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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정연
북트리거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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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겨울

일기? 그거야 시간문제지 / 백 미터만 앞으로 나아갑시다
매닉스 LP를 샀다, 그리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 크리스마스이브? 그런데 내 전 재산은
트위터에 “올해 책 다섯 권 내야지”라고 적었다 / 월요일 나. 화요일 나. 수요일 나.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필요했다 / 우리에게는 필요한 시간이 모두 주어져 있다



금정연_ㅅ.hwp / 글쓰기 외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소망
이 책은 이렇게 나올 운명인 모양 / 내 책은 출판에 임박해 떨고 있으며
한마디로, 너무 피곤하다 / ‘은신처’라는 책을 펴낼 생각이야

여름

내 책이 한 권도 없는 서점에서 / 한밤에 책이 쓰러지는 소리에
언제까지 이런 메일을 써야 할까? / 돈 편지(money letter)의 저주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나는 무엇을? / 네가 말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다

가을

마흔둘의 생일이 이렇게 지나간다 /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옛날의 박력
상금이라도 받지 않으면 못 견딜 자리 / 내가 ‘노벨상 가능자’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어린이가 어디 있냐 / 진짜 걱정은 어른들의 얼굴 높이에 있다

겨울

그야말로 중년의 연말이다 / 조심조심 쓰는 건 죽음과 같은 글쓰기
그런데 어디로 가지? / 시계는 ‘떠남’을 가리키고 있다
근데 다 그냥 될 거 같은데? 이센스가 노래했다 / 이제 아빠는 우주로 돌아가는 거야?

다시, 봄

발등은 타고 있는데 어째서 마음이 편한 거지? / 안 가라앉는 날이 있나!
오늘도 자라느라 고생이 많은 나윤이는 / 너도 아이처럼 그냥 계속 뚝딱거려 봐
나는 미쳤다, 나는 글들을 지배한다 / 어떤…… 막막함이…… 중첩되었다

여름

나는 쓰레기인가? 직업윤리가 없나? / 쓰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남들 다 하루치 늙는 동안 나 혼자 / 마이크에 이야기한다, 나 혼자서
내 생각엔, 그게 바로 작가인 것 같다 / 그 문장을 아예 지우기로 했다

가을

그렇지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고 / 세상을 말로 옮겨 놓는 단순한 습관
그렇다면 일기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핑계 / 나는 살고 싶기 때문에

저자 소개1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 그전에는 온라인 서점 인문 분야 MD로 일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근하기 싫어서 아침마다 울었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원고를 쓰기 싫어서 밤새도록 울었다. 마감과 마감 사이, 글감을 떠올리는 고통스러운 시간과 허겁지겁 초침에 쫓기며 밤새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을 단순 왕복하며 살던 중 일상을 이루는 최소한의 리듬,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하루의 회복을 꾀하며 일상기술 연구소의 고문연구원으로 합류했다. 일상기술 연구소를 통해 주어진 트랙을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경로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의 건강함에 매번 깜짝깜짝 놀라며 반성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 그전에는 온라인 서점 인문 분야 MD로 일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근하기 싫어서 아침마다 울었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원고를 쓰기 싫어서 밤새도록 울었다. 마감과 마감 사이, 글감을 떠올리는 고통스러운 시간과 허겁지겁 초침에 쫓기며 밤새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을 단순 왕복하며 살던 중 일상을 이루는 최소한의 리듬,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하루의 회복을 꾀하며 일상기술 연구소의 고문연구원으로 합류했다.

일상기술 연구소를 통해 주어진 트랙을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경로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의 건강함에 매번 깜짝깜짝 놀라며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여전히 마감이 코앞에 닥친 후에야 화들짝 놀라 글쓰기를 시작하곤 하지만 글이 쓰기 싫어 울지는 않는다.

서평가.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아무튼, 택시』 『담배와 영화』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함께 쓴 책으로 『문학의 기쁨』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옮긴 책으로 『글을 쓴다는 것』 『동물농장』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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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360g | 128*190*17mm
ISBN13
9791193378144

책 속으로

처음 일기를 쓴 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흔적 없이 사라진 하루들이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됐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었다. 인쇄가 잘못된 책처럼 인생의 페이지가 듬성듬성 비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일기를 쓰자,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자, 기록이 다시 기억이 될 수 있도록.
--- p.16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비싸진 않지만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며 얼마 있지 않은 돈을 낭비하듯,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트위터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살 수도 없는 물건들을 검색하면서 얼마 있지 않은 시간을 낭비한다.
오늘 내가 트위터 피드를 끊임없이 새로고침하고, 유튜브에서 진공관 앰프 리뷰를 찾아보고, 온라인 서점과 레코드점을 뒤지면서 당장 살 돈도 없는 책과 레코드 들을 장바구니에 꾸역꾸역 담으며 하루를 보낸 것처럼.
--- p.18

중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지금 내 나이쯤이면 내가 밴드를 만들고 싶다고 《벼룩시장》에 낸 광고를 보고 모인 친구들과 함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센세이셔널한 데뷔 앨범을 내고, 나쁘지 않지만 첫 번째 앨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두 번째 앨범을 내며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리다가, 음반사와의 계약 때문에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망작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세 번째 앨범을 내고, 술과 사랑과 다른 악마들이 낀 추문 끝에 해체를 선언한 후,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며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가끔 쓰고 부른 노래들을 묶은 거의 기타 한 대의 연주가 전부인 느리고 사색적인 솔로 앨범을 한두 장 내고, 어쩌다 다른 밴드들의 녹음이나 공연에 깜짝 등장하기도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 뾰족하던 구석들이 어느덧 둥글어진 조금쯤 늙고 지친 멤버들과 다시 뭉쳐 어떻게 봐도 명반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오래된 팬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한두 곡쯤은 제법 감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네 번째 앨범을 내고, 소소한 전국 투어를 돌고,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다음, 어떤 야심도 조급함도 시기심도 없는 마음의 상태로 강원도 어디쯤에 있는 작은 펜션을 스튜디오 삼아 멤버들과 함께 숙식하면서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다르고 세상 어떤 음악과도 다른 다섯 번째 앨범을 만들고, 비평가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지만 상업적으로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어쩐지 조금은 후련한 마음으로 이제 정말 끝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 후, 포르투갈의 작은 해변 마을에서 커다란 개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마흔두 살쯤에는.
--- pp.35~36

내 생각에, 글을 쓰는 사람이 카프카의 일기를 찾아 읽는 데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장점은 글쓰기의 어려움, 차라리 불가능을 토로하는 하루하루의 카프카를 보며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거다. 단점은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나까지 덩달아 우울해진다는 것. 좋아, 초반엔 아직 젊으니까 그렇다고 쳐. 근데 마흔 넘어서도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혹시 다른 사람들도 내 트위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 p.40

문득 10년 전에 첫 책을 내던 때가 떠올랐다. ‘서서비행’이라는 제목과 표지, 비행에 빗대 장 제목을 붙인 것까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결국 그대로 나왔다. 제발 본인을 한 번만 믿어 달라는 담당 편집자의 말에 약간,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같은 기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나는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으로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이렇게 나올 운명인 모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내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도 책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고, 일단 세상에 나온 책은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부디 나쁘지 않은 생이기를 바랄 수 있을 뿐.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표지 시안 이미지를 보여 주며 “이게 아빠 책이야. 어떨 것 같아, 재밌을 것 같아?” 물으니 나윤이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응, 재밌을 것 같아.”
--- p.69

그로부터 석 달 후에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된 안네와 가족들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이듬해 안네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다. 전쟁의 끝을 보지도, ‘은신처’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지도 못하고. 사후에 출판된 일기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안네의 소망이 이루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두 달이 넘었다. 그런 생각들은 제주도를 향하는 비행기에 앉아 있는 내게 일종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황급히 눈을 감았다.
--- pp.80~81

언제나처럼 정지돈과 내가, 글을 잘 써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다고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 힘들어질 뿐이다, 같은 이야기를 조금 과장을 섞어 징징대며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자 시인 겸 평론가인 강보원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전에도 말했지만 여러분은 잘 쓰기라도 해야 된다니까요. 생각해 봐요, 못 쓰면 어떡할 건데요?”
그러게, 못 쓰면 어쩌지…. 우리가 글까지 못 쓰면 정말 답이 없는 거 아닌가….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늘 그런 것처럼, 했어야 했던 말은 뒤늦게 떠올랐다.
그 자리에 없던 우리의 친구 오한기는 한국에서 가장 저주받은 걸작(‘가장’이 ‘저주’를 수식하는지 ‘걸작’을 수식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음), 시와 일기와 꿈이 뒤섞인 아름다운 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의 5월 18일 일기를 이렇게 썼다.

잘 쓰지 않아도 걸작이 될 수 있어.
--- pp.216~217

그런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야심 없이 글을 쓰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쓰고 있는 글에 다소 의아할 정도로(사람들이 “당신이 쓰는 글에는 그만한 공력을 들일 가치가 없어”라고 말할 정도로) 집착하며 그 때문에 종종 길을 잃는 사람이. 글을 쓸 수 없어 덜컥 겁을 먹고 벌벌 떨다가 바짝 뒤를 쫓는 마감에 밀려 겨우 원고를 넘기고, 또 그런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 브라이언 딜런은 그런 사람이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딜런은 말한다. “에세이란 ‘평생을 작가로 살면서 도무지 한 가지 과제를 위해선 살지 못하는 데 대한 핑계’는 아닐까? 에세이가 그 핑계가 되어 주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일기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핑계다.

--- p.270

출판사 리뷰

“일기? 그거야 시간문제지! 그리고 내게는 시간이 없다.
일기만 쓰기에도 하루가 부족하다.”

저자가 요즘 쓰는 일기는 크게 다섯 종류다. 독서 일기, 육아 일기, 오디오 일기, 어둡고 축축한 마음의 바닥에 대한 무삭제판(unabridged) 일기…. 그리고 이 책은 ‘일기를 읽으며 적는 일기’, 줄여서 ‘일기-일기’, ‘더블 다이어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책깨나 읽는 사람들의 서점’ 알라딘의 인문사회 MD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고, 2012년 ‘생계독서가’라는 인상적인 수식어와 함께 데뷔했다. 그 뒤로도 ‘서평가’,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 등의 모순적인 네이밍으로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을 냈다. 영화, 음악, 문학, 세상사 등에 조예가 깊으면서도 유머러스한 글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 분야의 비평은 아니었다. 장르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들었음에도 그의 글을 좋아하는 마니아는 점점 더 늘어났으며, 책을 사랑한다면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독자는 이제 거의 없을 정도다.
그리고 10년도 더 지난 지금, 그는 비교적 명확하게 이름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다. 일기. 지금 그는 일기를 쓰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가 써 온 모든 글이 일종의 ‘일기’였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그 자신의 일기이면서, 동시에 남들의 일기에 대한 일기이다. 이 일기-일기에서 그는 책, 영화, 육아, 음악, 강연, 노화 등 자신의 생활과 주요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 책이 그중 어느 한 가지에 대한 일기라고 할 수는 없다. 일기란 본디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고, 그 과정을 적고, 남의 일기에서 자신과 비슷하거나 다른 삶을 읽으며, 또 그것을 적을 뿐이다.

어제의 작가와 오늘의 작가가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쓰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 유미리
“그렇지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고” - 금정연

이 책은 글을 쓰는 삶, 매일 뭐라도 쓰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작가의 삶이란 이렇다’고 가르쳐서가 아니라, 저자의 날것 그대로의 일상과, 그와 겹쳐지는 과거 대문호들의 속마음을 가감 없이 담아냈기 때문이다. 평생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죽기 1년 전 작품에서 “쓴다는 게 겁나, 그게 다야”라고 말한다. 최승자 시인은 금정연과 비슷한 나이 즈음 아이오와에서 “전 재산은 50달러”,“이 모든 게 책값 때문”이라고 자조한다. 역시 그 나이 즈음 세상을 떠난 카프카는 죽기 1년 전 “모든 단어들은 유령의 손안에서 방향을 바꾸면서 화자에게로 끝을 겨누는 창이 된다”라고 토로한다. 존 파울즈는 “모르겠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돈도 없고 야망도 없다”라고 자신의 현재를 표현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실비아 플라스는 “내가 살아 있는지, 살아 있었던 적이나 있었는지” 자문하며 “글쓰기 외의 직업을 갖고 싶은 소망”을 언급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이 “작가로서 실패했”으며, “유행에 뒤처졌고, 나이도 먹었고, 더 이상 뭘 잘할 수도 없으며, 머리가 나쁘다”라고 자평한다. 당시 이미 주목받는 작가였던 수전 손택 역시 “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매력도 없고 사랑받지도 못한다”, “잘못된 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고, 내가 ‘그 이상’이 못 된다는 사실이다”라고 털어놓는다. 스톡홀름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악셀 린덴은 도시 생활을 접고 목장으로 내려가 양을 치기 시작한 뒤에 이렇게 일갈한다. “이 세상에 지속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이 지속 가능했던 적도 없다. 그런데 다들 별일 아닌 척한다.”

이렇게 쓸 수도 없고 쓰지 않을 수도 없는, 이대로 살 수도 없고 살지 않을 수도 없는 운명으로 어제의 작가와 오늘의 작가는 이어져 있다. 그 저주이자 동시에 축복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작가들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작품 세계하고는 별개인 ‘일기’를 꾸준히 써 왔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일기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낯 모르는 타인들의 일기를 읽으며
내 일기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까?”

이 책은 우리는 왜 일기를 쓰는가, 남의 일기를 읽는가, 내 일기를 남에게 보여 주는가 자문하며 일기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기이기도 하다. 저자가 책 속에서 다양하게 인용하는 이런저런 시대의 일기 작성자들 또한 그와 똑같이 자문했을 게 틀림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일기에 관심 없다, 그런데 왜 나는?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부족한 시간에 왜 굳이 매일 일기를, 일기라도 쓰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매일이 똑같고 지루하며 때로 고통스러운데 왜 굳이 또 하루 살아가는가라는 물음이라는 사실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 작성자, 15세의 안네 프랑크는 이렇게 썼다. “전쟁이 끝나면 난 반드시 ‘은신처’라는 제목의 책을 펴낼 생각이야. 실현 가능한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일기가 그 책을 위한 초석이 되어 줄 것은 분명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세상을 떠난 안네는 결국 ‘은신처’라는 책을 펴내지는 못했지만, 안네의 일기는 자신의 소중하고 유일했던 존재를 증거하며 여전히 우리에게 읽히고 있다.

일기로 인한, 일기를 위한, 일기에 대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질문할 것이다. 당신은 왜 일기를 쓰나요?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나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배우고 욕망하고 느끼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물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본문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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