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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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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밍은 호접몽 같은 그때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남의 머리 만지는 직업이 이렇게 흔한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시절,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해도 집에 돌아가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행복한 웃음을 짓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지만 언제인지 모를 생의 마지막까지 잊을 수도 없는 한때였다. 기쁨이라곤 없는 억겁의 시간을 힘겹게 살아내며 생활비 걱정까지 해야 하는 요즘 같은 때에는 남들 다 한다는 재태크라는 것을 했더라면 이런 고생은 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뭘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이내 그 부질없음에 머리를 젓곤 했다.
--- p.31 모니터 뒤에서 두 마리가 더 기어 나왔고, 그걸 잡아 죽이니 벽에 서너 마리가 또 기어 나왔다. 의명은 적의에 가득 차 정신없이 지네를 잡아 화장실 변기에 넣었다. 변기 안이 온통 지네로 가득했다. 죄다 죽어버리길 바라며 변기 물을 내렸는데 물이 변기 밖으로 넘쳤다. 지네도 같이 넘쳐흘렀다. 지네가 화장실을 넘어 온 집 안을 가득 메웠다. 발등을 타고 올라오는 지네의 근질거리는 감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 p.55 “쟤, 영물이 되었구나?” 챠밍의 말에 도깨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그러네.” - 영물이 뭐지? 늙은 개가 생각했다. 십 년이 넘는 오랜 세월 산과 들을 쏘다니며 별과 달과 해와 산짐승과 더불어 산 개는 ‘영물’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 p.81 “할매는 소원 없어? 저승 가기 전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던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거라던가. 하다못해 못 먹고 죽어 한이 되는 음식이라도.”할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행복한 것이 별로 없었던 삶이었다. ‘사는 게 별거냐,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살았다.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지만 결국 혼자 일궈야 하는 일생이었다. 딱히 자랑스러운 삶도 아니었지만 크게 여한이 있지도 않은 인생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풀어야 하는 소원이라면, 있긴 있었다. 할머니의 흐릿한 눈동자는 먼 과거를 여행하는 듯 작게 흔들렸다. --- p.113 도깨비는 질투 외에 다른 감정 하나를 더 배웠다. 외로움이었다. 친구가 사라진 시간은 길고 외로웠다. 산으로 들판으로 돌아다니며 인간들에게 장난을 쳐봐도 신나지 않았다. 도깨비를 친구로 삼아주는 인간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 늘 혼자였고 외로운 도깨비는 참잉을 잊을 수 없었다. --- p.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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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낮에는 산 사람을,
밤에는 죽은 이를 단장하는 이곳, ‘챠밍 미용실’입니다. “할머니 눈엔 내가 그냥 동네 미용실 아줌마로 보이지?” 챠밍은 빙긋이 웃으며 할머니를 마주보았다. “할머니는 지금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랑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 여긴 낮엔 산 사람들 머리를 해주지만 밤이 되면 죽은 사람들이 단장을 하러 오는 곳이거든. 산 사람 꿈에 들어가기 전이나 죽어서 저승에 가기 전에 들러 예쁘게 단장을 해. 할머니도 저승 가기 전에 예쁘게 하고 가.” ― 본문에서 현월동에는 밤낮없이 장사하는 수상한 미용실이 있다. 바로 낮에는 산 사람을, 밤에는 죽은 사람들을 단장해주는 ‘챠밍 미용실’이다. 밤중에 미용실을 찾는 손님들은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을 아들 뒷바라지하는데 소진한 할머니, 주인과 재회하고 싶은 개…. 미용실 주인 ‘챠밍’은 저승에 가기 전 산 사람의 꿈속에서라도 이들의 소원이 이뤄지도록 고군분투한다. 한편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산 사람’들인 동네 이웃들도 저마다 눈앞의 현실적인 문제에 당면한 소상한 이야기들을 품고 살아간다. 6.25 시절 소중한 인연을 잊은 채 살아가는 노인, , 대부분을 방치되듯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청소년 등이 그렇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인 ‘의명’도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곧잘 공감대를 잘 형성할 수 있는 사연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앞날에 대한 불안에 가득한 청년으로, 동네에서 마련한 고즈넉한 방을,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생각만이 위안을 줄 뿐이다. 그러나 오피스텔에 이웃한 수상한 할아버지로 인해 소음에 시달리며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곧 자신만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이 외에도 소설은 다양한 존재들을 등장시켜 이 소설은 한층 풍부해진다. 이웃들의 두터운 사연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 시대의 사회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리얼리즘 소설로서의 면모, 동시에 환상 소설로서의 면모와 엔테테인먼트적 소설의 재미 세 가지를 충족시킨다. 오컬트, 호러, 판타지, 힐링… 다양한 장르를 한 권에 소화하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챠밍의 사연은, 우리를 지난 역사 속 설화적 세계관으로 끌고 들어간다. 조선시대의 가장 촉망받은 머리어멈이었던 챠밍, 그런 챠밍이 어쩌다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현대까지 미용실을 운영하게 되었을까? 조선시대부터 온갖 시절을 함께 했다던 도깨비와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과거사를 촘촘히 풀이된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장대한 설화적 판타지로까지 확장되는 세계관을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소설은 다방면의 장르적인 즐길 거리를 포진해놓는다. 때로는 호러였다가, 때로는 판타지이고, 때로는 힐링을 선사한다. 오컬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갈래를 준비해둔 선물 세트를 통해 마음속 위안을 얻고 싶은 독자라면,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