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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예기역주 서문■5
일러두기■10
악기樂記 제19■13
잡기상雜記上 제20■167
잡기하雜記下 제21■261
상대기喪大記 제22■365
제법祭法 제23■491
제의祭義 제24■529
제통祭統 제25■615
경해經解 제26■671
애공문哀公問 제27■685
중니연거仲尼燕居 제28■713
공자한거孔子閒居 제29■741
색인■761

저자 소개 3

진호陳澔(1260~1341)의 자는 가대可大이고 호는 운주雲住, 북산수北山?이다. 귀경歸經선생이라고도 불리었다. 진호가 활동한 시기는 남송 말기와 원 초기의 변동기였다. 진호는 평생 은거하여 강학에 종사하였다. 도창都昌(현 강서성 도창현)에 운주雲住서원을 세워 가르쳤고, 만년에는 2년 동안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서 강학을 주관하였다. 「강서통지江西通志」의 기록과 진호의 「예기집설서禮記集說序」(1322)에 따르면, 진호의 부친 진대유陳大猷는 황간黃?의 제자인 요로饒魯에게 14년을 배웠고, 「예기」로 향시에 3번이나 합격한 뒤 1259년 진사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종정랑從政?, 황주군
진호陳澔(1260~1341)의 자는 가대可大이고 호는 운주雲住, 북산수北山?이다. 귀경歸經선생이라고도 불리었다. 진호가 활동한 시기는 남송 말기와 원 초기의 변동기였다. 진호는 평생 은거하여 강학에 종사하였다. 도창都昌(현 강서성 도창현)에 운주雲住서원을 세워 가르쳤고, 만년에는 2년 동안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서 강학을 주관하였다. 「강서통지江西通志」의 기록과 진호의 「예기집설서禮記集說序」(1322)에 따르면, 진호의 부친 진대유陳大猷는 황간黃?의 제자인 요로饒魯에게 14년을 배웠고, 「예기」로 향시에 3번이나 합격한 뒤 1259년 진사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종정랑從政?, 황주군판관黃州軍判官을 지내고 「상서집전尙書集傳」을 저술하였다. 진호는 서문에서 진기유가 스승에게 「예기」에 대해 배운 것을 정리해 놓고 있었지만, 화재로 소실하여, 자신이 다시 「예기집설禮記集說」을 지었다고 밝혔다. 진호의 「예기집설」은 가학을 전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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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玄(127~200) 정현鄭玄은 127년(후한 순제順帝 2)에 태어나 200년(후한 헌제獻帝 12)에 별세하였다. 자는 강성康成이고 북해 고밀현高密縣(현재 산동성 고밀高密시) 출신이다. 「후한서」 「정현전」에 따르면, 젊어서 향색부鄕嗇夫의 일을 하다가 태학에 들어가 제오원선第五元先에게 「경씨역京氏易」, 「공양춘추公羊春秋」, 「삼통력三統歷」, 「구장산술九章算術」을 공부하였고, 장공조張恭祖에게 「고문상서古文尙書」, 「주례周禮」,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배웠다. 정현이 산동 집으로 돌아갈 때 마융은 “나의 도가 동쪽으로 가는구나!”라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귀향한 뒤에 소작을 하면서
鄭玄(127~200)
정현鄭玄은 127년(후한 순제順帝 2)에 태어나 200년(후한 헌제獻帝 12)에 별세하였다. 자는 강성康成이고 북해 고밀현高密縣(현재 산동성 고밀高密시) 출신이다. 「후한서」 「정현전」에 따르면, 젊어서 향색부鄕嗇夫의 일을 하다가 태학에 들어가 제오원선第五元先에게 「경씨역京氏易」, 「공양춘추公羊春秋」, 「삼통력三統歷」, 「구장산술九章算術」을 공부하였고, 장공조張恭祖에게 「고문상서古文尙書」, 「주례周禮」,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배웠다. 정현이 산동 집으로 돌아갈 때 마융은 “나의 도가 동쪽으로 가는구나!”라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귀향한 뒤에 소작을 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천 명이 넘었다. 당고黨錮의 화禍가 발생하자, 정현도 금고禁錮를 당하여 두문불출하고 저술에 몰두하였다.

정현은 고문경학을 위주로 금문경학의 설을 함께 채택하여 「주역」, 「모시毛詩」, 「의례」, 「주례」, 「예기」, 「논어」, 「효경」 등을 주석하였고, 「건상력乾象歷」, 「천문칠정론天文七政論」, 「상서대전尙書大傳」, 「상서중후尙書中侯」, 「노례체협의魯禮??義」, 「육예론六藝論」, 「모시보毛詩譜」, 「박허신오경이의駁許?五經異義」, 「답임효존주례난答臨孝存周禮難」 등을 지었다. 정현의 주석은 제도와 명물의 훈고가 간명하면서도 상세하고, 고문경학과 금문경학을 종합하여 한대 경학을 집대성하였다. 당 태종은 정현을 22명의 “선사先師”의 반열에 올리고 공자묘孔子廟에 배향하였다. 송대에 이르러 고밀백高密伯에 추봉追封되었다.
정현이 「주례」, 「의례」와 「예기」에 대하여 주석을 가하면서 “삼례三禮”라는 명칭이 생겼다. 오늘날 전하는 「의례」는 정현이 정한 본이다. 「예기」는 대성이 찬집한 이후 유향劉向(기원전77~기원전6)의 「별록別祿」본을 비롯하여 여러 본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현은 노식盧植과 마융馬融의 본을 활용하여 여러 이본을 참고하면서 정본을 편성하였고, 정현본이 오늘날까지 기준본이 되었다. 정현의 저작은 「모시전毛詩箋」, 「주례주周禮注」, 「의례주儀禮注」, 「예기주禮記注」 등만 전하고 나머지는 산일되었다. 마국한馬國翰(1794~1857)의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逸書」에 일부가 전하고, 돈황燉煌에서 「논어주」 사본 일부가 발굴되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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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역임하였고 延世大學校, 韓國航空大學校 강사. 현재 延世大學校 國學硏究院 동아시아고전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역대 예제와 예제 현실의 예경학적 토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논저로는 「조선시대 국장에서 조조의 설행 논의와 결과」, 「규범의 근거로서 친친 존존의 정당화 문제」, 「주자가례 속의 인간과 사회―새로운 종법 이해와 재구성의 고례적 맥락에 대한 성찰」, 「덕치의 상징체계로서 유교국가의 즉위의례」, 「정현 예학의 지향점」, 『동양철학의 세계』, 『왕실의 천지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역임하였고 延世大學校, 韓國航空大學校 강사. 현재 延世大學校 國學硏究院 동아시아고전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역대 예제와 예제 현실의 예경학적 토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논저로는 「조선시대 국장에서 조조의 설행 논의와 결과」, 「규범의 근거로서 친친 존존의 정당화 문제」, 「주자가례 속의 인간과 사회―새로운 종법 이해와 재구성의 고례적 맥락에 대한 성찰」, 「덕치의 상징체계로서 유교국가의 즉위의례」, 「정현 예학의 지향점」, 『동양철학의 세계』, 『왕실의 천지제사』, 『왕실의 혼례식 풍경』,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 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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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768쪽 | 1200g | 153*226*44mm
ISBN13
9788965251637

출판사 리뷰

「예기」의 성립과 편제에 대하여

현재의 「예기」는 정현이 주석한 본을 전승한 것이다. 정현의 설명에 따르면, 대성이 편찬한 「예기」는 49편이 된다. 「수서」 「경적지」의 설명에 따르면, 대성이 편찬한 「예기」는 46편이고, 「월령月令」, 「명당위明堂位」, 「악기樂記」 등은 마융이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한서漢書」에는 「예문지」를 포함하여 어디에도 대성이 49편 또는 46편을 찬집하여 전하였다는 언급이 없다. 정현의 설을 따라 대성이 「예기」를 편찬하였다고 해도, 대성이 활동한 서한 선제宣帝(기원전91~기원전48) 시기부터 정현(127~200)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 동안 「예기」가 어떤 형태로 전승되었는지, 나아가 대성 이전에 「예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진호는 주희의 설을 기반으로 삼아, 위식이 참고하였던 여러 설들을 선별적으로 채록하였다. 진호가 채록한 설은 대부분 위식의 「예기집설」과 중복되지만, 때로 중복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예기」에 대한 역대 주석을 집성해서 살필 때 두 책은 서로 보완이 된다. 진호는 「대학」과 「중용」은 별도로 주석을 가하지 않았다. 따라서 진호의 「예기집설」은 「대학」과 「중용」이 빠진 47편이다. 명대 「영락대전」을 간행하면서 「사서오경대전」에 진호의 「예기집설」이 채택되면서, 「예기」에 대한 표준적 주석서로 영향을 미쳤다. 진호는 예 개념과 의절의 이학적 의리를 밝히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명물도수名物度數의 고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자세하였다. 이학을 비판하였던 청대 고증학자들은 「주례」나 「의례」와 달리 「예기」만 정현의 고주에 기반하지 않고, 이학에 기반한 진호의 「예기집설」을 채택한 것이 예학의 발전을 후퇴시켰다고 보았다.

당대 공영달이 인용한 정현의 「육예론六藝論」에 “대덕戴德은 「기記」 85편을 전하였다. 「대대례大戴禮」가 그것이다. 대성戴聖은 「예禮」 49편을 전하였다. 이 「예기」가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대덕戴德(선제 시기 박사)이 그 번잡하고 중복된 부분을 산절하여, 85편으로 합해서 「기記」로 편제하고 「대대기大戴記」라고 불렀다. 대성戴聖(선제 시기 박사)이 다시 대대의 책을 산절하여 46편으로 만들고 「소대기小戴記」라고 불렀다. 한 말기 마융馬融(79~166)이 드디어 대성의 학문을 전승하였다. 마융은 다시 「월령月令」 1편, 「명당위明堂位」 1편, 「악기樂記」 1편을 추가하여 49편으로 합해놓았다. 정현은 마융에게 배웠고 49편에 주석하였다. 오늘날 「주관周官」 6편, 「고경古經」 17편, 「소대기小戴記」 49편 등 전체 3종은 오직 정현의 주注만 학관에 세워져 있고, 그 나머지는 흩어지고 없어진 것이 많은데다 또 전승되는 스승의 설도 없다.”

학계에서는 「예기」의 찬자를 대성으로 설명한 「육예론」과 「경적지」의 설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고, 또 대성을 찬자로 인정하다고 하더라도 대성이 찬집한 「예기」가 정현에게까지 전승된 과정에 대한 해명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예컨대 마융이 46편에 3편을 추가하여 3편이 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예기역주 4」의 내용

본 권에서는 「예기역주禮記譯註」 전5권 49편 중에서 악기樂記 제19편, 잡기상雜記上 제20편, 잡기하雜記下 제21편, 상대기喪大記 제22편, 제법祭法 제23편, 제의祭義 제24편, 제통祭統 제25편, 경해經解 제26편, 애공문哀公問 제27편, 중니연거仲尼燕居 제28편, 공자한거孔子閒居 제29편을 번역하여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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