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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one 13
Part two 141 옮긴이의 말 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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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머무는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연극을 보러 가고, 술을 마시러 바나 클럽에 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 어떤 것도 모성과 양립하기는 어려웠다. 자식이 있는 여자들은 그렇게 살 수 없다. 적어도 양육 초기 몇 년 동안은 불가능하다. 그저 오후의 영화 한 편 혹은 저녁 외식 한 끼를 스스로에게 허용하기 위해서, 한참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보모를 구하거나 아이들을 봐달라고 남편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남자와 관계가 진지해지기 시작하면 언제나 나랑 아이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 p.19 “딸입니다. 여기 외음부 형태가 아주 선명하게 보여요.” 알리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한번도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둘 다 그녀가 딸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네스라고 부를 거야.” 알리나가 말했다. 나는 듣자마자 그 페미니스트 시인의 이름에 찬성했다. --- p.43 엄마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취침등의 흐릿한 불빛 아래 엄마의 다크서클은 더 길게 늘어져 보였다. 온갖 문제와 씨름하며 감정을 억누르느라 쌓인 피로였다. 다섯 살 먹은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화가 났다. 그날 밤, 나는 어떤 연민도 없이 엄마한테 멍청해 보인다고 말했다. 엄마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말이 맞아. 너희들을 낳았을 때 엄마 뇌세포가 녹아버렸단다.“ 나는 그게 농담인지 진심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 p.55 “하지만, 살면요?” 최후의 희망을, 기적의 가능성을 놓치 않으려는 듯, 어쩌면 그 기적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알리나는 고집했다. “감정도 지성도 없는 덩어리가 된단 말인가요?” “산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러면 제가 지금 뭘 할 수 있죠?” 알리나가 물었다. “잘 먹는 거요? 탈 없이 자라도록 침대에 있어야 하나요?” “평소처럼 일상 생활을 유지하세요. 현재로서는 알리나도 저도 할 수 있는 게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구라도요.” --- p.71 “하지만 아이가 아버지나 어머니랑 같이 사는 것 말고 다른 무슨 방법이 있어?” 알리나가 물었다. “다른 많은 방법이 있지. 만일 너랑 나랑, 아우렐리오랑, 우리 딸들이랑 친구들 두어 명까지 같이 같은 집에서 살면서 일상을 공유하면 우리 삶이 어떨지 상상해봐. 분명 훨씬 덜 피곤할 거야.” --- p.240 1648년 혹은 1651년,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의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아홉 살의 나이에 남자 옷을 입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던 그 아이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읽고 쓰기 위해 수녀의 길을 택하고, 명성 덕분에 궁에 입성하여 통치 권력의 후원을 받고 부왕비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작가가 된다. 그녀를 부르는 이름의 목록은 길다. 천재, 멕시코의 열번째 뮤즈, 아메리카의 피닉스(맙소사), 괴물 혹은 프릭, 어쩌면 레즈비언, 아메리카 최초의 페미니스트. 그리고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여자’.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Sor Juana Ines de la Cruz. --- p.294 「옮긴이의 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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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다정하게 살아갈 거야
삶에 대한 의지와 연약한 존재에 대한 사랑,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의 원제 ‘La hija unica’는 ‘외동딸’이라는 뜻이지만 말 그대로 ‘유일한 딸’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어 유일무이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국어 제목에서는 알리나의 딸에게 주어진 이름 ‘이네스’를 강조한다. 이네스는 17세기 남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태어난 페미니스트 시인의 이름으로, 남아메리카 여성들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름이다. 치안이 불안정하고 노골적인 남성중심주의가 살아 있는 멕시코에서 딸을 낳는다는 건 어쩌면 기뻐할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알리나는 기꺼이 배 속에 있는 딸아이에게 이 부적 같은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활택뇌증을 갖고 태어난 이네스는 의사들의 비관적인 전망과 달리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기쁨이자 즐거움인 동시에 고통이고 슬픔이다. 이미 아이를 다 키우고 노년에 이른 라우라의 엄마는 “자식은 인생의 기쁨이야. 조건 없는 사랑으로 채워 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 주지.”라고 판에 박힌 모성 찬양을 늘어놓다가도 아이들을 키울 때 겪었던 '불치병 같은 피로감'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며 라우라의 비출산 선언에 공감한다. 더 이상 결혼과 출산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 어떠한 선택을 하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이 무거운 짐이 여성의 삶을 짓누른다. 보드랍고 귀여운 아기를 안고 피부를 맞대고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보모 마를레네에게서 보듯, 때로는 남의 아기를 맡아 키우면서까지 채워야 할 기본적인 욕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낳을 아기가 천사처럼 착하고 순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으랴. 말도 안 듣고 폭력적인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영원히 지옥에 갇힌 기분을 맛볼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죽는다면, 겨우 살아남는다 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면, 아기를 갖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축복일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어머니 되기에 관한 여러 선택과 그에 따른 다양한 결과를 보여주지만 출산과 비 출산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모성이란 결국 삶과 죽음,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진짜로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는 여성의 출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와 연약한 존재에 대한 돌봄, 사람 사이의 상호 이해와 연대라는 것. 이야기는 모성을 다루는 의료 시스템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과 페미니즘 시위까지 오늘날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문젯거리들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삶이란 매순간 결핍과 부정의 감각을 강요당해 왔으나 지금은 아니다. 으스대는 의료 전문가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 진단을 내린 이네스는 끝까지 살아남는다. 장애를 갖고 있으며 장기적인 생존을 장담하기도 어렵지만 이네스의 삶은 유일무이하며, 이네스가 삶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은 오직 이네스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이란 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을 터. 출산이란 한 생명을 낳는 것, 그리하여 어머니가 되든 되지 않든 모성이란 여성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는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 여성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