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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번에는 ‘진짜’ 전쟁이다
1장 정말 전쟁은 ‘귀환’했는가? 2장 영웅정신과 야만성 3장 ‘정의로운’ 전쟁이란 무엇인가? 4장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 5장 총력전의 개념 6장 왜 전쟁을 벌이는가? 나가며: 그렇다면 무슨 평화를 위한 전쟁인가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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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우리는 이미 대리전·게릴라전·테러 공격·글로벌 전쟁 등 온갖 형태의 특수한 대규모 무력 사태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진짜 전쟁이 ‘귀환’했다고 강력히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지난 70여 년간 이어진 일련의 유혈 분쟁의 구도 안에서 현 사태를 규명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p.9 혼돈 유발 전쟁은 오로지 그 자체를 위해 수행될 뿐,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폭력을 통해 추구하는 것도 그저 즉각적인 협박, 공포, 혼란의 효과뿐이다. 금세 완전무결한 무기의 법칙이 사회를 지배했다. 시민사회(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보금자리를 지키고 자식을 부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만 골몰한 평범한 시민들)는 파괴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볼모가 되어, 오로지 생존만을 강요받았다. 이런 혼돈의 논리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있다면, 바로 2011년 반정부 시위가 극에 달했을 때 바샤르 알아사드가 감옥에 갇혔던 지하디스트 포로 수백 명을 풀어준 사건이었다. --- p.39 윤리적 양면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법은 앞서 기술한 것처럼 전쟁 당사자들에게 각기 상반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가령 푸틴을 국민의 운명에 무관심한 사이코패스 독재자이자 냉혹한 인간으로, 젤렌스키를 결기에 찬 모범적인 영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보드카에 찌들고 증오와 우둔함으로 가득 찬, 짐승 같은 병사들로 구성된 러시아 군대를, 눈부실 정도로 용맹스럽고 뜨거운 애국심에 고취된 우크라이나 민병대와 서로 대비시키는 것이다. --- p.62 전쟁이, 특히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정신적 자질이 ‘도덕적’일 수는 있어도, 전쟁이 ‘정의롭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항상 전쟁을 선포하고, 결정하고, 개시하는 것은 나쁜 이유들 때문인데 말이다. 폭력에 기대는 방법도 그 자체로 불법이 아니던가? --- p.71 반면 ‘정당한 명분’의 전쟁은 정의와 불의를 서로 구분짓기 때문에, 나와 적의 동등성을 철저히 파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기도 했다. “독립국 간에는 결코 징벌적 전쟁bellum punitivum이 성립할 수 없다. 사실상 징벌이란 상급자imperantis와 하급자subditum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국가 간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 p.91 사실상 외부의 전쟁은 내부의 복종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전쟁은 국가 간에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사람들의 눈앞에 똑똑히 보여줌으로써, 개인들 간의 원시적 내전이라는 환상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더욱 극대화한다. “그대들이 만일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대들 사이에도 똑같이 참혹한 일이 벌어지리라.” --- p.113 역설적이게도, 전쟁의 목적이 도덕적일수록 도덕적이지 않은 전쟁이 정당화된다.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가장 규범과는 거리가 먼, 가장 참혹한 전쟁은 최종적이면서도 영구적인 평화를 목표로 하는 전쟁이다. 평화가 두 무력분쟁 중간에 존재하는 휴지기에 불과하다면, 그리고 일종의 사법적 상태에 해당한다면, 전쟁은 ‘합리적인’ 중간상태를 형성하며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이미 평화를 준비하는 과정을 동반할 것이다. --- p.141 즉 전쟁은 서로 상대의 악의를 예단한 데서 비롯된다. 상상이 만들어낸 양측의 공포는 결국 현실을 만들어낸다. 서로의 적개심을 의심하는 순간, 결국 적개심이 죽음의 길 끝으로 내달린다. 위험과 공포가 서로의 편집증을 살찌운다. 에라스무스는 상상이 빚어낸 공포라는 유령이 전쟁을 잉태하는 현상을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구절로 표현했다. “전쟁은 가장된 전쟁으로부터 탄생한다.” --- p.166 하지만 우리가 기대해야 할 평화란, 다시 말해 합리적인 철학이 토대로 삼아야 할 평화란, 무장 평화나 공동묘지의 평화보다는 훨씬 더 희망에 찬, 조금 더 진실 어린 평화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는 지복천년의 평화, 불순분자들을 정화할 참혹한 ‘최후의’ 대전쟁을 통해 실현될 그런 평화도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화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보다 신비주의적인 성격이 적은 두 가지 종류의 평화를 제안해볼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전쟁이 언제나 칸트가 말한 의미에서 반공화주의적이고, 스피노자가 말한 의미에서 반민주주의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p.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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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보지 못한 자에게 전쟁이란 달콤한 것이다.” ―에라스뮈스
남는 것은 상처뿐인 전쟁, 그럼에도 왜 전쟁은 계속되는가? “전쟁은 이미 히로시마에서 죽었다.” 약 50년 전 르 보르뉴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은 죽기는커녕 전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흔히 매체에서 사용하는 비유로서의 전쟁이 아니라, ‘진짜’ 전쟁 말이다. 각종 테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이질 않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여러 전문가는 입을 모아 “진짜 전쟁의 귀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전에도 전쟁은 늘 있었다. 그렇다면 ‘진짜 전쟁’이란 무엇일까? 세계적 베스트셀러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의 저자이자 푸코 연구자인 프랑스의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이 책에서 ‘진짜 전쟁’을 규명하려 한다. 고대 플라톤에서부터 마르크스, 마키아벨리와 홉스까지 위대한 정치철학자들을 소환하면서 ‘광기’와 같은 전쟁의 양면적 의미를 섬세하게 고찰한다. 전쟁의 개념과 정의로운 전쟁의 정의부터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총력전의 개념까지 전쟁과 관련된 철학과 사상을 아우르며, 그로는 ‘왜 인류는, 그럼에도 전쟁을 하는가‘라는 궁극적 질문에 도달한다. “전쟁은 정말 끔찍해!” ―스탈린 전쟁의 양면성에서 평화의 의미에 이르는 성찰의 위대한 여정 2022년 러우 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전문가들은 1945년 종전 이후 이러한 무력분쟁이 없었다며 ’진짜 전쟁의 귀환‘을 설파했다. 하지만 프레데리크 그로는 그 이전에도 사라예보 포위전, 스레브레니차 학살 등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음을 지적하며, ’진짜 전쟁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저자는 국제기구 차원에서 전쟁이 금지되었음에도 각종 테러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지구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전쟁의 패러다임을 전통적 재래전, 글로벌 전쟁(냉전), 혼돈 유발 전쟁(테러)로 구분한다면, 러우 전쟁은 그저 전통적 전쟁의 재현, 다시 말해 전쟁의 한 ’형태‘가 귀환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로는 전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 따라 전쟁의 역사를 오가며, 전쟁이라는 광기 아래 숨겨진 양면성에 주목한다. 저자에게 전쟁이란 도덕성을 고취하는 동시에 도덕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자, 윤리성을 발현하는 동시에 윤리성이 붕괴되는 순간이다. 고대의 전쟁에 있었던 야만성과 영웅심, 힘의 논리에 따라 이분법으로 재편되며 선과 악의 기준 등 서로 대비되는 가치 등을 논하며 ’정의로운 전쟁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도달한다. ’정의로운 전쟁‘은 정당한 명분과 정당한 수단 모두 필요하다. 저자는 도덕적으로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려는 순간 평화는 상대의 말살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된다면서 이분법적인 구획을 지양한다. 이외에도 플라톤에서부터 마르크스, 마키아벨리와 홉스까지 다양한 정치철학자의 견해를 소개하며 정의로운 전쟁의 의미와 국가와 전쟁의 관계, 인류가 전쟁을 벌이고 마는 이유 등을 섬세하게 고찰한다. 저자의 고찰은 고대 전쟁의 양면성에서 시작해 전쟁을 거쳐 현대로 돌아와 진정한 평화의 의미까지 닿는다. “전쟁은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전멸로 끝날 뿐이다.” ―버트런드 러셀 반복되는 비극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전쟁은 늘 인류의 역사와 함께였다. 마크 트웨인이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율은 반복된다”라고 말한 것처럼, 전쟁의 운율도 늘 반복된 것이다. 우리가 역사(전쟁)의 운율에서 그 무엇도 고찰할 수 없다면, 정체가 불분명한 정의와 평화를 좇아 행해지는 비극 역시 반복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미래의 전쟁을 예견하는 보통의 전쟁서와는 달리, 이 책은 철학적으로 과거의 전쟁으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성찰한다. 비극의 운율이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로의 통찰력에 주목할 때가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