집 : 운현궁」 중에서

혹자는 소수서원이 초기의 서원으로서 어떤 원칙과 규범이 생겨나기 전에 지어진 건물이므로 그런 자유로운 배치를 했고 위계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가 본 소수서원은 신분의 높고 낮음과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엄존하는 교육의 공간에서도 위계를 뚜렷이 드러내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경과 애정이 적당한 위치와 드러나지 않는 은근한 위계를 통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인간적이며 따뜻한 공간이었다. 아마도 그 안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는 행복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했을 것이다.
--- p.92, 「존중하며 공부하는 집 : 소수서원」 중에서

남간정사는 정말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고도 한참은 남을 집이다. 어찌 되었건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자신의 소신대로 누구와도 싸웠으며, 그 정신을 하나의 구체적인 조형물로 남겨놓은 점 하나는 대단한 존경을 표하게 한다. 남간정사는 무척 간단하고 단순한 집이다. 일자로 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이다. 좌측에는 2칸짜리 온돌방이 있고 가운데는 4칸짜리 마루방, 오른쪽은 뒤편에 1칸짜리 온돌방을 두고 앞에는 기둥을 세워 1칸짜리 누마루를 들였다.
--- p.125-126, 「물 위에 앉은 집 : 남간정사」 중에서

굉장한 기대 속에 누워서 대충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새벽 예불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대적광전으로 갔다. 역시 큰 절이라 새벽 예불에 참여하는 스님도 많아 법당이 가득 차 있었다. 해인사의 예불은 조금 특이했다. 내가 그동안 보았던 여느 절과 다르게, 빠르고 씩씩하게 군인들이 구보하며 군가를 부르듯이 진행되었다. 물론 절마다 혹은 문중마다 분위기가 좀 다르고 예법도 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해인사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왜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낸 결론은 그곳이 아마 팔만대장경을 지키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의 스님들의 기상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 p.197, 「티끌에도 세계가 있다 : 해인사」 중에서

선운사의 경내는 넓다. 일반적인 사찰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위계가 여기서는 다르게 펼쳐진다. 보통 절의 자리를 잡을 때 안으로 깊게 들어가도록 한다. 그 들어가는 과정이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고,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은 중생의 자리에서 점점 부처의 자리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반면 선운사는 가로가 길고 깊이가 얕은 대지에 집들을 펼쳐놓았다. 다만 절의 핵심 공간인 대웅보전 앞에 만세루라고 하는, 누각이라기보다는 그냥 마루가 넓은 강당을 하나 놓아 직접적인 접근을 막아놓았을 뿐이다. 그 너머로 푸르름이 감아놓은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동백나무 숲이 푹신하게 얹혀 있다.
--- p.236-237,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다 : 선운사」 중에서

푸른 들판 위에 둔덕이 몇 개 있고 둔덕 위에는 건강한 피부처럼 밝고 불그스레한 빛이 감도는 커다란 돌이 몇 개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작은 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진을 치고 있는데, 부처님이 서 있었던 자리이고 기둥의 자리다. 그 중심으로 들어가면 경주의 중심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해가 지며 하늘이 주황색을 띨 무렵 그곳에 서 있노라면, 경주의 중심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 아니 우주의 중심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잦아들며 시간이 문득 멈춰 서서 같이 석양을 보는 듯하고, 신라의 천년을 지속하게 만든 기운이 느껴진다. --- p.274, 「그곳에 깨달음이 있다 : 기원정사와 황룡사지」 중에서

미륵사처럼 절터가 어느 정도 발굴되어 옛날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절이 있었다니 하며 의아하게 만드는 곳도 많다. 풀이 무성하고 언뜻언뜻 바윗돌처럼 보이는 것들이 숨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기단이나 석등 받침 혹은 불상이 앉았던 대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시간을 두고 그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았던 눈을 뜨듯 하나하나 바닥에 잠겨 있던 시간들이 서서히 일어나 환영처럼 그곳의 옛 모습이 그려지고, 심지어 내게 그곳에 대한 어떤 기억이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 p.302-303, 「영원한 현재를 살다 : 미륵사지와 굴산사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산과 하늘처럼 변하지 않는 집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남명 조식(曺植)의 집인 산천재가 있다. ‘산속에 하늘이 담긴 집’이라는 뜻인 산천재는 조식이 61세에 짓고 인생의 말년을 보낸 집이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은 처사로 살았던 조식은 학문적인 깊이와 높이를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대학자였다. 그는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고 밤에도 정신을 흐트러뜨린 적이 없었다. 명종이 그를 단성 현감에 임명하자, 사직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산천재는 그런 조식을 무척 닮았다. 절묘한 공간의 구성도 없고 아름다운 건물의 집합도 없고 우리의 옛집이 보여주는 다양한 마당조차 없다. 고수의 한 획처럼 지리산과 덕천강 사이에 한 점을 찍어놓은 것 같다. 세상의 이런저런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산과 하늘처럼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고자 했던 진정한 처사의 집이다.

김명관 고택은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라는 곳에 있는 집이다. 이 집은 따로 전해지는 당호는 없고, 김명관(金命寬)이 지은 집이라는 사실과 지은 지 약 240년이 되었다는 사실만이 전해진다. 김명관 고택은 칸수로 100여 칸이었고, 동수로는 7동, 영역으로 구분하자면 다섯 개의 영역이 있을 정도로 보통 큰 집이 아니었다. 김명관 고택은 전형적인 호남 부잣집의 모양대로 여러 개의 건물이 자유롭게 분산되어 있는데, 그 공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특히 안채의 시어머니 영역과 며느리 영역은 부엌과 방의 모양, 그 상부의 다락 등이 그림을 그리고 반을 접어 똑같이 찍어낸 것처럼 똑같다. 이는 권력은 넘겨주지 않아도 실질적인 권한은 동등하게 가지고 나간다는 인간적인 배려를 통해 공존의 실마리를 찾아나간 것이다. 그래서 고부간에 서로 일정한 거리와 영역을 가지도록 한 것이다.

임리정은 우리나라 예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김장생(金長生)이 추구하는 삶과 닮은 집이다. 팔괘정은 김장생의 제자인 송시열(宋時烈)이 자신의 집을 우주 만물이 함축된 중심으로 보고 지은 집이다. 임리정은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얇은 얼음장을 밟는 것과 같이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는 김장생이 평생 가슴에 품고 행동에 드리어 놓았던 인생의 지침이었던 ‘경(敬)’을 의미한다. 더욱이 임리정은 두드러지게 불끈 솟지도 않고 남들이 쉽게 내려다보지도 못하는 위치에 있다. 그 집은 3칸 집, 가장 평범하지만 모든 선비가 마지막에 돌아간다는 ‘삼간지제(三間之制)’에 따른 집이다. 즉, 밖으로는 온화하지만 안으로는 뜻이 높은 김장생이 추구하는 삶을 닮았다. 팔괘정이 임리정과 불과 15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 가까이에 있고자 한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림자가 쉬는 집

식영정은 김성원(金成遠)이 그의 장인이며 스승인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집이다.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그림자가 쉬는 정자’라는 뜻이다. 임억령은 그림자를 ‘사람을 얽어매는 욕망이며 현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식영정은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그림자를 끊겠다는 의미의 집이다. 우리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잠시 거두고, ‘홍진에 묻힌’ 사람들이 현실과 거리를 두는 곳이다.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아주 작은 집이다. 높은 언덕에 있지만,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집이 아주 깊이 박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절묘하게 한 발 물러나서 밖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정자로서 얻어야 하는 차경(借景)은 충분히 얻으며 겸손하게 자리할 수 있었다.

도산서원은 이황(李滉)이 57세 되던 해에 짓기 시작해 60세에 완성했다는 도산서당 일원에서 시작한다. 도산서당은 이황이 공부하는 공간과 제자를 가르치는 공간, 그 사이에 수많은 책을 쌓아놓은 서가 공간과 부엌 공간으로 이루어진 4.5칸이라는 모호한 크기의 집이다. 이황은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며 바르게 하고,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바른 지식을 얻고자 했다. 즉, 그는 진리에 이르기 위해 늘 겸손하고 삼가는 자세로 임하는 성실성을 가장 높은 덕목으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도산서당은 작지만 겸손하고 조용하며 경건하다. 여느 서원 건축과는 다른 자유로운 공간적 융통성이 드러나는 도산서원은 당시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황의 학문에 대한 자세와 제자를 대하는 방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경복궁은 우리나라의 정궁(正宮)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뒤로는 백악산을 베고 누워, 오른쪽에는 인왕산을, 왼쪽에는 낙산을, 발치에는 남산과 관악산을 두고 정남향으로 지은 궁궐이다. 그 경복궁 안에 자경전이 있다.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왕위 계승자로 삼고 그의 양어머니가 된 신정왕후(조대비)를 위해 지어준 집이다. 누마루가 하나 덩실 떠 있고 양편으로 기단을 높이 쌓고 건물을 세운 아주 단정하고 품위 있는 집이다. 자경전은 강녕전이나 교태전 등 정식 침전과 달리 좀더 한가롭고 편안한 침전인 연침(燕寢), 즉 가정집 분위기의 침전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는 자경전 마당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마당 조경에서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은 집안이 곤궁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일제는 슬그머니 그런 정도의 어깃장이라도 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불안감이 사라졌나 보다.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집

대웅전은 석가모니의 집이고 무량수전이나 극락전은 아미타불의 집이다.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의 집이며 미륵전이나 용화전은 미륵보살의 집이다. 대적광전이나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의 집이다. 그런데 화엄사에는 석가모니의 집만 두 채가 있다. 비로자나불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각황전에 석가모니가, 석가모니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불이 앉아 있다. 이는 모든 것의 경계가 사라지고 서로 연결되는 화엄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불교적 도상(圖像)이 아닐까? 아니면 경계가 없이 두루 회통하는 화엄의 가르침을 전해주기 위한 것일까? 서로 다른 질서들이 직교하고 교차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우면서 엄정한 화엄사의 공간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모양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한 것이니, 모든 형상이 모양이 없는 것임을 알게 되면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결국 상(相)은 상이 아니고, 존재가 없음을 알게 될 때 진리를 깨우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금강경』에서 석가모니가 여러 차례 강조한 이야기다. 그 핵심에는 ‘부재’가 존재한다. 부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엄청난 패러독스다. 통도사는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강력한 존재를 보여주는 곳이다. 통도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가 없다. 마땅히 있어야 할 대웅전 대좌에는 빈 방석이 하나 놓여 있다. 그것은 통도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관한 탑이 부처님의 방석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의 가장 깊은 곳에는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다. 부처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대웅전에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소사 설선당은 대웅보전 옆에 있는데, 스님들이 거주하는 요사채이자 그들이 모여 공부하고 정진하는 곳이다. 요사는 절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지만, 수행 공간으로서 그 특성상 공개되거나 출입이 허가되지 않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공간이다. 설선당은 ㅁ자형 평면의 집인데, 절에 있는 전각이라기보다는 조금 규모가 큰 살림집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그런데 설선당은 네모반듯한 안마당을 중심으로 집의 사면이 서로 맞물리며 반 층씩 올라가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담을 쌓고 축대를 높여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명확하고 굵은 선으로 그어놓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에 건축을 태워놓은 것이다. 경사지에 집을 지으며 땅을 긁어내거나 덧쌓지 않고 지형에 순응하며 지형의 흐름대로 집을 앉힌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과 건축은 섞여 들어가며 각각의 존재가 충돌하지 않고 서로 중첩하게 된다.

폐사지는 예전에 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빈터만 남은 곳을 말한다. 대표적인 폐사지는 경주 황룡사지, 강릉 굴산사지, 익산 미륵사지 등이 있다. 폐사지에는 간혹 불완전하게나마 석탑, 불상, 석등 같은 유물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라진 빈 곳을 채우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건축이 망한 곳에서 건축의 완성을 볼 수 있는 역설적인 장소다. 또 없음으로써 강력한 존재의 의미를 새기는 것, 그런 역설의 미학이 바로 폐허의 미학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켜켜이 퇴적되어 있고 기억이 바닥에 질펀하게 깔린 폐사지에서 아주 특별한 공감각적인 체험을 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인식 능력과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며 주초(柱礎)만 남은 자리에 기둥을 복원하고, 그 위에 지붕을 올려 완성한다. 건축을 감상하는 대신 창조적인 수용으로 스스로 건축을 하게 된다.

리뷰/한줄평26

리뷰

9.6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17,100
1 17,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