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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살라먹은 눈썹달 - 민들레(나의 사랑을 그대에게 드려요)
두 개의 요강 - 앵초(첫사랑, 젊은 시절) 화냥년, 화녕 - 금잔화(비탄) 광명회 - 개나리(희망, 기대) 인서의 독백 - 해바라기(화해) 파문 - 능소화(명예) 끝나지 않는 - 할미꽃(슬픔) 불꽃이 되다 - 화녕(불꽃)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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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소리가 섞여 꺾어지는 화녕의 음성이 안채 마당에 울려 퍼졌다. 계집애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가사 그대로 애달픈 사연에 예상외로 깊은 음색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럼 이 노래가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라 일제가 호남의 곡창 지대 곡물을 수탈하는 목포항의 한을 그린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 p.27 “도련님이라? 같이 신식물 먹은 사람끼리 퍽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오.” 막 변성기를 지나는 인서의 목소리는 남자로서는 드문 앵초 빛깔 볼을 한 얼굴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 p.41 서씨 부인은 늘 말하였다. 너와 나는 같은 운명이다. 그래서 나는 니가 가엾고 귀하다. 허니 내가 지키지 못한 자리를 너는 지키거라! 나는 차지하지 못한 옆자리에 너는 어떻게든 들어서거라! 내가 도울 것이다! 인서에게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 p.70 화녕은 그제야 울음이 났다. 너덜너덜한 종이 위에 화녕의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채단은 아직도 감옥소에 갇혀 있었고 넓은 집에는 화녕 뿐이었다. 손수건도 없고 위로해 줄 사람도 없다. --- p.87 현성의 어깨가 솟구치면서 눈이 질끈 감긴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처럼 얼굴도 벌게졌다. 순간, 화녕도 현성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현성이 제게 베푼 많은 은혜는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현성은 확실히 화녕을 아끼고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 p.101 이제 어쩌면 화녕의 겨울은 끝날 것 같다. 민족의 겨울은 그대로이고 민족의 맨발은 여전히 얼어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일본에 붙어먹지 않아도 노래할 길이 생겼다. 진주좌의 단 위에 선 내 노래를 들으러 수많은 이들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이 그들에게도 봄날이 되어줄 것이다. --- p.117 화녕이 인서와 현성에게 공평하게 준비한 선물은 가방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값이 나가 보이는 가죽제품이었다. 색깔만은 달라서 인서가 까만색, 현성은 진고동색이었다. --- p.127 “현성이 미안한 일은 절대 아니죠. 그러라고 한 말도 아니고. 난 그저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 p.130 비단 저고리에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금박이 사각사각 따라서 울었다. 현성이 나에게 진짜 화를 냈다. 현성이 나에게 영원한 작별을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천것이라고 했다. 노래를 팔러 다니는 그 천한 계집이 아니라 비단옷 둘러 입은 나를 보고 말이다. 능소화처럼 높은 명예를 지닌 나에게 말이다. --- p.162 화녕의 목소리에는 무슨 결의마저 서려 있었다. 바란이 연습을 며칠 빼먹더니 태평양 전쟁에라도 참전하고 돌아온 것이냐며 농을 하였다. 그래서 화녕도 인서도 현성도 웃을 수 있었다. --- p.186 노 젓는 소리 삐거덕거리는 가운데 화녕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스바로는 제 목적을 달성하였다. 잔뜩 한이 서린 목소리였다. 주인을 잃고 덜컹거리는 휠체어 위에 그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 p.202 가사를 붙여 부르자면 한도 끝도 없는 우리 가락이었다. 극장 안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면서 눈물 삼키는 소리까지 보태어져 노래는 더욱 구슬펐다. 모두가 한이었다. --- p.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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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노래가 있었다
애플TV+에서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파친코(PACINCO)’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가? 일본으로 떠나는 여객선 안에서 한국인 여성 소프라노가 일본인 관객들 앞에서 결연하고도 비장한 표정으로 춘향전의 ‘갈까부다’를 열창하던 모습을. 어찌나 구슬프고 화면 구성이 강렬하던지 쉽게 잊히지 않는 명장면이었다. 그렇다. 식민치하에서도 노래는 우리 곁에 존재했다. 어쩌면 노래가 있어 견뎌냈을지도 모른다. 『화녕가(歌)』는 실로 ‘파친코’의 그 장면과 동일한 시기를 배경으로 윤심덕과 같은 실존 인물들이 모티프가 되어 소설화된 작품이다. 실로 1920~40년대 한국 가요사는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낸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이 시기의 가요들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민족의 슬픔과 절망 또 동시에 희망과 저항의 상징이었다. 소설가 이영희는 『화녕가(歌)』에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개인의 삶과 사회적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그 시대의 절절한 정서를 문학적으로 재현한다. 1920~40년대는 일제의 수탈과 탄압이 더욱 가혹해진 시기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사람들은 스타에 열광하며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 했던 것일까? 『화녕가(歌)』는 이 시기에, 불꽃같은 열망을 품고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화녕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당시 한국 대중음악이 가진 역사적, 민족적 의미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또한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김서정 작사·작곡의 [강남달] 등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곡의 가사를 소설에 삽입하여, 화녕의 마음을 그 음악적 의미와 함께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현대 K-pop과 화녕의 유산 『화녕가(歌)』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로 기능하며 작가 이영희는 화녕이라는 인물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고통과 저항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현대 K-pop의 뿌리와 연결된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화녕이 노래를 통해 민족의 혼을 불태웠던 것처럼, 현대의 K-pop 아티스트들은 음악을 통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고, 한국의 문화를 알리며 새로운 형태의 저항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화녕의 삶과 그의 노래는 그 시대를 넘어 현대에도 큰 울림을 주며, K-pop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작품으로 기대해 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