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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악평
명예 없는 사회?
사회적 멸시
유령 이야기
우울
사회적 사실: 근친상간, 강간(외상성 수치심)
공화국의 성적 토대
아이도스
철학적 수치심 주기
전미래
교차적 수치심
계통적 수치심
혁명적 수치심

저자 소개 2

프레데리크 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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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 파리12대학과 파리정치연구소의 정치철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셸 푸코 연구자로서,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강의의 강의록을 편집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미셸 푸코Michel Foucault》,《푸코와 광기Foucault et la folie》,《그리고 그것은 정의가 되리라 : 민주주의에서의 처벌》,《푸코 : 진실의 용기》,《폭력의 국가들 : 전쟁종말론Etats de violence : Essai sur la fin de la guerre》,《안전의 원칙》,《걷는 사람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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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텍스트의 여백과 작가의 침묵까지 살려 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전문 번역가.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로맹 가리, 밀란 쿤데라, 아멜리 노통브, 피에르 바야르, 리디 살베르, 로제 그르니에 등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중요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모파상의 『멧도요새 이야기』, 로맹 가리의 『레이디 L』, 『하늘의 뿌리』, 『흰 개』, 『밤은 고요하리라』, 『내 삶의 의미』, 『마법사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자크와 그의 주인』,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
번역은 텍스트의 여백과 작가의 침묵까지 살려 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전문 번역가.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로맹 가리, 밀란 쿤데라, 아멜리 노통브, 피에르 바야르, 리디 살베르, 로제 그르니에 등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중요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모파상의 『멧도요새 이야기』, 로맹 가리의 『레이디 L』, 『하늘의 뿌리』, 『흰 개』, 『밤은 고요하리라』, 『내 삶의 의미』, 『마법사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자크와 그의 주인』,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앙테크리스타』, 리디 살베르의 『울지 않기』, 나탈리 아줄레의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하늘의 뿌리』,『단순한 기쁨』, 『프루스트의 독서』, 『랭보의 마지막 날』,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책의 맛』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어느 인생』,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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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128*188*20mm
ISBN13
9791171311064

책 속으로

친구에게 수치심에 관해 짧은 책을 쓸 계획이라고 얘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참 별난 생각이네. 죄의식이라면 도스토옙스키도 있고 카프카도 있지만… 수치심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이 반응은 놀랍다. 내가 보기에 수치심은 도덕적·사회적·심리적·정치적 차원을 넘나들며 죄의식보다 훨씬 폭넓고 복잡하며 깊은 경험을 내포한다. 또 무엇보다 카프카와 도스토옙스키도 수치심의 작가로 보인다.
--- p.7

철학자들은 오래된 가족 집단의 도덕적 명령인 가문의 수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전 세기부터 그들은 깎아내릴 목적으로 그것을 심리화하고 개인화하면서 재구성하고 재형상화했다.

《르 시드》가 나오고 10년은 족히 흐른 뒤 데카르트는 이렇게 쓴다. “수치심은 자기애에 토대를 둔 슬픔으로, 비난받으리라는 두려움이나 생각에서 온다.”(《정념론Traite des passions》 205항)

스피노자도 수 년 뒤 《소론Courttraite》에서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 “수치심은 자기 행위가 타인에게 무시당하는 걸 보는 인간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슬픔이다. 〔…〕 명예와 수치심에 대해 말하자면, 이 정념들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 해로운 것이므로 배척되어야 마땅하다.”(12장)
--- p.35

그렇지만 타인이 떠도는 유령의 형태로 내 안에 자리 잡는다면, 많은 개인적 면모들이 결국 타자의 주름들, 대역들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고독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단히 상대적이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타자는 꼭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누군가가 끔찍한 짓, 비열한 짓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고, 타락하고 비열하게 처신한다면 대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대체 저 사람은 어떻게 수치심도 안 느끼고, 어떻게 자기 눈길을 견딜까?” 이 말은 자신의 의식을 마주한 수치심을 가리킨다.
--- p.70

수치의 경험은 흔적을 남기기에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아니 에르노는 이렇게 쓴다.

기억은 “수치심의 특별한 재능”이다. “수치의 기억은 그 어떤 기억보다 치밀하고 까다롭다.” 모욕적인 장면들은 명확하게 떠오른다. 그 장면들은 우리 안에 자국을 남겨서, 그 윤곽도 분명하고, 형태도 선명하다.

그러나 거꾸로 트라우마 자체가 특유의 수치심을 유발하지는 않는지 자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트라우마는 어둡고 치명적인 확신으로 커가는 고통을 작동시키는 듯하다. 사건이 나를 지목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는 확신 말이다. 나는 그 일이 내게 닥친 것이 수치스럽다.
--- p.101

우리가 선과 맺는 관계를 조절하는 수치심은 우리가 진실과 맺는 관계도 어느 정도로 조절할 수 있을까? 현자는 가상의 투사로 자기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기라”고 촉구하고(현자의 윤리 구조로, 정신적 수련으로 작동하는 아이도스), 철학자는 그보다는 제자나 상대를 도발함으로써 타자에게 “수치심 주기”를 꾀한다.
--- p.167

정서로서 수치심은 언제나 붙들고, 유지하고, 멈춰 세우고, 억제한다는 사실과 연계되어 있다. 그것은 편의와 상스러움과 배덕의 문턱에서 타인들에 대한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저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혹은 뭐라고 말할까, 이미 그들의 머릿속이 훤히 보여) 자제하는(아이도스) 윤리적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의 눈길이 뿜는 날것 그대로의 잔인한 빛에 붙들리고 노출된 포로처럼 느껴져, 그저 사라져서 땅속으로 꺼지기를 바라는 뜨거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불공정하고 보잘것없고 어리석은 세상에 대한 저항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치심은 한계를 느끼는 감정이기에 언제나 변화를 향한 부름이다.

--- p.247

출판사 리뷰

“더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말라!”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 같으니!”
“수치심을 가져야 할 건 당신들이다!”
시대적 명령 사이에 자리한 감정, 수치심

수치심은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진다. ‘부끄러움’의 유의어로는 자괴감, 창피, 치욕, 모욕, 망신 등을 들 수 있다. 모두 극복해야 할 감정, 또는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에 속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느낀 ‘부끄러움’부터,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명예 살인’, 그리고 현대의 포털 사이트 뉴스란에 가득한 ‘성적 수치심’까지, 수치심은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수치심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 같으니”, “염치가 있어야지”,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같은 용례에서처럼.

이런 용례에서 수치심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을 함축한다. 수치심을 아는 이들, 염치가 있는 이들, 마땅한 창피를 느끼는 이들이 많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판단 말이다.

그런 점에서 프레데리크 그로는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수치심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소해야 할 심리적인 현상만도,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쓰이는 법적 근거만도 아니다.

수치심은 고대 그리스어로는 아이도스aidos, 라틴어로는 푸도르pudor라 불렸다. 이는 정치적 복종의 지렛대이자 사회적 슬로건이며, 내면을 형성하는 원리를 담은 찾던 고대 사회의 윤리를 함축한다.

수치심은 우리에게 불복종할 힘을 주는 혁명적 감정이다

책의 제목은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당신은 웃으며 나를 보고 말하겠지요! 시시합니다! 우리가 혁명을 하는 건 결코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난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수치심은 이미 하나의 혁명입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1813년에 승리한 독일 애국주의에 대한 프랑스 혁명의 승리입니다. 수치심은 일종의 분노입니다. 억눌린 분노. 온 나라가 정말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건 달려들기 위해 움츠린 사자 같을 것입니다. 고백하건대, 아직 독일에는 수치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K. 마르크스, 루게에게 쓴 편지, 1843년 3월, “D를 향하는 거룻배에서”)

수치심이 혁명적일 수 있는 건 그것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에 속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상상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불복종할 힘을 주는 것, 나날이 확실히 최악으로 치닫는 세태에 체념하지 않고 저항할 능력을 온전히 간직할 힘을 주는 것은 프리모 레비의 표현대로 “세상에 대한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슬픔과 분노의 혼합물이다. 영혼을 아무리 다듬는다 해도, 우리는 수치심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저 수치심을 분노의 형태로 바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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