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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바람의 길
시간을 덮다 9 새 사냥 13 텃밭에 부는 바람 17 호(號)를 받다 21 징검다리를 건너다 27 탈을 쓴다 30 사라진 글자 33 100년 37 다시 만나다 41 어떤 변신 44 녀석 47 취향 51 흔들리는 높임말 55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 58 삶은 아름답다 62 살아가는 방법 66 2부 - 바람이 머무는 곳 고슴도치와 함께 살기 73 마름에 대하여 76 안녕 79 웃을 수 있는 사람 81 집게 83 채송화 그리고 해바라기 86 탄천에서 삶을 보다 88 거미줄과 양파 90 어떤 버킷리스트 93 남생이의 길 95 자운영 97 인생 멘토 99 하늘 끝에서의 대화 102 삼시충(三尸蟲) 104 귀뚜라미 소리를 듣다 106 그저 108 코로나 골프 110 모란장 112 호미 114 혼돈 117 3부 - 날마다 부는 바람 선재길 123 봄이 한창이다 129 선진이와 후진이 133 걸어라 136 자전거 바퀴 위에서 140 배추와 함께 143 녹색 모자 147 안치다 151 즐겁게 하루를 155 생강 158 골프 해방구 162 사랑으로 166 8월의 날들 170 키스 앤 크라이 존 174 그저 하루하루 178 4부 - 모든 것은 바람에 흔들린다 ‘건국전쟁’을 보다 185 추렴 189 수상한 전동차 193 발목쟁이 198 홍수 202 청송 스케치 206 흥정 216 자책(自責) 219 철학자의 언덕 223 그 노래 228 경계에 서서 232 신호등 앞에서 238 시간은 많은데 242 더미(dummy) 247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251 작가의 말 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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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한 마디 던지고 내 귀에서 사라졌다.
“너도, 세월이 빠르지?” 물론, 시간은 급경사를 타고 굴러가는 바퀴라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동일하지만 사람에 따라 속도에 차이가 난다고도. 나이 든 사람들은 기억과 습관화된 경험에 행동이 우선적으로 반응하고, 새로운 것에는 적응 능력이 떨어져, 주관적으로 인생의 속도가 빠르다 생각하는 건 아닌지. --- 「시간을 덮다」 중에서 그녀가 끌고 가는 카트 바퀴소리가 덜덜거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벗어날 수 없다. 나는 묵묵히 견뎌내는 그런 삶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 「삶은 아름답다」 중에서 잔디는 조밀하게 웃자랐고, 남생이에게 아주 낯 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가로질렀다. 그리고 매일 오는 비로 마구 자란 풀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또 인간의 길, 그 너머에 비로소 계단 몇 개가 탄천에 발을 담그고 있다. 남생이에게 얼마나 먼 길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 「남생이의 길」 중에서 아기는 걷기를 시작한다. 뒤뚱뒤뚱 걷던 모습은 콩콩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그러다 투덕투덕 걷는다. 이렇게 자라며 이 아기는 평생을 걷는다. (...)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떠오른 생각은 탄천을 따라 흘러가고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처럼 또 다른 생각이 밀려든다. --- 「걸어라」 중에서 우리들은 갑자기 서로 만난다. 만남만큼이나 몸집도 그렇게 커진다. 몸집이 커지면서 흙과 모래도 함께 해 우리들은 누렇게 변한다. 서로 몸을 밀치고 부딪치며 도도하게 소리 지르며 아래로 급하게 내려간다. 내려갈수록 이쪽저쪽 골에서 밀려오는 친구들로,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생긴다. 아우성치며, 이제 한목소리를 낸다. 앞을 가로막는 흙과 나무, 돌이며 쇠붙이를 상관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흐름은 이제 분노와도 같다. --- 「홍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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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성남 분당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분당으로 이사 간 지 10여 년이 지나자 저의 집 어깨 근처라고 할 정도로 가까이에 분당선 이매역이 생겼습니다. 2016년에는 경강선 환승역이 개통됐고 판교와 여주를 오가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방 창으로 보이는 5번 출구 안내표지판은 한밤중에도 노란색으로 저와 눈을 맞추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집 허리춤이라 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GTX-A 역 중의 하나가 문을 열어, 저를 멀리 편하게 다니라며,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는 땅속에서 일어난 변화였고, 지상에서도 그만큼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 탄천은 경기도 용인의 법화산에서 발원하여 구불구불 내려오며,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을 지나고, 마침내 올림픽주경기장을 끼고 나가 한강으로 들어갑니다. 아주 먼 옛날 삼천갑자 동방삭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저승사자가 이 하천에 와서 숯(炭)을 빨았구요. 어떤 사람이 와서 그 까닭을 묻자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했다나요. “검은 숯을 희게 하려고 이렇게 씻고 있다오.” 이 말을 들은 사람, 허리를 잡고 윗몸을 앞뒤로 빠르게 뒤틀면서 크게 웃었구요. “나,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빨아 하얗게 만든다는, 너 같은 우둔한 자는 처음 보는구나.” 그렇게 그만 동방삭은 저승사자에게 잡혀갔답니다. 저는 동방삭을 좋아합니다. 그가 오래 살아서가 아닙니다. 삼천갑자, 십팔만 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의 약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탄천을 자주 걸으면서 사람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 민낯을 생각하곤 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 책에 실린 글. 청하 성기조 선생은 제 생애에서 큰 스승이셨습니다. 만남은 5년 정도이지만 제 글을 한 편 한 편 읽고 지적하고 격려하며 다듬어주셨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구요. “글을 쓰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해.” 안타깝게도 청하 선생은 작년에 저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끌어 준 글들은 계간지 《수필시대》와 《문예운동》에 꼬박꼬박 실렸습니다. 청하 선생님 그리고 제 글을 믿고 게재해 준 계간지 주간 두 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고마움으로 남았습니다. 여전히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인사드립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