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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
나를 찾아가는 열 장의 지도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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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역해자 서문
『성학십도』 - 나를 찾아가는 열 장의 지도

성학십도

『성학십도』 서문
제1도 「태극도」
제2도 「서명도」
제3도 「소학도」
제4도 「대학도」
제5도 「백록동규도」
제6도 「심통성정도」
제7도 「인설도」
제8도 「심학도」
제9도 「경재잠도」
제10도 「숙흥야매잠도」

해설

인간 본성과 감정에 대한 퇴계의 통찰
퇴계 이황의 사람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중국과 일본의 관심과 평가
군자의 향기가 스민 곳, 퇴계 이황 관련 유적
연보로 보는 퇴계 이황의 삶
『성학십도』 그림 원본과 원문

저자 소개2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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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 李滉 (1501-1570)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퇴계 이황의 다른 상품

대한민국의 동양철학자이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였고, 「퇴계 이황의 수양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 교사, 전통문화연구회 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는 충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 유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인성교육, 경세론, 환경과 생명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양사상의 대중화·현대화에도 노력하고 있으며 이 책은 그 첫 결실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35*210*20mm
ISBN13
9791171174409

책 속으로

퇴계는 인간의 순수하고 선한 본성을 긍정하고, 그 본성에 따라 인간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도덕적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다. (…) 또한 고봉 기대승과 벌인 8년여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통해 도덕 감정과 일반 감정의 발생 경로를 탐구하고, 본성을 함양하고 감정을 제어하여 우리가 더욱 인간다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그 길을 걸었던 퇴계의 일생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바로 『성학십도』이다.
--- p.15, 「『성학십도』 - 나를 찾아가는 열 장의 지도」중에서

유학자들이 임금을 계도하여 정치를 바르게 하려는 것은 집중된 권력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는 ‘폭력’의 방지를 위해서이다. 임금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폭력에 의한 약자의 희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유학자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임금에게 ‘아니 되옵니다’라고 진언하였던 것이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이나 내성외왕內聖外王 모두 이러한 폭력의 방지를 위해 유학이 제시한 길이다. 이제 막 보위에 오른 열일곱의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 서문에는 임금과 나라를 위하는 퇴계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으며, 유학자로서 퇴계에게 부여된 사명과 그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하는 그의 확고한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 p.22, 「『성학십도』 서문」중에서

퇴계는 순수한 감정은 본성에서 발현되고 일반적인 감정은 기질에서 발현된다고 보았다. 즉 도덕 감정과 일반 감정의 발생 경로를 따로 구분한 것이다. 이에 따라 퇴계는 순수한 감정은 순수한 본성 즉 이理가 발현된 것으로 기질은 수동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으며, 칠정과 같은 일반적 감정들은 기가 발현된 것으로 이理가 그 감정을 제어해야 한다고 보았다. (…) 기대승은 본성 즉 이理는 원리이자 이치이니 움직일 수 없으므로 기가 발하여 감정이 생기고 이가 그 감정을 통제하는 한 가지 경로로 우리의 감정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사단과 칠정은 모두 ‘감정’이고 사단은 모든 감정 중에 선한 감정만을 별도로 지칭할 뿐이라는 것이다. 「심통성정도」에는 퇴계와 기대승의 이와 같은 사단칠정논쟁이 압축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 p.86, 「제6도 「심통성정도」」중에서

인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천지의 마음이 인간에게 와서 인이 된 것이다. (…) 「인설도」에서는 인에 대하여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고, 사람이 천지의 그 마음을 얻어서 자신의 마음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인간과 만물을 통틀어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일 것이다. 그 ‘생명’을 낳고 기르는 마음이 인간에게 있어서 바로 인이다. 때문에 인은 곧 인류의 보편적 사랑이다. 사랑의 본성은 우리 마음의 본질이며 다른 본성을 포괄하는 것임을 「인설도」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인을 함양하고 확충하는 방안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한다.
--- p.95~96, 「제7도 「인설도」」중에서

퇴계는 「천명도」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의 도덕적 본성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고 그 본성을 실현하면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기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본성, 곧 이는 언제나 순수하고 선하기 때문에 본성의 발현을 통해서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인간의 도덕성이 기에 의해 좌우된다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인간만이 가진 선천적 도덕 본성을 바탕으로 인간이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다고 퇴계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퇴계가 마지막에 주장한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는 말은 인간을 ‘도덕적 주체’로 보고자 하는 퇴계의 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 p.150, 「인간 본성과 감정에 대한 퇴계의 통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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