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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사가
그 말이 그 말인 줄 몰랐다 뒤늦은 부음을 전했다 날마다 자라나는 의심 예정된 장면처럼 익숙한 윤곽 하나가 사라졌다 선과 선이 무너지고 경계조차 사라진 하나의 덩어리 실은 마음이 먼저 잠든다 문득 희미하게 사라지는 종들에 대해 생각한다 너는 그것보다 먼 풍경이 되었다 온기가 사라지고 목소리가 사라지고 외로움이 사라지고 엎드려 있던 너를 이제야 읽는다 너는 꽃무늬처럼 흩어져 어디에 도착한 걸까 나, 이사 가 꽃그늘이 너무 선명해서 짐을 싼다 ---「권덕행, 부음」중에서 신발을 벗고 나무가 되리 발가락 뿌리 삼아 바다 한 모금 날개 달린 물고기가 둥지를 틀고 파도가 한 번씩 쉬어가는 자리 눈을 감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손끝에 피어난 소금꽃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짠한 것들 ---「김은유, 바다의 꿈나무」중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많다는 건 상처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 받기 싫다는 것이다 또 그런 가시를 겉에 내놓는다는 건 상처 주기 싫다는 것이다 세상 가장 나쁜 사람은 선인장 같지 않은 사람이다 가시를 제 안에 숨긴 채 상대를 안고 뒹구는 그리하여 결국은 피투성이로 만드는 화려한 비극화(秘棘花) 같은 사람 사람의 털도 가시면 어떨까 ---「김준호, 선인장」중에서 시인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시인은 시를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시인이 시로 말을 건네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나의 마음속에 고였다 사라지는 순간들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시라고 입 밖으로 낸 나의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고 어루만지는 것이 시라고 그래서, 또 다른 시가 그의 마음에 고이게 하는 사람이 시인인 줄 알았다 ---「손진원, 시인이란」중에서 검은 고래는 하얀 바다에만 살아서 문장을 펜 끝에 내걸어 세월을 입질하듯 주시한다 언제가 낚을 수 있노라 입버릇이 입질이 되어도 저 반대편 펜 끝에 낚인 어떤 이의 검은 고래는 또 한 번 문장에 힘을 포기 않는 세월과 입씨름할 유일한 한 끼가 된다 배고파도 추워도 낱말을 한 톨 한 톨 담아내는 건 배 아리고 추하게 주섬주섬 한 톨같이 사는 것보다야 깨알 같은 꿈의 조각으로 연명하는 게 더 배부르다 깨달은 모양이다 노인과 바다가 될 바엔 검은 고래의 밥이라도 되고팠던 흰 바다에서 꿈꾸던 마지막 시인의 끝인사를 모두 기억한다 나는 그 시인의 옆자리에서 함께한 마지막 바다의 벗이다 여전히 내 펜 끝은 고요하다 노인처럼 ---「이용환, 시인과 바다」중에서 한 번도 입지 않은 겨울옷이 있다 특별한 사연도 별다른 이유도 없다 계절이 끝나갈 때쯤 내년에 꼭 입어야지하며 다시 두툼한 것들 사이에 봉인된다 그리고 다시 또 겨울. 아! 왜인지 알았다 이 녀석은 그대로인데 나만 나이 들어감이 나도 모르게 샘이 났던가 보다 다시 봐도 얄밉도록 이 녀석은 보란 듯이 청춘이다 ---「이호성, 시인과 바다」중에서 하루가 바닥으로 내려와 구겨진 너 앞에 서면 자전하는 세상일에 식은 밥같이 섭섭한 소리 "밥이나 먹자" 졸린 눈 비비는 시계 마음은 각진 모서리 근처에 서성인다 너를 중심에 두고 공전을 멈춘 행성 하나 자기 중력에 쪼그라들고 있다 ---「최신애, 대화」중에서 1 출근길 지하철 안은 연어의 뱃속 덜컹, 덜컹, 덜컹, 덜컹 어미의 심장 박동 소리 북태평양에서 남대천까지 산란을 위하여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컴컴한 바다 속에서 등불이 되어주는 지하의 등대를 따라 이번 역은 종로 3가 역입니다 2 문이 열린다 연어 알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간다 지하철 노선도 강으로 수많은 연어가 해류에 몸을 실은 채 힘을 아끼고 있다 모두 눈 감고 어떠한 소리도 없이 침묵 고요한 꼬리짓 멀리서 헤엄쳐 왔다 바다가 끝나고 강이 오면 아꼈던 힘을 써야 할 때 연어들이 계단 폭포를 오른다 산란을 위해 아이를 위해 ---「최진영, 연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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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투명한,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서울시인협회가 공모한 청년시인상 수상 시집 청년시인상을 공모한 서울시인협회 민윤기 회장은 추천사에서 “‘청년시인상’에 당선된 시인들이 수상작 한 편과 그 후에 생산한 신작 예닐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 ‘청년시인상’을 공모했던 가장 큰 목적은 노쇠해가는 한국 시단 현실을 그저 두고 보며 걱정만 할 수 없는 절박감이 있어서였다. 시인들이 노쇠하면 시단 역시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시작한 것이다. ‘청년 시인’ 하면 우리는, 윤동주 백석 이상 정지용 같은 시인들을 떠올리는데, 이 시인들이야말로 우리 한국시를 풍요하게 한 훌륭한 시인들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청년시인상’은 이런 훌륭한 시인이 될 만한 재능 있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려고 한 공모전이었다.”라고 했다. 또한, 청년 시인들은 “다 말하지 못한 말들을 들여 시를 썼다. 나는 시의 곁에서 나를 확장하기도 했고, 차마 떠오르는 모든 감각들을 안전하게 통과하기도 했다. 여전히 막막하고 희미하지만 모든 것이 선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바라본다.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들, 지워진 것들 말이다. 시는 그런 것들의 마음이다. 우리가 쓴 시가 되도록 많은 사람의 뇌리에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라고 했으며 심사를 맡은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조명제 교수는 “평상어를 시인의 사유를 통해 선명한 이미지로 치환하는 시어의 미학이 담긴 시집이라.”고 말했으며 김현숙 시인은 “세상에서 소외된 작고 여린 물체들을 만만치 않은 솜씨로 표현하는 기량들이 뛰어나다”라고 평했다. 간혹 우린 살아가는 건지 살아만 있는 건지 스스로 묻곤 하지만 지나간 날만큼 흐릿하고 남아 있는 미래만큼 아득하다.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선상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질문이다. 이 시집은 그런 그들에게 좋은 해답이 될 것이다. 과거를 입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와 부딪치는 데 있어서 좋은 무기와 방패가 될 것이다. 이들 역시 같은 시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이고 그것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하고 고심한 것을 시로 풀어낸 시인들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