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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5
《난 여자가 아닙니까?》 가모장의 ‘탈조’ 일기_오혜민 ― 17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내 언어는 나를 배신하고, 나는 언어로 억압자를 배신하고_김미소 ― 49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겨우 계급에 대해 말하기까지_김은지 ― 77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모두의 몸에 맞는 페미니즘_조은 ― 111 《올 어바웃 러브》 사랑을 찾는 여정_레일라 ― 139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까칠한 페미니스트 교사도 사랑을 한다_장재영 ― 167 《본 블랙》 내가 사는 세계에서 나의 자리 발견하기_김동진 ― 205 이 책에서 참고한 글들 ―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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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서 서울로 오자마자 어딜 가나 듣게 된 질문이 있다. “오빠야 한번 해봐.” 처음에는 내 고향의 억양 그대로 말해주었다. (…) 주변에서 웃어주는 게 좋았고, 대화를 편하게 시작할 수 있어 좋았고, 주변에서 귀엽다고 해주는 것도 좋았다. 그 와중에 든 생각. 귀여움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까? (…) 내 사투리는 나를 금방 떠나갔지만, 경상도 출신 남자 선배들은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사투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니, 내 사투리는 나를 떠나갔는데 왜 저 선배들은 그대로 갖고 있는 거지. 저 선배들도 “행님 해봐라”라는 말 듣나? 내가 맨날 “오빠야 해봐” 듣는 것처럼?
--- p.61~62, 「내 언어는 나를 배신하고, 나는 언어로 억압자를 배신하고」 중에서 다음으로 집안에 찾아온 병(病)과 사(死), 그 이후의 일들을 통과하면서 내 손에 닿지 않는 특권들이 구체적으로 그려졌고 곧 즐겁지 않은 상상이 들이닥쳤다. 어떤 방식이나 형태로든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덜 했을 자책, 소중한 사람에게 한 번 더 참을 수 있었던 못된 말, 한 번만 더 해볼 수 있었을 시도, 단축할 수 있었을 시간과 힘 들이지 않고 얻었을 정보, 내 욕구를 죄책감 없이 마주볼 수 있는 표정, 더 멀리 볼 수 있었을 시야……. 못 먹고 못 입고 자랐던 벨 훅스가 처음으로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갖고 싶었던 게 옷이었다면 내가 훔치고 싶었던 건 그런 것들이었다. --- p.90~91, 「우리가 겨우 계급에 대해 말하기까지」 중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을 대중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한다. ‘모두’가 이해할 만한 페미니즘 서적을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벨 훅스의 이러한 ‘좋게 말하기’에 그리 현혹되지 않은 나는 4장째 읽었을 때 책을 덮었다. 무언가 고운 가루들이 이름표를 달고 내 머릿속에 하나씩 퍼지는 느낌이긴 한데, 너무 곱다. 나에겐 만인의 만인에 대한 외로운 패션 찾기 투쟁인 페미니즘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니. 안일하고 쉬운 소리 같았다. 그리곤 나는 사회학 코너에 가서 어려워 보이는 가야트리 스피박 책 한 권을 집었다. --- p.122, 「모두의 몸에 맞는 페미니즘」 중에서 그토록 사랑에 관해 확신했고 언젠간 해피 엔딩을 맞이할 거라는 꿈을 놓지 않았던 나는 방향을 잃기 시작했다. 사랑이 영화처럼 이끌리는 감정에 충실하고, 경쟁하고, 몇 번의 저녁 데이트로만 결실을 보는 해피 엔딩 또는 새드 엔딩인가? 늘 설레는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사랑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은 나는 사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같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기만 한 만남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번 연애는 몇 개월짜리지? 이 사람은 저번 사람보다 뭐가 낫고, 뭐가 다르지? --- p.148~149, 「사랑을 찾는 여정」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신도 비건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 그는 실제로 자신의 식판에 고기나 생선 반찬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두어 칸이 텅 비어버린 그의 식판을 바라보는 일은 나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하루는 퇴근 후 그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저는 정말로 우유 급식을 신청하고 싶지 않은데 엄마가 키 크려면 꼭 먹어야 한대요. 어떡해야 하나요?” 양육자 동의가 있어야만 우유 급식을 취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양육자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가족 간의 갈등을 내가 자초한 것만 같아 덜컥 겁이 나는 동시에 항상 나를 믿어주던 학생의 양육자가 나의 교육 방침에 등 돌리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나는 “한 번 더 본인 의견을 말씀드려보고 그래도 신청해야 한다고 하시면 그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의 비겁함을 나도 알고 있었다. --- p.197~198, 「까칠한 페미니스트 교사도 사랑을 한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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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길어낸 폭넓은 주제를 전심으로 성찰해온 사상가
벨 훅스가 남긴 사유의 숲을 밝히는 지도를 그리다 벨 훅스는 《난 여자가 아닙니까?(Ain’t I a Woman)》로 미국 지성계에 등장해 대표적인 페미니즘 이론가, 문화평론가,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 생전에 그는 40권이 넘는 책을 썼는데, 보통 우리가 알듯 페미니즘 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비평서나 에세이, 시집, 어린이 책까지 썼을 정도로 다양한 면면을 지녔다. 국내에 출간된 저작만 들여다봐도 ‘페미니즘 작가인 줄 알았는데 계급에 대한 책도 썼네?’, ‘사랑에 대해 쓰는 작가인 줄 알았는데 교육에 대해서도 썼어?’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벨 훅스가 다룬 폭넓은 주제들을 한 권으로 탐험함으로써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그 사유 세계의 지도를 그려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국내외에서 출간된 그의 대표작 일곱 권을 다뤘다. 성과 인종이 교차된 차별의 경험을 다룸으로써 흑인 페미니즘의 시초가 된 《난 여자가 아닙니까?》,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많은 이들에게 첫 페미니즘 책으로 읽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평등하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탐구한 ‘사랑 3부작’ 중 한 권인 《올 어바웃 러브》, 어느새 성과 인종보다 더 말해지지 않는 주제인 계급에 대해 쓴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라 불리는 페미니즘적 교육학을 집대성한 ‘교육 3부작’ 중 두 권인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와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그리고 벨 훅스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본 블랙(Bone Black)》이 그 목록이다. 저자들은 이 일곱 권의 책을 통해 성과 인종의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 연대, 사랑, 계급, 언어와 권력, 교육, 공동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주제들은 벨 훅스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길어내 일평생 천착했던 핵심적인 주제들로, 이를 탐구하며 저자들은 벨 훅스라는 사유의 숲을 구석구석 밝히는 지도를 그려 간다. 벨 훅스의 삶과 우리의 현실을 잇는 친밀하고 치열한 벨 훅스 실천기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일부가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운동을 중시했던 벨 훅스의 메시지는 종종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거나 순진한 소리라는 비판을 받는다. ‘다 옳은 말이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독서 모임을 통해 벨 훅스의 책을 같이 읽은 일곱 명의 저자들은 그러한 비판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그의 메시지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점들을 치열하게 토론한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각자의 현실을 돌아보며 우리의 삶과 벨 훅스를 연결했던 귀중한 경험을 나누어 준다. 《난 여자가 아닙니까?》에 대해 쓴 저자 오혜민은 독일 유학 시절 동양인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의 경험을 벨 훅스와의 ‘대화’를 통해 이겨 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에 대해 쓴 저자 김미소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 약자의 언어를 버리고 권력자의 언어를 사용했던 경험을 나누며 ‘권력자의 언어를 사용해 권력을 전복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에 대해 쓴 저자 김은지는 가난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느끼는 정체불명의 수치심을 성찰하며 계급 문제에 입을 떼라고 했던 벨 훅스의 요구를 실천하고자 애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 대해 쓴 저자 조은은 여성 간의 차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모두’로서 연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찰한다. 《올 어바웃 러브》에 대해 쓴 저자 레일라는 ‘첫눈에 반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사랑’이 이상화되는 사회에서 벨 훅스가 말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기까지 거쳐 온 고군분투를 기록한다.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에 대해 쓴 저자 장재영은 벨 훅스가 말한 페미니즘적 교육학의 가치를 초등교사로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를 교실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보여 준다. 《본 블랙》에 대해 쓴 저자 김동진은 벨 훅스의 어린 시절에 비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 더 나아가 물려줄 유산에 대해 살핀다. 이처럼 이 책에 담긴 저자들의 삶과 분투는 모두 벨 훅스의 삶과 분투와 조금씩 닮아 있다. 또 이는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경유해 독자들의 삶과도 이어진다. 저자들이 수행하는 이러한 연결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납작하고 이상적인 문장으로서의 벨 훅스가 아니라 입체적이고 생생한 멘토로서의 벨 훅스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