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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벤자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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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n Franklin

1706년 1월 17일 뉴잉글랜드 보스턴에서 17남매 중 15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 때문에 열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양초와 비누공장을 하던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열두 살에 형이 운영하는 인쇄소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열여덟의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인쇄 기술을 배워온 뒤, 1728년부터 인쇄업을 시작하였다. 1729년에는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지를 인수하여 발행하였다. 1732년 12월, 1733년도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을 처음으로 발행하여 1758년도 달력까지 발행하였다. 그는 회원제 도서관과 병원을 만들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전신
1706년 1월 17일 뉴잉글랜드 보스턴에서 17남매 중 15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 때문에 열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양초와 비누공장을 하던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열두 살에 형이 운영하는 인쇄소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열여덟의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인쇄 기술을 배워온 뒤, 1728년부터 인쇄업을 시작하였다. 1729년에는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지를 인수하여 발행하였다. 1732년 12월, 1733년도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을 처음으로 발행하여 1758년도 달력까지 발행하였다. 그는 회원제 도서관과 병원을 만들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전신인 필라델피아 아카데미 창설, 미국철학협회 창립 등 폭넓은 교육문화 활동을 벌였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토(Junto)’라는 독서토론 클럽을 결성하여 바람이나 일식, 월식, 지진 등 자연과학에 대해서 토론하고 연구하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742년에 개방형 난로인 ‘프랭클린 난로’를 개발하였다.
1752년 6월에는 연을 이용하여 번개가 전기라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피뢰침을 발명하였다. 영국 왕립협회는 그 공로를 인정하여 프랭클린을 왕립협회 회원으로 임명하고, 코플리 상을 수여하였다.
1748년 인쇄업에서 은퇴한 뒤, 필라델피아의 시의회 의원, 펜실베이니아 식민지의회의 의원을 역임하였다.
1755년에 영국에 대한 미국의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이듬해에 프랭클린은 토마스 제퍼슨 등과 함께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다. 또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미국과 프랑스의 동맹 관계를 이끌어내었다.
1788년에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고, 1789년에는 자서전을 정리하여 영국의 지인들한테 보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 실험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1790년 4월 17일 8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평생을 통하여 자유를 사랑하고 과학을 존중하였으며 공리주의(功利主義)에 투철한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가장 지혜로운 미국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저서로는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과 《자서전》이 있다. 뛰어난 기지와 경구가 넘치는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는데, 프랭클린은 “나의 출판업 중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낸 작품”이라고 밝혔다. 사후에 출판된 《자서전》은 18세기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산문으로 손꼽힌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그를 가리켜 ‘신대륙에 있어서 자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문필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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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8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61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08030862

책 속으로

이 도서관이 생간 덕택으로 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향상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날마다 한두 시간씩을 공부시간으로 정해놓았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가 나에게 고등 교육을 받게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이루지 못한 몫까지 어느 정도 보충한 셈이다. 독서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나는 술집에도 가지 않았고 노름도 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종류의 장난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근면하게 일을 계속하였고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으며, 일하면서 고단한 줄을 몰랐다.

고단함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인쇄소 때문에 빚을 지고 있었고 교육을 시켜야 할 어린애도 머지않아 생길 예정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이 지방에서 일을 시작한 두 인쇄소와 사업상의 경쟁을 해야 했었다. 그러면서도 생활은 나날이 윤택해졌지만 예로부터의 습관인 검소함은 변함 없이 나의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여러 가지 교육 가운데서도 솔로몬의 교윤 '그대는 자기 일에 근면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 사람은 왕 앞에 설지언정 비천한 사람 앞에는 서지 않을 것이니라'하는 가르침을 자주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근면이야말로 부귀와 명성을 얻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간직해왔다.

--- p.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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