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裵琇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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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이 수년 동안 그 자신의 광기에 휩싸인 채 죽음을 향해 내달렸듯이, 나 역시 수년 동안 나 자신의 광기에 휩싸인 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내달린 것이 맞다. 그러다 파울의 경우는 매번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죽음의 질주가 일단 중단되곤 했으며, 내 경우는 매번 폐병원에 와서야 한바탕 광기가 중단되곤 했다.” (30쪽)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비트겐슈타인이란 이름은 높은, 아니 최고의 수준을 보장했다. 미치광이로서 파울의 수준은 철학자로서 루트비히의 수준을 분명 따라잡았다. 우리가 철학을 철학이라 부르고 정신을 정신이라 부르며, 그런 어휘들이 지칭하는 것, 즉 도착된 역사 개념을 광기라고 부른다면, 그러면 한 명은 전적으로 철학과 정신의 역사에서 최고봉에 도달했고 다른 한 명은 전적으로 광기의 역사에서 최고봉에 도달한 것이다.” (40쪽) “상식이란, 상이 주는 돈만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역이다. …… 상이란 한 사람에게 똥물을 뿌리는 행위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남들이 내 머리 위에 똥물을 뿌리도록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상금이 지불되니까. 나는 항상 상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굴욕으로만 여겨 왔지 한 번도 칭송으로 받아들인 적은 없다. 상이란 누군가에게 똥물을 뿌리고 싶어 안달하는 인간들, 상을 넙죽 받는 누군가에게 실컷 똥물을 한 번 뿌려 보겠다고 작정한 무지렁이들이 수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4~95쪽) “내 메모가 지금 말해 주듯이 지난 십이 년간 나는 그의 죽음의 과정을 추적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을 이용했다. 그의 죽음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용해 먹었다. 사실 나는 그의 죽음을 십이 년 동안 지켜본 증인에 지나지 않으며, 십이 년 동안 죽어 가는 친구로부터 나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에너지를 빨아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38~139쪽)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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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간 혐오자의 그로테스크한 우정
이 소설은 아주 기이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질병과 고립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베른하르트는 한 친구의 집에서 음악을 토론하며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만나게 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광기로 정신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던 파울과, 폐병으로 늘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던 베른하르트. 이 두 예민한 환자, 두 미치광이, 두 천재, 두 국외자는 서로 죽이 잘 맞아 끊임없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온갖 기행을 일삼는데, 두 사람의 날이 선 생각은 사회, 정치, 문화, 철학, 의료, 언론 등 당대 오스트리아의 모든 면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고, 가차 없이, 때로는 익살스러울 정도의 냉소와 독설을 늘어놓으며 우정을 쌓는다. 그리고 이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통해 베른하르트는 살아갈 힘을 회복한다. 하지만 두 친구가 만났을 때는, 이미 파울이 죽어 가는 시점이었다. 소설은 파울이 베른하르트에게 했던 부탁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가 땅에 묻히는 날 이백 명의 친구들이 모일 거야. 그날 자네가 내 무덤에서 연설을 해 주었으면 해." 그리고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합해서 여덟 명 혹은 아홉 명이 전부였다고 한다. (...) 나는 그의 무덤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이 소설은 12년간 죽음에 하루하루 가까워져 가는 한 친구와 그 친구가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친구 사이에 아주 힘겹게 지속되는 기이한 우정을 다룬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파울 비트겐슈타인이라는 광기와 천재가 기묘하게 결합된 인물과, 질병과 증오로 무장한 인간 혐오자 베른하르트 사이에 불안하게 지속되었던 우정이라는 관계 속에 숨겨진 인생의 그로테스크함에 적나라하게 직면한다. 자신을 고립과 자살충동으로부터 구했던 친구가 빈털터리가 되어 늙고 병들고 외롭게 죽어갔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와의 우정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베른하르트는 12년 동안 죽어가는 친구로부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에너지를 빨아내고 있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리하여 베른하르트의 ‘증오의 장광설’은 죽어가는 친구를 저버린 자신의 비열함을 향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이 소설은 파울이 부탁한, 자신이 참석하지 않았던 바로 그 장례식에서의 조사를 대신하는, 죽어간 친구에 대한 뒤늦은, 회한에 찬 진혼곡이기도 하다. 천재와 미치광이, 질병과 죽음에서 건져낸 예술 광기와 죽음, 질병과 예술은 우정을 그려 나가기에는 다소 기이한 틀이다. 하지만 베른하르트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나누었던 우정을 그리는 틀로 이 그로테스크한 장치들을 골랐고, 그 속에서 인생의 적나라한 진실을 끄집어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베른하르트 특유의 문체로 유명한 독백하는 듯한, 반복적인 말투도 여전하다. 독자에게 얘기하듯이 이어 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문단 구분도, 뚜렷한 플롯도 없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이러한 독특한 문체와 서술 방식은 오히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또한 그의 문체 못지않게 유명한 조국 오스트리아에 대한 혐오도 이 소설에서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다. 유럽의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으면서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던 혐오의 독설과 함께 당대 오스트리아 사회와 문화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이 주는 매력이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증오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베른하르트의 소설 가운데 가장 부드럽고 인간적이며 유머러스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들에게 권함| 독일어권 문학의 보석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팬들이라면. 천재와 광기, 그 얇은 차이를 의심해 봤다면. 늙음과 죽어감에 대한 철학적인 소설을 원한다면.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사업가 집안 비트겐슈타인 가의 이야기를 파헤치고 싶다면. 소설가이자 번역가 배수아의 안목과 번역을 믿는다면. |추천사| 분노에 찬, 강박적인, 가차 없는, 정말 웃기는, 이상하게 아름다운. - 클레어 메서드, 《황제의 아이들The Emperor's Children》의 저자, 《살롱》 베른하르트의 소설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상상력은 하나의 사실이나 아이디어를 그대로 두지를 않는다. …… 명석하고, 까다롭고, 지칠 줄 모르는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어 나갈 수 있다. - 《뉴욕 타임스》 그 강박적이고, 우아한 리듬 그리고 서술의 달변은 슈트라우스의 비극의 아리아를 닮았다. …… 천재적인 메멘토 모리. - 《월 스트리트 저널》 이상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웃긴 …… 죽음, 삶 속의 죽음, 사회에서 예술가와 사색가가 하는 역할이라는 주제를 노래하는, 미친 듯이 훌륭한 목소리를 위한 명상적인 푸가. - 《시카고 트리뷴》 문학사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오스트리아의 전후 시대 천재로 남을 것이다. - 《워싱턴 타임스》 유럽의 독자들이 여러 해 동안 해 왔던 것처럼, 베른하르트를 우리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최고의 시점이다. -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