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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 옆문을 열자 아주 조그마한 문서가 하나 눈에 띄었는데 너무 작아서 제목도 좀처럼 읽기 어려웠다. 손으로 휘갈겨 쓴 ‘에드워드’라는 글자만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보통 발견이 아니었다. 내 손에 들린 이 문서가 인간과 설치류 세계 양쪽의 동시대 문학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리라는 것이 곧 판명되었다. 나는 햄스터 에드워드의 일기를 발견했다. --- p.7 5월 3일 토요일 다짐했다. 이제는 쳇바퀴를 타지 않겠다고. --- p.13 5월 4일 일요일 쳇바퀴를 타기로 했다. 단, 그들이 밤에 자고 있을 때만. 케이지를 기어다니며 긁고 달그락거릴 테다. 단지 저들을 약 올리기 위해, 내가 지금 장난을 치는 게 아니란 걸 알리기 위해, 그러니까 만일 내가 뭔가를 한다면 그건 나를 위해서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 --- p.14 9월 3일 수요일 왜 쓰는가? 삶이란 공허한 말들로 지어진 케이지다. --- p.53 9월 28일 일요일 삶에 대한 그의 맹목적인 열정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 그는 분주히 돌아다니며 먹고 자고, 또 먹고 잔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는 어떤 유산을 남길까? 다른 자들이 그로부터 뭘 배울까? --- p.63 이 책은 자칫 무겁게만 느낄 수도 있는 인간 보편의 문제를 재치 있는 유머와 필치로 유쾌하게 승화시킨다. 낙서하듯 가볍게 끼적여 놓은 글과 그림들 같아 보일지 모르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난 자리에는 그윽한 향기가 감돈다. 단순히 가로, 세로 길이가 같은 네모난 그림책이 아니다. 검은 잉크와 하얀 종이를 씨줄, 날줄 삼아 엮어 짠 예술품 그 자체다! --- 「옮긴이 후기」 중에서 |
햄스터, 쳇바퀴와 밥그릇 앞에서
실존을 고민하고 싸우다! 처음에는 마냥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이것이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야기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위대한 햄스터 철학자 에드워드에게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 시인 황인찬 까칠한 햄스터가 쓴 일기라고? 어느 날 작은 책 한 권이 그린비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책 표지에 앉아 있던 뚱한 표정의 햄스터는 노련한 손길로 담뱃불을 붙이려다 말고 자신의 소심함과 까칠함을 최대한 억누른 말투로 저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를 출간해 주세요!” 저희는 당황했습니다. ‘햄스터’ 하면 떠올리는 작고, 귀엽고, 연약한… 같은 이미지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토록 까칠하고 냉소적인 햄스터라니요. ‘아, 안 된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하면서도 저항하기 어려운 어떤 힘에 이끌린 저희는 출간을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햄스터 에드워드. 그는 씨앗과 물, 쳇바퀴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정녕 이게 다란 말인가?” 그러고는 투쟁합니다. 날마다 일상의 쳇바퀴를 돌고 있는 우리의 심정을 그 자그마한 온몸으로 고스란히 대변하는 에드워드와 그의 일기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쳇바퀴와 밥그릇 사이에서 고뇌하는 에드워드의 일기 속 깨알 재미! 눈 밝은 독자라면 에드워드가 자신의 일기 곳곳에 슬쩍슬쩍 패러디한 유명 철학자들을 찾아낼 듯도 합니다. 플라톤, 데카르트, 쇼펜하우어, 니체, 마르크스 등이 어떤 식으로 패러디되어 있을까요? 에드워드의 놀라운 언어 감각과 언어유희 덕분에 번역자는 번역어를 무척 신중하게 골랐다지요. 이를테면 ‘cage’를 ‘우리’라고 할 것인가, ‘케이지’라고 할 것인가를 두고 무척 고심했지요. ‘우리’라는 어휘는 속박, 강제적 평등의 뉘앙스를 풍기지만 어감이 너무 부드러웠기에 최종 결정은 ‘케이지’였습니다. 억압과 압제, 멍에, 고통, 갇힌 느낌을 주기에는 거센소리가 나는 케이지가 더 낫다고 판단한 거지요. 또한 책 전반에 ‘소음’, ‘공허’, ‘침묵’ 같은 낱말이 반복되는데, 저자들이 〈4분 33초〉로 유명한 존 케이지cage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걸까요? “삶은 공허한 말들empty words로 지어진 케이지다”라는 부분은 존 케이지의 곡 〈empty words〉와 그 곡의 주제 의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꼼꼼하게 읽다 보면 햄스터의 ‘단기 기억력’과 ‘좋지 않은 시력’을 암시하는 대목이며, 철저히 동물 중심적으로 서술된 표현을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런데 에드워드의 이름은 어째서 에드워드일까요? 어쩌면 난센스 시인이자 작가 에드워드 리어에게서 이름을 따온 걸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린 미리엄 엘리아가 자기 미술 작품을 만들 때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네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의 미미한 투쟁을 지지한다! 에드워드의 일기는 ‘그들’이 그를 펫숍에서 사 온 지 6개월이 되는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비좁은 케이지 안에서 매일 쳇바퀴나 굴리고 똑같은 씨앗으로 끼니를 때우는, 뻔한 운명을 직면하고도 에드워드는 굴하지 않습니다. 흉폭한 지배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벌이고, 멍충멍충한 고양이와 대화하려고 애씁니다. 탈출 기회도 수시로 엿보지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햄스터 에드워드의 일기 1990~1990』에는 에드워드의 거의 전 생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도했던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의 투쟁과 항변의 기록은 그를 ‘영원의 빛 속’에 남겨 주지요. 그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가 남긴 흔적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향한 숙고와 열망! 성공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열망하는 만큼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그 사실을 이 작고 까칠한 햄스터를 통해 새삼스레 깨닫고 깊이 위로받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미미한 투쟁을 열렬히 지지하는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역시 그러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