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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_마이클 모슬리(의사, BBC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자 진행자)
책을 시작하며 1장 피비린 서막 수술하는 날 | 몸속 | 망자들의 비밀 | 전장의 피 | 25초 | 의술의 최첨단 | 심슨 선생의 흥미로운 실험 | 이제 손을 씻으세요 |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환자는 사망하였다 2장 심장의 일 심장으로 통하는 문 | 보랏빛 심장 | 비글로 선생과 마멋들 | 심장을 열다 | 한편 마멋 농장에서는 | 릴러하이 박사의 흥미로운 제안 | 이론은 이제 그만 | 기번 선생의 놀라운 발명품 | 릴러하이 선생이 난국에 대처하는 자세 | 돼지들의 밤 | 연약한 심장, 연약한 자아 3장 죽은 이의 손 어떤 이식 | 죽음의 치과의사 | 살인사건과 경력의 상관관계 | 알렉시 카렐의 연구실 | 프랑스, 죽음 이후의 삶 | 나눔의 무게 | 우리는 하나 | 핵이라는 선택지 | 마법의 버섯구름 4장 얼굴 교정 이탈리아식 코성형 | 타글리아코치 교수, 수상한 복식을 고안하다 | 글래디스 디콘, 외과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다 | 전쟁의 얼굴들 | 지나치게 앞서가다 | 매킨도의 군대 | 관 모양 줄기피판의 완전히 새로운 용도 5장 영혼 수술 죽었어야 마땅한 남자 | 뇌를 수술하다 | 천 개의 뇌를 가진 남자 | 월터 프리먼, 뇌엽을 절단하다 | 엽절단술과 대량생산 시스템 | 하워드 덜리의 사례 | 마음을 다스리다 | 스튜어트의 이야기 | 그때 그리고 지금 연대표 | 참고도서 | 찾아보기 |
Richard Holling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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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를 풍미한 유명 외과의답게 갈레노스는 결국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주치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 포부는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못지않게 유명해지는 것이었다. 갈레노스는 인체가 기능하는 방식을 이해한 의학자로서 영원히 기억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인체해부학과 관련하여 그가 직접적 지식을 취득할 경로라고는 외과의사로 일하는 것뿐이었다. 시체 해부는 기회가 드물뿐더러, 불결하고 불경하다는 인식이 파다했다. 로마 사회의 존경 받는 일원으로서 갈레노스는 그런 행위를 감히 제안할 수조차 없었다. 대신에 그는 주로 동물 해부를 통해 습득한 내용을 근거로 인체해부학적 지식을 쌓아 나갔다. 그래도 알 수 없는 것들은 환자를 진찰하며 유추하거나 되는대로 지어내기도 했다.
---「몸속: 기원후 157년, 로마의 소아시아 속주 페르가몬」중에서 1842년에는 로버트 리스턴과 같은 세계 일류의 외과의사가 수술한 환자도 살아서 병원 문을 나설 가능성이 6명당 1명꼴에 불과했다. 더욱이 복합골절 환자들은 수술만이 유일한 살 길이었기에, 마취도 없이 다리가 톱으로 잘리는 와중에도 딱딱한 나무 수술대 에 붙들린 채로 끔찍한 고통을 견뎌야 했다. 10년 뒤에도 여전히 그들은 살기 위해 팔다리를 잘라 내야 했지만, 적어도 이때는 통증완화제가 있었다. (중략) 이윽고 19세기 말엽에는 수술의 안전성이 그런대로 개선되었다. 생존 가능성은 (수술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0명당 1명꼴보단 나아졌고, 환자가 온전한 팔다리로 퇴원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환자는 사망하였다: 1865년, 글래스고」중에서 릴러하이-드월 기포형 산화기의 첫 시험 가동은 1955년 5월 13일에 이뤄졌다. 안타깝게도 환자는 이후에 사망했지만, 이런저런 정황에 비춰 볼 때 기기의 결함 때문은 아니었다. 이 선구적 수술이 잘못될 수 있는 요인은 많고도 많았다. 12월 무렵에는 그 인공심폐기를 사용해 시행한 수술이 무려 100건에 달했다. (중략) 인공심폐기의 등장과 더불어 외과의사들은, 혈액을 빼낸 상태에서 심장을 열어 수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더 오랜 시간 동안, 환부를 명확히 보면서 수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인공심폐기에 연결한 뒤에도 환자의 심장은 박동을 멈추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는 봉합을 정확한 위치에 시행하기가 어려웠고, 손을 조금만 삐끗해도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 이제 외과의사들은 심장박동을 완전히 멈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멈췄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방법도 함께 찾아야 했다. ---「릴러하이 선생이 난국에 대처하는 자세: 1955년, 미니애폴리스」중에서 카렐은 평생에 걸쳐 적들과, 그것도 대체로 강력한 적들과 싸워 나갔다. 첫 상대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리옹의 그 병원에서 일하던 상관들이 바로 카렐의 첫 상대였다. 그 외과의를 가장한 도살업자들은 스스로를 대단한 전문가라고 여겼지만, 실상은 대통령의 목숨조차 살리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실패자였다. 그들은 대통령을 살리는 일이 불가능했다고 말했지만, 카렐은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런 생각을 숨기지 않았고, 이를 증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려면 먼저 바느질 솜씨를 길러야 했다. 평소 병원 수술실에서 보던 식의 투박하고 서툰 바느질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때때로 그는 궁금했다. 과연 그 외과의들은 자신들이 남긴 기괴하고 커다란 흉터들이 자랑스러웠을까?). 카렐은 섬세한 혈관을 꿰매어 연결하기를 원했다. 그러려면 세심하고 섬세하면서도 정밀한 바느질법을 습득해야 했다. 고로 그는 리옹의 비단 거리를 찾아가 그 도시 최고의 자수장 르루디에 부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살인사건과 경력의 상관관계: 1894년 6월 25일, 리옹」중에서 타글리아코치는 손상된 얼굴을 재건한다는 발상에 매료되었다. 그는 의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결함이 있는 부분”에 관한 외과학이었다. 얼굴 외관 손상의 가장 흔한 원인은 매독이었다. 하지만 코의 상실은 다른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혹은 결투 중에 코를 잘렸다. 그러나 코가 명예로운 방식으로 잘려 나간 이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때처럼 매독이 창궐하던 시대에는 검에 베인 사람과 매독에 걸린 사람을 쉽사리 구별할 수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새 얼굴을 갈망하며 타글리아코치를 찾아왔지만, 재건 수술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타글리아코치의 잘못은 아니었다. 16세기에는 모든 수술이 난관으로 점철돼 있었다. 우선 모든 수술을 마취 없이 시행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남은 선택지가 오로지 사망인 경우에만 수술의 고통을 받아들였다. ---「이탈리아식 코성형: 1597년 이탈리아 볼로냐」중에서 1931년 4월 15일, 쿠싱은 생애 2,000번째로 종양 수술을 집도했다. 환자는 아이다 허스코위츠라는 서른한 살의 여성이었다. 그는 소모성 두통에 시달렸고 급격히 시력을 잃어 갔다. (다른 수술에 비하면) 특별히 복잡한 수술은 아니었다. 쿠싱은 종양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허스코위츠의 시력을 회복시켰다. 쿠싱은 1890년대 말엽 외과의사가 되고부터 뇌수술에 관심을 가졌다. 뇌수술 환자의 어마어마한 사망률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경외과가 앞으로 외과의 위대한 혁명을 주도할 분야라 여겼고, 그 혁명에 동참하고 싶었다. 아니, 그저 동참하는 정도가 아니라 선두에 나서기를 원했다. 굳은 의지로 쿠싱은 몇 년 뒤에 목표를 이뤘고, 1930년대 즈음에는 그 분야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그가 이룬 혁신은 대부분 소소한 것이었지만,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뇌수술을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만들었다. ---「천 개의 뇌를 가진 남자: 1931년 보스턴, 피터 벤트 브리검 병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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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는 심장이나 뇌를 수술하고, 장기와 안면을 교체하는 일이 그리 놀랍지 않다. ‘쉬운 수술’과 ‘어려운 수술’ 정도로 구분될 뿐. 하지만 의술이 이처럼 고도화하기까지는 금기에 맞서 타인의 ‘피와 내장’을 가르는 위험을 무릅쓴 수많은 의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사투가 있었다.
영국의 유명 과학 저널리스트 리처드 홀링엄이 집필한 『기발해서 더 놀라운 의학의 역사(Blood and Guts)』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의학의 빛나는 발전을 이끈 괴짜 의사들의 활약상을 재기발랄한 글솜씨로 풀어낸 책이다. 동명의 BBC TV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하였는데,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약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간헐적 단식법』의 저자이자 의사인 마이클 모슬리가 19세기에 활용된 거머리흡혈, 통증 관리를 위한 아산화질소 흡입, 심장 수술에 사용되는 저체온법 등을 직접 체험하고 서문에 소개해 흥미를 돋운다. 이 책을 구성하는 5개의 장에는 외상외과, 심장외과, 성형외과, 이식외과, 신경외과의 발전을 이끌어낸 획기적인 사건들로 가득하다. 기원후 2세기 로마시대 검투사의 주치의로 활약한 갈레노스가 동물 해부를 통해 인체해부학을 구체화하고 인간이 4가지 액체로 구성된다는 사체액설을 완성한 이래로, 1천 년이 넘도록 굳건하던 과거의 의학에 균열이 생긴 건 사형수의 시신을 훔쳐 인체의 구성을 탐구한 젊은 의사 베살리우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부터, 전장에서 팔이나 다리를 잃거나 대량 출혈로 죽음에 이르던 군인들을 돌보던 16세기 프랑스 의사 파레가 혈관을 묶는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시대를 앞서간 의학자들의 고뇌가 담겨 있다. 수술이라고는 절단술밖에 없던 19세기 중반, 영국 최고의 외과 의사로 손꼽힌 리스턴의 유명세는 썩어가는 다리를 30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잘랐기에 가능했는데, 수술 시간을 늘리고 싶던 그가 통증을 완화시키는 에테르를 활용하면서 복잡한 수술을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피 묻은 프록코트를 입고 시체를 부검하던 손으로 환자를 돌보던 시절, 산욕열로 산모들이 죽어나가는 이유를 연구하던 산부인과 의사 제멜바이스는 “손을 씻자”고 주장하며 위생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인간의 몸을 이해하고 출혈을 차단하며, 통증을 조절하고 감염을 극복할 수 있게 된 의사들은 20세기 중반 팔딱이는 심장을 열어 판막을 재건하거나 이식술을 시도했으며, 인공심폐기 개발 문제로 국가 간 자존심을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이제는 ‘완벽한 미모’를 구현하는 성형술뿐 아니라, 환자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뇌수술 등 최첨단 의술 또한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의학의 새 역사를 탄생시킨 개척자들에게 잘못된 의학적 도그마에 맞설 줄 아는 용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생명 연장의 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대 의학의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기에 지금은 『기발해서 더 놀라운 의학의 역사』에 등장하는 선구적 의사들의 통찰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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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는 아마도 흥미진진한 세부 사항을 주입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사실은 결코 만난 적이 없을 법한 능숙한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원전 2세기에 검투사를 치료했던 갈레노스부터 파킨슨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초로 전기 뇌 임플란트를 시술한 스튜어트 카터까지, 의사와 환자 등 의료 선구자들의 추진력, 에너지, 용기 이상의 것이 있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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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내장(Blood and Guts)]이라는 제목의 BBC TV 시리즈 5부작을 기반으로 한, 일화로 가득 찬 수술의 역사. 저자는 1842년 로버트 리스턴이 단 30초 만에 마취 없이 다리 절단 수술을 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갈레노스와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적 연구에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19세기와 에테르의 발견으로 관심을 돌린다. (중략) 재난이나 승리로 끝나는 수술실 드라마와 함께, 다양한 영웅과 악당으로 가득 찬 빠르고 재미있는 읽기를 제공한다.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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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수술이 평범한 일일 수도 있으나 항상 안전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오늘날의 환자들이 200년 전이 아닌 지금 수술을 받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보여준다. 뛰어난 사고방식의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수술 과학의 급속한 발전을 보여주는 홀링엄의 생생한 책의 첫 번째 섹션은 해부학, 마취 및 위생 분야의 주요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나머지는 뇌수술, 이식수술, 성형수술 등 특정 유형의 수술에 관한 것이다. 소름 끼치지만 인상적이다. - 파이낸셜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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